Essay
직설과 은유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은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활동과 관련한 사무실과 공방, 전시실 등의 공간을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2001년에 활동을 시작한 아름지기는 ”전통문화가 현대 생활의 중심에 뿌리내리며 이어지도록 문화유산 주변 환경 개선 사업, 의식주를 테마로 하는 기획 전시 및 연구,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여러 교육 사업 등을 펼쳐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활동 가운데 이 사옥의 건립과 관련해 특히 눈에 띠는 것은 “ 현대인의 의·식·주·행(衣·食·住·行)을 위한 전통의 현대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교육 및 연구”이다. 즉 이번 아름지기 사옥이 그러한 활동 목표를 실천하는 과제의 성격을 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이 건물의 건축적 성격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 이라는 ‘아름지기’의 활동 방향과 연관성이 매우 커 보이며 건축가에게는 실증적 과업으로 의식되었을 듯하다.
건축가는 출발선상에서 건축주가 추구하는 이념성과 이곳의 지역성을 고려해 전통적 가치들을 담아내고자 한 것 같다. 그리고 전통적 가치 구현 방안으로서 한국 전통건축에 담겨 있는 특징들을 직설적 재현이 아닌 은유적 번안 방식으로 드러내려 한 듯 보인다. 이 건물은 규모와 쓰임를 감안하여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채택했다. 그런 가운데 전통건축의 가치를 발견 할 수 있는 요소는 공간의 성격과 재질감 그리고 가변성과 개방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공간은 전통건축의 직접적인 참조로 보이며 물성과 창호부분은 전통 회화에서 사의(寫意)를 중시하듯이 전통을 은유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느껴진다.
여기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같은 프로젝트 안에서 다른 건축가의 손에 의해 한옥을 구현한 점이다. 이 건물에서 한옥은 주인공 같은 인상에 오브제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자체가 건축적으로 완결적 대상이어서 상대적으로 새롭게 언급할 점은 많지 않다. 여기서 한옥을 구현한 것은 전통을 소중히 하는 마음 자세로서 한옥을 한 채 갖고자 하는 욕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현대 건축의 부분들에 대해 그 한옥과 직접적인 접촉을 인지하면서 한옥의 특질들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서 전통 건축이 실재하는 상황은 전통성 실현에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것이 두 요소간의 동화건 이질 요소의 대비적 관계이건, 한옥 특유의 섬세하고 살가운 체취로 인해 건축 전체의 전통적 이미지를 실질적으로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추구한 현대건축 부분에 있어서도 전통적 감각을 바탕에 확보할 수 있게 됨으로서 전통성을 띠게 하는데 있어서 원활하게 작용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관심은 현대건축 부분을 어떻게 ‘창조적 계승’으로 해석하고 성공적으로 살려 내었을까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공간의 구성방식이다. 한국전통건축의 공간은 연속성과 경계의 구분이 불확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처럼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기능적 레이어와 공간의 켜가 마당 및 길과 같은 동선에 의해 매개되면서 전체 흐름상에서 조합되어 있다. 그리고 지하로부터 지상 상층부로 흩어진 외부 공간들은 각기 다른 장소성을 지니며 잘 드러나지 않게 연결되고 있다. 또한 동측 도로 측에 놓인 1층 현관은 전통 가옥의 중문에서 동선이 꺾여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처럼 매스를 도려내듯 셑백된 공간 안에서 꺾여가게 되어 있다. 아울러 그러한 동선의 흐름은 건물 전체의 매스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수직 동선을 형성하는 두 개의 계단실 블록은 수직매스를 형성하여 콘크리트와 목재, 유리의 매스가 적층되며 수평성이 강조되는 부분과 조형적 균형감을 이루게 한다.
여기서 전통성을 표출하고자 한 다른 요소는 창호와 재료적 측면이다. 한국전통건축에서 창이 완전한 개방성을 갖는 것처럼 여기서도 대부분의 창을 미닫이 구조로 하여 그 효과가 나타나도록 하고자 했다. 그리고 현대건축 부분의 2층의 외벽 대부분에 목재를 사용해서 같은 레벨에 위치하는 한옥과 재료의 물성에 따른 공통성을 갖게 했고 노출콘크리트도 마치 백자의 질감을 떠올리게 하는 흰색으로 처리했다. 그처럼 여기서는 재료의 물성, 창호의 구조 등의 요소에 의해 전통성이 은유적으로 느껴지도록 했다.
이 건물은 전통적 요소의 인용과 은유적 구사에 의해 전체적인 감각에서 한옥과 동화된 분위기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다. 2층 마당 주변은 이 건축의 전통성 구현에 있어 절정에 치닫게 할 만한 공간구조와 장소성을 갖고 있다. 건축가도 그 곳에서 앞서 만한 마당의 매개성과 창호의 개방성 등 전통 건축의 특질을 살려 전통성 구현의 의미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실 전면에 처마와 마루 요소를 두어 한옥과 더불어 입체감과 깊이감을 갖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통건축의 마루와 달리 높낮이 차이가 별로 없이 그냥 목재 데크처럼 깔린 상태이고 평처마 부분은 단순한 캔틸레버 스라브에 목재 마감만을 한 상태여서 전통건축에서 대하는 특질적 감각이 제대로 살려지지 않아 보인다. 또한 미닫이창의 작동성에 기인하여 마당에 면한 전시실 창의 크기와 위치가 애매하여 공간적 긴밀성과 살가움이 떨어지고 한옥의 큰 방과 전시실 내부 또한 입식 공간으로 되어 있어 전통건축의 마루와 마당에서 나타나는 긴밀한 연계성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건물은 현대 건축에 전통건축의 가치들을 담아내기 위한 많은 노력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일정부분 의미 있는 성과를 획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건축과 전통건축의 동화보다는 대비가 더 두드러지고 건축가의 다른 작품에서 보았던 현대적 건축 감각이 먼저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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