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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안녕하세요? 건축가 김석환입니다.

    이번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써 웹상에서 저의 활동을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터넷은 이 시대 대중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것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적응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언제나 새로 등장하는 문화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홈페이지를 만들 결심을 하고 난 후 시간이 자꾸 미뤄졌습니다. 그러다 근래 서울 디자인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전시할 작품을 정리하면서 더불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올릴 자료를 정리 하려다 보니 다시 챙겨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작업들은 찾기 어렵게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평소 따로 시간을 내어 정리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이번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료를 정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인 것도 같습니다.

    근래 저와 같은 작은 아뜰리에 사무실은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표로 추구해온 길을 걷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입문할 때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갈수록 왜소해지는 느낌입니다. 건축 활동의 여건은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고 걷고자 했던 당초의 의욕으로 보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묵묵히 견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란 세계로부터 독립된 존재이며 개성으로써 세상에 영향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행 불행의 문제보다 독특한 직능으로써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실은 것은 내가 해 온 건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저의 건축적 태도는 근대 건축적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합리성, 단순하고 매끈한 기하학적 매스의 구성, 그리고 질서내의 자율성 등이 그런 점들입니다. 그런 점들은 르 꼬르뷔제로부터 받은 영향입니다.

    돌아보면 건축가로서 자질을 닦는 몇 단계 여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입문기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건축적 의지를 확고히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르 꼬르뷔제와의 책을 통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때 이상적인 건축을 꿈꾸며 설레이는 미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일생에 있어서 교훈이자 거울이었습니다. 소양을 닦으려는 마음으로 그의 생애와 건축을 답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세계 각지의 건축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에 대해 어떤 건축을 하는 가라고 한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근대건축입니다. 근대 건축이라는 말이 이 시대에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건축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건축의 의미에 본질적 변화를 초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르 꼬르뷔제의 건축을 대하면서 그 특별한 의미를 순간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시대에 만들 건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바탕이 되었고 그 바탕 사상이 되는 합리성, 단순함, 경제성, 합목적성 등의 덕목들을 지향해 왔습니다.

    근대 건축은 건축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로써 양식의 시대 이후 탈양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건축은 한 개인의 경향이 아니라 도도한 시대 흐름의 반영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근대를 넘어선다는 시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차별화하려는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에도 여전히 근대건축의 연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루어지는 건축의 속성에서 중요한 것 역시 자유로운 구사입니다. 자율성은 근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일상의 다양성을 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실을 개설한 초기에는 지금보다 더 의욕적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많지 않은 나이에 활발한 활동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추구하는 이상과 모델이 있었기에 단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것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사무실을 개설한 초기에 현상설계에 당선된 김제청소년수련관, 강서구교통교통관련센터 그리고 평택시에서 발주한 평택청소년수련관 등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동문이나 과거 동료직원이던 지인들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기본 설계를 해주었던 것들로서 마지막까지 나의 손에 의해 구상했던 대로 지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큼니다. 그렇지만 아예 지어지지 않고 안으로만 남은 것도 많았습니다. 설계과정에서 의견이 달라 포기하게 된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애써 만든 것들이 허사가 될 때가 있었습니다. 생각한대로 구현되리라는 열망으로 열정을 다해 설계한 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고 마음이 아픈 점입니다. 그런 사정들로 낙담하면서 어떤 때는 사막에 내던져진 기분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건축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저가의 공사와 건축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공자들과 함께 작업을 해 나가면서 애로를 느꼈었습니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건축의 존재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는 일이고 건축의 감각을 제대로 빚어내려면 엄밀하게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생각들을 섞어 넣으려 해서 혼선을 빛을 수도 있습니다. 시공상에서 제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건축은 미술이나 조각처럼 순수한 작가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주장이 중구난방으로 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다양한 의견이 반영된 상태로는 제대로 된 작품이 되기 어렵습니다. 건축 작업은 건축주의 의뢰자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의뢰자는 건축 과정에 큰 힘을 갖습니다. 때로 의뢰자는 건축가와 의견이 다른 경우 자기 재산이라 하여 자기 뜻대로 공사를 진행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설한지 몇 년 후에 닥친 IMF로 작업의 기회를 갖기가 더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진행중이던 일 가운데도 국민 모두가 경제적으로 불안해하던 시기에 건축계획을 세워 놓고 포기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당황스런 느낌이었고 숨죽이며 기다리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사회 전체가 짓눌려 있는 분위기여서 활로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운영이 불안하고 의기소침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강의와 답사, 저술, 세미나 참석 등 건축에 관한 인식을 더 넓히고 경험 하는 시간을 삼으며 작업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때로 인내력을 길러 주었습니다.

    작업을 위해선 아쉬움은 빨리 떨쳐버리고 작가로서 열정을 지닌 여전한 마음 상태를 지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삶에서 나 스스로에게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축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건축은 시대성과의 관계가 있기도 하고 초연한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 보편적 문화 등이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변치 않고 지녀가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나의 건축적 감각은 질서와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질서는 지음의 방식으로부터 형식을 이루던 건축의 원초적 속성이고 자율은 인본주의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건축적 감각의 본질을 질서에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이 여타 근대 작가들의 감각과 다른 점은 질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율은 근대의 정신입니다. 현재는 그 이후 도래된 시대 상황에 대응해 나가거나 건축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인해 본래 가졌던 생각에서 약간의 변화의 괘도를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제가 건축에 입문하며 가졌던 근대 건축의 감각이 여전히 큰 바탕입니다.

    오늘날은 문화적 변화 주기가 매우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에서도 종종 첨단 기계를 구입할때처럼 새로운 감각을 추구해야 할 것처럼 인식하며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건축의 속성은 자연처럼 존재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인간에게 편안한 안식처로서 의미가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그러한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축적 속성은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고대의 어떤 건물에서 현대의 어떤 건물보다 큰 감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적 감각 또한 본질적으로 중력에 대응한 구조적 질서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 또한 변할 수 없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이 스스로 지탱하기 위한 구조적 세기가 감각의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세계 각지의 건축 여행 이후 우리 전통 건축을 돌아보았습니다. 입문기에 접한 근대 건축의 바탕위에서 우리 전통 건축에 관심을 가진 이후 우리 땅위에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건축적 지혜를 배워 나의 건축적 바탕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나의 작품들에 조금쯤 나타나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전통 건축의 양식적 측면이 아닌 주로 배치와 공간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이미 시대가 다르고 건축이 놓이는 환경이나 옛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풍습과 다른 현대의 도시 상황에서 전통 건축의 가치를 재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내가 전통 건축을 대하며 저의 작업에 반영하려는 것을 말한다면 덤덤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이 현재에서 특별한 표정을 짓기보다 좀 더 영구적이고 여전한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덤덤함은 근대 건축이 추구한 합목적적인 단순함의 덕목과도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건축대전 출품 때 내건 슬로건은 ‘덤덤함’이었습니다. 덤덤함은 존재의 힘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한국적 정서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덤덤한 것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물의 존재적 감각과 계절, 시간 등 운동하는 것과의 관계를 통한 반추, 사유 등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존재만으로 감동이 일 수 있는 건축을 만들고자 합니다. 2005년말 건축역사학회지에 나의 건축을 발표할 때 “본연성, 덤덤함” 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건축의 본질을 되뇌이며 편안한 건축을 만들어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추구하는 것이 단지 편안함은 아닙니다. 현대 건축의 경향에서 괴리가 느껴지는 점들이 있습니다. 즉 본질적 감동은 적고 표피적인 것으로 만들어 질 염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취에 느끼는 경험이 반영된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꿈을 품고 시간이 지났지만 이룬 것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얼마나 지나야 꿈을 대할지 모르겠지만 묵묵히 가려는 마음입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려 합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기분입니다. 백두대간을 종주중인데, 그를 통해 체력에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악천후 속에서 50km를 걷기도 했습니다. 소양을 넓힐 요량으로 이런저런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제 정리하고 건축 작업에 더욱 전념하려 하고 있습니다. 답사에 시간을 빼앗긴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있는 덤덤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관심을 빼앗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해온 일들은 잠재적 소양으로 작용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의욕도 커져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여기에 정리한 것은 그동안의 저의 활동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저의 작가로서의 삶과 활동을 진솔하게 보여 주는 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들은 에세이에 쓴 글들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작업에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08. 9. 27 일매헌에서 김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