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타미 준 : 바람의 조형’전
지난 1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4층 건축상설전시관에서 건축가 이타미 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 기증된 이타미 준 아카이브와 유족 소장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에서 활동한 1970년대 초기 작업부터 말년의 제주도 프로젝트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건축 세계를 아우르고 있다. 과천 현대 미술관은 작년부터 건축과 사진 상설 전시관을 마련하고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제일동포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 1937~2011)은 특이한 인생 역정을 걸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 슬하에서 8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64년 일본 무사시 공업대학 건축학과(지금의 도쿄도시대학)를 졸업하고 1968년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개설했다.
그의 이름 ‘이타미 준’은 이타미 공항과 길옥윤으로부터 따온 것이고 본래 이름은 유동룡이다. 그 이름이 풍기듯이 사람들은 그를 경계인의 부유(浮遊)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건축계의 중심에 자리매김 되지 못했고 한국 건축계에서도 낯선 존재로 여겨진듯 하다. 하지만 2005년 프랑스로부터 슈발리에 훈장을 받고 2006년 김수근문화상, 2010년 일본의 권위 있는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村野藤吾)상을 받으면서 활발히 재조명 되었다.
이번 전시의 구성은 1부 근원, 2부-전개1, 3부-전개2, 4부-전개3, 5부-바람의 조형:제주 프로젝트, 6부-이타미 준의 작업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전시 공간의 분위기는 그의 작업실 느낌처럼 벽면 바탕을 검게 하고 국부 조명에 의해 전시물이 돋보이도록 되어 있다. 특히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며 마주하는 벽은 그가 제주에 작업한 풍(風)미술관의 벽처럼 사이가 트인 널판지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실의 1부 근원에서는 이타미 준의 회화, 서예, 공예품, 저술 등 건축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를 섭렵했던 이타미 준의 예술적 뿌리와 건축의 근원이 무엇인지 살펴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들어서는 입구에 걸린 3점의 커다란 회화 작품은 그가 추구한 모노하 미학을 대변하는 듯하다.
2부~5부 전시공간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타미 준의 건축 여정을 따라가며 초기 일본에서의 작업부터 말기 한국에서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작가의 작업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먼저 2부-전개 1: 소재의 탐색 공간에서는 1971년부터 1988년 사이의 작업이 소개 되어 있다. 1971년 설계한 어머니의 집은 그의 첫 건축 작품으로 꼽히는데 이타미 준은 졸업 후 회화 작업을 병행하면서 인테리어 작업을 주로 해 오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건축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75년 자신의 아틀리에로 지은 먹의 집은 건축가로서 그의 작업 세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난히 긴 모양의 2층으로 된 그 건물은 한국 전통 건축의 사(舍)와 랑(廊)의 의미와 방위를 겹하여 부합 시킨 것인데 방이 곧 복도이고 복도가 곧 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외에 이 시기 작품으로는 온양미술관(1982), 조각가의 스튜디오(1985), 장욱진 기념관(1986) 등이 있다.
3부-전개 2: 원시성의 추구에서는 1988년부터 1998년 사이에 진행된 각인의 탑(1988), M빌딩(1992), 나무의 교회(1996), 먹의 공간(1998)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남태령고개 부근에 있는 각인의 탑은 이타미 준이 한국에 발을 내디며 첫 번째 지은 자신의 아틀리에로서 채석장에서 가공하고 남은 거친 화강석의 물성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원시 기념물 같은 형상 등 그의 건축적 개성이 잘 담겨진 역작으로 한국 건축계에 그의 존재를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4부-전개 3: 매개의 건축에서는 199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게스트 하우스 올드&뉴(2000), 종새도 미술관(2001), 고도 빌딩(2008), 서원골프클럽하우스(2009), 오보에 힐즈(2010) 등의 작품들이 소개 되어 있는데 “자신을 주체로 삼아 건축물을 매체나 중간질로 인식할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진 것인가, 어떤 여백이 생겨나는가, 어떻게 조회되는가, 반대로 어떤 대립과 복합이 일어나는가.”라는 주제 의식을 갖고 한 작업들로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과정에서 건축이 그 경계에 방해 되지 않게끔 몸을 낮춘 건축(서원골프클럽하우스)이라거나 주위의 환경과 지령이 말하는 언어로서 흰 상자형태를 중층시키는 건물(오보에 힐즈)이라는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그 중 2000년에 지은 게스트 하우스 올드&뉴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그의 한국에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필자가 그와 나눈 대담을 건축가지에 게재한 바 있다.
5부- 바람의 조형 제주 프로젝트 공간에서는 포도호텔, 두손미술관, 하늘의 교회,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등 이타미 준 작업의 절정으로 꼽히는 제주도 프로젝트가 전시되어 있다.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03년 프랑스 국립미술관인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로는 최초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라는 찬사를 얻었다.
마지막 6부 이타미 준의 아틀리에는 그가 실제 작업했던 공간을 재현하였는데 검게 칠한 벽을 배경으로 책상 주위만 밝게 밝혀 놓아서 명암의 대비에 따른 질량감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책장과 바닥에는 그가 애장한 이조백자와 민화, 르 꼬르뷔제와 알바알토 등의 건축 작품집, 여러 회화집 등이 놓여 있어 그의 관심과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타미 준의 건축은 공예적 감각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그는 화가들이 자신만의 화풍을 중시 하듯이 그만의 언어를 가진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지향하는 미학을 탐구하고 가다듬으며 작가로서의 정신적 바탕을 확고히 구축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미학 정신이 그가 작업한 회화나 공예와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드러나 있다.
그의 미학은 일본에서 일어난 모노하(物派)와 연관이 깊다. 이타미 준은 일본 모노하의 선구적 작가로 꼽히는 곽인식(1919~1988), 이우환 등과 미학 정신을 공유하는 듯 한데 특히 그는 스승으로 여긴 곽인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의 그림 가운데는 곽인식의 그림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듯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다. 대구 출신의 곽인식은 일본으로 건너가 어려운 경제 사정에 허덕이며 작업을 했는데 이타미 준이 그의 첫 번째 전시를 열어주기도 했다.
스기야마 타카시 일본 민예관 학예연구 부장은 이타미 준의 건축적 특징을 야나기의 민예관과 연관지어 말하며 “이타미 준 건축은 공예적 감각이 크며 특히 조선 이조 백자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소현 한국문화 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에 대해 “특히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예론을 펼치면서 근대의 회화론 내지는 근대 미학을 다시 한 번 재정립하려고 했었던 시각들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셨던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우환 선생님을 비롯해서 다른 민예 연구가와 1975년 즉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있었던 그 시점에 ‘조선 민화론’이라는 책을 발표하십니다. 이타미준의 작업은 결국 조선 미학을 계승하여 근대와 다른 미학을 꽃 피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타미 준은 1968년 한국을 첫 방문하면서 민예와 한국 전통건축에 심취하기도 했고 ‘한국의 건축과 예술’, ‘한국의 공간’, ‘이조민화’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그런 활동은 제일동포 2세로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그의 몸 안에 있는 한국인의 기질이 원초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국적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의 토착적 미학을 탐구하고 작품으로 살려낸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업적이 많은 건축학도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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