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개념의 증식과 표상
장욱진은 ‘국민화가’로 불릴만큼 우리나라 현대 회화사에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일의 중요성만큼 이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를 마련해준 양주시나 장욱진의 그림을 100여점이상 기탁하기로 한 장욱진 문화재단 등의 열의가 담겨 있다.
장욱진 미술관은 지명 설계 과정에서부터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그처럼 관심을 끈 것은 바로 장욱진 미술관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중요성에 의해 이 미술관을 짓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도 많은 미술계와 건축계 인사가 참여하여 신중히 논의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열의와 신중함 가운데는 미술관의 건립 방향 등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 뿐 아니라 이 미술관의 건축적 성격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상설계에 참가한 건축가들은 ‘장욱진 미술관다운’ 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이 드러난다. 당선된 건축가가 현상 설계시에 제출한 제안서에는 개념도에 장욱진의 그림을 병치하여 장욱진 회화 세계와의 상관성을 의식하게 한다. 설계 설명에는 건축 본연의 기능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도형의 형체는 점차 장욱진의 회화세계와 동질성을 연상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갔다. 그것은 현상설계 과정에서 주최측이 의도하는 방향에 부응한 결과일수도 있고 어쩌면 그러한 이미지의 상관성이 이 작품을 현상설계에서 뽑히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인지 지어진 장욱진 미술관은 장욱진의 그림과 어느 정도 유사성이 느껴진다. 평면은 새의 형상을 띤 것 같고 외부 형태에서는 어떤 동물의 옆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장욱진 미술관이 그러한 조형성’을 띠게 된 것은 방과 몸체라는 초기의 개념 설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미술관을 짓는 목적은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고, 건축은 루이스 칸이 “방들의 사회”라고 말했듯이 목적적 요소로서의 방들의 상호 연계로서 이루어진다. 그런점에서 건축가가 제시한 ‘방과 몸체’는 특별함이 아닌 일반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그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이 미술관의 특정 형태와 공간을 낳게 하는 유전자적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제시된 개념도와 완성된 평면도를 보면 생물체가 세포 분열에 의해 점차 뚜렷한 형체를 갖추어간 것처럼 보인다. 즉 특정 생물이 고유의 유전자에 의해 특정한 형체를 갖게 되듯이 개념적 ‘방’ 이 아메바의 세포처럼 각기 장소에서 증식되고 연계되어 지금의 다채로운 형체로 생장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러한 형성과정은 당초 주최측이 의식했던 화가의 회화세계와의 정서적 일체감을 갖기보다 점차 독자적으로 매료될만한 ‘건축 작품’으로 전개되어간 듯하다. 그리고 제시된 개념은 건축적 아이디어로서의 의미보다는 형상적 탄생의 과정으로서 더 작용해 보인다. 즉 ‘방과 몸체’에서의 ‘방’이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걸어두고 편안하고 살갑게 교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을 지향하는 의미였다면 지어진 건물에서는 전체의 형태적 복잡성과 공간의 다양성을 잉태하는 계기로 작용된 것처럼 느껴진다.
장욱진 미술관은 건축적 향연을 의식할만큼 감각적으로 풍요롭게 다가온다. 또한 추성적이고 다층적이며 현란스러운 건축적 유희가 느껴지기도 한다. 건물을 주차장과 거리를 둠으로서 작품관의 만남에 찾아감의 시간성을 갖게 하며 현관이라 할 수 있는 방풍실은 생경한 장소로의 첫 경험을 낳게 하고 계단실의 추상조각 같은 처리를 통해 색다름의 느낌이 커져간다. 그리고 내부의 중정, 각각의 방향과 높낮이의 변화에 따른 드라미틱한 공간감, 풍경을 담으며 열린 창을 통해 풍경과의 일체감 등을 경험하며 고조된다.
그러나 그러한 건축적 감각은 오히려 장욱진 화백의 회화세계와 동질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공간은 그림의 아담한 사이즈의 그림이 걸리기에는 과도해 보이고 미니멀하고 차가운 느낌을 띤다. 그리고 외부형태는 그의 그림세계 같은 고아한 정서적 울림이 아닌 그 앞의 조각 공원에 놓인 조형물들처럼 느껴진다.
장욱진 화백은 ‘씸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도 “그림이 너무 크면 싱겁다”고 했다. 장욱진 그림의 분위기대로라면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차분히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 아담한 공간이 더 알맞을 것 같고 마당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동심으로 해맑게 놀 수 있는 곳을 바랬을 것 같다.
지어진 미술관은 장욱진의 그림이 상상되는 형태적 모티브나 건축적 세련됨으로 ‘특별한’ 미술관이 되어졌다. 그 것은 그 일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종합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주최측의 의욕과 제시된 방향성은 오히려 창작의 자유에 부담을 주고 순박하고 본질적인 가치보다 과시적으로 드러나도록 이끄는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