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누마루’ 공간의 모호함과 색다른 활력
판교 신도시는 개발 이전부터 청계산, 금토산 등 인근 산세와 입지의 장점이 부각되어 왔다. 그리고 그 중 단독주택지는 신흥 고급 주거지로 자리 매김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지역 이미지가 나름의 동네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새로 짓고자 하는 사람들도 어느 수준을 갖게 하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될 수 있다.
이 집을 보여주기 위해 일행을 안내한 건축가 한만원은 집에 들어가기 전 외부 모습이 보이는 길 건너편에서 외관의 ‘평범한 안상’을 강조하면서 “경사지붕과 처마 하면 다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루마루로 된 집속의 집이 있다고 했다. 거기서 평범함을 강조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특별함과 마주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 곳은 그 안의 단독 주거지로서 각각의 주택마다 전원적 쾌적성을 상상하게 되지만 실제상으로는 도로로 구획된 블록과 지구단위 계획의 도시적 질서틀 안에 얽메여 건폐율로 남은 외부 공간은 조각난 자투리 녹지처럼 남게 되고 이웃한 건물들을 마주보게 죌 뿐 입지 전체의 자연 감각을 접하기 어려워 기본적으로 도시질서가 갖는 건조함의 인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지역 주택들의 건축적 추구도 외부 환경적 측면보다 내부의 건축적 질에 큰 비중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후면 현관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서 건축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게 되었다. 거실이 있음직한 곳에 가운데 공간에 바닥보다 조금 높게 마루를 깔아 놓은 공간이 바로 건축가가 말한 누마루가 있다. 그러나 흔히 전통건축에서 볼 수 있는 누마루와는 그 양상이 달랐다. 전통 건축의 ‘루마루’는 바닥을 들어 올려 주변을 조망하는 구조인데 이 곳의 ‘루마루’는 2층 높이이고 상대적으로 좁고 높은 중정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1층 바닥은 담장 안쪽 마당이 바라보일뿐 먼 시선을 누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그냥 내부공간의 일부에 마루를 깔아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한 ‘루마루’ 공간은 계획 초기부터 현재의 모습대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공간적 애매함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결과물로 보여진다. 그 부분은 전체적인 평면 구조상 어떤 용도를 정하기에 애매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즉 당초 계획대로 그 곳까지 거실에 포함하면 별도의 실처럼 꾸며져 있는 현재의 거실 공간과 합해져 과다하고 짜임새 없게 될 뿐 아니라 집 전체의 공간적 감각이 둔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건축가는 설계 진행 과정에서 그 부분을 거실, 외부의 깊은 마당, 온실, 누마루로 만드는 각각의 계획안을 만들었을만큼 설계 과정에서 줄 곧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고심 끝에 이루어진 현재의 ‘루마루’는 결과적으로 이 집에서 가장 감각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지붕까지 1,2층이 OPEN 되어 있고 2층 통로부분과도 트여 있어 수직 수평으로 공간이 확장되고 그에 면한 실들에서 개방감과 다채로운 장면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계폐를 조절하는 간막이에 의해 가변적이고 흥미로운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등, 이 집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루마루’는 원래의 발단과정으로부터 비롯된 ‘애매함’의 성격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전통건축의 루마루와 이 집의 ‘루마루’ 공간사이에서 명칭의 동일함과 성격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명칭을 인용한 전통 건축의 누마루와 다른 구조이면서 ‘누마루’의 명칭을 부여한 것처럼 정확한 공간적 성격이 부여되지 않은채 여백적인 성격 그 자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장점은 누마루의 기능성이 아니라 여유로움을 낳게 하는 오픈스페이스의 여백적 공간의 효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거실은 상대적으로 깊숙한 위치에 놓여 다소 폐쇄감이 느껴지게 되었다.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주택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건축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삶이 담기는 주택은 그만큼 개개의 삶과 어우러진 개성적인 감각을 띠게 된다. 특히 이 집처럼 건축가가 건축주의 요구와 삶에 맞춰 지은 경우에는 그 개인적 삶의 취향이 집의 구조에 감각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표준형 주호가 반복적으로 적용된 공동주택과 달리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단독주택은 다른 사람이 살기에는 불편해질 수 있다.
이 집도 주인의 삶의 취향에 맞춰 ‘맞춤형’ 구조를 띠고 있다. 1층은 전체가 거실과 식당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은 방이 3개인 침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응접실처럼 독립적으로 놓인 거실은 집주인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처럼 맞춤형 공간의 짜임새가 느껴지는 내부에서 ‘누마루’ 공간은 상대적으로 기능적 짜임이 의도되지 않은 성격의 공간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집 내에서 가장 활력 있고 공간으로서 거주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거기서 엄밀히 계획된 맞춤형 주택의 공간적 의미와 여백적 성격의 공간이 주는 생동감이 역설적 뉘앙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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