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시의 향기 시인의 향기
9월 13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중앙도서관 강당에서 시인 문태준 선생으로부터 길위의 인문학 9월 2차 강연을 들었다. 문태준 선생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여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김소월의 뒤를 잇는 이 시대 서정시인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시인이다.
그는 진솔하고 울림 있는 이야기 소재와 시 구절들을 인용하며 강연을 이어갔는데 , 누군가가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며 느낀 느낌을 시로 쓰면서 “바리깡을 머리에 ‘우르르’ 갖다 대었다” 라는 구절에서 ‘우르르’ 란 단어에 대해 언어 선택과 감각의 탁월성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계절마다 잘 우는 것, 즉 봄에는 새, 여름은 우레, 가을은 풀벌레소리, 겨울은 바람으로 때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이옥봉 시인을 예기하면서 시는“가슴에 맺혀 있던 것이 확 트여 나올 때” 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연시(戀詩) 가운데 이 옥봉이 쓴 다음의 시를 최고로 생각한다고 했다.
요사이 안부를 물으니 어떠하시냐고요? / 달 비친 사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옥봉은 조선 명종 때 양반의 서녀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성년이 되어서 조원이란 선비를 흠모해 그의 첩을 자청했는데, 조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절대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했다. 그녀는 지아비를 얻으면 시를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 하고 약속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파주 목사에게 손을 좀 써달라고 하소연 했다. 이 때 옥봉은 파주 목사에게 ‘위인송원’ 이라는 시를 써 보냈다.
세수대야로 거울삼고/ 맹물로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첩의 몸이 직녀 아닐진대/ 낭군이 어찌 견우이리까
그러나 옥봉은 이 일로 조원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의 생몰연대는 불분명한데 해변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시를 쓴 종이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고 했다.
문시인은 요즘 많이 걷고 적게 먹기를 한다며 김소월이 가난한 삶 가운데 소찬의 식사를 하면서 쓴 시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인들의 생각을 통해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 등을 가다듬게 된다고 했다.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듯 그 소박한 생활자세처럼 생각도 줄이면서 맑은 자세로 살아갈 필요성을 전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는 주견(자기만의 견해)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어떻다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프라이스 콩슈는 “현대인은 새 울음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프라스틱 꽃에 물을 준다”며 그런 것에 반대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물은 ”향상(向上)을 반대한다“고 했다면서 ”자연에 대해 예기하는 것이 시의 한 역할“이라고 했다고 했다.
문시인은 요새는 생태시가 유행인데 사람들이 보도블럭 공사중 세워 놓은 ‘공사중 우회하세요’ 같은 안내판을 보고 대부분 화를 내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스팔트 포장을 하거나 보도블럭을 교체할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 안에 흙이 나왔을 때 흙을 바라보면서라고 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으며 인간은 작은 자연이다” 라고 했는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바람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일생동안 우리를 들이마신다. 우리가 죽을때 바람은 빠져나가서 대기 바람의 일원이 된다” 고 했는데 “바람이 우리를 들이마신다” 고 한 말이 놀랍다고 했다. 그리고 시인 이상이 “열심으로 꽃을 피워서 향기가 만개한다” 라고 한 시 구절에서도 감각을 다루는 방법이 탁월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일본에는 ‘하이쿠’라는 17자로 된 시가 있는데 5자, 7자, 5자로 행간을 바꿔 쓰며 반드시 때를 나타내야 하고 마지막 구절은 ..로세!로 끝나게 하여 인지의 내용을 길게 끌어준다고 하면서 하이쿠 작품 가운데 고바야시 이써의 “무를 뽑아서 무우로 내가 갈 길을 가르쳐 주었네...” 와 마쓰오 바초의 “오랜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텀벙...” 이라는 두 편을 소개 했다.
문 시인은 문득 시간을 의식한 듯 “이대로 가다가는 해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며 준비한 강연 자료집에서 몇 편의 시를 방청객들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들은 이번 9월 2차 ‘길위의 인문학’ 탐방지인 강원도 지역의 정서게 베인 작품들을 문시인이 꼽아 온 작품들로 투명한 가을(길상호), 천지간(김명호, 미완이다(문인수), 산채의 하루(김규성), 사랑의 거리(조오현), 아득한 성자(조오현), 화신(홍사성), 그냥 둔다(이성선) 등 이었다.
문 시인은 고 이성선 시인의 시를 혼자 낭송한 후 그 분의 생전에 있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와의 일화를 소개 했다. 김윤식씨가 설악의 이성선 시인에게 갓 나온 자신의 책을 한권 보냈는데 그 책을 받고 답장을 보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김윤식 선생님께
아직 흰 눈 가득 쌓인 설악산 아래 저의 집에 늦게 동백꽃이 피는 날, 뜻 밖에도 선생님의 저서를 받았습니다. 봉을 뜯자 갑자기 한 큰 정신이 저를 후려쳤습니다. 법열같이 번쩍하는 순간이 오고 그리고 그것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두렵고 기쁘고 또 이 찰라에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선생님 큰 정신의 행간 속에서 더욱 깊어지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시집을 올립니다.
1994. 2. 25
이 성선 올림
그 길지 않은 편지에서 칼날이 선 것 같은 정신과 감각의 예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사회자가 문시인에게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해서, 문시인에게 어느 때 시가 확 트여 나오는지 듣고 싶다고 하자 시인은 진지하게 자신의 詩作의 일상을 말씀해 주었다.
그는 지방에 가면 재래시장을 꼭 들르는데 그 중에서도 국밥집, 순대국집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곳에 가면 사람 사는 순수한 말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조용히 사람들의 예기를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듣다가 툭 튀어 나오는 말 가운데 뒷등을 지나는 듯한 말을 들으면 메모해 둔다고 했다. 일상에서 귀를 열고 있으면 툭툭 터져 나오는 말을 얻게 된다고 했다.
시인의 강연을 들으며 진솔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과 세상과 교감하고 시어를 가다듬는 사색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20120913 김석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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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안녕하세요? 예 일이 있어 참석치 못했습니다. 방문해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2 년전 -
이종숙
건축사님! 한옥양성과정수강생 이종숙건축사입니다** 오늘 세미나에서 쌤의 모습이 보이지않아 궁금하던중 홈피 방문해서 글읽었어요~~. 멋쟁이 건축사님 이십니다^^
12 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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