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
본연적이고 담백한 아름다움
1. 고조되는 전통건축의 관심
바야흐로 한옥의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 든다, 근래 전통 건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격히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한옥을 갖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옥에 대한 그러한 관심은 지난 시절에 비추어 볼 때 상반된 방향으로의 급격한 변화로 여겨진다. 서울 북촌 한옥은 십여년전만 해도 열악한 주거로 인식했었다. 그래서 “‘한옥 보존지구’에서 해제“해 달라는 집단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한옥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뿐 아니라 문화적 자긍심도 갖고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한옥마을로서의 정체성을 잘 지켜가도록 하기 위해 서로가 합심하는 분위기이다. 그러한 현상은 비단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자체에서는 기존 한옥들을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여기고 새로이 한옥마을을 짓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그처럼 한옥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하면 아파트’ 로 상징되는 근대건축으부터의 탈피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막스 베버가 말한 대로 산업 혁명 이후 세게는 ‘합리화’의 길을 걸어왔다. 민주 시민사회가 도래하고 산업사화가 정착되었다. 근대 건축은 그러한 사회에 걸맞는 방향을 모색하는 가운데 효율성과 기능주의를 표방하며 1920년대에 정립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세계의 보편적 건축 양식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근대건축은 공간 및 토지의 효율적 사용을 추구해 왔고 단순화한 기계미학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아파트는 지가가 비싼 도시에서 토지이용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1970년대, 근대건축이 정착된 후 반세기가 지날 즈음 사람들은 서서히 그에 대한 폐단을 의식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해 차가운 합리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적이고 토착적인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
“현대인은 직선에 지쳐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직선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선으로서 합리화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효율성 추구에 따른 기계적 환경으로부터 탈피하려 하면서 전통문화와 같은 토착적인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한옥은 근대건축이 추구한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건축이다. 그것은 고층화가 어렵고 설비 장치에서도 기계적 효율성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한옥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연과 호흡하는 건축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즉 한옥의 선호는 근대건축의 건조함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친화적이고 정서와 전통 문화의 체취가 담긴 건축을 가까이 하려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퍽 ‘인간적인’ 욕구라 할 수 있다.
2. 전통건축의 본연성
신석기 시대 이전까지 인류는 동굴 등, 자연 안에서 악천후를 피할 곳을 찾아 거주 공간으로 삼았다. 건축은 인류가 자연기후위에서 쾌적하고 안전한 생존 환경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해온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 유리된 인공의 환경에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일어나는 악천후를 극복할 수 있는 거주 환경을 갖춘 가운데 여전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세계 각지의 토속 건축은 모두 각각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그만의 양식적 특징을 띠며 정립되어 왔다. 모든 토착 건축은 친환경적이고 본연적이며 각기 그만의 아름다움 과 그만의 개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지음’의 원리에 충실하고 각 지역의 기후 및 전통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은 우리 국토에서 구하기 쉬운 목재, 돌, 흙 등을 재료로 하여 형성되어 있으며 이 지역 기후와 풍토에 대응하여 지혜롭게 이루어져 왔다. 전통건축에 사용되는 마루와 온돌은 사계절 기후가 뚜렷한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은 우주와 자연관에 대한 사상적 차이를 보여 왔다. 동양사상은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하여 그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서양에서는 인간의 기술로 극복하고 개량화하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차이는 건축의 양상에 많은 차이를 낳았다. 동양 건축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 전통 건축은 자연을 대함에 있어 지극히 순응하는 태도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일상에서 건축은 개개인이 착용하는 의복이나 도구처럼 다양한 쓰임새에 맞춰 각각에 알맞은 건조물로 주문되어져진다. 하지만 그런 유용성의 시각만으로는 건축의 본연성과 진정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될 염려가 크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기후 조절이 가능한 일부 공간을 축조하는 행위이다. 즉 자연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채광 환기 등 여전히 자연과의 관 계속에서 기능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연과의 교감 속에 존재하며 자연의 숨결과 맥을 같이하는 사물이다. 그래서 건축은 우주 질서와 분리될 수 없다.
건축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 위에 존재적 안정성을 확보하여주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이 만들어 온 건축은 자연현상에 대응한 기술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통 건축에서 찾아지는 아름다움은 디자인적 양상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 따른 본연적 아름다움이다. 즉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구사된 원초적 구법에서 느껴지는 정직하고 순수한 맵시, 갖가지 자연 현상과의 관계에 따른 감각과 정서를 띠는 것이다.
3. 자연과의 교감에 따라 이루어진 아름다움
모든 건축은 자연과의 관계와 교감 속에 이루어진다. 인공설비가 고도화된 현대 건축도 여전히 일조, 환기 등 기본적으로는 자연 현상과 관 계속에서 존재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체리듬은 자연의 숨결과 일체의 연관성을 갖게 되어 있다. 그래서 건축은 본질적으로 친환경적이어야 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전통건축은 자연과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다.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 안에서의 겸허한 몸짓을 할 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현상과 교감하고 있다. 그를 위해 터를 잡는 과정에서 향이나 주변 산세의 흐름이 다 중요시 되었으며 그로써 풍광이나 바람결 등 자연의 운치를 온전히 느끼게 하려 헸다. 그것이 급기야 자연과 하나의 결을 이루게 되었다.
선조들이 신봉했던 풍수지리설은 집을 지을 때 집과 관계되는 자연의 요소들을 지혜롭게 대응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형 등 형상적인 것 뿐 아니라 기류, 좌향, 조망의 시선 등 비형상적이며 정서적인 것 요소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건축적 전통을 이루어지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뛰어난 전통건축들은 다 자연과의 관계가 매우 잘 이루어져 있다. 아니, 자연과의 관계를 잘 형성함으로서 좋은 건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자리 잡음 바람 태양, 시선 어느 하나 자연과의 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요소이다. 터 잡은 풍수 우주적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일이다.
병산서원의 멋은 강과 산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음미하는데 있다. 즉 그 앞을 흐르는 강과 그 너머에 펼쳐 보이는 병산이 하나로 어우러진 산수의 수려함을 건물에서 느낄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만대루의 위치는 수려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누릴 수 있도록 짜여져 있는데 거기서는 건물 자체를 잘 만들었다기 보다 정교하게 위치를 정하는 것이 요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건축은 풍광의 수려함과 교감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조용하고 명상적인 기운을 갖게 하는 빈 마당을 형성하는 것 만으로서도 심원한 감동을 낳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영선암은 봉정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데 백미로 꼽히는 전통건축중 하나이다. 그 곳은 좁은 입구로부터 점차 높아지는 지형 가운데 사방에서 건물이 둘러친 마당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마당 쪽으로 놓인 쪽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저절로 명상에 잠겨드는 분위기이다.
한국전통건축에서 창덕궁이 궁궐건축 조원의 최고로 꼽힌다면 소쇄원은 민간건축의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소쇄원의 미학은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거기서는 인공으로 모든 것을 다 꾸미려 한 서양식 정원과는 달리 인공의 손길을 최소로 하였기 때문이다. 즉 주변 산세로부터 지형의 높낮이 물길의 흐름 등을 면밀히 고찰하여 각기 특징적인 요소들을 규명하고 각각의 위치에 알맞게 최소한의 행위로서 원래 운치를 돋운 것이다. 그래서 건축으로 인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흐름과 일체화 된 가운데서 건축적 가치가 형성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건축의 뛰어남이다.
4, 세월의 켜가 쌓여가는 아름다움
오래된 집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시간의 누적 속에 현대와 다른 문화 터의 연륜, 깊이 문화적 유물적 느낌이 축적된 감각이 느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과 공포 부재 등에서 트이고 바랜 흔적이 고스란히 건축의 체취로 드러난다. 거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세월의 깊이로 인한 것이다. 그 것은 수리한 새 부재로 살려낼 수 없다.
승주 조계산 선암사는 필자가 돌아본 전국의 사찰 가운데 가장 고찰다운 멋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고찰’(古刹)이라는 말에는 오래된 수도처의의 그윽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고찰은 곧 ‘사찰다움’으로 연상된다. 고찰의 그윽함은 근래 지은 깨끗한 건물에서는 풍겨날 수 없는 것이다. 연륜이 쌓여야만 한다. 그 그윽함이라는 용어는 전통 건축과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아니다. 건물들은 임진왜란 등 전란 때에 손실되어 다시 지어져 있다. 하지만 그 선암사는 그 건물의 연륜보다도 더 깊은 연륜의 멋을 풍긴다. 그것은 터 속에 이루어져온 땅과의 관계에서 오래된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전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이 자리 잡은 터 닦음 과정은 결국 건축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삼라만상의 형상과 현상과 그리고 기운 과 함께 조화되도록 모든 것을 살피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전통건축은 시대에 따른 구법의 변천을 띠어 왔다. 고려시대까지의 건축은 건물을 지을 때 반듯하게 치목을 해서 지었다. 수덕사 대웅전은 한국 전통건축 가운데 구조적 완결성이 가장 뛰어난 건축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부재 하나하나가 마치 공예품처럼 다듬어져 있다. 그리고 구조에 마치 석가탑의 비례를 보는 것 같은 비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뒤틀린 부재들을 적재적소에 그대로 사용했다. 병산서원은 수덕사 대웅전 같은 완결적 구조체를 갖춘 건축이 아니다. 모든 부재는 자연에서 체취된대로 뒤틀린 모습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둥 간격이나 지붕의 형태에서는 정연함을 풍긴다. 그 정연함과 자연스러움이 미학적 풍요로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병산서원에서의 그러한 건축적 양상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이 된 성리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와 기의 조화와 균형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처럼 반듯함과 자연스러움이 상반되고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할 것 같다. 그런데 모두 다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모두 바탕의 자연과의 관계성이 크기 때문에 건축의 구조적 차이는 이와 기의 배합상의 크고 작은 차이로써 느껴질 뿐이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병산서원의 자연스러움이 더 우리 것 답게 느껴진다. 그것은 이와 기가 어우러진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과 맥락이 닿기 때문일 것이다.
5. 순응과 순치된 맵시
부석사 무량수전의 추녀와 처마의 선은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처럼 나타난 조형적 양상을 마치 지극함 감각으로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러한 한국전통 건축의 선은 아름답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결과 조화롭게 된 선을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건축에서 흔히 추녀의 선을 잡을 때는 ‘현수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 것은 보통 짚으로 꼰 새끼줄에 물을 축여 자연스럽게 늘어져 형성된 선이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전통 건축의 선의 맵시가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일체화 되게 하려는 정신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전통건축의 감각은 겸허함의 미학이 담겨 있다. 자연의 결에 맞춰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표출되어 있다. 선조들이 신봉했던 동양사상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것은 삶의 일상적 규범이나 문화 예술 등 전반에 걸쳐서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졌다. 그러한 사상과 문화적 전통에 의해 한국전통 건축은 편안하고 은근하면서도 자연의 심원한 감각이 담겨진 격조 높은 모습을 띠고 있다. 또 그렇게 형성된 맑은 거주 공간이 맑은 삶의 태도를 낳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건축을 낳는 것은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태도로 귀결될 수 있다
결국 좋은 건축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통 건축은 자연의 생명력이 담겨진 영원하고 삼라만상의 변화속에 늘 잘 어우러지는 심원한 미를 지니고 있다.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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