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추읍산 산행기
용문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 스케치북에 설계 구상을 스케치하다 차창밖을 보니 넉넉한 들녘에 봄기운이 생동하는 풍경이 아련히 펼쳐보였다. 땅은 다시 잉태의 꿈을 환희롭게 꾸고 있을듯 했다. 양수리 다리를 건너며 거대한 호수가 된 강물을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얼마전 태화산 산행때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던 남한강물을 여기서 다시 만났을줄 모른다. 그 강물도 봄 경치에 들떠 더 느리게 왔을지 모른다.
봄
2011. 4. 23 김석환
가없는 저 들녘으로
번진 봄기운이 불길처럼 달려가면
대지는 다시 한없는 잉태의 꿈을 꾼다.
대지에서 솟아나는 그 기운은
목동이
봄내음에 취해 마구 들떠 달려가는 소를
미처 붙잡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처럼
저마다 제 생의 길에
깊게 뿌리를 박으려고
들떠 발하고 있다.
먼 길을 에둘러 온 강물도
제 몸에 비친 연푸른 녹음을 입고
취해 흐르고
도시서 몸을 실은 상춘객들이
탈영병처럼 대지로 나가는 줄을 이으면
등을 내민 산들도 덩달아 들뜬다.
양평역을 지나며 작년에 이곳 강하리에 김선생 화실을 지으며 오가던 때가 떠올랐다. 10시 12분 양평역에서 두 역 지난 원덕역에 닿았다. 역을 나오면서 큰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주변 풍경이 먼 시골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몇 해 전 다음역인 용문까지 전철이 개통되어 빠르고 편리하게 올 수 있게 되었지만 주변 풍경에 비해 거추장스레 보이는 역사와 철도만 아니면 이곳에 정말 땅과 밀착된 삶을 살아가는 농촌지역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곳이 전철이 생긴 후로 일종의 괴리감이 존재하듯 보였다.
역사를 나와 앞에 설치된 산행 안내도를 보며 산행 코스를 생각하다 돌아서니 역 광장에 추읍산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었다.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큰 도로를 걷다 잠시 후 좌측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시 좌측 방향 골목길로 마을을 지나가니 강변길이 나왔다. 거기서 좌측으로 돌아서니 강과 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펼쳐 보였다. 그 앞에 우뚝 선 산이 바로 추읍산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통일된 복장을 하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중 한분에게 물으니 일주일간격으로 대청소를 한다고 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추읍산을 바라보며 강변을 따라 걸어갔다. 계속해서 쓰레기를 치우는 동네 분들과 만났다. 한분이 든 봉투에 쓰레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일주일 사이 그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여기 와서 그만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 같아서, 이곳을 찾는 사람으로서 동네 분들께 외지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다보니 강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다리가 보였다. 거기서 추읍산이 바로 건너보이니 길을 헷갈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초행길에 엉뚱한 데로 잘못 들게 될까봐 아침에 이곳으로 오는 길에 안건축사에게 물었던 그 다리였다. 그 다리 이름은 잠수교인데 실제로 다리가 낮게 설치되어 물이 차면 잠기게 될 것 같았다. 그 땐 다리 건너에 보이는 몇몇 전원주택을 오가는 길도 끊기게 될 것 같았다.
잠수교에 다다르니 앞에 보이는 신내천(흑천)과 건너보이는 추읍산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산수화 같은 풍경이었다. 요새는 저 같은 자연스런 강의 모습을 점차 대하기 어려워지고 있어, 이처럼 대지를 적시며 유유히l 흐르는 자연의 강줄기를 대하는 것 자체가 귀하고 반갑게 느껴졌다.
거기 멈춰 주변을 돌아보고 있으니 낯익은 가요가 들렸다. 소위 7080세대의 노래들이다. 돌아보니 엉덩바위라는 간판을 건 식당 안에서 들려나오는 것 같았다. 그 간판 엽에는 닭도리탕, 오리탕, 파전, 막걸리 잔치 국수 등 음식 메뉴가 적혀 있었다. 그 곳도 서울의 도봉산 입구처럼 등산객들이 주 고객일 것 같았다.
스케치할 자리를 물색하다 배가 고파 그 안으로 들어가서 잔치 국수를 주문하니 대학생 또래의 손자와 할머니가 반갑게 맞으며 준비해 주었다. 식당은 통이 긴 비닐하우스 구조에 길게 뽑은 연통과 난로가 놓여 있었다. 원형테이블에 놓인 의자에 앉으니 들어온 출입구 밖으로 들녘풍경이 보였다. 잠시 후 청년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에게 귀에 익은 노래 가락이라고 했더니 7080 노래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57년생이라고 했다.
노래를 들으며 아련히 그 때를 회상하게 되었다. 기억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그저 흘러가고 말났다. 차려내온 국수가 맛이 좋았다. 반찬으로 차려준 나물과 단무지 무침, 김치 모두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수채화를 그리려고 물통에 물을 담았다. 바로 앞에 갈아 놓은 논고랑에 물이 채워져 있었다. 내가 주인에게 못자리를 준비하나 보다고 했더니 흘러드는 고랑에 물이 많이 넘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안 있으면 벼를 심게 될 거라고 했다.
말간 논물이 거울처럼 파란 하늘과 힌구름을 비추고 논에 자라나는 풀들이 높아진 기온에 거름기를 맛본 듯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그 들녘에서 봄 특유의 상큼함이 느껴졌다. 이맘때는 땅 자체가 살이 꿈틀거리듯 느껴진다.
스케치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오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휘돌아 돌아가는 강가에 겨우내 찬바람을 맞으며 나부끼는 갈대가 나무에 돋아나는 여린 새순을 바라보며 덩달아 하늘거렸다. 강물에 투영된 산 그림자에, 산에서 번져가는 연녹색 빛깔이 떨리는 물살에 살랑거렸다.
구도를 정하고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건너보이는 추읍산이 우측으로 돌진하는 고래 머리통처럼 보이고 그 우측으로 몇 개의 굽이치듯 이어선 3개의 봉우리가 아기자기한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 앞쪽 다리 건너에는 몇 채의 집이 있고 그 우측으로 다시 산이 일으켜지고 있었다.
달아오르는 봄철 산천의 색상은 신비스런 생명력을 띤다. 지금처럼 봄이 막 약동할 때 띠는 아직 산에 배어 있는 겨울의 칙칙함과 한창 번져가는 생명력으로 피워내는 연푸른 새순의 빛깔이 조화되어 섬세하고 다채로운 빛깔을 띤다. 햇살이 닿는 먼 산 능선에서 발하는 연푸른 색깔은 곱다 못해 고귀하게까지 느껴진다.
그처럼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띠지만 그 색감을 그림으로 나타내기는 너무도 어렵게 느껴진다. 색을 섞어 종이에 칠하려다 다시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덤덤한 자세로 묘사했다. 한분이 다가와서 자신도 그림을 그리러 왔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추읍산을 찾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그림을 얼추 마무리하고 산행을 재촉했다. 오늘은 마냥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없다. 추읍산 정상에 올라 훤출이 바라보이는 주변 풍광을 보아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강 풍경을 찍었다.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다리에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엎드려 찍으려는데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건너니 이정표가 보였다. 좌측방향으로 추읍산 정상이 1.45km 거리로 나타나 있었다. 아까 역 앞 안내도에서 본 1코스였다. 우측 길은 내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일 것 같았다.
앞에 가던 분이 마을 안쪽으로 조금 가서 1코스 입구를 찾다 다시 돌아 나와 좌측 강변길로 표시된 다른 이정표를 보고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그분에게 “안쪽에 길이 없나보군요” 묻고 그 길로 따라 들어섰다. 뒤에서 오시던 부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가에 핀 벚꽃과 막 피어난 잎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걷다보니 우측에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났다. 그 입구에 떨어진 진달래꽃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기서부터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산길이 시작되었다. 언덕을 오르듯이 조금 올라 뒤돌아 강을 바라다보고 있으니 뒤에서 부부가 산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바닥을 가리키며 꽃잎이 져서 밟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벼랑처럼 앞에 솟아 있는 추읍산 정상을 마주보며 다가가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늘 오르는 추읍산은 멀리서부터 정상이 보여 목표점을 분명히 인식하며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만큼 힘을 쏟게 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오르다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졌다. 강 건너에서 볼 때와 달리 추읍산 정상부의 위치가 강으로부터 한참 들어간 지점에 놓여있었다. 걷다보니 아까 강가에서 엷은 연두색으로 밝게 보이던 중간 능성이 부근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잎사귀들이 껑충하게 높게 뻗은 떡갈나무에서 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 큰 먹장구름이 비킬 때마다 봄 햇살이 길게 와 닿아 흙길에 나뭇가지의 빛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싱그러운 새 녹음과 선명한 연분홍색 진달래 꽃잎이 이맘때의 대기다운 생기를 띠게 했다.
진달래
2011. 4. 23 김석환
찬바람 끝에 머금은 햇살의 온기가
부뚜막 그을음처럼 눌어붙은
산골짜기 얼음백이를 녹이고
까칠한 산허리 나무가지에
연두빛 새순이 돋아날 즈음이면
각혈하듯 피어나와
온 산천을
구슬픈 정염으로 휘감는다
그렇게 며칠 진저리치다
제 몸안 기운 텅 비워지고 나면
그새 아무일 없었던 듯
연두빛 잎사귀를 돋운다.
산능성이를 걷는 동안 봄바람이 이따금 여학생들이 고무놀이를 할 때 장난을 치고 달아나는 남학생들처럼 쏴아 하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조금 오르자 작은 봉우리 너머로 말안장처럼 넘나드는 산 능성이 길이 나타났다. 그 안쪽 위로 추읍산 정상이 우뚝 서 보였다.
가다가 추읍산 정상이 0.8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다시 가팔라진 경사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내렸던 원덕역과 그 주변 마을 그리고 들녘이 펼쳐 보였다. 원덕역에서 전철의 종착역인 용문역으로 가는 길도 보였다.
다시 산 안쪽으로 들어가 오르막길을 걸었다. 가다보니 내리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보였다. 정상이 0.45km 남아 있었다. 다시 급경사진 산길을 오르는데 앞쪽에서 내려오던 분이 지금 오느냐고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니 아까 전철을 타고 올 때 옆 좌석에 앉아 인사를 나눈 분이었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어디로 내려가느냐고 물으니 내리로 간다고 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하면서 그림을 보여주었다.
내가 내리에서 원덕역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편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의 옆에 있던 일행이 빙그레 웃으며 대중교통은 불편하지만 “우리는 꿍꿍이가 있다”고 했다. 뭔가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오르니 다시 다른 일행분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거기서 정상부로 오르는 길이 더 가팔라졌다. 그처럼 급한 경사에 오르는 길을 조금이라도 완만하게 오르게 하려고 지그재그로 에둘러 놓고 추락을 방지하려고 로프 난간을 매어 놓았다. 오르다 보니 나무가 인대 파열처럼 몸통이 찢겨진 소나무가 보였다.
산 능성이에 닿으니 다시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 정상이 170m 남아 있었다. 급경사지를 오르며 힘을 쏟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다 왔네” 하고 혼잣말을 하며 지나게 되었다. 좌측 평평한 곳에 야영장 팻말이 보였다. 그 안에서 한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던 정상에 으르니 그 곳은 헬가장이었다. 정상은 바로 앞쪽에 보였다.
2시 3분 정상에 닿았다. 사방으로 트여 주변이 훤히 바라보였다. 올라가던 길을 뒤돌아본 쪽에는 소나무 몇 그루 사이로 용문산이 보였다. 정상석 우측으로 비켜가서 보니 전체가 조망되었다. 전에 이 근처에 회에서 더러 스케치를 하러 온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멀리 희멀겋게 보이는 용문산 전경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서 보니 큰 산세를 이루고 있었다.
뒤에 한분이 따로 올라왔다. 컨테이너를 운전하는 정우열님이라고 했다. 그분은 여주에서 승용차를 갖고 왔는데 두번째라고 했다. 차는 내리에 두고 올라왔다고 했다. 그도 혼자 왔다고 했다.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가 사방을 가리키며 각 고을을 설명해주었다. 추읍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이 마치 용문산을 향해 읍하고 있는 듯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양주, 양평, 용문, 지평, 여주, 이천, 장호원 등 일곱 고을이 보인다 하여 칠읍산으로도 불린다. 정상 고도가 583m밖에 되지 않지만 그야말로 주변으로 시선이 광활히 펼쳐지는 곳이었다.
지도를 보니 이 산을 오르는 산행 코스가 다양했다. 내려갈 코스를 생각하다 올라온 반대편으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지도를 보니 내리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듯 했다. 내려가다 이정표에 나타난 주읍리 산수유 마을도 들러 갈 생각을 했다. 산행 코스가 길지 않아 원점회귀 코스는 너무 단조로을 것 같았다. 좀 더 주면 모습을 많이 대하고 싶었다.
급경사 길을 거의 다 내려섰을 때 부부가 올라오고 있어 길을 물어 보았다. 내리로 가려면 산수유 마을을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야 된다고 했다. 이정표가 있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가고 내려가다 보니 그가 말한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주읍리로 내려가다 보니 드문드문 나물 캐는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부부에게 수령이 오래된 산수유가 어디에 많은지 물으니 저 아래 마을 안에 가면 있다고 했다. 완만하게 내려보이는 마을 입지가 그윽해 보였다.
조금 더 내려오자 두 여자 분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쑥을 캐고 있었다.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수령이 오래된 산수유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산수유마을로서 충분히 이름이 알려질 만 했다. 잠시 마을을 둘러본 다음 다시 내리를 향해 되돌아 나오다 마을이 내려보이는 풍경을 스케치했다.
내리로 길은 잡았지만 그 곳에서 원덕역으로 대중통편이 잘 있을지 궁금했다. 산길을 나와 임도를 타고 내리 마을 방향으로 조금 가다 원덕역으로 갈 길을 물으니 위쪽의 임도(블랫길)로 계속가야 된다고 했다. 나는 내리서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걸어서 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이 말을 들으니 그리 멀 것 같지 않아서 걸어서 원덕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알려준 길을 향해 되돌아섰다.
가리켜 주는 대로 가다보니 삼림욕장이 나왔다. 거기서 다시 길을 물으니 왼편의 산능성이를 넘어 곧장 가면 원덕역이 나온다고 했다. 가리켜준 능성이를 넘어서니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추읍산을 중심으로 크게 휘어가는 형국이었다.
한동안 걸어가다 보니 우측에 집들이 보였다. 앞서가던 부부에게 길을 물으니 자신들도 초행길이라고 했다. 두 분이 모두 검은 비닐봉지에 쑥을 가득 캐서 들고 있었다. 내가 산행도 하고 쑥도 캐고 좋은 하루가 되였겠다고 하니 오늘 산에 와서 보약을 먹었다고 했다. 내가 무슨 보약이냐고 묻자 좋은 공기를 마신 것이 보약 먹은 것이나 같다고 하며 밝게 웃었다.
왼편으로 길을 돌아서니 강을 건너는 다리가 보였다. 나는 그 다리가 산행을 시작할 때 건넜던 다리와 다른 것으로 생각했는데 건너며 보니 바로 들어서며 건넜던 다리여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햇살이 바뀐 주변 풍광을 다시 둘러보았다.
다리를 건너서니 몇분이 아는 듯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니 오전에 이곳에 들어설 때 만났던 분들이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모두 고등학교 교사님들이었다. 전에 한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함께 근무할 때 가끔 산을 함께 다녔는데 흩어진 이후로도 가끔 오늘처럼 산을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그분들이 인연이라며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말하면서 오늘 그린 스케치도 보여주었다. 그림을 보여주자 김경남, 류성철 이세연, 김기춘, 임희정 선생님이 동시에 ‘와’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배낭에서 꺼낸 막걸리를 작은 잔에 번갈아 따라 주었다.
그분들은 정상에서 삼성리 방향으로 일찍 내려와 내가 오전에 국수를 먹었던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한잔 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원덕역으로 걸어 나오다 오전에 시작할 때와 달리 지름길로 가자며 들녘을 지났다. 들녘이 늦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띠었다. 나는 그 풋풋한 들녘을 걷는 선생님들에게 개구리 뛰기를 하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 중 한분은 정년을 바로 앞에 두었다고 하는데 모두 그들이 가리키는 아이들처럼 팔짝 뛰며 즐거워했다. 대자연에 동화된 망중한의 시간이 꿈결처럼 흐르는 듯 했다.
산에서 만나 허물없는 친구처럼 함께 역으로 걸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류성철 선생님이 커피를 끓여주었다.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어 역으로 들어서니 잠시 후 기차가 들어왔다. 우연히 좋은 분들과 만나 더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20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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