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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계룡산 산행기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10.06.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719
내용



계룡산 산행기

일시 : 2010 612
산행시간 : 1015~ 1450
참가자 : 대한건축사 등산동호회 전국 각지 회원
산행코스 : 지석골 주차장-남매탑-삼불봉-자연성능-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지석골 주차장(원점회귀산행)

산행에 나서려고 일어나 밖을 보니 세찬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기 예보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 오늘 계룡산에서 갖기로 한 전국 건축사 등산동호회 산행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산행에서 세찬 비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빗줄기에 절벽 위 날이 선 능선에서 휘청거릴 때도 있었고 하루종일 물이 찬 신발을 신은채 걷느라 난감했던 적도 있는데 우중산행은 비를 맞는 것보다 신발에 물이 차는 것이 가장 불편한 일로 여기고 있다.

다행이 집을 나설때는 부슬비로 약해져 있었다. 출발장소인 교대역으로 나가 대기중인 차에 오르니 먼저 온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가 출발하자 이종호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려서 회원 가운데 확실히 가는지 물어본 사람이 있는데 우리 회는 우천불문이라고 했다

오늘 가는 계룡산은 처음인데, 평소 그에 관해서 많은 예기를 들어서인지 생경함이 덜했다. 계룡산은 우리나라에서 기가 가장 센 곳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배경에는 이곳의 독특한 입지와 관련이 있는데 소위 산태극 수태극이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즉 물길과 산줄기의 음양 요소가 태극 모양처럼 결합되어진 형국을 띠고 있다. 그래서 많은 무속인들이 모여들어 수도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런 선입관 때문인지 어쩐지 산행을 하는데 다른 곳보다 힘이 더 들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차창밖으로 펼쳐 바라보이는 들녘 풍경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논에 가지런히 심어 놓은 벼가 이제 제법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며 색깔만 변했을 뿐 키는 자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죽암 휴게소에서 쉬고 신탄진 부근을 지나는 동안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요새 전국적으로 분양되지 않은 아파트들이 문제거리가 되어 있다. 그리고 경영이 어려워진 건설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어 사회적 걱정거리가 되어 있다.

유성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계룡산을 향해 갔다. 인근에 있는 계룡대 등의 표지가 보였다. 계룡산이 가까워 졌는지 주변 풍광에서 그 산세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06분 계룡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우비를 입지 않고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너른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대형버스와 승용차들이 와서 주차하고 있었다. 주차장 옆 개울에 걸린 다리를 건너려고 다가서니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 건축사 등산 동호회 오긍균 회장과 충북 건축사 등산 동호회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오신 회원분들도 먼저와 기다리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참가하는 회원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많은 인원이 될 것 같았다.

산행 시작에 앞서 이 회장이 오늘 행선지와 뒤풀이 시간 등에 대해 설명했다. 나눠준 지도에 표기된  산행 코스는 관음봉을 들러 오는 것인데 뒤풀이 행사를 위해 남매탑까지만 다녀오자고 했다. 1015분 산행을 시작하였다. 나는 주변 회원들에게 빨리 걸어 관음봉을 들러 오겠다고 했다. 산행을 신청하면서 이번에 처음 찾게 된 계룡산의 면모를 제대로 느껴보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2주전 가야산에 갔을 때 일락산을 지나 개심사까지 종주를 하고 온 일이 있는데 그 산행에서 그 인근의 서산, 예산 덕산 등지의 입지를 가늠케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논산, 계룡, 공주, 대전 등의 각기 다른 고장으로서 입지를 갖게 하는 계룡산의 품새를 살펴보고 싶었다.

1018분 계룡산 탐방지원센타 앞에서 우측길로 접어들었다. 다행이 부슬비도 그쳐서 우중산행의 염려가 사라지게 되었다. 완만한 오름길에 더러 오가는 사람을 만났다. 길 주변과 계곡에는 각진 모양의 바위들이 널부러지듯 흩어져 있었다. 완만한 오름길에 분골갈림길 표지를 지났다. 거기서 일행의 목적지인 남매탑이 2.4km로 나타나 있었다. 아까 본 등산로 표지판에서 그 남매탑으로부터 자연성능을 지나 관음봉까지의 구간이 험할 듯 했다.

뒤풀이 장소에 많이 늦지 않게 도착할 생각으로 속도를 내어 걸었다. 계속해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졌다. 가다가 인천 회원분들을 만났다. 재작년 백운산 산행을 함께 했던 일을 예기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 때 인천 팀이 늦게 하산하여 힘들게 한 것 같다며 반갑게 화답해주었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길옆에 드문드문 노란색 그물망이 덮인 곳들이 보였다. 길이 아닌 곳에 훼손된 곳들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려는 중이었다. 등산로가 아닌 곳을 사람들이 다니다 보면 그 발길에 밟힌 부분에 살던 식생이 황폐해지게 된다.

가녀린 연두빛깔을 띠며 피어난 잎들이 어느듯 청푸르게 짙어져 있었다. 그리고 수 많은 나무에서 피어난 잎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어 겨울에 트여 보이던 시야를 가린 상태가 되었다. 그 숲속에 난 계단길에 앞서가는 사람 모습이 마치 터널을 지나듯 보였다.

1056분 큰재에 도착했다. 무의식적으로 이정표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서다 보니 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전북 회원들이었다. 그 분들에게 고향이 전주라고 하며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곳 이정표가 가리키는 남매탑을 향해 내림길을 걸었다. 날이 흐려 녹음이 더 짙어 보였다. 짙푸른 숲에 휜 꽃이 핀 나무가 특별히 눈에 띠었다. 남매탑고개 이정표에 0.4km로 가까이 나타나 있었다. 계속 오름길을 오로다 보니 저 위쪽으로 평평해 보이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짐작에 그 곳이 남매탑 일 것 같았다.

115분 남매탑에 도착하니 5층과 7층 석탑이 나란히 보였다. 그 주변에는 남매탑 상원암 복원 조감도와 남매탑에 관해 얽힌 전설을 쓴 표지판이 보였다. 그 주변에 흩어진 주초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에는 건물이 있었던 듯 했다.

남매탑에 관해 글을 써놓은 표지판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스님이 그 입 안을 보니 큰 가시가 걸려 있어 뽑아 주었는데, 호랑이가 그에 대한 보답을 하려 한 것인지 며칠 뒤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와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첫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왔다고 했다. 눈이 많이 쌓인 한 겨울철을 지나고 봄이 오자 스님은 수도승으로 남녀의 인연을 맺을 수 없기에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 수도 없기에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랐다. 이에 고심 끝에 스님은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불도에 힘쓰다가 하날 한시에 열반했다는 이야기였다.

남매탑 우측으로 관음봉 가는 오름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멈췄던 부슬비가 내려 시야가 깜깜하게 흐려 있었다. 1116분 갈림길에 놓인 삼불봉고개 이정표를 지났다. 거기서 삼불봉과 금잔디 고개로 길이 나뉘었는데 지도를 보니 삼불봉을 지나 관음봉으로 가게 되어 있어 그 곳을 향해 올랐다. 잠시 후 오른 안부 이정표에 삼불봉이 0.2km 관음봉이 1.8km로 나타나 있었다. 삼불봉을 오르는 곳에 가파른 철계단이 놓여 있었다. 경사가 매우 심해 고개를 뒤로 한참 젖히고 올려볼 지경이었다.

계단을 오르니 바로 삼불봉 정상이었다. 그 곳에 삼불봉 설화 사진과 설명이 쓰인 표지가 보였다. 삼불봉은 부처의 모습을 닮은 세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특히 눈꽃이 필 때가 백미여서 계룡산의 제2경으로 꼽힌다고 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바라보니 천왕봉이 뚜렸이 보였다. 그 순간 처음으로 계룡산의 면모를 대하게 되었다. 그 곳에 천왕봉 쪽으로 바라보이는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 설명을 해 놓은 표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그 사진과 바라보이는 풍광을 번갈아 확인하며 바라보았다.

올라오면서 비가 내리고 시야가 막혀 별 기대를 갖지 않게 되었던 진풍경이 펼쳐 보였다. 구름이 휘감다 흘러가면서 가려졌던 시야가 맑아졌다. 휩싸고 있던 구름들이 바람에 날려 웅장한 산세를 언듯언듯 드러내 보여 신비감을 더했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1126분 관음봉을 행해 출발했다. 거기서 관음봉까지는 날선 능선길로 이어져 있었다. 그 암릉지대의 바위가 비에 젖어 미끄럽고 위험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상부의 길을 가는 동안 주변 풍광이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특히 동학사 쪽으로 깊고 길게 펼쳐진 산세에서 계룡산의 너르고 깊은 품새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산을 다녀간 사람들이 계룡산에 대해 칭송하는 말들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능선을 희미하게 감싼 구름이 멀어 보이는 주변 산세를 더욱 너르고 깊이 있게 느껴지게 했다.

계속 길을 가다 인천에서 부인과 함께 오신 안택호 건축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인천 회원분들은 모두 관음봉 코스를 다녀가기로 한 것 같았다. 다시 주변 산세가 크고 그윽하게 보여 스케치를 하려고 배낭을 열었다. 천왕봉쪽에서 뻗어내린 웅대한 산세와 지나온 삼불봉 등 좌측에서 뻗친 산세가 너른 공간의 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세속과 상관없는 청정한 딴 세계로 여겨졌다. 날씨가 흐려 스케치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마음이 동했다.

머물며 스케치를 하는 사이 주변 분들이 길을 떠났다. 바람이 불고 구름을 만든 습기가 높아 스케치하기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 홀로 풍경과 교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관음봉을 향해 걸었다. 내림길에서 다시 오르는 곳에 자연성능(해발715m)이라고 특이한 명칭이 쓰인 표지가 보였다. 성곽과 같은 자연 능선이라는 뜻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만큼 험준한 곳일 것 같았다.

능선을 오르니 천왕봉쪽이 다시 조금 더 가깝게 펼쳐 보였다. 거기서부터는 날선 능선길로만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주변으로 시야가 훤히 트이고 주름이 겹친 듯한 산세도 더 깊이 있게 보였다.

1156분 관음봉이 바로 앞에 우뚝 서 보이는 지점에 당도했다. 그 봉우리와 병풍처럼 이어져 함께 펼쳐 보이는 풍광이 빼어나 보였다. 그리고 바위로 된 날선 능선길이 관음봉 정상으로 이어진 모습이 마치 중국 황산의 일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풍경을 대하며 스케치했다. 날선 바위 능선, 가까운 나무줄기 그리고 뒤로 보이는 능선의 원근을 살려 표현하고자 했다. 바람이 불어 그리던 종이가 펄럭거렸다.

다시 출발해 관음봉 정상을 행해 올라갔다. 길이 험해 계속해서 좌측에 파이프 난간 손잡이가 되어 있었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곳도 있고 바위가 미끄럽고 경사가 심해서 조심스러웠다. 어떤 곳은 바닥을 바닥의 바위를 깍아 내어 계단처럼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오른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왼손으로 파이프를 잡으며 올라갔다.

1227분 관음봉에 닿았다. 충북의 박성식 건축사 등과 제주에서 오신 분들과 만났다. 지난3월 제주도에서 한라산 산행을 함께 했던 강영준, 김경복 회원이 알겠느냐며 인사를 건네 놀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제주도에서 오신 세분은 어제 청주로 와서 오늘 아침 충북 회원들과 합류해 왔다고 했다. 그 분들이 함께 내려가자고 했지만 산세를 느끼려고 좀 더 있다가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지나온 삼불봉으로부터 우측 천왕봉까지 계룡산의 너른 산세가 펼쳐 보였다. 풍광이 또렷이 보여 스케치 하려다보니 금새 구름이 덮여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또렷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문득 관음봉 정상석을 확인할 생각이 들어 정상석(816m)으로 갔다. 그 뒤에서 울산에서 오신 분들이 머물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들이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몸이 눅눅한 탓인지 별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려갈 거리를 생각해 함께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다시 정상석 옆에서 주변을 조망하다 보니 뒤에 도착한 많은 울산 회원들이 데크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림길로 내려섰다. 뒤풀이에 참석하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될 것 같았다. 계룡산 정상인 천왕봉은 통제되어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조금 내려오다 고무판이 깔린 계단 중간에 설치된 데크에 내려서니 앞이 시원하게 트여 보였다. 그 옆에 은선폭포라고 쓴 표지가 보였다. 그 표지에 있는 사진에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모습이지만 실제 폭포에는 물이 말라 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아래로 내려오자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점차 많아져 보였다.

212분 동학사에 도착했다. 전에 입구쪽으로부터 동학사를 다녀간 일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계룡산의 품새에 들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다니며 가끔 큰 산에 안긴 사찰들을 대하게 되는데 산세를 이해하고 사찰의 터를 대할 때 장소적 의미가 훨씬 잘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다니며 좋게 느꼈던 사찰등도 다시 산을 오르며 살펴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동학사는 갑사와 함께 계룡산에 자리 잡은 유명 고찰로서 그 역사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성덕왕(724)때 상원조사의 발원으로 회의화상이 창건되었으며 고려 초 도선국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요새 사찰마다 중창 불사를 많이 해 놓아서 본래의 진면목이 가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사찰이 다 크고 번드르해 지는 추세여서 수도처의 경건한 기운을 접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게 여겨진다. 그럴수록 귀히 여기던 산사에 대한 인상도 평이해지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레미콘차가 들어와 콘크리트 기초를 치고 있었다. 사찰을 짓던 구조와 구법도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리고 주불전 외에 전각들의 숫자도 많아져 배치 구조도 점차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내려가는 길에 동학사 경내의 여러 당우들을 살펴보고 나오면서 그 옆을 흐르는 계곡이 이 곳의 장소성을 맑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 옆에 동학사 계곡의 신록이 계룡팔경 중 제5경으로 소개하는 사진과 표지글이 보였다. 그 표지를 보며 사진과 비슷한 풍경이 나타나는지 둘러보게 되었다.

일주문 밖으로 나오다 뒤풀이 장소에 다가서니 오긍균 회장과 서울 건축사회 김영수 회장 등 몇 분 일행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 서울 회원들이 앉은 테이블로 가 앉았다. 식탁에는 찌개와 전 묵 김치 막걸리 등 먹거리가 풍성하였다. 마침 오늘이 생일인데 푸짐한 생일상을 받은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하는 사이 행사가 활기롭게 진행된 느낌이었다. 몇 분은 추첨에 당첨된 경품권을 갖고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이 좋은 산기운을 쏘이며 심신의 피로가 말끔히 가셔진 듯 즐겁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식당을 나와 지역별로 되돌아가기 위해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 나왔다. 다시 다리를 지나며 올려보니 지나온 계룡산 정상부가 멀리 보였다. 화장실을 들러 나오다 누군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바라보니 경남의 신종복 건축사가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백두대간 종주중 올린 산행기에 댓글을 올려 격려해주시곤 하던 분이다. 내가 31구간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망대암산에서 먹을게 없어 고생했다는 산행기를 보고 댓글에 "대단하십니다... 망대함산에서 한계령구간 오르고 내림 연속의 바위 구간을 허기진채 통과하셨다니.....“ 라고 쓴 글을 기억하고 있다.

함께 예기를 나누다 걸어 나오다 각기 타고 온 버스로 가기 위해 작별 인사를 했다타고 온 버스에 올랐다. 오늘 행사를 주관한 오긍균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회장, 김성진 사무총장, 최동철 충북건축사등산동호회회장 등 행사를 성심껏 준비하느라 애쓴 운영진이 출발때까지 지켜보며 환송해 주었다. 모두의 따뜻한 마음이 더 즐거운 나들이 길이 되게 했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는 오후에 그리스팀과 있을 월드컵 축구 경기 예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20100612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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