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낙동정맥3구간(석계재-답운치)종주기
일시 : 2010 6월 20일
산행시간 : 5시 15분~ 16시 10분
참가인원 : 개인 산행
산행코스
5:15 석계재
6;46 용인등봉
8;24 삿갓봉
9;44 임도삼거리
11:35 헬기장 갈림길
14:50 진조산
16;10 답운치
사진기에 먼지가 끼어 오후에 수리점에 들르니 카운터 아가씨가 장마가 시작되는데 산에 가려느냐고 의아해 했다. 수리를 마치고 나오니 날씨가 더 찌뿌등해져서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돌아와 일기예보를 보니 산행 할 지역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오늘 대간을 함께 하고 낙동정맥도 종주중인 강남건축사등산동호회도 11시 30분에 삼성역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그 팀에 합류하면 편할 것 같지만 혼자 갈 차비를 했다.
그렇게 혼자 첩첩산중의 먼 곳으로 가서 거리가 긴 구간을 하루에 완주하고 돌아오려고 생각하니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지의 첩첩 산중이라 약간은 긴장감도 들었다. 혼자 나서면 길을 찾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할 때 모두 혼자서 극복해야 한다. 오늘 가는 곳은 특히 임도가 많은 것이 더 부담스럽다. 지난번 2구간을 마치고 석계재로 내려와 다음 진행할 곳을 바라보니 입구부터 임도가 정맥길 입구와 함께 보였었다. 산행 정보에는 그 임도가 한동안 정맥길을 따라 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내가 산에 혼자 가려는 것은 홀로 산을 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박 산행과 달리 날이 밝은 상태에서 산세를 보며 걷고 싶기 때문이다. 대간 산행 때는 매구간 거의 다 무박산행이었다. 혼자서 몇 구간을 갔을 때도 그랬다. 하루에 긴 구간을 다 걷고 당일에 마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밤길을 걸으면 주변 산세를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요새는 낯이 길어 아침 일찍 시작해도 낯 시간동안 이번의 24km 구간 거리를 다 걸을 자신이 있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9시 태백행 버스를 탔다. 밤차로 태백에 가서 지난번처럼 찜질방에서 출발시간에 맞춰 쉬다 나설 참이었다. 지난 몇 구간을 태백을 근거지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태백 신세를 질 것도 마지막이다. 다음에는 다른 고장으로 들고 날 것이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잠을 자다 10시 50분 금봉이휴게소에 도착했다. 잠결에 그대로 있다가 차에서 내려 산행에서 마실 물을 준비했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11시 30분 길 옆에 억세풀 편의점을 앞을 지났다. 아까 지난 금봉이 휴게소나 그 이름들이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카지노가 있는 사북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차가 멈춘 곳의 차창밖 풍경이 불야성처럼 보였다.
12시 10분 태백에 도착했다. 터미널 앞 식당에서 황태국밥으로 식사하고 12시 20분 대현 찜질방으로 갔다. 들어서니 탈의실에서 요새 하고 있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2층 찜질방으로 가 누웠으나 역시 축구 시청을 하느라 시끄러웠다.
알람 없이 깰 시간을 의식해선지 여러 번 자다 깨다 4시 10분 일어났다. 세면을 하고 나오다 택시 가사분의 전화를 받았다. 4시 30분 찜질방을 나와 주차장에 와 있던 택시를 탔다. 지난번 석계재에서 내려올 때 탔던 차이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을 먹을 곳이 없을 것 같다고 하자 가사분이 근처에 해장국집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그냥 가자고 했다. 준비해온 가래떡이 여우가 있어 그 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가다 길가에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가 보였다. 점차 날이 밝아져 주변 사물들의 형체가 뚜렷해지고 있었다. 기사분이 다른 손님의 전화를 받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이번 구간의 출발지점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점인데 산이 크고 깊은 곳이다. 강원도의 산간 지역과 비슷한 곳이다. 한동안 계속 이런 깊고 큰 산간 지대일 것이다. 포항 인근이나 되어야 마을이 가까이 있게 될 것이다.
5시 10분 석계재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혼자 내려놓은 것이 염려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갔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나타내는 글씨가 새겨진 표지석과 엑스포 전시장 입구처럼 세워놓은 아치 구조물 ,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2구간을 마치고 걸터 앉아 쉬던 정자 등이 낯익어 보였다. 그리고 오늘 시작할 구간 들머리에는 리본이 여럿 달려 있어서 산길을 찾는 어려움도 없어 보였다.
5시 15분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임도가 많은 것이 부담스러웠다. 산행 중 임도를 만나는 것이 몹시 불만스럽다. 그것이 자연스레 형성된 산길을 자르고 지나며 분위기고 삭막하게 하고 길 찾기도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런데 시작후부터 아직은 다행히 산길이 임도와 구분되어 있어 햇갈리지 않고 가게 되었다. 5시 45분 날선 능선을 지났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숲길을 가다 보니 정면 저 멀리 산 능선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반가워 능선에서 더 선명히 일출을 보려고 빨리 걸었으나 시야가 트인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간 일행들도 이 시각 어디선가 일출을 보며 좋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지나는 산길은 완만하게 리듬을 타듯 오르락거렸다. 숲이 칙칙하게 무성해져 있었다. 가지가 무성히 지면을 뒤덮어 가고 있었다. 길마저 뒤덮여 그것들을 헤치며 지나가야 되는 곳이 많았다. 그렇지만 폭이 좁은 길이라도 바닥에 난 길은 분간이 되었다. 산길이란게 특별히 길로만 남아 있을 땅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다져진 자국인 것이다. 그런데 평소 산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가 많은 것으로 보면 그렇게 산길의 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게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만치 앞에 흰 꽃을 피우고 있는 무성한 나무줄기가 길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어둑한 기운이 채 다 가시지 않았지만 그 꽃의 존재가 귀히 느껴졌다. 잠시 후에는 산죽이 빽빽이 자라는 곳을 지났다. 여름철에 산길에서는 거미줄이 성가신데 앞서 간 일행이 다 걷고 간 듯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5시 33분 산길 옆으로 임도가 지나가는 곳에 당도했다. 그렇지만 산길은 그 임도에 끊기지 않고 이너져 지나고 있었다. 거기서 오름길을 지나 큰 소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 능선에 오르니 앞쪽 저만치 큰 산이 보였다. 다시 완만한 길을 지나 6시 5분 리본 많이 걸려 있는 봉우리를 지났다. 문득 가시 넝쿨에 찔렸는지 허벅지가 따끔했다. 연초록 빛깔로 가녀리게 자라난 새 순이 어느새 자라 아프게 찌를 만큼 단단한 가시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시 10분 길이 좌로 급히 꺽여 지는 지점을 지났다. 지도를 보니 묘봉 앞이었다. 구간 초입에서 목표 지점으로 삼으며 다가온 묘봉은 정맥길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앞에 보인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 내림길을 걸었다. 용인 등봉이 가까운 지점이었다. 조금 가다 보니 혼자 앉기에 안성맞춤인 평평한 바위가 보여 그 곳에 앉아 아침 식사로 가래떡 물, 토마토 등을 먹었다. 머물다 보니 가을이 올때처럼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6시 34분 식사 후 급한 내림길을 지나 날이 선 완만한 능선길을 걸었다. 그 곳에서 좌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키 큰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앞뒤에 가지가 닮은꼴로 굽은 참나무가 보였다.
6시 46분 용인동봉에 도착했다. 큰 참나무에 빨간 글씨로 쓴 표지가 걸려 있었다. 주변으로 훤히 시선이 트인 거기서 보이는 주변 산세가 그윽하게 보였다. 진행방향으로 앞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큰 산이 삿갓봉일 듯했다.
길을 나서 능선길을 걸었다. 좌측에 솟은 해가 안개에 희뿌옇게 흐려 보였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가 밑둥이 잘려 좌측으로 쓰러져 잇는 곳을 지났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다 뜻 밖에 병마로 세상을 하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일생의 운명을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완만하고 평온한 산길이 이어졌다. 다시 큰 소나무 몇 그루 서 있고 그 사이로 길이 지나갔다. 계속해서 주변에 큰 소나무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봉화 인근지역은 큰 소나무도 많은 곳이다. 그런데 나날이 참나무 같은 활엽수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것도 온난화 현상의 하나로 예기하고 있다.
산은 높이에 상관없이 그 곳에 자라는 나무들, 식물들, 그리고 그 숲과 함께 살아가는 산새들의 삶터이다. 각각의 입지에 의한 자연 생태와 환경에 적합한 생물들의 삶이 깃들어 있다. 아침에 차를 태워준 택시 기사분이 노루가 많아져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 농부들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 노루를 쫓기 위해 폭약 장치를 해서 터트리는데 모르고 산을 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날은 훤한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큰 소나무 줄기 사이 트인 너머로 푸른산이 보였다. 새소리가 산의 느낌을 더 싱그럽게 느껴지게 했다. 물기 젓은 내림길에 다시 밝아진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큰 참나무 숲 아래 산죽 터널길을 지났다.
7시 17분 이름모를 봉오리를 지나 7시 23분 문지골 6폭포 35분 이라고 쓰여진 표지를 보며 지났다. 완만한 길에 울창한 숲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완만한 길로 나아가다 우측 큰 참나무 줄기에 자라난 묽은 버섯이 눈에 띠었다. 울창한 숲에서 우측 멀리 삿갓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오름길을 걸어 작은 봉오리를 넘어가는 동안 우측 먼 곳에서 기계톱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깊은 산중 어디에 문명의 발톱이 할퀴고 들어온 것은 느낌이 들었다.
7시 49분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오르니 멀리 멀리 겹쳐 지나는 아름다운 산세가 보였다. 그곳을 지난 내림 길에 완만한 산길이 난 평온한 푸른 숲과 새소리가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8시 2분 임도로 내려섰다. 쉬면서 참외와 어제 터미널서 산 계란을 먹었다. 쉬면서 숲속의 산새들처럼 평화를 누려보고자 했다. 8시 20분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해 임도를 가다 산길로 접어들어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8시 24분 삿갓봉에 도착(1119.1m)했다. 멀리서 거대하게 느껴지던 것에 비해 너무도 평이하게 느껴진다. 거기서 좌우로 갈림길이 놓여 리본이 걸린 좌측길로 들어섰다. 그 곳에 ‘준․희’ 라고 이름이 쓰인 아구지맥 분기점 표시가 걸려 있었다.
조난자 위치추적 표지판을 지나 8시 30분 다시 임도가 나타났다. 그 곳부터 임도가 여러번 교차되는 지점을 지났다. 길이 헷갈리고 기분도 불편해졌다. 8시 37분 앞쪽을 무심코 바라보니 고라니처럼 보이는 짐승이 좌측 경사진 산북 섶으로 뛰어 내려갔다. 털빛은 맷돼지 같기도 했는데 뛰는 소리가 맷돼지 같지는 않았다. 한 걸음 도약해서 착지할 때까지의 소리가 리듬처럼 들렸다.
8시 44분 트인 앞에 큰 산봉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내리막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금강소나무 생태 경영림 탐방로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라고 쓰인 리본이 연속해서 나타났다. 그러나 정맥 리본이 아니어서 길이 맞는지 조심스러웠지만 길을 잘 못 들지는않은 듯 하여 그대로 나아갔다. 잠시 후 다시 남부지방 산림청장(054-783-7074) FSC5낙동강 유역(금강소나무)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위하여 설치한 “산림천이 모니터링 조사구“입니다. 라고 쓰여진 표지가 보였다.
9시 2분 여러개의 바위와 큰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봉우리를 지나 내림 길에 임도에 닿았다. 순간 지도상에는 그러한 임도와 만나는 곳이 없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정맥길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산세가 첩첩히 둘러친 깊은 곳이었다. 임도를 보니 그 길을 만드느라 원래 지형을 파서 높은 절벽처럼 된 것이 마음에 결렸다. 그 길이 주변의 첩첩 산중의 산세를 이리저리 꽤뚫듯이 지나가고 있어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길은 점차 내려가고 주변을 지나는 산세와 능선은 더 높다랗게 보였다. 정맥 길은 그 능선에 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잘못 든 것 같아 되돌아섰다.
다시 오름길을 돌아오다 9시 12분 길을 잘못 들었던 지점으로 원위치 했다. 아까는 길의 흐름상으로 원만한 곳을 향해 무심코 그곳을 지나쳐 온 것이었다. 거기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을 좌측으로 잘못 갔다 온 것이다. 그처럼 햇갈리기 쉬운 곳에는 통상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데 리본도 걸려 있지 않았다. 우측으로 조금 들어선 곳에 앞서간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 리본이 하나 달랑 걸려 있었다. 대간 때도 리본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번 낙동정맥부터 사용하겠다고 했었다.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는 허탈한 기분이 되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길을 걸었다. 잠시후 다시 나타난 임도를 걷다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서 접어든 산길은 자취가 뚜렷해 보이지 않아서 돌아 나와 살펴보고 다른 길이 없는 듯 하여 다시 들어섰다. 다행히 조금 오르니 길을 확인케하는 리본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9시 23분 다시 임도로 나섰다. 그렇게 여러차례 임도와 만나 길 찾기에 신경을 써야 했다. 임도가 산길을 삭막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지나다 보니 임도가 지긋지긋하게 여겨졌다. 3구간은 깊은 산중의 구간이다. 민가와 연결되지 않은 깊은 산길이다. 이 구간을 한번 들어서면 종점인 답운치에서 마칠때까지 탈출로도 없는 구간이라 출구만을 목표로 가게 되지만 여러 갈래의 임도가 있어 그 곳 본래의 깊이 감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다시 산길에 접어들었다. 임도가 산길 옆을 바짝 파고 들며 나 있어 벼랑처럼 되었다. 그 산길과 임도가 한동안 나란히 나 있다 좌우로 간경기 멀어지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산길을 내려가다보니 다시 아래쪽에 지나 보였다. 9시 44분 그 임도로 내려서니 그곳이 지도상에 나타난 임도 삼거리였다. 봉화 석포, 전곡리, 소광리 그렇게 3방향을 표시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표지에는 위치: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연장 2.28km/시행청: 남부지방 산림 관리청 산림 토목사업소/ 시동자 L 임업 협동조합 중앙회/ 관리자 : 울진 국유림 관리소라고 쓰여 있었다.
표지에 쓰여진 글처럼 사유림, 국유림 어쩌고 하는 것이 인간의 오만한 권리행세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로 여긴다. 산과 나무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서 자연의 혜택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자연을 모두 인간의 소유로 여기는 것은 정복자와 같은 발상이라고 느껴졌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임도와 떨어져 산길로만 가는 구간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10시 내림길을 걸었다. 좌측에 임도가 보였다. 나무줄기가 자주 얼굴에 닿았다. 오늘 칙칙한 산죽이나 싸리숲 길 등을 지나 오는 동안 머리칼에 잡티가 많이 앉게 되었다. 그리고 땀이 범벅되어 거울을 보면 꼴이 말이 아닐 것 같았다. 길이 우로 돌아가고 있는 아래쪽에 임도가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또 임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도를 멀리 내쫓아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10시 25분 다시 일행의 리본이 보였다. 산죽이 나 있는 완만한 길을 걸어 10시 31분 백병산 가는길 표지점에 닿았다. 뚜렷한 이정표는 없지만 그곳이 지도상의 1156봉우리 지점인 것 같았다. 10시 36분 급경사 내림길을 걷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졌다. 진행 방향 큰 나무 너머로 봉우리가 보였다. 임도와 점차 멀어진 느낌이 들어 다행스레 여겨졌다.
10시 49분 진조산, 통고산 가는 길 표시(준․희)가 보였다. 잠시 완만한 숲길을 걸었다. 길 옆에 보리처럼 생긴 풀들이 보였다. 그 부드러운 느낌에 길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에는 품종이 보통 흔히 보았던 것과 다른 산죽이 나타났다. 그것은 다른 것과 달리 깨알처럼 까만 씨앗이 박힌 채 꽃이 핀 것이 특이해 보였다.
11시 1분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가 안부를 지났다. 좌측에 다시 계곡처럼 임도가 보였다. 임도가 또 다시 근처에 얼쩡거리면서 한가로이 자연을 대하고픈 기분을 망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주변에는 큰 산세가 보였다. 11시 6분 길가에 앉아 쉬면서 물을 마셨다. 물만 마시고 가려다 아예 식사를 할 생각으로 귤과 빵을 먹었다. 간간히 임도에 잘린 산길을 지나는 불편함이 걸은 거리보다 더 심신을 피곤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여유 있게 쉬고 11시 25분 출발했다.
11시 31분 다시 임도를 만나 내려섰다. 그리고 그 길을 건너 숲길을 들어서 11시 38분 길 옆에 헬기장이 표시되어 있는 삼거리를 지났다. 그 곳을 목표삼아 왔는데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는 길을 조금 벗어난 지점에 있어 그냥 지나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 그 헬기장이 전망이 좋다고 표시되어 있어 지나쳐 가던 길을 되돌아와 올라가 11시 46분 헬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숲이 가로 막아 전망은 별로인 상태였다.
헬기장을 내려와 다시 지나던 길로 들어섰다. 길 주변에 불에 탄 나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오래전 산불이 났었던듯 했다. 지금 보이는 나무들은 그 뒤로 다시 자라났을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 보이는 나무들도 수령이 제법 되어 보였다.
11시 56분 햇살이 비추는 완만한 길을 걸었다. 임도 삼거리로부터 임도와 벗어나 잇는 산길로만 걸어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도에는 가까이 임도가 지나고 있었다. 우측에 그 임도 주변으로 벌거벗은 법면이 보였다. 앞쪽 길가에 큰 소나무가 우람하게 선 것을 보면서 지났다. 다시 비를 뿌렸다. 오늘은 비교적 날이 맑은 편인데 그처럼 가끔 비가 뿌리다 그치곤 했다.
12시 8분 안부를 지났다. 굵기가 가느다란 산죽 줄기 같은, 짙은 청록색 줄기를 지닌 초목이 잎이 진 채 무수히 군락을 이루며 자라나 있었다. 거기서 시작되는 오름길을 걸어 완만한 봉우리를 지났다. 그리고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걸어 12시 19분 다시 안부를 지났다.
12시 21분 다시 완만한 능선 길에 작은 봉우리를 지나 삭아 빠진 보도블럭이 깔린 곳을 지났다. 헬기장으로 썼던 곳 같았다. 그 곳을 지난 내림 길을 걷다보니 동물의 배설물이 보였다. 아까부터 간간히 그런 흔적이 보였다. 오면서 보았던 고라니 같은 짐승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울창한 숲 길을 걷다보니 앞쪽 숲 너머로 산봉우리가 보였다.
완만한 숲 길을 빠져나가 지나는 능선에 시야가 트였다. 12시 50분 봉오리를 조금 지난 곳에서 다시 비가 내렸다. 12시 55분 앞쪽 지나갈 방향의 산봉우리가 보이는 능선에 멈춰 토마토와 가래떡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저 앞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일행들이 식사를 하며 멈춰 잇을 것 같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주변에 숲을 간벌 하여 벤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간벌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게 널부러진 모습은 삭막해 보였다.
1시 10분 934.5봉에 도착했다. 지도상에 남은 거리가 많이 줄어 있었다. 급한 경사지 내림길을 내려가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낙엽이 푹신하게 쌓인 위에 소똥이 보였다. 이런 깊은 곳에서 소를 먹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만한 안부를 지나 앞에 높게 놓인 봉우리를 올랐다. 경사기 비교적 급한 곳이었다. 조금 가다 보니 좌측으로 터져 보이는 산세가 좋아 보였다. 그 중간쯤 오르다 보니 앞쪽에 일행이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부르려다 그 곳에 멈춰 좋게 보인 풍경을 스케치 했다. 내가 빠르게 가고 있는 중이어서 가다가 곧 만나게 될 것이기에 미리 만나기보다 여유롭게 스케치도 하면서 가다 천천히 만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2시 4분 작은 봉우리를 지났다. “우리산하 두루두루 가슴속에 담아두기” 라는 리본 글씨가 마음에 와 닿았다. 다시 스케치 할 곳을 찾으며 가고 있는데 뒤돌아보니 큰 참나무와 뒤에 그윽한 산세가 어우러진 모습이 좋아 멈춰서 다시 스케치 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봉우리를 넘어가 2시 38분 다시 임도에 내려섰다. 그 임도는 산길을 옆으로 가로 질러 있어서 그냥 건너만 가는 곳이어서 길을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길 건너에 바로 산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였다. 완만한 오름길 입구에 굽은 다래나무가 옆에 선 떡갈나무 줄기를 감으며 타 올라 있었다. 조금 가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세가 다시 푸르고 훤출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부근에서는 북상하며 보이는 풍광이 더 나을 것 같았다.
2시 58분 다시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다가가니 맨 뒤에 가던 박정호 임사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면서 차대장, 임사장 친구, 오회장, 최회장 부부를 차례로 만났다. 오회장은 놀라면서 어떻게 왔느냐며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울창한 내림길을 지나 잠시 후 다시 지도상에 표시된 임도에 닿았다. 그 곳으로 내려서다 보니 그 곳을 막 건너 숲길로 들어서는 다른 일행이 보였다. 그 뒤를 따라 완만한 길을 가다 백인철 건축사와 김포댁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조금 가다 맨 앞에 걷던 이대장을 만났다.
그들과 함게 그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당초 길을 나설 때 생각대로 따로 갈 생각을 하고 인사를 하고 앞서 걸었다. 여기서 합류하면 모처럼 혼자 길을 나선 의미가 바랠 것 같았다.
3시 28분 오름길을 걸어 능선에 오르니 앞쪽 산세가 멀고 그윽하게 조망되었다. 다시 앞에 놓인 봉우리를 오르다 택시가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니 밧데리가 부족하여 꺼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뒤에 오는 이대장을 기다려 전화기를 빌려서 전화를 하고 다시 앞서 걸었다.
평평한 능선 길을 걷다 3시 50분 송전탑에 도착했다. 거기서 이어지는 다음 구간의 산세가 깊고 크게 펼쳐 보였다. 내림길을 걸어 4시 6분 헬기장을 지났다. 완만한 길가의 묘지를 지나 내림길을 내려가다 보니 구간을 마치는 도로가 내려다 보였다.
4시 10분 답운치에 도착했다. 전화로 예기한 택시가 와 있는지 둘러보니 보이지 않았다. 길 옆에 다음 구간인 통고산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다 보니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춘양으로 가다보니 길 가에 울진 공비 침투로 표지가 보였다. 기사분이 전에 무장 공비가 침투 했던 곳이라고 했다. 두 명이 침투했는데 주민 한 사람이 옆에 있는 줄 모르고 다른 한명을 가리키며 간첩이라고 했다가 옆에 있던 이에게 변을 당했었다고 했다. 그들이 달아나다 철도청 직원이 격투해서 잡았는데 그는 지금 70세 정도 되었다고 했다. 가는 도중 태백에서 보았던 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이어져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가다가 마을을 지났다. 주변이 더 없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고을을 둘러친 산세는 산길을 걸으며 느낄때보다 훨씬 크고 깊게 보였다. 경상도 지역은 전라도에 비해 개발이 많이 된 곳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이 지역에는 일찍이 도로도 많이 개설된 편이다. 그런데 산간 지역은 여전히 깊다. 그리고 같은 경상도 지역내에서 고을들이 정맥의 좌우로 나뉘어 있다. 인근의 울진과 봉화가 그렇다. 특히 봉화는 대간과 정맥으로 구분된 산세에 안겨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도시 문물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인상이 느껴지는 곳이다.
현동을 지났다. 그 곳을 지나가다 기사분이 길가의 자기 집을 가리켰다. 4시 40분 춘양에 도착해 6시 10분 차표를 샀다. 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춘양 구경을 하려고 거리를 걸었다. 마침 장날이어서 시장에 들렀다. 그런데 시장을 터널식으로 반듯하게 정비해 놓아서 시골장 체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오이와 수박 묘종을 하나씩 샀다. 다른 사람이 대신 팔다 주인이 돌아와 오이묘를 하나 더 주어서 박과 바꿔 달라고 하니 바꿔 주었다.
길가에서 참외 장수에게 전화기 충전 할 곳을 물으니 아무 가게나 들러 부탁하면 이 곳 인심이 좋아서 들어줄 거라고 했다. 그 분 말대로 농약 가게에 들르니 충전을 해 주려고 했으나 잭이 맞지 않았다. 다른 곳을 몇 번 들르다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내 일처럼 충전을 해 주었다. 거리를 걷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예기를 나누는 사이 순박한 고을 인심이 느껴졌다. 작은 고을이라 그 지역을 금새 다 일게 된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 출발 시간이 거의 되어 승차장에서 기다리다 보니 터미널 건물 처마에 제비가 새끼 먹이를 먹이고 있었다. 요새 강남서 돌아오는 제비가 적어졌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게 아주머니가 옆에 서 있다가 새끼가 세 마리라고 했다.
귀경할 버스가 승차장으로 들어서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고단함에 잠에 빠져 들었다. 9시 16분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맘먹은 장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친 것이 다행스럽고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20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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