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2010 건축가협회 답사기
매년 정기 건축답사를 시행해 온 한국건축가협회는 올해 답사지를 김해로 정하고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Brick 벽돌, 한국근대를 열다 展』과 김해시 내에 있는 김수로왕릉 등을 돌아보기로 했다.
출발장소로 나가니 신청하신 분들이 모두 일찍 오셔서 타고 계셨다. 이번 답사에는 오기수 전회장 등 회원과 일반인, 건축과 학생 등 25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부산 등 지역 회원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참가회원중 Ma건축을 운영하는 유태림 소장은 진행중인 벽돌조 건물의 설계에 참고하기 위해 이번 답사에 참가했다고 했다.
계절이 어느듯 여름으로 접어들어 강렬한 태양빛에 수목들의 잎도 무성히 짙푸르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산지역을 지날때까지 도시와 농촌이 뒤섞인 모습이 보였다. 고속도로 주변이 나날이 더 도시화 되어가는 모습이지만 아직 변함없는 들녘엔 모가 푸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논물이 말갛게 하늘을 비추는 논뚝에 드문드문 밤나무, 감나무 들을 심은 것이 보였다. 농부들 심정에 논뚝까지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은 곳도 있는데 이모작을 하려면 서둘러 그 수확을 마쳐야 할 것 같았다.
이번 답사지인 김해는 거리가 멀어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 염려되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로 접어든 다음 경부고속도로 영산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고 다시 한참을 가다보니 김해로 접어드는 인근에 평야지대가 보였다. 김해는 원래 바다로 통하던 곳인데 낙동강 하구뚝을 막은후부터 바닷길이 단절된 대신 김해평야가 형성되었다.
11시 30분 김해시에 들어섰다. 다행히 예상보다 일찍 당도해서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가야시대의 중심지로서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김해는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보다 더 일찍 태어났다. 김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운 곳으로 김해 시내에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그의 비인 허왕후가 모셔진 능이 있다. 또한 김해시 일대는 철기문화의 중심지인데 근대에는 화학 공장 등 산업 도시로 발전해 왔으며 현재 인구는 20만 정도 된다.
11시 48분 수로왕릉에 도착했다. 사적 23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로왕릉은 가야 시대 역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가락국(금관가야)은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창건했고 552년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으로 되었다. 6가야의 이름이 처음 실린 자료는 고려말에 편찬된 「삼국유사」‘5가야 조’의 기록인데, 이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고가야, 금관가야, 비화가야, 등의 일고 가야의 이름이 나온다.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 국의 공주인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고 199년 돌아가기까지 158세를 살았다고 한다. 원래 인도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황옥은 16세 되는 서기 48년에 배를 타고 가락국에 도착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 즉위 7년에 왕비가 되었다고 전한다.
김수로왕릉의 영역은 외삼문과 홍살문이 있는 진입공간과 제실 공간 그리고 봉분 영역 및 그 뒤로 후원 같은 너른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분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병풍석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봉분 전면에 제례석이 놓여 있고 그 전면 좌우에 봉분 가까이로부터 문인석과 무인석, 호석(虎石), 양석(羊石), 마석(馬石)이 열지어 있다.
12시 30분 김수로왕능을 나와 그 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걸어 들어가 갈비탕으로 점심 식사를 한 다음 클레이아크 미술관으로 출발해 1시 32분에 도착했다. 김해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레어아크 미술관은 전면에 너른 외부 공간이 있어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외부 바닥에 질박한 표면의 커다란 돌이 가지런히 깔려 있어 물성이 가득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전시장 1층 홀에서 이 전시를 총괄 기획한 우대성 소장이 설명을 했다. 그 홀 공간은 원래 외부였는데 지붕에 유리 돔을 씌워 내부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거기서 설명을 듣고 중앙 램프를 따라 전시실이 있는 2층으로 이동했다.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1부 재료의 탄생, 2부 ‘한국 근대 벽돌건축’ 3부 재사용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4부 그 현대적 가능성 등 4가지 주제로 되어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주재인 1부 재료의 탄생 부분은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 호주, 영국, 일본 등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벽돌들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2부 ‘한국 근대 벽돌건축’의 전시공간에서는 1880년대부터 1945년 광복까지의 시기에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을 실물벽돌, 모형, 사진,영상 등의 전시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울러 3부 재사용과 지속가능성의 전시 공간은 벽돌로 지은 근대기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례를 전시하고 있었고 4부 ‘벽돌, 그 현대적 가능성’ 의 주제로 펼쳐 놓은 전시 코너에서는 여러 가지 벽돌주제의 미술품과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를 둘러보고 난 후 1층 세미나실로 이동하여 전시와 연계해 진행하는 학술세미나에 참가했다. 세미나는 다섯가지 주제의 발표로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벽돌건축의 역사적 변천’ 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김종헌 교수는 한국 최초의 벽돌 건축으로 알려진 번사창에 대해 “이전부터 지녀온 우리 특유의 기술이 나타난 결과“ 라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조적조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 의 제목으로 발표한 권기혁 교수는 ”조적조는 횡력에 취약한 구조로서 물려쌓기가 그 핵심“이라고 했다. 세 번째 발표한 건축재생공장 안재철 대표는 ‘벽돌의 재료적 특성과 미래’ 라는 제목으로 소성온도 등 재료 공학적 특성을 중심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네 번째로 발표한 아리건축 김태우 소장은 ‘명동성당 벽돌의 물리적 특성과 재현’이라는 제목으로 명동 성당 보수과정에 참가하여 작성한 자료 내용을 갖고 이야기 했다. 마지막으로 경성대학교 강동진 교수가 ‘일본 근대 벽돌건축의 재활용을 통한 지역 재생’이라는 제목으로 근대 형성과정과 벽돌건축의 등장, 그리고 현재 그에 관해 진행되고 있는 조적조 건축의 재생에 걸쳐 역사적 맥락에서 이야기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니 5시 30분이 되었는데 일정대로 저녘 식사를 하고 서울에 도착하기에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예약한 식당에 전화하여 도착 즉시 식사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부탁하니 그대로 준비해 주었다. 식당에서 마주 앉은 일행끼리 예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6시 45분 서울로 출발했다. 귀경하는 차량이 몰려 늦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예정보다 이른 10시 40분에 서울에 도착해 행사를 마쳤다.
(글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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