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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서삼릉 답사기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10.02.1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385
내용

서삼릉 답사기1

나에게 서삼릉은 아련한 기억속에 있다. 내가 이 곳을 처음 대한 것은 입대 후 이 인근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때이다. 자대 배치된 며칠 후부터 이 인근 부대 공사 현장의 감독을 맡게 되어 서삼릉과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벌써 27년 전이다. 그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놓인 새로운 생활 터전이 낯설고 삭막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는데 왕릉은 왠지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부대 복귀 후 이따금 서삼릉 주변으로 새벽 정찰을 나오기도 했었는데 그 때가 마치 외출 시간처럼 느껴졌다. 군데에서 영역 밖은 먼 세계로 여겨지는 터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직접 능역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저만치 보이는 왕릉은 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어느 겨울날인가, 하얀 눈으로 덮인 너른 잔디밭이 그윽한 신비를 지닌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전 불현듯 옛 시절을 떠올리며 그 곳을 찾아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조선왕릉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조선 왕릉은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 양식으로 세계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었는데 그 말이 오랜 추억을 불러왔다.
막 접어든 가을 날씨에 숲의 녹음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지만 그 호젓한 숲속에서 달콤한 휴식을 맛보러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너른 잔디밭에 선 소나무 그늘아래에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쉬고 있었는데, 좋은 터에 정갈하게 닦인 능과 생기가 솟아나는 큰 소나무 숲에 머무르다 보면 세상시름이 절로 씻겨 질 듯 했다. 주변이 개발되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풍경이었다.

조선 왕릉은 그 위상에 맞는 격식과 성스러움을 정성스레 표출하고 있다. 위계를 이루며 놓여진 영역별로 의미에 맞는 시설과 형식을 구비해 왕실의 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곳 서삼릉도 그러한 조선 왕릉의 기본 구조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그것은 마치 생존의 왕이 거하던 궁궐에 위엄이 드러나도록 각별히 형식을 갖추었던 것과 같다.
왕릉의 배치는 크게 보아 참배를 하러 들어오는 진입영역과 제례를 올리는 제례영역, 그리고 봉분이 놓인 능침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능역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위요되어진 지형 가운데 있고, 능의 정문에서 홍살문에 이르는 진입 영역의 길도 제례영역이 한 번에 드러나지 않도록 굽은 길로 되어 있다.

서삼릉은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봉산너머에서 다시 일으켜진 산세에 감싸여 있다. 봉산을 배경으로 한 서오릉과는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인데, 주변이 평온하고 고즈넉한 곳이다. 희릉, 효릉, 예릉을 아울러 일컬어 서삼릉이라 하는데, 이 곳 경내에는 앞서 말한 능 말고도 세자의 묘인 원 3기와 후궁, 대군, , 공주, 옹주 등의 묘 45기가 있다.
이 곳 서삼릉에서는 다양한 능의 형태를 느낄 수 있다. 예릉과 효릉은 雙墳이고 희릉은 單墳이다. 또한 의령원과 효창원은 앞뒤로 조성되어 있다. 효릉은 별도 영역으로 현재 종축소 안에 있어 일반에 개방되지 않는다. 미리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서니 초원을 넘어가는 풍경마저 색다르게 느껴졌다. 금역을 넘본다는 짜릿함이 더해진 탓이리라. 효릉은 예릉과 같은 쌍분이지만 왕은 병풍석을 두르고 있고, 왕비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차이를 띠고 있다.

조선 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라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조성된 능묘의 일반적인 입지 조건은 背山臨流의 양지 바른 곳에 四神 형국의 주변 산세가 전후좌우에서 아늑히 감싸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자연이 도식적 완벽함을 다 갖출 수는 없기에 능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지형과 입지의 차이가 독특한 분위기를 띠게 되는데 서삼릉의 산세는 다른 곳보다 완만한 편이어서 더 평온한 느낌이 든다.
풍수지리와 예의 규범이 어우러져 높은 격조를 이루고 있는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인문지리 사상을 함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길게 늘어진 능의 여러 영역을 오가다 보면 그 곳에 모셔진 주인공과 더불어 이루어진 역사의 이여기가 들릴 듯하다. 어느덧 늦은 햇살이 봉분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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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답사기2

얼마전 박물관 신문에 서삼릉 답사기를 쓸 때 서두에 이곳에 관한 회상을 담았었다. 그 글을 쓰면서 불현듯 그 때가 그리워져서 시간을 내어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 시절 추억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서오릉을 먼저 본 다음 교통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자대 배치 직후 공사 감독을 했던 부대 위치를 설명하면서 찾아가 달라고 했다. 주변에 도로가 많아지고 도시로 개발된 곳도 있어서, 처녀지에 짓던 부대만을 떠올리며 찾아갈 곳을 설명하는 말이 잘 이해될지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이 쪽 지리를 아시는 분이어서 제대로 부대 입구에 데려다 주었다.

부대 정문 위병소에 다가가 위병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하며 내가 근무하던 위치에서 잠시 서오릉을 바라보다 가고 싶다고 했다. 위병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다 위병소 안에 있던 고참에게 내 예기를 전하니 가까이 오라고 했다. 건물 창구로 가서 그에게 다시 용건을 말하니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 다음 역시 곤란하다고 말해 물러 나왔다.

부대 입구 바깥쪽으로 물러나 다시 안쪽을 보면서 30년 가까이 지난 옛 시절을 회상하느라 깊은 감회에 잠기게 되었다. 현역병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로부터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허전함에 갈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생할하던 옛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잠시 후 택시가 부대 정문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빈 차로 잠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차에 다가가 용건을 말하며 이 부근에서 서삼릉을 저만치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 했다. 그러자 기사분이 내 생각을 잘 이해한다는 듯 알겠다고 했다. 차가 원당역에서 유턴해 오다 우측으로 접어들어 가자 예전에 지났던 기억이 담긴 공간이 나타났다. 추억의 장소를 찾은데 대한 안도감을 느끼며 하나라도 더 기억이 담긴 흔적을 발견하려고 유심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벼 그루터기에 드문드문 흰 눈이 남은 고향 같은 논과 야트막히 구릉진 지형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예전에 보았던 모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평온함이 바로 내게 기억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느낌이었다. 기사분에게 이 공간은 웬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니 주변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이 곳은 그린벨트라 그대로라고 했다.

한양 골프장과 서삼릉 사이 공간을 지나다보니 군 시절에 새벽 정찰을 나왔을 때 보았던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기억이 더 생생해졌다. 애초에 이 곳에 오고자 한 추억이 담긴 공간을 만난 것이 기뻤다. 이 인근에서 왕릉을 저만치 바라보면서 느꼈던 느낌도 떠올랐다.

더 안으로 들어가다 지난해 9월 서삼릉을 돌아보기 위해 들어왔던 길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이 곳 지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삼릉과 종축소 입구로 넘어가는 고개 길가에 큰 가로수가 서 있는 풍경이 퍽 색다른 멋을 풍기고 있다. 이번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예전처럼 능 안 풍경을 느껴보고자 했다. 엄숙한 공간인 릉은 겨울 날씨에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활엽수의 앙상한 모습과 달리 왕릉을 둘러선 키 큰 소나무들이 청정함을 발하고 있었다. 유난히 춥고 많은 눈이 온 해의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더욱 청정하게 느껴졌다.

다시 기다리던 차를 타고 북한산이 잘 저만치 보이는 곳에 내려 잠시 바라보다 들어선 길로 되돌아 나왔다. 나오다 들어설 때 보았던 배다리 박물관을 물어보니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마신 술로 유명한 막걸리 박물관이라고 했다. 그 곳은 원당역에서 가까이 있어 도보로 다닐 만한 거리였다.

배다리 박물관에 들어서니 2층에 막걸리 양조에 관한 기구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1층에서는 막걸리를 맛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맛이 궁금해 반되를 시키니 노란 양은 주전자에 양은 잔과 김치를 안주로 내 왔다. 어릴적 농사철에 어른들 심부름으로 오리를 걸어가 사오다 몰래 한모금 마시던 그 맛이었다.

오래전 추억의 공간을 찾아나서며 저절로 내 살아온 세월도 뒤돌아보게 되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에 무상함이 느껴졌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엔 지금보다 세상 앞에 더 위축되어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면서 마음은 가난했고 내가 머문 공간을 명랑하게 느끼지 못했었다.

옛 공간을 거닐면서 그때 희망을 꿈구던 먼 미래의 시간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덧 없이 살아가는 오늘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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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평온한 느낌이 좋은 곳이어서 가보면 좋아하실 듯 합니다. 서삼릉을 보고 그 입구에서 나오다 만나는 첫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들어가는 길이 제가 말한 길인데 그 곳의 공간감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14 년전
  • 박길순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서삼릉을 저는 아직 못가보고 서오릉은 가 본 것 같기도 한데. 늘 전통 가옥의 멋을 사진 속에 담아 즐겁게 해 주시더니 이번엔 죽은자들의 집 풍경을 글로 보여 주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14 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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