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대모산 시산제(始山祭) 산행기
올 해 강남 건축사 등산 동호회에서 거행하는 시산제(始山祭)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수서역에 내려 대모산을 오르는 출구로 나오니 기온이 올라 봄기운이 완연했다. 몇 년 전에도 강남 건축사 등산 동호회에서 오늘처럼 대모산에서 거행한 시산제에 참가하러 왔었는데 역 주변에는 그 사이 큰 빌딩들이 더 많아진 듯 했다. 거기서 그 도시의 번잡함을 떨쳐내듯이 입구를 찾아들었다. 전에 들어섰던 입구가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전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는데 오히려 맑아져 푸른빛이 돌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활기가 찾아 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더러 산을 다닌 편이었다. 대간 종주도 하고 불수사도북도 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무렵부터 산행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근 반년 가까운 친환경 아카데미 수업이 주말에 격주로 있었고 올 들어서는 이런 저런 계획안을 만들면서 작업에 푹 빠져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해 왔다. 그러면서 운동할 시간을 잘 내지 못했는데 그 사이 몸이 찌뿌듯해진 것 같았다. 작년 10월에는 춘천마라톤 풀코스까지 완주하고 나름대로 체력에 자신감을 가졌으나 다리 근력도 떨어진 듯 했다. 그래서 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오랜만에 나서니 마음이 마치 장롱속에 두었던 옷가지에 볕을 쏘이는 듯 했다.
오늘 가는 대모산은 내가 다녔던 다른 산에 비해 매우 낮고 완만한 산이다. 이 산에 들면 늘 편안함이 느껴진다. 산세는 나즈막하지만 포근한 느낌은 넉넉하고 크다. 흙산이어서 길을 걷기도 편하고 완만하게 오르고 내리는 지형의 형세도 좋다.
이전에는 가급적 크고 높은 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그래야 산다운 산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간 산행 등은 커다란 목표의식을 갖고 임했었다. 그렇게 장엄한 산의 체취를 대해야 산행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그런 의식이 수그러지고 단지 산을 찾는 의미만으로도 귀하게 여겨진다.
입구의 길을 올라 완만한 흙길을 걸으며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 들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추위가 혹독했던 겨울을 탈 없이 난 나무들도 이제 새로이 봄을 맞고 있다. 철사처럼 앙상한 가지에서 물기가 번지고 신록이 피어나는 그 생명력은 날로 무성해질 것이다. 봄은 바야흐로 침묵하던 자연의 생명력이 박동을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생명체로서 그러한 기운이 몸 안으로부터 약동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나무들이 앙상한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 산길을 걸으면 무성했던 숲이 텅 빈 채 전해오는 적막하고 투명한 체취가 정신을 맑게 한다. 겨울철에는 시선이 트여 맨 산세의 품을 오롯이 대할 수 있어 좋다. 기온이 낮은 때에는 정신이 더 시큰해진다.
오르막길을 오르며 앞을 보니 저만치서 수가 많은 일행이 쉬고 있었다. 숫자로 보아 우리 일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빨리 걷는 편이라 가다가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처럼 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즐겁고 선량하게 느껴진다.
완만한 능선을 올라 보이던 봉우리에 당도하니 작은 쉼터처럼 공터가 놓여 있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쉬고 있었다. 그 같은 봉우리는 잠시 쉬어 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계속에서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더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그리로 행해 나 있는 굽은 길이 탄력이 있어 보였다. 완만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거리가 3키로 정도 되어, 봉우리를 넘어 다시 저 앞에 더 높게 보이는 봉우리로 향하는 여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대모산 정상에 닿았다. 그 곳에 높다란 철탑이 서 있었다. 어떤 분이 그 탑 중간에 지어진 까치집을 찍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으며 새들도 인간처럼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면 인공적인 집을 지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을 조금 지난 곳에 이르니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시산제를 올리기 위해 우측 평평한 공터에 제수를 차려 놓고 있었다. 다가서니 얼굴이 마주친 분마다 반갑게 맞아주어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강남건축사 등산 동호회에서 추진한 대간 산행을 함께 했던 분들을 보니 그 때 감회가 되살아나서 어려운 산행을 함께 했던 분들과 재회하는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손을 감싸 잡았다.
오늘 같은 시산제는 겸허한 마음을 갖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문에는 그동안 산을 좋아하는 우리를 안전하게 돌봐준데 감사하고 계속 지켜 달라고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즐거운 산행이지만 산에서 이런저런 사고 소식도 가끔 듣게 된다. 추락하거나 해서 큰 사고가 나기도 하고, 오직 몸으로 하는 산행에서 발목이나 무릎에 무리가 생길 수도 있으며 바위에 부딧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이 세계 최초 14좌 등정에서 사고를 당해 모두를 안타깝게 한 일도 있었다. 그처럼 산행시 안전이 최우선이다.
시산제는 산에서 지내는 제사이니 산을 주관하는 산신께 비는 격이다. 그처럼 산신께 제를 올리는 것은 우리 민속의 풍습과 통하는 점이 있다. 그것을 일종의 종교 제례 의식으로 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각자가 산과 산을 찾는 의미를 새롭게 새겨보는 시간이다. 바쁘더라도 가끔 산을 찾으며 심신을 건강하게 갖는게 더 능률적인 삶이 될 것 같다.
총무가 내빈 소개를 한 후 시산제를 시작했다. 최진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 고문이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었다. 이어 강성익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등 내빈부터 차례로 절을 올렸다. 평소 풍습대로 각기 준비한 금전을 제단에 얹어 놓았다. 나도 산에 드는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으며 절을 했다. 축문을 사르고 제를 마쳤다. 일행은 제단에 올렸던 음식을 나눠먹으며 할 일을 다 한 후의 홀가분한 표정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산제는 산을 향하는 마음을 새로이 가질 수 있는 산행인들의 풍속이다. 가호도 바라지만 스스로 조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조심한다는 것은 겸허함과 같은 바탕이다. 이런 의식을 행하고 나면 산을 찾는 각자의 마음이 더 편안해질 것 같다. 그래서인지 행사를 마치고 하산하는 일행의 발걸음이 더 가벼워 보였다. (20100227)
산 행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아름답다.
맑은 기운으로 새로워진
미미한 사물에도 감동하는
순수한 낯빛을 띠고 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행복해 뵌다.
형편 시름도 잊고
분주한 틈에서 서로 밀치기 하던 사람들도
살갑게 대하며
마음을 나눈다.
산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우주를 알고
새 생명력을 대하고
새로운 표정에 감동하면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된다.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