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국화 필 무렵
김석환
10월, 가을이 맑다. 하지만 이제 초목이 옷을 벗고 알몸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려 한다. 황금 들녘은 추수로 비워져 가고 검푸르게 무성해진 나뭇닢들은 그 생을 산화하며 단풍이 들고 빨갛게 익은 감도 하늘 풍경을 수놓고 있다.
그런데 이제야 꽃을 피우려 하는 것도 있다. 국화이다. 나는 몇 년 새 국화의 생을 지켜보면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싯구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듯하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는 그 글에서 소쩍새 우는 봄과 국화 필 무렵의 먼 계절 간격이 느껴지고 더디 피어나는 국화의 생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시를 음미하면서 과연 미당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무렵 국화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되기까지 국화를 잘 돌보지 못했다. 자라나는 동안에는 흔한 들 쑥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때론 성가시게 무성해지는 느낌도 들어 속아 내기도 했다.
요사이 옥상 작은 화단에서 국화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작년에 피운 꽃에서 흩날린 씨앗이 여기 저기 묻혀 있다 돋아나 무성해지곤 한다. 그런데 그처럼 잡풀 대하듯 할 때는 이렇게 피어나는 국화의 기품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잡풀처럼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던 줄기가 가을이 오기까지 끈기 있게 자라나서 비로소 의젓한 줄기를 갖춘 모습을 띤다. 그렇지만 그렇게 줄기를 갖추고도 꽃망울을 맺기 까지는 다시 한참이 지나야 한다. 그 동안은 단지 몸을 더 틈실히 하면서 꽃망을을 맺을 차비를 할 뿐이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깨알 같은 꽃망울이 생긴 때는 벌써 햇살이 누그러진 가을이 되어 있고, 그 때가 되어서야 꽃망울이 조금씩 자라나 피어날 채비를 한다.
국화 필 무렵은 이미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때이다. 어찌 보면 국화는 그 차가운 이슬을 맞고 맑은 모습으로 자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내 햇살도 약해지고 찬 공기가 시릴 때 피어나는 것이, 그 차가운 이슬을 기다리기 위해 더디 자라왔는지 모른다.
느리게 자라난 줄기에서 차마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꽃송이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황홀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때 아닌 벌이 날아들어 분주해졌다. 벌 뿐 아니라 쇠파리까지 그 안의 꿀을 찾아 파고든다. 그렇게 해서 꽃은 수분을 하고 다시 다음 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는 기품과 인내의 덕이 느껴진다. 국화는 분명 그 은근한 미덕이 있어 사군자로 꼽히는 것 일게다. 그리고 은근한 멋은 자라온 생의 은근함 때문일 듯하다. 모든 향기 나는 것들은 다 은근한 것 같다.
(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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