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국 전통 정원의 진수 ‘소쇄원’
소쇄원 오곡문에서 제월당으로 향하며 보이는 언덕의 담장에는「소쇄처사양공지로 (瀟洒處士梁公之盧)」라고 송시열이 쓴 편액이 박혀 있다. 소쇄원의 문패인 샘이다. 그리고 소쇄처사는 바로 이곳의 조영자인 소쇄공 양산보를 가리킨다. 그는 15세에 부친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서 17세까지 조광조에게 3년을 채 안 배우고 현량과 1차 시험에 합격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최종 선발에서 탈락했다. 그 후 공부를 계속하다 기묘사화로 정암이 화순땅에 유배 갈 때에 따라 갔고 그가 사약을 받고 죽자 이곳 창암에 은둔할 결심을 굳히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채 소쇄원을 조영하고 처사의 삶을 살았다.
소쇄원이 위치한 주변 일대는 그윽하고 산자수명한 기운을 이루어 내는 지리적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언제나 느껴지는 그 느낌은 알맞게 넓은 토지에 살가운 개천이 흐르고 낮고 구릉진 낮은 산자락 뒤로 멀고 크게 에두르는 무등산이 청아한 느낌으로 운치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서 이 일대는 소쇄원과 더불어 독수정, 식영정, 환벽당 등 고려 말과 양산보 시대에 살았던 명망 있는 선비들의 자취가 깃들어 있고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탄생하여 가사문학의 산실로 불린다.
소쇄원은 한국의 전통정원을 대표하는 곳으로, 그 진수를 간직한 곳이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소쇄원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이 건물 때문으로 생각하고 건물의 아름다움만을 찾아보려 하기 쉽다. 하지만 소쇄원의 특별함에 비해 건물 자체는 그저 평범한 모습이다. 여기서 전체적으로 빼어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자연의 품안에 건물이 적절히 놓여 있는 모습이다. 그처럼 전통건축의 건축적 격은 장소와 알맞게 어우러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소쇄원에서도 건물은 형태로써 전체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측면보다 각각의 장소에 알맞게 놓여 있음으로써, 그 곳에 머물며 주위의정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
이 곳 분위기는 소쇄원의 이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소쇄원(瀟灑園)은 맑고 시원하며 깨끗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건물을 지은 조영정신은 대봉대(對鳳臺), 광풍각(光風閣, 제월당(霽月堂) 등의 건물 이름에서 잘 느낄 수 있다. 대봉대는 소쇄원 입구의 좁고 어두운 대나숲 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 주인이 영접하기를 기다리는 초가지붕의 한칸 정자이다. 대봉대(待鳳臺)란 손님을 봉황처럼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광풍각과 제월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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