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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8 운주사답사기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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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2500
내용

운주사 답사기

건축계 선배이신 한종언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주말에 무박 촬영을 간다는 말을 들었다. 관심이 있어 생각하다 참가해도 되는지 전화를 드렸더니 환영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회원들이 불편하게 생각할까봐 걱정이었다. 대한민국 불교 사진 연합회라는 전문 사진가들의 촬영 여행이라 나 같은 문외한이 끼면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박 여행이라 옷을 몇 겹으로 껴 입고 출발 장소로 나갔다. 다시 기온이 크게 내려가서 깜깜한 새벽에 찬 공기를 맞으며 이동할 때를 대비했다.

1040분 시청뒤 프레스센타 앞에 당도하니 먼저 온 한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미리 보아 둔 자리에 앉게 하셔서 오르며 차 안에 계신 처음 보는 회원님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보니 마음이 점차 편안해졌다.

예정했던 11시에 차가 출발하자 이 회의 회장을 맞고 계신 강승규 회장께서 인사 말씀과 일정 안내를 하셨다. 이번 촬영지는 운주사와 송광사인데 개인적으로는 전에 두어번씩 다녀온 곳이다.

통로 건너 나란이 앉은 한회장님과 잠시 예기를 하다 뒤에 앉으신 분과 엇갈리게 창가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잠을 청했다. 무박 여행에서 잠을 잘 시간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밖에 없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잠을 자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220분 안성 휴게소에 들렀을 때 올갱이 국밥을 먹었다. 예전에 무박 답사를 자주 다닐 때 춥고 배고팠던 경험을 한 후로 이런 시간에 미리 먹을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차에 올라 좌석에 앉자마자 잠을 청했다. 선잠을 자다 눈을 뜨니 차가 백양사 휴게소에 들렀다가 520분 운주사에 도착했다.

밖의 차가운 공기가 상상되어서인지 차 안에서 이동할 차비를 갖추며 잠시 머뭇거리다 앞 좌석의 강회장 등이 나가자 뒤 좌석 사람들도 눈을 질끈 감는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까지 넓은 산길을 걷듯 어둑한 산자락을 보며 걸어 들어갔다. 보름을 3일 정도 지난 날에 구름이 없어서 밤 길은 전 등 없이 걸을 만했다. 오랜만에 이런 밤길을 걷는 것이 참 좋게 느껴졌다.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는 일행이 시커먼 물체가 이동하듯 움직였다. 어두운 새벽에 사찰로 들어가는 군상의 표정이 이미 잇게 느껴져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마음은 바쁘고 깜깜하여 차비하느라 시간이 걸려 거의 다 지나간 후에 찍게 되었다. 그나마 노출을 잘 못 맞춰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니 큰 나무와 석탑이 솟아 보였다.
이번에도 사진을 찍고 가다보니 경내에 늦게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540분 운주사 경내에 당도했다. 하지만 요사체 쪽에 신발이 많은 곳을 찾으면 될 것 같았다.짐작했던 곳에 많은 신발이 놓여 있었다. 밖에 둔 트라이 포드까지 두어개 보이니 더 확실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8, 15자 정도 크기의 방 안에 17명의 일행이 사방 벽에 기대어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특이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회장이 내 소개를 하셨다. 모두가 한눈에 볼 수 있게 앉은 자세여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바닥에 앉으니 구들방이 따뜻한 온기가 살갑게 느껴졌다.

들어오면서 보이던 방 안 사진을 찍고 싶어 밖에 나오니 총무님은 그때까지 밖에 게시면서 사진 찍을 것을 보고 계신 듯 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앉았다. 내가 앉은 쪽인 출입구 입구여서 바닥이 뜨겁게 까지 느껴지지는 않는데, 안쪽에 게신 여자분들 중에는 뜨거워서 이불을 다시 깔고 앉기도 했다. 군불 땐 방에서 엉덩이를 지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모두들 마주 보며 있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돌이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온돌의 감촉을 느끼며 조용해지다 했다. 휴대폰을 쓰게 된 후로 이제는 가정에 전화를 놓지 않는 세태를 화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서거덕거리며 사진을 찍기도 하다보니 몸이 녹았다.

620분 공양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떡국에 사찰 특유의 나물 반찬이 먹음직 스럽게 놓여 있었다. 식당에서 나오니 76분이 되었다. 아직 일러 다시 방에서 몸을 녹였다. 하지만 다시 방에 들어가는 것은 촬영 준비를 하며 몸을 덥히는 시간이었다. 밖이 춥지 않으면 이리 저리 다니면서 느끼고 찍을 거리를 보곤 할 시간인데 아무래도 추운 겨울이라 활동이 여의치 않았다. 시간이 된 듯 싶어 이불을 개고 촬영을 하러 모두 밖으로 나갔다. 그 때부터는 각자 마음 내키는데로 흩어져 갔다.

나는 강회장님과 몇 분이서 전경이 보이는 공사바위로 올라가 해뜨기를 기다렸다. 해가 뜨자 탑 꼭대기가 빛을 받아 환해졌다. 산과 경내도 입체감이 생겨 한 장면 찍고 내려왔다. 산중이라 기온이 훨씬 낮은 것 같았다. 내려와 종무소에서 난로를 쬐었다. 군고구마가 난로에 올려져 있었다. 잘 익어 얇은 껍질이 벗겨진 속으로 노릇하게 익은 표면을 바라보는 동안 군침만 돌았다. 난로 쬐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언감생심 얻어먹을 욕심까지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온 민병학 선생님과 김광동 선생님이 난로가로 와서 셋이서 난로를 둘러싸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민 선생님이 먹음직스럽다고 하자 착하디 착하게 생긴 종무소 직원분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 김광동 산생님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구마를 손으로 갈라서 돌려주었다. 건내준 것을 받아 맛을 보니 금방 구운 것이 아니라 상상했던 것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바라보고있을 때가 멋진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그 곳을 나와 혼자 다니며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올때마다 경험하는 특이한 이 곳 장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운주사는 정말 특이한 곳이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천개의 탑과 천개의 불상이 놓여 있는 곳으로 전해진 곳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렇게 많은 불상이 모두 부처님 상이니 부처님이 나라라고 부를 만 하다. 그런데 불상들이 시골 마을의 이웃 어저씨처럼 모두 소박한 표정을 띠고 있다. 어찌 보면 마치 동네 어귀에 세워진 석장승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불교의 교리처럼 민중의 모습을 담은 불상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곳의 불상들은 불전 중앙에 엄숙하게 모셔진 것과 달리 운주사 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다. 바위 절벽에 기대 놓거나 위아래로 벌어진 바위틈 공간에 마치 원시 주거안의 가족이 사는 것처럼 몇 구가 모여 있기도 한다. 그렇게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하며 무작위로 놓여 있지만 그 전체로부터는 아늑하고 깊숙한 산지의 공간감에 의해 마치 속세를 벗어난 불국토라도 온 것처럼 특이한 공간감이 느껴지게 된다. 때로는 그것들이 기문 둔갑술에 따라 배치해 놓은 모습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의 절집이 지어지기 전에 이 곳에 오면 여느 사찰에 가서 대웅전에서 불상을 때하며 에불을 올리는 것과 달리 이 곳에서는 산길을 거닐 듯 하면서 부처의 군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하나 둘 볼 때마다 쌓인 느낌으로 성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때로는 천상과 지상 모든 우주로 상상이 전개 될 수 있다.

운주사 석물의 조성 연대는 확실치 않다. 그 중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최근에는 고려 때 몽고군 주둔과 관련이 있다는 논문이 발표된 일이 있다. 즉 그들이 원정하면서 기원하기 위해 우리나라 인부들을 동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도선 국사가 만들었다는 설과 순전이 민간인들의 손에 의 해 그들의 염원을 담은 기도처로 만들엇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 쨋든 이 곳은 염원하고 기도하는 장소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 것을 만들고 마음에 평안을 얻으려 햇을 것이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면 인간의 불안과 근심을 대 해결 해줄 것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운주사는 불상일망정 친근함이 있다. 민불처럼 그 땅에서 새월을 보내온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닮아있다.

이 곳은 와불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운주사 와불 부처님은 누워 계신 부처님이다. 사람들은 그 것을 와불이라 부른다. 그래서 운주사와 와불은 마치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와불은 길이가 12미터가 넘는 큰 불상이 누운 모습니다. 그 옆에는 약간 작은 와불도 있는데 성모마리아 상 같은 구도로도 보인다. 그 것은 이 곳의 제작 과정을 암시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 곳 불상들의 조성 방법은 다 그렇게 높혀진 상태로 돌을 가공해 만들고 완성 된 다음 세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와불은 아직 일으켜 세우지 않은 상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와불은 지금처럼 누운 상태로 사람들의 감동에 와 닿는다. 그리고 운주사를 다른 사찰이 되게 한다. 와불은 다른 불상들과 달리 바닥면으로 얼굴이 보임으로서 운주사의 모든 공간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하면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예전에는 그 얼굴 모습을 똑바로 보기 위해 옆의 소나무에 올라가 본 일도 있다.

종교 시설로서 사찰은 기독교의 교회와 같은 예배의 공간이다. 그래서 모든 사찰은 종교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만들어 놓았다. 예배의식에 따라 탑과 불상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사찰로서의 일정한 인상을 갖추게 된다. 지금은 운주사 사찰을 복원해 놓았지만, 그냥 불상과 탑이 널부러지듯 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사람이 많다.

와불 가까이에는 북두칠성을 본 떠서 만들었다고 하는 칠성바위도 있다. 그처럼 이 곳은 특별한 공간 감각이 있다. 이 곳은 천연의 지형 공간이 곧 사원처럼 인식된다. 민간 신앙의 의미가 결합되어 있고 십승지 같은 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순박한 얼굴을 한 마치 이웃 아저씨를 새기 듯 투박한 손길로 만든 돌장승 같은 부처님들이 절벽에 기대어 눈길을 준다. 다시 평평한 곳으로 내려와 중앙 너른 공터에 있는 탑들을 찍고 10시 운주사를 나왔다.

운주사의 깊은 장소를 빠져나와 삶 내음 나는 농촌 들녘을 바라보며 1025 불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맑은 날씨에 기온도 올라 상쾌한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개울물 소리가 낭낭하게 들렸다. 여성 회원들이 차에서 내려 나무에서 봄 느낌이 피어오르고 있다고 예기하는 말이 뒤에서 들렸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오르는 길 입구에 길 양편에 서 있는 석장승을 보았다. 가는 방향으로 오른 편에 있는 것이 남장군이고 좌측이 여장군이었다. 우측의 상원대장군은 특유의 투박한 인상이 시원시원하게 새겨져 표정에 생동감이 있어 좋아 보였다. 그것이 위치하는 곳은 전남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산 212번지이고 중요만속자료 제 11호로 되어 있었다. 현지에서 합류한 광주지회의 김영호 선생님이 이웃의 운흥사 석장승 조각 형태와 비슷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옆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 강희 58(1719)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었다.

그 곳을 보고 불회사 경내로 걸어 올라갔다. 주변의 낙엽진 겨울 숲이 깨끗하게 느껴졌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걷다보니 조금씩 자연에 동화되어지는 듯 했다. 경내에 다다르니 불회사 전경이 보였다. 사찰 뒤쪽 산세에 햇빛이 비춰 그림자 진 이쪽과 대비되게 밝게 보였다. 그처럼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에 놓인 절을 보니 그 절의 터가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길 막바지에 당도하니 우측으로 꺽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 잠시 뒤돌아보니 정갈한 길이 완만히 굽어 보여서 깊이감이 느껴진다.

입구에서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건물 속을 지나 듯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 나가며 앞쪽을 보니 대웅전 앞 건물 누하로 오르는 계단이 터널 속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입구를 지나 들어서니 너른 흙마당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 불회사의 모든 당우가 한눈에 다 바라보였다. 앞서 당도한 회원님들이 여기저기서 촬영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나는 서서히 차츰 높게 쌓아 놓은 축대를 올라가면서 처음 와 보는 그 곳의 느낌을 살피며 움직였다. 대웅전 앞에 놓인 안내판에 그 곳 내력이 적혀 있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 마라난타가 진나라로부터 불교를 전래 할 때, 백제 도읍으로 가는 길에 도갑사와 이 곳 불회사를 짓고 갔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조 22(1798)큰 화재로 불에 탄 것을 순조 8(1808)5월 다시 지었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불로 비로나자불을 봉안했다.

경내를 오가면 사진을 찍고 스케치도 하다 돌아나가는 일행의 뒤를 따라 나왔다. 나오는 때는 햇살이 좀더 퍼져 있었다. 우측을 가로막은 산등성이 너머로 햇살이 번져서 경사지에 서 있는 나무 둥치나 진한 나무 그림자 등이 어울려 생동감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낯설게 찾아온 자연의 품안에서 빛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햇살을 머금어 생명을 깨울 것 같은 맑은 기운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었다. 그런 순간은 그 냥 아무 이유 댈 것 없어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1125분 불회사를 출발했다. 광주로 가는 길에 너른 들녘이 나타났다. 겨울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마치 일 없이 소풍나온 세상 같다. 겨울 들녘, 겨울 산천, 겨울 산, 조바심도 탐욕도 없이 그냥 존재해 있다. 거두임도 없이 그냥 있는 맨 땅이 소중하고 풍요롭게 보인다.

강진이 고향이어서 이 곳 지리를 잘 아는 한회장이 옆에서 한화원 선생이 유배갈 때 지나갔던 길이라고 했다. 고양, 논산, 함평, 소록도를 거쳐 갔는데 논산부터 황토길이 이어진다고 했다. 길을 가다 창 밖으로 효자문이 보였다. 1157분 남평 드실강을 지났다. 나주에서 광주로 진입하여 1230분 김영호 지회장이 안내하는 물레방아 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차려진 조기 새끼인 황석어 찌게와 두루치기 그리고 나물 반찬 등이 풍성하게 보였다. 식탁에 깐 종이에는 시가 쓰여 있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산처럼 물처럼/ 그렇게 살다가/ 가라하네

135분 식당을 출발하여 다음 장소인 완주 송광사로 향했다. 25분 백양사 휴게소 차가 섰으나 곤히 잠든 회원들은 깨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엷게 아지랑이가 오르는 들녘과 따스한 햇살 머금은 공기 그리고 눈 쌓인 먼 선 등성이의 모습에서 복합적인 느낌이 느껴졌다.
전주로 진입하여 34분 전주역을 지날 때 문득 바라보이는 풍경 모두가 고향이인 것을 깨달았다. 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고향 내음이 났다. 26번 국도를 따라 송광사로 갔다. 앞에 전북 체육 고등학교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 하여 320분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로 만든 주차장에서 송광사 전경이 그 너머 산봉우리와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낮게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이 이전에 보았던 송광사 모습이 아니었다. 건물도 많아지고 사찰로서 배치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다. 서측에서 비추는 햇살이 갖가지 색조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통 건축 양식을 갖추지 않고 크게 지어 놓은 건물들이 섞여 있어 아쉬운 면도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 일주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 회장이 일주일 전 보아 둔 장면을 찍으며 좋지 않으냐고 해서 주변에 잇던 모두가 그 곳을 주목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부터는 각자 흩어져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일주문에서 대웅전이 보이는 곳을 찍었다. 한 컽 남아 있던 흑백 필름을 쓰고 마지막 남은 컬러 필름을 갈아 끼워 같은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안 쪽으로 들어가면서 돌아보았다. 천왕문 측면과 뒤의 범종루가 겸쳐 보이며 태양빛을 받는 모습이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 뒤로 가니 수조 가운데 목장승을 깍아 세워둔 모습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보면서 물을 마시느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뒤로 돌아가면서 우측을 보니 요사체가 암자처럼 아담하게 보였다. 시간을 의식해 뒤로 더 가지 않고 대웅전 앞에서 둘러보다 큰 산과 요사체가 겹쳐 보이는 모습이 좋아서 스케치 했다. 시간이 되어 그곳에서 나왔다. 생각했던 대로 고향인 전주에 볼 일이 있어 인사를 하고 나왔다. 출발하겠다고 한 시간에 되었지만 일행이 다 오지 않으셔서 인사를 다 못 드리고 나오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송광사 앞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가게 주인이 금방 떠났다면 다음 차는 한시간 20분 후에 온다고 했다. 난감한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차를 보고 손을 들었다. 지나차던 차가 되돌아와 태워주었다. 옆에 서 게신 아주머니와 같은 송광사 신도회 일원이었다. 시내로 가 일을 보고 터미널로 가서 550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2008. 1. 27) 김석환


운 주 사

2008. 1. 27

딴 세계로 들어갔다
천상일지 모를...

높게 쌓인 돌탑
즐비하고
투박하게 돌 새김 된 부처들이
어릴적 학교 갔다오다 마주친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계신 어른들처럼
여기저기 놓여 있다.

산이 아늑히 감싼 계곡안에서
그 탑과 부처들 사이를
하닐 없이 거닐다 보면

일상은 아늑해지고
내가 자꾸 씻겨나간다.



1월 들녘
2008. 1. 27


먼 산 위에 쌓인 눈
앞 쪽 너른 들녘에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

침묵의 세월만
마냥 흐르고 있을
농촌에
그렇게 햇살이 한나절 고이면

바람은 흥이 나서
들녘과 산봉우리를 오간다

마을 사람들이
무료함을 참다
살얼음 낀 논 가장자리에 모였다

삽으로 진흙을 갈아엎다
겨울잠 깬 황갈색 미꾸라지가
흙범벅 된 채 나왔다
멀쩡히 서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확자지껄 해진다.

그런 일이 드물게
흥분을 안길 뿐
겨울 농촌은 다시
침잠한 세월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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