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종언 건축에 관한 소고 (두개의 건물을 돌아보고)
1. 광주 민속 박물관 ---- 전통적 모티브에 바탕한 형식성과 상징성
광주 민속박물관은 한종언의 1983년 작품이다. 이 건물은 민속박물관이라는 특별한 모티브에 대한 건축가의 생각과 대처가 담겨 있다. 그 대처는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즉,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적 충족과 그에 관한 상징성이다.
건축가는 민속박물관에 대해서 전통적 모티브를 사용하였다. 그 의도는 설계 설명서에 “건물의 입면적 표현은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에 입각하여 한국의 풍토적 여건과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의식을 나타내고자 함” 이라고 쓴 내용으로도 확인 할 수 있다. 관람객이 민속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은 전시물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안의 전시유물의 성격으로부터 건축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에서 전통 건축의 이미지를 채용한 것은 민속박물관이라는 건물의 용도와 공공성에 가장 잘 부합되는 방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통건축의 이미지 뿐 아니라 구조 체계 또한 그 기둥 배열 방식 및 형식성을 띠고 있으며, 기능은 외부 이미지에 따른 형식적 틀 안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박물관은 전시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수용할 기물과 관람에 따른 용적을 갖추고 있는 시스템에 비유될 수 있는데, 건축계획상 가장 크게 고려한 부분은 사용자의 동선과 전시 공간의 배열이다. 광주 민속박물관의 프로그램은 민속을 소개하고 전시하는 일반 관람실, 특별한 주제의 기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특별 전시실, 그리고 관리, 수장 편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의 설계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의도는 일반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을 별동으로 구분한 것과 건물의 외양에 전통 이미지를 채용한 것이다. 그리고 형식화된 외관 안에서 공간을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주동(柱棟)에 민속박물관의 프로그램을 충족시키려 하였다. 형식화된 매스 안에 프로그램에 따른 전시실의 배치와 공간의 구성 그리고 관람자의 동선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외부에서 건물로 진입하여 느끼게 되는 로비의 개방성과 전시실의 관람 동선의 원만한 순환적 구성 그리고 관리시설 및 편의시설과의 관계가 고려되어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을 외부에서 진입하여 만나는 로비는 1, 2층을 오픈하고 전면을 유리로 처리하여 개방감을 갖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중앙 벽면의 어두운 톤의 청동 부조가 큰 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비 현관문 우측에는 안내실과 좌측에 기념품 판매대가 마련되어 있고, 전면에는 2층으로 휘돌아 오르는 계단이 놓여 있다. 발코니 구조로 된 2층 홀에서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로비 계단 아래 뒷쪽에는 사무공간이 중앙 복도를 따라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전시 관람은 우측으로 이동하여 캐노피 처리된 1층 출입구로부터 시작된다. 그 입구쪽은 평면상 작은 홀을 이루게 되어 있고 벽면 일부가 안쪽으로 놓여 곡면 처리되어 있다. 출입구 좌측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로비에서 바로 노출되지 않게 세심히 배려된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내부 재료도 외부처럼 벽돌로 되어 있다. 한종언은 그것을 비유해 옷을 만들 때 밖의 감이 안으로 들어와야 격이 있다고 말한다.
민속박물관의 1층 전시실로 들어가면 민속자료들을 보고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람자는 전시 유물들을 보면서 유도된 동선을 따라 움직이게 되며, 그동안 세팅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한 느낌도 들 수 있는데, 그런 점을 의식해서 평면이나 단면 계획에서 변화와 개방감을 갖도록 세심하게 처리하고 있다. 즉, 2층 바닥 일부를 오픈하여 공간의 변화와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계단에 면한 벽들은 벽돌을 사용하여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좌측의 기획 전시동은 단층으로써 상설 전시동에 비해 층고는 좀 더 높지만 건물의 전체 높이는 낮게 되어 외관에서 조화와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건물은 당초 의도한 상징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 외부 모습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외벽의 주재료는 전벽돌로 되어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 홈을 파듯 셋백 된 벽면을 만들어 붉은 벽돌을 쓰고 그 윗부분에 머릿돌처럼 돌출되도록 돌을 박아 넣어서 양식성과 장식적인 효과를 갖게 하였다. 돌출된 지붕 처마 부분은 서까래 등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사각 박스의 프레임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느낌이 드는데 그 박스 부분이 격자와 세장한 선들로 이루어져서 서까래 같은 섬세한 부재의 느낌을 띠고 있다. 그것은 보통 둥근 서까래를 만든 것에 비해 세련된 느낌을 풍긴다. 또한 건물의 모서리 부분 벽의 아래쪽을 기둥이 노출되도록 처리하여 전통 건축에서처럼 구조 형식의 느낌을 느끼도록 했는데, 그러한 섬세한 처리로 인해 품격 높은 인상을 띠게 된다.
하지만 성공적인 측면과 함께 한종언의 다른 작품과 달리 호화로운 느낌도 든다. 그렇게 격조 높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이 건물이 표방한 이미지로서 형식적 완결성에 이르기에는 미흡한 느낌이다. 즉, 전통 건축의 목재를 쓴 부재 하나하나가 진실로 전체를 이루며 통일된 감각을 낳는데 비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은 그런 느낌과 다르게 된다. 채용한 그 이미지의 인상은 확정적인데 비해 규모 및 쓰임새에서는 형식적 완결성을 갖지 못한 느낌이다. 그것은 형식적 규범성이 완벽한 전통 건축 양식과는 다른 조건과 기능을 어떤 이미지로써 수용하는데 따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의 맵시는 가까이서 부분적으로 볼 때 더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건물이 크기 때문에 전체에 대한 인상은 멀리 떨어져야 느낄 수 있는데, 그 경우 디테일이 잘 인식되지 않고, 보는 위치에 따라 크기와 비례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면에서 보면 길고 각기 다른 부가적 요소에 의해 측면에서 보이는 통일감이 완화되고 있어서 전체적인 가치를 희석시키게 된다. 정면의 돌출부 및 로비 전면 유리창은 인상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설계자가 지루한 감을 피하고 형태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로 생각되어지지만, 그로 인해 벽돌벽면의 고상한 이미지와 는 다른 느낌을 풍기게 되고, 전통 건축을 모티브로 한 요소의 인상과도 잘 부합되지 않아 보인다. 그러한 점은 근본적으로 순수 전통 건축 양식이 아니고 현대건축으로 그 이미지를 표출하는데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순수 양식을 지니지 않고 이미지를 적용하는 경우에는 기능의 조합에 따른 형태적 완결을 구할 수 없다. 형식의 규범성을 잃은 형태적 불확정성은 현대 건축이 갖는 딜레마이다.
우리 현대 건축사에서 한국성은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어 왔다. 그동안 국제화 시대에 국적 없는 문화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어 하지만 서양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성의 목소리도 있어 왔다. 우리 스스로도 지역성에 관한 가치를 담는 것을 과제로 생각해 왔지만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한 상황이며, 지금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시도도 있어 왔다. 경북궁 내의 국립 민속 박물관, 현충사, 독립 기념관 건물의 외양을 복제하거나, 공간사옥처럼 공간을 해석한 것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처럼 작가에 조형감을 재해석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이미지를 채용하여 현대식 구조를 짓는 것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철거된 광화문처럼 구조를 달리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다.
이 건물도 그러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논란으로부터 비켜 갈 수 있는 것은 전통적 이미지 복제와는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외부에 사용된 벽돌에 의한 디자인과 전통 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창작 의도로 볼 수 있다. 전통 건축의 이미지를 채용하였지만 전통 건축 이미지를 복제한 모습은 아니다. 구조와 재료 등 다양한 시도에 의해 독특한 인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 건물의 성공 여부는 그 특징적 인상에 따른 완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이미지를 모티브로 취한 순간부터 그에 따른 형식성은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평면상에서 아무리 공간을 잘 조직한다 하더라도 형식에 따른 억압된 측면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즉, 건축적 성취와 관계없이 그 형식성과 현대 건축의 괴리를 의식하게 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장인적 손길로 이루어진 고상함과 품격은 이 건물만이 가진 독창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민속박물관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니면서 기능을 해결해 나간 노력과 결실을 느낄 수 있었다.
2. 중소기업 연수원 ---- 편안함의 추구와 건축적 의미
필자가 건축에 관한 대화를 하면서 한종언 선생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편안함이다. 그는 편안함을 건축의 고유 가치와 일맥상통하게 여기고 있다. 즉, 건축주나 사용자가 건물을 짓고자하는 목적에 부응하는 가치로 보는 것이다. 이 건물은 편안함의 사고가 가장 핵심적인 설계개념이 되고 있다.
편안함은 가장 한종언다운 건축 성격을 이루게 하는 점이다. 한종언 자신의 성격에 부합되는 작품 가운데는 연수원, 클럽하우스, 휴양소 프로젝트가 많이 있다. 그 시설들은 공통적으로 쉬게 하는 장소로서 편안함의 가치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 작업들에서 한종언은 편안함을 구현하기 위해 배치 단계에서부터 자연 조건들을 살펴 조화롭게 함으로써 편안함을 갖게 한다. 요구 조건에 따른 적정하고 기능적인 공간의 배열, 그리고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 외부 공간과의 연계 등을 고려하며 편안하게 풀어낸다. 그 곳에는 기능주의적인 생각도 바탕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유형의 건축물들은 적벽돌, 지붕 등 그가 좋아하는 건축적 어휘들을 일관되게 구사하는데 그 또한 편안하게 느껴지는 요인이다.
편안함은 전통 건축의 덕목에서 받은 교훈으로도 보인다. 그는 전통 건축을 좋아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그에 관한 사진을 촬영해 왔다. 그가 촬영한 전통 건축 사진은 매우 뛰어나며, 그 사진에서 그의 안목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그가 추구하는 건축적 사고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중시하는 편암함도 그러한 전통 건축에서의 체험과 감각이 그의 건축에 반영되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종언 건축에서 편안함의 실현은 무엇보다도 쓰임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용자의 요구가 곧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건물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우선, 요구된 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설계 과정도 요구 조건에 부합되는 방안을 찾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필자가 돌아 본 중소기업 연수원은 그 가운데서도 한종언다운 건축적 성격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건물이다. 한종언이 편안함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로 노력을 쏟는 것은 평면 계획이다. 그가 생각하는 건축적 의미의 실천은 평면적인 해결이 주가 된다. 쓰임의 요구에 적절한 공간의 크기 및 방들의 규모와 위치를 정하고 타 기능과의 원만한 연계 등을 우선 고려하면서, 건축주가 원하는 전체적인 기능적 요구를 만족시키고자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는 공간을 표현적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외부 공간과의 연계와 이미지로 나타나는 편안함으로 이루어진다. 연수원은 전체 연면적이 1만평이나 되는 큰 규모이다. 이 계획에서 짓는다는 것은 1차적으로 주어진 대지 위에 요구된 시설들을 적절히 펼치는 것으로서 배치를 시작하고 있다. 각각의 기능과 규모에 따라 동을 나누어 나열하고 다시 그 각각이 원활히 조합되도록 조닝에 따라 연계시키는 과정을 밟고 있다.
연수원은 앞뒤 산에 포근히 안겨 있는 형국이다. 건물이 양팔을 벌리 듯 배치된 코너진입은 마치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듯 한 기분을 자아낸 후 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입시 언뜻 보면 앞에 바라보이는 건물이 전체인양 뒤의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규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뒤쪽으로 연이어 건물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곳곳에 중정을 두었는데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주변 자연이나 마당 등과 연계되어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는 연수생들이 수업 중 갖게 되는 심리와 행태를 그들의 입장에서 면밀히 살피고 편안함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하였다. 특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나 볕을 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그가 건축을 하면서 인간적 배려가 큼을 느낄 수 있다. 교육시설에 대한 한종언 회장 나름의 고집이 있다. 그는 “교육 내용에 맞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하지 않느냐” 고 말한다.
후면의 건물들은 별도의 측면 출입구를 통해 외부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건물을 통해 내부로 이동하는 것이 더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건물과 외부가 사용상 짜임새 있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으로, 내부와 외부가 긴밀한 관계를 갖고 반복되면서 펼쳐져 있다. 그리고 식당과 기숙사동이 축을 비켜 다른 영역으로 이루어져 교육 및 실습 영역과 구분되어 있다. 강당은 전체 인원이 모인 행사에 필요한 공간으로서 행사를 고려하여 메인플라자에 직접 면하게 하였다. 중소기업 연수원에서 작품의 질적 추구와 관심은 홀과 복도등 공용공간의 처리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로비나 홀 등은 내부공간을 오픈시켜 개방감을 갖게 하고 있는데, 전체보다는 부분을 오픈하고, 외부 공간과 시선을 연계시켜 공간의 다양함을 표현하고 있다. 복도와 만나는 계단실 전면이나 건물 모서리에서 1, 2층을 오픈하거나 홀을 만들고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도록 하여, 요소요소에 개방공간을 만듦으로써 쾌적함과 공간감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 연수원은 가볍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신경 쓴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종언 건축이 가치를 발하는 것은 실제 만들어진 공간을 의식하면서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고 있는 표현적 경향과 다른 모습으로써 건축의 질은 그렇게 공간의 다룸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디어의 기발성이 아닌 공간의 질에 대한 관심과 수법에 의해 일정한 건축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 시대의 보편적인 설계 자세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을 잘 다루어 질을 추구한 것이 그 시대 건축가들의 갖고 있던 기본적인 인식이었다. 그런데 한종언의 건축은 편안함의 가치를 더 확고히 갖고 설계에 임한 것이 주목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종언의 건축적 성향에는 시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소기업 연수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대 경제 여건과 사회 분위기에 적절히 대응한 모습일 수 있다. 당시 기업 연수원은 산업화 시대 산업 일꾼을 길러 내는 과정이었다. 국가 경제가 활발히 발전해가고 있었지만 국민 소득은 아직 높지 않았고 근검절약이 미덕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근로자에 대한 복지 의식과 처우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근검의 정신이 설계 조건의 지침처럼 놓여진 상황일 수 있었다. 경제 규모나 사회 여건으로 볼 때 당시는 지금 같이 고액의 공사비를 들여 지을 형편이 아니었다. 연수원은 검소하고 실용적인 시설이며, 이 건물은 그러한 실용적인 바탕위에서 설계된 것으로 작가는 외벽을 벽돌로 하고 싶은 생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는 종종 건축가들이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부터 과장되기 쉬운 경향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유명한 건물 가운데 시각적으로는 좋으나 내용이 불일치하여 사용자의 입장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 묻는다. 그리고 그는 거품과 거부감이 없으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건물을 짓고자 한다. 그것은 예산이 사용자가 의도한대로 합목적적으로 지출되야 한다는 윤리성의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연수원에서는 형태상에 전통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건물로서 지붕이 있는 인상이다. 그 이미지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연수원의 실용적이고 소박한 인상과 잘 맞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부 인상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지도록 했는데 그 점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지붕이다. 집이란 지붕이 씌워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는 지붕을 중시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지붕을 두어야만 건물이 잘 보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지붕의 기능이 디자인의 목적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같은 일률적 태도로 인해서 건물의 외관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단순화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자의적으로 생성되는 현대 건축에서는 형태를 디자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로 인해 전통 건축이 지니고 있던 규범적 덕목을 지닐 수 없게 되고 이미지를 창조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붕을 씌워서 편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건축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다. 건축가는 그 실제 모습이 전체와 어떻게 어울려지는지, 전체적인 균형과 비례에 적합한지 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연수원 외관은 형태적 의도가 아닌 다른 평이한 의도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건축주의 요구에 대한 현실적 인식의 반영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효율성이 더 우선시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편안함이라는 단어만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그 의도는 한종언의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 판단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실용주의와 합리성 그리고 공간적 편안함의 추구가 우선시 된 그야말로 작가적 성향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태도라는 측면을 생각한다면, 당시 사회의 단면을 함축해 나타내는 시대의 거울로 자리매김 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2월 건축가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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