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국전통건축에서의 선(線)의 미학
김 석 환(건축가)
오늘날 세계 문화는 점차 보편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 따라 최근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떠올릴 때는 각각의 고유한 특색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어쩌다 한번 외국에 나갈 때 방문하는 나라의 전통문화에 흥미와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올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한국의 미학적 특성을 말할 때 곡선의 맵시를 들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사례로는 처마곡선이나 배흘림기둥, 전통 건축의 요소들을 꼽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외에 버선코, 저고리의 소매 곡선, 백자 달 항아리의 선을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보다 외국인의 눈에 더 잘 비춰지는 듯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의 사진 작품 발표를 본 일이 있는데 그도 처마, 문살, 문고리, 버선코 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외국인인 그의 눈에 그런 요소들이 우리 전통 문화의 특징으로 보인 것이다. 어느 지역의 문화적 특색은 어느 한 분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문화적 차이를 설명할 때 우선 적용하는 것이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미학적 특징이 선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서양의 선이란 엄밀한 비례 법칙에 의해 규정된 수치의 선을 말할 때가 많은데 동양의 미학적 전통에서 선은 기의 작용에 의미를 둠으로서 선의 생명력을 강조했다. 서체가 그렇고 수묵화가 그렇다. 모두 필선의 힘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그 선은 동일한 선이 아니고 쓰는 사람의 손목에 가해진 힘에 의해 필선의 느낌과 기운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동양권에 있는 나라들 가운데도 나라별로 특색과 차이가 있다. 같은 사상적 뿌리를 갖고 있지만 각각 나라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전통건축은 한국 전통 건축처럼 같은 목구조로 되어 있지만 각각이 표출하는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같은 양식으로부터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선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그런데 그처럼 다른 차이가 생기는 것은 각기 고유한 심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바탕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전통건축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선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에 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지명도로 보아 그 건물은 한국 전통 건축미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건물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지붕의 곡선이다. 특히 범종루로부터 진입할 때 안양루 지붕선과 겹쳐 보임으로서 그 지붕선의 맵시가 더 뚜렷하게 느껴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로 딱 부러지게 잴 수 없는 것이지만 계산적으로 증명된 건축보다 더 우아하게 느껴진다.
무량수전에서는 지붕 외에도 여러가지 선의 아름다움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건축을 이루는 부재 각각이 지닌 선이다. 최순우 선생이 극찬한 배흘림기둥은 아름드리나무를 듬직한 볼륨을 느낄 수 있게 깍아 다듬어 만든 것이다. 보의 단면을 항아리를 옆에서 본 모습처럼 가공한 항아리 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요소들은 구조적 필요성보다도 보는 이의 심성에 작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다듬은 곡선도 있지만 자연 생태의 선의 멋을 살린 경우도 있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대들보는 자연 상태에서의 생김새대로 맵시 있게 사용한 예이다. 그처럼 대들보에서 자연스런 선의 멋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경우 굽은 부분을 위로 가게 함으로서 힘을 더 잘 받을 수 있게 했다. 전통건축에서 건물 모서리 지붕을 형성하는 선자 서까래는 그 자체가 공예이다. 그것은 서까래를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게 한 것인데 그처럼 여러 부재가 모여 끝이 버선코처럼 약간 들쳐지게 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경험의 솜씨가 필요하다. 그로서 입체적인 아름다음을 띠게 된다. 한국의 선은 인공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 디자인하는 의미와 다르다. 곡선은 선의 조형적 의지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결을 따라 순치된 선이다. 그래서 자연처럼 깊이 있는 멋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전통건축의 맵시는 목재를 다루는 연장과 다루는 이의 몸짓과도 관계가 있다. 전통 건축에 쓰인 부재들을 자세히 보면 짜구질 자국 등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자국은 손목으로부터 전해진 나무의 굳기와 사람의 손목의 힘이 부딪친 실재적 자취이다. 그래서 우연하고 기계적이지 않은 곡직한 선의 느낌이 된다.
우리가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원만함이다. 초연하고 덤덤함, 잘 드러나지 않는 은근함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그것은 혹은 뒷산을 닮게 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을 닮으려는 의지에는 자연의 모습처럼 원만함을 지향하는 심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만함은 두로 갖춤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수를 나타낼 때도 너댓 등의 용어를 썼다. 어느 한 가가지로 분명한 모습을 경계했다. 정확함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원만함은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두루 망라해 아우르려는 태도이다. 그것은 결국 조화로움으로 귀결될 수 있다. 사람들이 전통건축에서 곡선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떠올릴 때가 많지만 그것은 가구식 구조가 지니는 질서의 바탕에서 느껴지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로서 음양오행 사상에 입각해 두루 균형을 갖추려는 성격과 같은 맥락이 된다.
우리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은 문화적 특징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이 땅위에 삶을 살아오면서 체험되고 실천되며 형성된 것이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옷을 직접 해 입히면서 옷의 맵시를 띠게 했다. 의 복 뿐만 아니라 일산에서 쓰는 사소한 도구에도 그러한 느낌이 베어 잇다. 우리의 선에 담긴 의미에는 그처럼 깊은 문화적 힘이 베어있는 것이다. 한국 전통건축의 선은 그처럼 서로 다른 것이 조화됨으로서 깊이 있고 풍부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자연의 섭리, 또는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와 통할 수 있고 최고의 사상적 가치와 통할 수 있다. 그냥 지으면 돈과 인력이 적게 들것인데도 사람의 맵시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도록 하려 한 것이 격조 높은 삶을 추구한 문화적 전통인 것이다.
(070625 코오롱사보)
□ 필자약력
김 석 환/ 터․울건축 대표
Kim Suk Hwan
건축가 김석환은 59년생으로서 서울산업대 건축과와 서울시립대 산업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 였으며 도시건축, 광장건축을 거쳐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서울산업대학교 건축설계과 강사, 삼육의명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중이며, 일산구 건축 및 조경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서울시 종로 리모델링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1997 르 꼬르뷔제의 생애와 건축, 루이스칸 건축, 루이스 바라간 건축, 유럽각지의 건축, 이집트 건축 등을 기행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K씨주택, 곤지암주택. 분당주택, 아펜젤러기념교회 계획, 청풍헌 등이 있으며,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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