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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7 전통건축을지은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80
내용

전통건축을 지은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
건축가 김석환(.울건축 대표)


건축은 인간이 안락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위해 건축은 인위로 조절된 공간 영역을 에워싸는 행위이고 건축 기술은 그것을 실현하는 방편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건축양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석재, , 목재 등 다양한 재료와 각각에 적용된 다양한 기술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 각각이 놓인 곳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와 그 재료를 다루는 기술로서 형성되어 지역적 특성을 띠고 지속되어 오면서 보편적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양식에는 어느 지역적 풍토와 기후에 가장 적합하도록 오랜 세월 거쳐 오는 동안 터득한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건축은 주로 우리 산천에서 구하기 쉬운 목재로 이루어졌는데, 각각의 부재를 엮어서 집을 형성한다는 의미로써 가구식 구조라 부른다.

한국 전통 건축에 적용된 지혜는 무엇보다도 입지 선정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이 집짓기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터 잡음이다. 터가 좋아야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이 건강하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신중히 터를 골랐다. 그래서 풍수지리에 입각해 입지를 살피고 태양 위치와 조망을 고려해 좌향을 정하고 그 터와 집주인의 운세가 잘 맞는지 여러모로 따져 보았다. 그리고 평면 형태에 기후 조건을 감안하였다. 한국민가의 평면유형은 위도에 따른 기후 조건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남부지방은 자형이 보편적인데 비해 북쪽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열의 보존과 효율성 고려하여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자형태로 위요되게 하였고, 더 추운 지역에서는 겹집을 채택하였다.

전통건축은 짓기 과정에서도 과학적 지혜를 살펴 볼 수 있다. 실내의 과열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처마와 차양 사용하였고 맛바람을 이용하여 공기의 자연 순환이 이루어지게 했다. 해인사 장경각은 특별한 현대적 설비 장치 없이 자연 환기만으로 팔만대장경을 보존해오고 있다. 가옥에서 여름철 남동풍은 행랑채나 담에 의해 기류속도가 빨라짐으로서 기거하는 사람에게 쾌적감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건물 뒤에 심은 나무는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준다.

건축공사에서 맨 먼저 시작되는 기초는 집의 안정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기초를 놓으려면 우선 건물이 침하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초 밑 지반을 견고히 해야 한다. 그를 위해 모래 강회 등을 섞어가며 잘 다지는 강회 다짐을 한다. 그것을 입사 기초라고 하는데, 강회는 벌레가 침식하지 못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게 된다. 입사 기초가 되면 주춧돌을 바르게 올려 놓는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울 때는 그랭이질을 해서 세웠다. 그랭이질이란 기둥 밑둥을 그것이 놓이는 기초 형상대로 깍아서 밀착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하나의 기둥만을 세웠을 때에도 자립해 서 있게 된다. 한국 전통 건축은 응력 전달이 원활이 되도록 매우다양한 이음과 맞춤 방법이 구사되어 왔다. 그런데 그 부분들은 건물이 지어진 후 각 부재에 골고루 하중이 가해지면서 더 꽊 끼이게 된다.

전통건축은 재료의 특성에 적합한 구법의 발달과 섬세한 가공 조립을 통해 맵시 있고 유려한 건축을 이루어 왔다. 전통건축은 가구(架構)에서는 빈 프레임의 추상적 감각과 대청을 올려다 볼 때 보이는 모습처럼 많은 부재가 치밀히 얽힌 물질성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공포나 보머리 장식등에서는 섬세한 느낌도 들지만 기계 생산품처럼 매끈한 정교함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정교한 구법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공예미가 느껴지는 멋스런 형상과 질박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사용하는 도구와 관계가 있다. 치목과 이음 맞춤 등의 가공에 짜구질, 대패질 등을 할 때의 장인의 손맛이 베어 두터운 맛을 지니게 된다.

전통 건축은 재료 사용에 있어서도 체험적 지혜를 발휘하였다. 지붕속과 벽바름 등에 쓰인 흙은 습도조절능력과 축열 능력이 있어 실내 온도의 변동 폭을 작게 한다. 그리고 흙은 증발 냉각효과가 있어서 건축물의 젖은 표면에서 수분이 대기중으로 증발하며 열이 손실 되어 얻어지는 냉각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흙은 단열효과가 우수한데 그 성질을 이용해서 지붕의 강한 태양복사열 차단했다. 서까래 위에 까는 판자를 개판(開板)이라 하고 그 위로 기와 사이에 얄매흙이라는 황토를 채운다. 규모가 큰 건물에서는 그 흙의 깊이가 두자 이상 깊어지기도 하는데, 그 흙은 지붕의 곡면을 형성할 뿐 아니라 건물이 안정되도록 하중을 가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그리고 창문에 바르는 한지로 된 창호지는 얇은 종이장이지만 높은 보온 성능을 지닐 뿐 아니라 쾌적한 실내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축은 그것이 놓이는 장소 및 중력 현상과 관계 된다. 그리고 건축적 감각의 원천은 경이로움에 있다. 건축은 자연과 관계 맺는 일이며 하나의 경탄스러움은 그로부터 생겨나는 감각이다.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한 전통 건축은 자연 질서의 감각이 함양된다.

20세게 들어 근대 건축이 보편적 건축 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후, 사람들은 그것이 표출하는 건조함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근대 건축은 그것이 놓인 도시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현대의 도시 문제 또한 심각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의 발생은 서양의 합리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대두된 근대 건축이, 인간의 삶을 사회적 구조의 연장선에서 기계적으로 규정하려 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과학문명은 지구 환경을 척박하게 한 결과를 불러 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위적 장치에 의존하면서 자연의 순환 원리에 어긋나는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에서 자연은 인간이 다루어 활용하는 자원으로 여긴다. 그러나 동양에서 자연은 그것은 태초부터 있은 것이고 우리에게 던져진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태도를 견지해온 동양 사상에 입각한 전통건축은 여전한 생명력을 유지해가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처럼 척박해가고 도시 환경의 문제가 대두된 시기에 우리는 전통 건축을 만들면서 가졌던 생각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바를 느끼게 된다.
(2007. 4. 27 한국과학기술인협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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