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ENU

Essay

제목

07 건축문화수상작다시보기 수졸당(守拙堂 )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00
내용

건축문화수상작다시보기(건축문화신문)수졸당 守拙堂

1. 동도서기
이 집의 건축주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현 문화재 청장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한옥일 것 같은 생각을 갖은 때가 있다. 그 책 여기저기서 한옥을 예찬하고 있는 반면 20세기 현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문한 때 안주인에게 한옥으로 지으려는 생각은 갖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동도서기(東道西器)라고 했다. 기억해보니 오래전 건축주와 답사를 한 때도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현대에 집을 지으며 과거의 전통 건축 방식을 고집할 필요 없이 그 정신을 담아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현대에 서구에서 유입된 기술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야 새삼 말할 것이 없지만, 기능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건축에 도()의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건축에서는 그러한 의미를 부여할만한 점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건축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삶이 태도와 건축에 부여한 정신적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거주하는 가옥에 대해 사치스럽지 않은 적절함을 추구하는 청빈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집에서 그 의미는 구조적 양상은 다르지만 그러한 삶의 태도로서 마음가짐에 맞는 집을 지으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택은 1992. 12. 12 -24일에 동숭동 인공갤러리에서 있은 4,3 그룹이 출범을 알리는 이 시대 우리의 건축전시의 출품작이다. 그런데 건축주도 그 행사에서 예술과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는데, 그를 통해 그 그룹과의 건축에 대한 사유를 공유하는 공감대를 엿볼 수 있다. 어쩌면 그 전시에 표방한 생각이 이 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설계자는 후에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건축적 방법을 정립한 계기였다고 말을 했다. 여기에 적용된 생각을 빈자의 미학이라는 말로 표방하고 있는데 설계자가 이 설계에 임했던 생각이 하나의 태도로서 정립되어진 것처럼 보인다.

2. 구상의 핵심으로서의 마당
이 집의 특징은 설계자가 마당을 스케치한 그림에 잘 드러나 있다. 설계자가 마당에 대해 각별이 중시하고 있음은 그가 그에 관해 쓴 여러 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집이 지어진 시기 4,3 그룹 맴버들이 비어 있음, 비움 등의 말로 표현을 달리하면서 각자의 작업에 도입하고 있는 등, 그들이 지향한 한국성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여기서 마당의 가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사유의 공간으로서 감각적 가치를 지니게 하려 한 것과 내부 공간과의 관계로 작용케 한 것이다. 먼저 그 자체의 감각을 높이기 위해 동선과 구도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즉 도로로부터 이 집에 진입해서 주 마당에 이르기까지, 골목과 같은 대문과 문간마당 등 다양한 감각적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내담에 의해 출입의 번잡함을 차단하는 영역적 구분에 의해 안마당에 사유의 평온함이 깃들게 하고자 했다.
또한 여기서 마당은 평면상의 내부 공간과의 관계에서도 핵심적 역할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지 경계 안 전체가 다 담장으로 둘러친 큰 그릇 안에 놓여진 물체와 여백의 관계로 존재하면서 마당과 건물이 같은 개념하에 하나로 짜여진 모습이다. 평면은 마당과의 관계에 의해 조직되어 있는데, 마당에 면해 방과 연결된 늘여진 동선을 이동하며 마당을 내다보며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마당과의 시선의 소통은 이 집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진 듯 하다. 이 집의 1층 거실에서 마당 쪽으로 전개되는 풍경은 이 집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안방으로 가는 통로나 안방에서도 마당을 보는 느낌이 좋다. 2층에서도 대문 위쪽 통로로 모서리 방으로 건너가면서 트인 맑은 시선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모든 기운은 비워진 마당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 하다.

3. 사유와 표정
설계자가 이 집에 대해 쓴 글 가운데 사유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앞에서의 정신적 추구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이 집에 대해 설정한 건축적 추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사유의 공간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여려울 것이다. 다만 물질적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근원적 섭리에 대해 생각하고 관조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 대상이 지닌 표정이나 감각적 감응이 아닌, 그냥 비어 있는 분위기일 것 같다.
이 집은 검박한 재료로 이루어졌지만 구석구석 정확한 치수와 균형 감각, 윤기처럼 느껴지는 완성도 등 설계자가 들인 정성과 공()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집에 부여된 주제가 무겁기에 그러한 완성도는 여기서 부차적 가치로 여겨진다. 이 집은 전통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현대적 수법으로 묘사되어 있는 듯하다. 선비가 살았던 삶의 거처를 모델 삼아 풀어나간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구조적 차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달라지는 점이 나타나 있다. 전통건축의 마당은 건물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서 더 비워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표정 없는 흙마당과 함께 사유의 감각이 느껴진다.
설계자가 마당의 구상을 표현한 스케치에서는 전통가옥에서 느낀 것과 유사한 감각이 느껴진다. 앞의 집과 경계부분의 담이 높게 그려져 있어서 더욱 빈 그릇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그림보다 낮은 담장 너머로 표정이 드러난다. 그 뿐 아니라 소품 같은 역할로 느껴지는 한식 담장이나 목재로 된 차양 프레임 등, 이 집 자신의 이미지로부터 느낌이 가미된다. 그로서 비워진 마당의 개념적 추구와 달리 표정을 띠고 다가오는 점이 있다.

4. 삶의 얼굴
건축의 설계 과정이 건축주의 처지와 삶을 고려해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집의 특징은 건축주의 삶의 색깔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은 건축주의 취향에 잘 맞게 지어진 집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집의 현재 상황에서 볼 때 당면한 과제도 안고 있다. 늘어난 살림이 비움의 공간을 차지하고 지닌 가치만큼 제대로 자리를 찾지 못한채 놓인 듯한 그림이나 소품 등을 보면서 그 당면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늘 작품으로 보여지려 애쓰지 않고 여느 집처럼 현실적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이 진솔하게 와 닿기도 했다.
이 집에서 반가운 것은 설계된 집의 구조와 주인의 삶의 일체감이었다. 큰 주제가 담긴 이 집을 방문하면서 그 점에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미술사학자인 주인의 경륜대로 벽면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림이나 글씨 액자 등이 걸려 있고, 애착이 베어나는 소품들이 마당을 관조하는 사이 언 듯 감상할 수 있게 놓여 있다. 크지 않지만 마당과 소통하는 방들이 일상에서 나름대로 살가움을 줄 것 같다. 공간의 효율을 최대로 살린 주방에는 살림의 정성과 세월의 두께가 드러나는 생활 도구들이 빼곡히 차 있는데, 주방을 중시하는 요새의 대중적 취향과 비교하면 정말 소박함이 느껴진다. 협소할망정 불평하지 않고 알뜰히 영위하는 삶과의 일체성이 느껴지는 점에서 작품이 아닌 집으로서 삶의 살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당에 한 그루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감을 따지 않고 두었는지 꼭지가 다 남아 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나무 밑에 날아들자, 안주인은 7마리가 함께 다녔는데 요새는 감을 다 먹고 없어서인지 저놈만 온다고 했다. 그 말에서 새삼, 집은 설계된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주인의 삶의 풍경으로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의 의미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2.11김석환)

0
0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