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매화 필 무렵
나는 2003년 10월 이 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1966년도에 지어진 구옥을 융자와 세를 안고 사서 수리해 쓰고 있다. 당시 살 엄두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단독 특유의 체취와 위치가 마음에 들어 빛을 내 구입했다. 요새 짓는 건물들의 편리한 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그런 건물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이런 구옥은 작은 마당이라도 있고 건물과 담장 사이에 시골집 헛간 같은 공간도 마련할 수 있어서 마땅히 두기 어려운 물건들을 숨기듯 정리 할 수도 있다.
내가 이 곳을 알게 된 것은 전에 부근에 작업을 할 때이다. 내가 서초동에서 이 곳 주택가로 이전 한 것은 어려운 시절에 대비할 요량이었다. 내가 사무실을 옮길 무렵 다른 재산을 처분한 것이 있어서 작업실을 겸해 쓸 수 있는 집을 구하고자 할 때였다. 나는 새 밀레니엄이 될 무렵 IMF 후휴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했던 일들이 무산되고, 경제적 압박이 컷지만 내 고집대로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어렵더라도 견디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찾은 집은 낡지만 싸고, 주차장 없고, 뜰이 있는 구옥을 찾았다. 소개소 사람을 따라 몇 곳을 다니면서도 이 집은 지나치며 볼 뿐 물어볼 생각을 안했었다. 위치는 마음에 들지만, 주택가로서 입지가 좋은 편이어서 찾는 것보다 비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개하시는 분과 함께 지나가다 이 집도 나왔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큰 이웃집들에 비해 이 집만 규모가 아주 작았다. 그래도 찾던 것보다 부담이 크고 심하게 퇴락해 보여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계약을 했다. 잘만 고치면 꽤 괜찮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인데 지하층 부분도 앞 대지가 훨씬 낮아서 지상층이나 다름없었다. 오래 된 집하지만 찬찬히 보니 재미있게 될 것 같았다.
도시인들이 기본적으로 차를 두고 편리하게 쓰려는 것이지만, 평소 늘 그 차량 틈에서 버적거리듯 하는 것이 편안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세대로 구성된 다세대 주택은 주차대수를 충족하느라 사람이 출입하는 부분에 늘 차가 서 있게 된다. 현대 건축에서 당연시 하는 주차장을 둔 건축은 그렇게 건조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전통 건축을 답사하면서 좋게 느낀 가장 큰 이유가 평온함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우선 차가 없는 상태 같은, 탈 문명적 상황이기 때문일 것 같았다. 오래전에 지어진 이 집은 비록 낡고 주차장도 없지만 대문을 열고 담장으로 둘러쳐진 외부 공간을 들어설 때 그 평온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차는 노상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막상 계약을 하고 수리를 하려고 보니 건물 상태가 생각보다 휠씬 열악했다. 지었을 때 설치한 난방 파이프는 다 막혀서 방치된 상태이고 석유난로를 때고 있었다. 내부의 벽의 위치나 공간 구성도 좋지 않고 벽과 천정에 쓰인 후로링 등 여러 가지 마감재도 덕지덕지 된 상태였다. 2층은 지붕 여기저기서 누수가 거의 쓰지 않는 상태였고 옥상 난간은 금방 부스러질 듯 녹이 슬어 있었다. 주인은 고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아온 듯 했다. 그렇게 험한 상태지만 옥상에서의 위치가 좋아 보였고 1층 외벽에 쓰인 돌은 좋은 질감을 갖고 있었다. 건물과 담장 사이의 공간도 정리하면 차분해질 것 같았다.
새로 짓는게 더 낫겠다는 친구들 조언을 뒤로 하고 마침내 고칠 결심을 하고 업체를 선정해 공사 계약을 하였다. 견적 금액은 예상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내부 벽체 위치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바닥과 벽 천정, 내외부 창호등을 모두 새로 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각층에 독립적으로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지붕으로 오르는 계단도 교체해 새로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지붕을 마당처럼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기대되었다.
서초동에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이 곳으로 올 때 마음이 퍽 심난 했다. 설계사무실의 번잡한 살림과 모형 등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걱정이었다. 옮긴 후에도 낡은 건물이라 외벽의 균열보수나 옥상 방수 등 이사 후에도 계속해서 손 볼일이 많았다. 2004년에는 외벽 수리를 많이 하였고 2005년에는 지붕 방수를 손보기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지붕에 화단을 몇 개 더 만들고 목백일홍, 수국 등을 심었다. 이사 한 해 마당 한쪽에 제법 큰 감나무를 옮겨 심어서 그에 대한 기대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자라면서 마당에 그늘을 만들고 감이 열린 풍경도 선사했다. 그런 요소가 정서적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여기 생활하면서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곳은 옥상이다. 옮길 결심을 하게 된 이유도 옥상에서 펼쳐지는 조망이 좋은 것이 큰 계기였다. 르 꼬르뷔제는 옥상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의 하나로 꼽았는데, 방수와 배수문제만 잘 해결하면 실제로 마당처럼 잘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문 앞마당에서 지붕으로 오르는 계단과 노대는 건축적 산책로가 되어 일을 하다 운동 삼아 오르곤 한다. 2005년 대한민국건축제에 참가한 한 학생이 내 사무실을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허락한 적이 있는데 와서 돌아보더니 “다 있네요“ 라고 말했다. 근대 건축적 요소들이 적용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지붕의 평온함과 편안한 시선이 마음에 들어 매화 한그루를 심고 거기 있는 작은 서재 이름을 일매헌(一梅軒)이라 붙였다. 여기로 사무실을 이전하던 해 옥상에 네모난 화단 하나를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서초동의 한 농원에 가서 언 땅에 있던 매화를 사다 심었다. 나무 심는 철이 아니어서 겨우내 염려하며 살펴보았다. 그래서 겨울을 난 첫 봄에는 꽃이 필 기대보다 살아나기만을 바랐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다행히 꽃이 맺혔다. 그때는 단지 살아난 것이 고마웠다. 그러나 허약한 꽃은 바람에 흩날리듯 금새 지고 말았다.
다음해에는 생사 걱정은 하지 않고 꽃이 얼마나 맺힐까 궁금했다. 다시 기다리던 꽃을 피웠지만 꽃망울이 부실해 보였다. 꽃이 필 무렵 갑자기 기온이 높아지다 다시 급강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웃자란 꽃눈이 냉해를 입었을 것 같았다. 또한 꽃 필 무렵 땅이 너무 건조해서 그리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작년에 다시 꽃이 피었다. 그 때는 꽃이 피기까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땅이 녹은 후에는 미리 물도 주고 했다. 그런 정성에 보답한 것인지 꽃눈이 튼튼하게 자라서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갔다. 그것이 대견해서 사진을 찍어 두고 메일로 보내 주기도 했는데, 어떤 이는 이처럼 고혹적인 매화를 본 일이 없다고 답신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몇몇 문인들과 조촐히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었다. 매화가 피어나서 많은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기는 작년이 처음이다. 그 때 인근 식당에서 식사 후 간 뒤풀이 술집에 늦게 도착한 여성 한분이 합류하자 흥이 난 이선배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나에게 매화 한 가지만 꺽어다 주라고 부탁했다. 술을 먹다 다시 올라가 작은 가지 3개를 골라서 꺽어다 주었다. 그랬더니 맥주잔에 꽃닢 하나씩을 떨어뜨리고 건배를 제의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선물로 주기도 하며 매화 잔치를 벌였다.
이 곳으로 옮긴 후에도 신통한 일이 별로 없었다. 논의 된 것도 실제 이루어지는 일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시절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에 옥상에 화단을 꾸민 것이 위로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생활영역에 단지 한 그루의 매화를 두겠다는 생각으로 심었는데 몇 해가 지나며 표정을 살피는 동안 이제 더 친근한 존재가 되어 있다. 작년에는 그 매화를 정겹게 대하려고 그 주변에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매화 가까이에 난로를 두고 그 주위에 산길을 가다 돌 그루터기에 앉듯이 나무토막을 받쳐서 만든 의자를 빙 둘러 놓았다. 요새는 나무 주변에 자생적인 생태계도 조성 되어져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것들이 있다.
매화를 심고 지켜보는 동안 이듬해 꽃을 피우기까지 나름대로 오래전부터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눈은 봄이 올 무렵부터 자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봄이 올 때 한번에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낙엽이 진 후 맨몸 상태가 되고부터 바로 다음 생을 준비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잎이 진 마른 거지에서 눈에 띠게 꽃눈이 맺히듯 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싸래기처럼 도톰해지다 겨울 문턱에서는 쌀톨만큼 커진다. 그렇게 꽃방울이 만들어지는 것은 꽃을 피워내는 과정이라기보다, 그 꽃눈과 잎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치 어린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어미새가 알을 품듯이 나무는 그 생명의 근간이 얼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 안에서 보호막 같은 물질을 분비하여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봄에도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는 가운데서 항상 생의 의지와 끈을 놓지 않고 주의를 기울인다. 때 이르게 날씨가 따뜻해져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추우면 다시 오그라든다.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 일찍 커져서 오무라들지 못하고 동해를 입기도 한다.
내가 옥상에 매화를 심은지 4년째 나는 봄이다. 다시 매화 꽃망울이 오르고 있다. 올해는 일찍 온 봄에 매화 가지마다 꽃눈이 때 이르게 커지고 있다. 오늘은 꽃 눈 몇 개가 유난히 더 커지며 안쪽의 꽃잎 살을 드러내 보였다. 나는 봄이 올 무렵 매화 꽃망울이 커 가면 그 소중한 존재에 내 마음이 먼저 상기되어진다. 이 시절을 어떻게 매화와 함께 보낼지, 그리고 그 소중한 존재를 어떻게 귀히 대접하고 꽃이 지게 할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함께 감상할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이 겨우내 기다려 꽃을 피우는 것에 걸 맞는 대접이라 여긴다.
매화는 어느 기간 피다 갈 것이다. 꽃이 활짝 피어났을 때는 질 때의 슬픔도 떠올려진다. 아무도 보지 않은 채 고운 자태로 홀로 피다 갈 것 같은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매화 필 무렵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인사로 매화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대부분 그냥 흘려듣지만 매화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무작정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시절은 쉬 지나간다. 삼라만상이 다 무상하다는 말처럼 조금 후면 그 아쉬움도 잊게 된다.
(2007. 2. 25 김석환)
一梅軒
04. 2. 16
김석환
매화 꽃향기를 그리워 한 이의
치기 어린 손길로
엄동설한에
서울 집 옥상에
옮겨 심은 설중매 한 그루
그 날 후로
매화는
매일매일 그의
눈길을 받았다
매화는
누군가의 기다림에 답하려
차가운 겨울 햇살이지만
꽃눈에 따사로움을 더 머금으려고
얼굴을 내밀다
어느 날
시베리아에서 불어 온
찬바람을 맞고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뒷마당 얼음도 녹아 난
햇살이 좋은 나절
조금씩 부풀어 올랐던 꽃망울을
남 몰래 티웠다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