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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6 소나무기행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632
내용

소나무 기행


억지로 집을 나서서 목적지에 당도하고 나면 정말 오기 잘했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많기에 졸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번은 소나무 여행에 처음 참가하는 날이라 긴장되기도 했다. 솔바람 통신을 보고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시에 도착해 차에 오르니 먼저 와 계신 분들이 앉아 계셨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약간은 서먹함을 느끼며 무난해 뵈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에 앉으신 조봉양 선생님께서 서먹함을 씻으려는 듯 먼저 인사를 건네 주셨다. 그분도 처음이라고 했다.

소나무 기행에서 처음 만난 의암송
115분 장수 IC로 들어가서 19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20분쯤 후에 장수면사무소에 도착해서 그 영내에 있는 의암송을 보았다. 의암송은 논개가 의절한 곳인 남강 의암(義岩)에서 따온 말이다. 그래서 주논개 소나무라고도 부른다. 의암송은 밑동이 울퉁불퉁 용틀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것은 생명체로서 거친 풍상에 견디며 자신을 꿋꿋이 지키는 과정에서 생긴 모습인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정말 논개의 의연한 삶이 서린 듯 보였다. 소나무 여행에서 첫 대면한 나무인 의암송의 느낌이 퍽 좋았다. 이 모임의 답사 대상은 대개 연륜이 오래된 큰 소나무들이다. 그런 소나무는 일반적인 소나무 수종과는 다른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의암송을 보고 난 일행은 장수면 내에 있는 논개고을 식당으로 가서 12찬 정식을 먹었다. 반찬으로는 그 지역에서 나는 맛있는 나물반찬이 많이 나왔다. 150, 식당을 나와 천년송을 보기 위해 지리산 안으로 들어갔다. 지리산 국립공원 뱀사골 관리소 앞 주차장에 내려 뱀사골 매표소를 통해 계곡 옆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길 양옆의 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이룬 나지막히 경사진 숲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거기서부터 천년송을 오가며 일행을 점차 태워 주기로 했으나 나는 끝까지 걸어서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지리산 와운재의 천년송
산길을 혼자 걷다 보니 평소 유심히 보지 않았던 구름의 흘러감이나 개울소리 등, 본래 자연의 성품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차 안에서 들은 와운재라는 말이 풍기는 정경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걸어갔다. 그 길로 가면 부운재도 있다는데 그것은 흔한 느낌이 드는 데 비해 와운재라는 이름에서는 신선한 언어적 느낌이 들었다. 뜻밖에 마주친 산중 가게를 지나 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길이 좌측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나왔다. 그 다리가 걸쳐진 위로는 뱀사골 계곡이고, 와운골은 다리를 건너 이어진 길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 오르막길에서 와운골 쪽 산마루 위로 흰 구름이 누운 듯 머물러 있었다. 한적한 산길, 주변 산자락, 하늘이 함께 그림처럼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거기서 10분쯤 더 걸어 들어가 와운리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 사시는 듯한 할아버지가, 아까부터 한꺼번에 몰려온 낮선 일행의 분주한 움직임을 뒤쪽에서 바라보고 계셨다.
천년송은 산비탈 경사지에 서 있어서 그 주변이 평평하지는 않았지만, 위쪽의 할아버지 소나무로 갈 수 있게 판자로 깔아 놓은 길까지 넓게 뻗은 줄기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이 그 길에 앉아 천년송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이었지만 하늘로 솟구쳐서 주변에 보이는 지리산 산세보다 더 큰 기운을 내뿜으며 주변을 다 아우를 듯 서 있었다.
우리는 산에서 자란 나무들을 자연 자체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큰 소나무가 그렇게 서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생명체로서 험한 위기와 풍상을 견디어 내려는 의지의 소산일지도 모르며, 주변의 다른 나무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세월 이상을 살아온 나무들은 하나의 생물 이상의 존재감을 띠게 되는 것이고, 이곳저곳에 있는 소나무가 서로 다른 모습을 띠는 것은 각기 다른 생의 터전과 생존과정에서 생겨난 얼굴일 것 같았다.
430분경 천년송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 날 숙제는 다 한 셈이다. 남은 시간에 기대할 것은 맛있는 저녁식사와 그 이후의 시간이다. 거기서 식당까지는 멀지 않아서 20분쯤 후에 식당에 도착했으나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준비가 다 되어 있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부산에서 오신 사진가 장국현 선생님이 갖고 온 사과를 나누어 주었다. 일행은 그 사이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낀 듯 반씩 쪼개어 옆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조금 후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상마다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620,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덕산 쪽으로 가는 길가의 가옥 곳곳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방을 정한 다음 전영우 선생의 소나무 강의와 조연환 전산림청장의 강연, 이동희 선생의 가야금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영우 선생님은 몽골과 러시아를 다녀오시면서 그쪽 소나무를 답사한 내용으로 강의하셨다. 말미에는 로마 쪽 소나무도 곁들여 보여주셨다. 강의를 들은 후 일행은 야외 캠프파이어장으로 이동했다. 일행이 그런 숙박지에서 내심 기대하는 것은 저녁 이후의, 예상하지 못한 낭만적인 분위기일 것 같았다.

나무만큼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거기서 먼저 조연환 전산림청장의 강연을 들었다. 나무는 자기 근본자리를 옮기거나 버리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생을 마감한다면서, 나무만큼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라며, 나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닮은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성현들은 여러 모로 소나무를 닮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어서 가야금 연주가 이동희 선생이 천년송을 연주했다. 이번 소나무 기행은 소나무를 보고, 소나무에 대해 시를 읊고 소나무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소나무에 대해 강의 하는, 소나무 예찬의 연속이었다. 연주를 듣는 사이 한쪽에서는 장작불을 피우고 막걸리와 두부를 상차림하고 있었다. 첫 곡이 끝나자 일행이 앵콜을 합창했고 청에 못 이겨 연주가 이어졌다. 일행은 청중이 되어 밤하늘 아래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가야금 특유의 가냘프고 예민한 선율이 밤공기를 가르며 각자의 마음에 흘러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모두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행은 장작불 쪽으로 이동하여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장작이 타서 알불이 쌓여질 쯤 은박지에 싼 감자를 넣어 두었다. 넣은 감자가 구워지기까지 몇 분이 호출(?)되면서 이야기와 노래가 이어졌다. 소나무를 보기 위해 각자 집을 떠나 왔지만, 여행에 참가한 유대감에 의해 모두가 참여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만큼 낭만적인 분위기도 고조되어 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모닥불이 사그라지듯, 사람들도 서서히 흩어질 마음의 채비를 갖췄다. 그래도 밤을 하얗게 새워도 좋을 만큼 열정이 가득해 보이는 사람들은 남아서 다음 행로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1030분쯤 하나둘씩 그곳을 떠나 각자 정해진 숙소로 내려갔다.

스스로 서서 자라온 품을 만들고 있는 마천면 소나무
아침을 먹고 940분경 숙소를 출발하여 마지막 남은 마천면의 소나무를 보러 갔다. 내려가는 차창 밖으로 막 시작된 깨끗한 가을 날씨가 느껴졌다. 들녘에선 얼마 전 고개를 내민 벼가 연노란색으로 변해 가는 중이었다. 자연은 거스를 수 없이 운행되며 사물을 변화시킨다. 시선을 올려다보니 멀리 지리산 정상 부근의 산자락이 구름에 쌓여 신령스런 느낌을 자아냈다.
1020, 버스가 임천강을 건너는 긴 다리 입구에 도착해 일행을 내려 주었다. 전영우 선생이 다리 위에서 소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방향을 알려주어, 그쪽을 향해 난 길을 걸어갔다. 앞서 걷다 보니 뒤에 오던 차가 옆으로 지나쳐 갔다. 조금 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바로 올라가야 될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뒤에 오던 사람이 차로 간 사람에게 전화를 거니 곧바로 직진해서 오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계속 갔으나 점차 목적지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불안하였다. 가늠되는 곳은 바로 위인데 길은 빙빙 둘러가고 있었다. 간사가 앞사람과 연락을 하더니 그래도 그 길이 맞는다고 했다. 가는 길 주변 풍경은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걸어가던 풍경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마을에서 기다리던 일행을 만났다. 순박한 정이 배인 마을 어귀를 지나 조금 높은 위치에서 다시 들녘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에 가기까지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내기도 했는데 느린 길과 평화로워 보이는 다랭이 논 풍경에 기분이 맑아졌다. 산길을 제법 올라가니 마침내 아래쪽 우측으로 소나무의 무성한 윗부분이 보였다. 길가의 큰 바위에 올라가 그 쪽을 내려다보니 한눈에 상서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까이 내려가니 먼저 도착한 몇 분이 편안한 얼굴로 그 분위기를 느끼고 계셨다.
소나무는 스스로 서서 자라온 품을 만들고 있었다. 너르게 펼쳐진 가지가 옆으로 멀리 퍼져 나가서 그늘을 만들며 그 소나무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너른 지반이 있고 건물의 몸체 같은 줄기가 있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와 솔잎이 지붕처럼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건축적인 느낌이 들었다. 흔히 이런 곳에는 선조들이 정자를 지어 놓곤 한다. 하지만 여기는 소나무 주변의 넉넉히 닦인 공터가 소나무를 더 빼어나 보이게 해서 정자보다 훨씬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앞쪽 절벽 밑으로 시야가 훤히 트여 있어서 우리가 걸어온 임천강과 그 뒤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산세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보였다.
펼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살랑 바람이 트여 나가고, 살아 있는 솔내음이 풍겨났다. 일행은 밑동에 귀를 대며 소나무의 울림을 듣기도 하고 그늘에서 소나무의 정겨움을 느끼며 그 고상한 존재와 너른 시선을 음미하고 있었다. 가기까지는 덤덤하지만 막상 그곳에 당도하면 모두가 떠나고 싶지 않아 해서 인솔자가 몇 번이나 채근했다. 대상지에 도착해서는 좀더 음미하려는 미련 때문에 발길이 쉽게 돌려지지 않는 것이다. 1140분에 소나무를 떠나 내려가 기다리던 버스를 탔다.
우리가 예약한 식당은 함양 상림 숲 바로 앞에 있었다. 점심 메뉴는 생선구이 쌈밥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전영우 선생이 이번 여행 내내 좋은 먹거리가 풍성할 거라고 예고한 대로 푸짐한 식사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인공으로 조림했다고 하는 상림 숲을 보러 갔다. 바로 앞이어서 각자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소나무를 보러 갈 때와 달리 그냥 소풍가는 듯한 걸음이었다. 소나무가 아닌 떡갈나무 숲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숲 가운데 공터에 잔디가 깔려 있는 공원 같은 분위기여서 인근 고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듯, 여기저기 가족들이 편하게 쉬고 있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소나무 전체에 관한 관념적인 것이고 이번엔 몇 그루의 큰 소나무를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인 6시쯤 서울에 도착했다. 일행은 차 안에서 여정을 마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자의 마음에 아쉬움이 일고 있을 듯했다. 그때 정희정 기자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했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거라며, 적시에 아쉬움을 달래는 말을 해서 일행의 마음을 삭였다. 차가 한남동 단대 앞에 섰다. 내린 사람은 나와 다른 한 사람뿐이었다. 차에서 바삐 내리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별의 아쉬움을 단번에 놓게 되기도 했다. 다시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다소 생경한 곳에서 귀갓길을 잡았다.
2006.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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