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올해의 서울사람 시민상 건축부문 대상작 비평기사 (강남교보사옥)
강남 교보사옥이 올해의 서울사람 시민상 건축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이 건물은 마리오보타가 기본 설계를 하고 창조 건축에서 실시 설계, 그리고 대우에서 시공을 담당했는데 보타가 국내에 상주해 있지 못한 터라 창립자와 실시 설계자에게 레터를 주고받으며 진행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작년에 고인이 되신, 교보의 창립자가 직접 나서서 마리오 보타를 건축가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 분은 특별한 건축적 선호와 관심을 갖고 계셨던 듯 한데, 광화문 사옥도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던 시저펠리에게 맡겼다. 그 작가들을 선호한 동기는 그들의 작품에 평소 고인이 흙으로 빗은 재질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석기질 타일은 천연소재로 가공되어 오랫동안 외부에 노출되어도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친밀감을 띠는 면이 있다. 여기서 외부에 사용된 재료는 외부로 두께 30mm의 타일이지만 질감과 외부로 드러난 배열에서 벽돌을 쌓은 것처럼 느껴진다. 보통 외벽에 벽돌을 사용한 건물은 5층이하의 저층 건물일 뿐 고층 빌딩에 그러한 재질감을 살린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만약 사용이 원활하다면 고층 건물에 많이 쓰이는 금속과 유리 소재와 다른 따스하고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은 고층이면서 벽돌을 쌓아 마감한 그 자체로 대중에게 특별한 건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듯 하다.
보타의 건축이 세계 건축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부터인데, 당시는 세계적으로 근대건축의 건조함에 대한 반성으로 그 대안을 모색하면서, 소위 포스트 모던이 확산되던 시기이다. 보타의 건축에 대한 인상은 모던함과 단순한 매스의 힘, 벽돌의 재질감을 살린 특유의 섬세함과 친근함으로 특징 지울 수 있는데, 그러한 작품 성향은 르 꼬르뷔제와 칸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그가 살아온 지역의 토착적 감각이 복합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 건축에서 그의 작품이 평가되는 것도 그가 그가 살아온 스위스 티치노 지방의 토착적 건축의 감각을 자신만의 건축으로 잘 살려 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작업과정에서 발휘하는 투철한 장인 정신도 높게 평가받게 하는 요인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건물 자체뿐 아니라 내부 마감이나 가구 심지어 자신이 설계한 건물안에 운영되는 식당의 그릇과 수저까지도 디자인 할 때가 있다.
이 건물을 방문하며 좋게 느껴지는 점은 그러한 건축가의 감각이 반영되어, 시공의 충실도에 의해 적절히 선택된 재료의 맛이 살려지고 있고, 보타 특유의 토탈 디자인의 효과를 느낄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 특히 로비에 들어설 때 보이는 내부 마감과 안내 데스크 등에서 그런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으며, 기준층의 엘레베이타 홀에서도 단아한 공간감과 건축의 질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지상의 내부 곳곳에서 천창과 매스사이로 난 자연 채광에 따른 건강한 효과가 느껴진다. 외부 형태에서는 더욱 보타의 건축 감각을 확인 할 수 있다. 통일된 이미지의 완성도를 보이는 특유의 형태감각과 재질감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가면서 그를 세계적 건축가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대하면서 그로부터 표출되는 감각이 어쩐지 진정한 건축적 힘과 다른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몇 가지 나열해 보았다.
첫째 장소성의 측면이다. 도시 건축에서는 대지가 갖는 잠재력을 살려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별 건축물은 도시적 관계속에서 내장된 기능의 가치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도시적 맥락에 부합되면서 건강함과 활력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가 도시 건축의 일차적 성공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을 기능블럭으로 나누면 문구매장으로 쓰이는 지하2층 일부와 그 이하에 주차장을 두고, 지하 일층에 교보서적 매장을 두고 있으며 지상층은 오피스 블록으로 되어 있다.
교보센타는 개방된 대형 서적 공간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필자도 이용객의 입장에서 가로를 지나가다 잠시 짬을 내어 서적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하의 대형의 서점 공간은 비록 썬큰 출입구에 면한 오픈 스페이스를 갖고 있긴 하지만 폐쇄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가로보행에서 건물 내부 공간까지 브리지화 된 진입 동선이 길어 접근이 불리하고 개방감이 감소되고 있다. 1층에서의 좁은 코아 위치는 외부 출입구의 동선과 부딧친다.
둘째 매스의 느낌이다. 이 건물 설계의 진행과정에서 작업한 보타의 스케치들을 보면 많은 변화가 있어 보인다. 그 만큼 설계변경이 많아, 심지어 지하 골조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서 설계가 변경되어 철거하고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지 사이에 구입하지 못한 필지가 섬처럼 끼워 있어 큰 제약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외양적 작품성과 기능적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심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설계 진행중에 보타가 마련한 여러 안의 스케치 가운데는 지금처럼 분절된 것과 단일 매스로 된 것 등 여러 형태가 있다. 그 중에는 볼륨감이 크고 원형창 등의 부가적 조형요소가 조화되어 보타 특유의 건축적 감각을 잘 살려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안도 있었다. 그에 비해 실현된 현재의 안은 평범하고 밋밋한 매스감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건물의 형태적 조형성은 로비 같은 개방공간과 사무실 블록의 한 면을 창이 없이 매시브하게 처리하여 생기는 대비와 매스의 볼륨감, 그 외에 외벽 바깥에 만든 브라인드 빔과 두꺼운 벽의 개구부 주위에서 생기는 부분적 볼륨감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전에 보타 건축에서 느낄 수 있던 가장 성공적인 조형감각을 충족시키고 있지는 못하다고 본다. 현재의 매스 분절 효과는 채광과 환기에 도움을 주지만, 실제로는 도시 건축에서 밀집된 이웃 건물과의 사잇공간처럼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삭막한 느낌도 있게 된다. 그리고 4층 매스사이로 보이는 녹지는 가로 보행자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비춰지지만 실제로 그 주변에 나가 쉴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남북측면에 분절되어 보여지는 매스감은 내부공간과 무관하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셋째 디테일 측면이다. 창 외부에 브리즈 소레이유 같은 부라인드 빔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벽실내에 투사되는 직사광선을 조절하는 기능적 필요에 의해서 설치했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볼륨감 있는 벽면 효과롸 고층매스의 수직적 요소에 대비되는 수평선의 조형요소를 얻기 위한 목적이 더 커 보일 뿐, 내부 공간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건물을 방문하여 그 브라인드 빔이 실제로 실내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는데, 물론 자연 채광의 효과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실내는 낯에도 전등을 모두 켜고 있고 창마다 커튼을 사용하고 있어서 부라인드 자체만에 의한 빛의 조절이라는 의미가 상당히 약해 보였다. 또 그에 의해 조망의 시선이 일정부분 가려지게 되고, 부라인드 빔 안쪽의 P.C의 콘크리트면이 그대로 노출되어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장치에 의해 근무자로 하여금 사무실과 창너머로 느껴지는 완충공간의 그윽한 분위기도 함께 느껴지게 된다고 보았다.
이 건물에서는 건축가의 건축감각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외벽마감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건축가를 선정할 때의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이미지를 선호했기 때문에, 그 충족을 위해 P.C제작과 설치가 마치 장인의 손길을 빌리듯 더 중요한 공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서, 실제 현장을 자주 찾을 수 없는 보타의 건축가적 역할이 먼나라 특정 대지위에 지어지는 개별적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빗어내기 보다, 자신의 건축에 보편적 어휘로 구사되는 이미지를, 마치 외국의 유명 의상디자이너 옷처럼 브랜드로 수출하는 인상을 갖게 했다. 그래서 건축가가 작품 자체에 주어진 과제 해결에 의한 건축적 성취보다 건축가가 즐겨 구사하는 어휘의 재생산만이 되고 만 결과가 아닌지 의문이었다.
칸과 미스의 건축에서는 진실로 위대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그 힘은 진리처럼 본질에서 생성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보타의 건축에서 보이는 건강함도 바로 그러한 원초적 속성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장식적으로 사용된 피막에 의한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설계한 건물중, 주택같은 비교적 작은 건물에서는 재료 자체로서 형성되어 구조와 피막이라는 이중적 문제가 나타나지 않아 건강하게 느껴지지만, 고층 건물일수록 그것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보타의 건축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건물에서는 브랜드와 개개 건축의 창작정신의 구현이라는 건축 작품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0406 서울건축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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