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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3.02 이종호와의 대담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656
내용
2003년도 한국건축가 협회 아천상 수상자 이종호 선생과의 대담

일시 : 오후 8시 50분부터 9시 30(한국건축가협회 2003년도 정기총회 직후)
장소 : LG아트센타 지하 1층 커피숖

김석환 : 요새도 많이 바쁘신 듯 합니다. 엊그제 사무실에 전화하니까 고창에 가셨다고 하던데,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일이 잘 되어 가나 보죠?

이종호 : 예, 도시를 매만지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김석환 : 잘되셨군요. 계속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시게 되는 듯 합니다. 아천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종호 : 감사합니다. 아천상은 공간에 계시던 故 아천 김경환 선생님이 은퇴하면서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퇴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작고하셨습니다. 이 상은 아까 시상식장에서 심사위원장이 말씀하셨던 데로 한국성을 살린 작품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상의 취지로도 특히 이 상을 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석환 : 박수근 화백의 미술은 우리 근대 미술사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일 것입니다. 그런 작가의 미술관을 설계하면서 부담을 갖게 되지는 않으셨는지요?

이종호 : 부담은 없었습니다. 설계란 게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를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 때마다 시간적 제약과 관계를 맺게 되고 매번 새로 주어지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미술관 설계에서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김석환 : 그 동안 선생님이 작품 발표했을 때 하신 말들을 살펴보면, 선생님의 건축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아무래도 장소성일 것 같습니다.

이종호 : 장소성이 아니고 그냥 장소입니다. 장소는 호흡이 긴 것입니다. 공간은 사람이 배제된 추상적인 느낌을 띠는데, 장소의 느낌은 그것과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장소는 공간에서 더 나아간 용어입니다. 장소는 긴 호흡 동안 만나질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김석환 : 바른손 센타를 지은지 10년쯤 지났습니다. 그 때도 작품을 설명하면서 장소를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장소에 대해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오신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좀더 명확해지셨는지요?

이종호 : 그 때 바른손센타에서 한 작업은 사실 시퀀실 스페이스 개념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까 말한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소에 대한 생각은 그리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좀더 문장으로 정리할 필요도 있겠지만,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소는 경험하는 사람의 내면에 충격이 일어나서 자리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석환 : 선생님의 생각이 좀 더 명료해진 느낌이 듭니다. 이 작품에서는 의도하신 대로되셨는지요?

이종호 : 이 건물은 내 마음의 준비보다 서둘러 준공했습니다. 그리고 양구군청과 선양위원회의 의지가 작용해 빨리 오픈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생경스런 느낌이 듭니다. 사계절은 기다려 보아야 했습니다. 새 재료 때문이 아니고 몇 년은 작동된 후의 장소로 만나질 느낌을 생각했는데, 생각 한데로 안되고 손때가 묻기전 개방되었습니다. 느낌을 기다리려고 건축잡지에 발표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지에 보도되자 건축 잡지사에서 작품을 주지 않았다고 항의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보셨겠지만 조금 세월의 때가 묻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년이나 혹은 3년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작동된 다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사람들 마음에 어떻게 느껴질까? 찌꺼기들은 어떻게 남을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건축은 예정된 장소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오랜 시간 후의 느낌을 체험하려면 나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습니다(웃음).

김석환 : 의욕이 강한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오래 사실 것 같습니다. 사용한 외벽재료에서 박수근 그림의 독특한 질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계단 유리탑이나 입구 포치등에서 이른바 건축가들이 작품을 한다며 솜씨를 구사하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것은 박수근 미술에서 풍기는 소박하고 질박한 느낌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종호 : 기본 덩어리와 콘트라스트가 필요했습니다. 일반인들은 박수근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 쭈그린 할머니나 아이 업은 소녀등 만을 떠올리며 그의 작품 세계를 연상합니다. 그런데 선생의 전체 작품을 보면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의 자녀를 위해 그린 그림 동화책이나 글 등을 통해 폭넓게 알고 나면, 그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약동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작가에 대한 대중의 규정은 약속된 규정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본마음을 밝혀내고 내가 받은 느낌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 미술관의 인상은 내가 소화한 박수근 선생님의 작품의 성격과, 터가 갖고 있는 힘, 그리고 나의 의지가 함께 어우러져 표출됐을 것입니다.
나는 그의 그림세계가 건축 설계의 동기가 될 수는 있어도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근은 멋진 인생을 산 사례입니다. 그의 얼굴 표정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과슈로 그린 그림, 투명으로 그린 그림, 선홍색의 색깔 그림 그리고 제목 등을 보면 그의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내면 세계가 느껴집니다.

김석환 : 몇일전 양구로 박수근 미술관을 가 보았을 때, 그 곳에 전시된 박수근 선생님의 유품 가운데 피카소 작품집 등 현대 서양미술에 대한 책들을 보고, 박수근 선생님이 세계 미술에 폭넓은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이룩해 가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한국현대미술사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식되는 것이 단지 천품을 타고났다거나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며 각고의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수근 선생님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화강석 질감의 이미지를 건물에 나타내려 하면서, 돌을 고르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겠습니다.

이종호 : 아시다시피 화강석의 질감은 석영, 운모, 장석의 비율과 입자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그의 그림에서 표출된 느낌에 맞는 돌을 고르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박수근 선생님의 생가터인 이 미술관을 세우는 지역이 강원도여서, 우선 강원도석을 쓰려고 석산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포천의 한 석산에서 의도하는 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문방식으로 깨뜨려 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박수근 선생님 그림의 마티에르 특성을 공개했던 아드님(박성남 : 화가, 외국 체재중)이, 선생이 바로 옆에 항상 놓고 계셨던 그 돌이라 했습니다.

김석환 : 사람들이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박수근 미술의 전체를 대할 것 같은 기대를 갖을 것입니다. 박수근 선생님의 그림이 많은 개인 소장자에게 분산되어 있어 물론 소장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저도 그 곳에 가 보았을 때 유화의 진품이 걸려 있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박수근 미술을 만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전시공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증축에 대한 고려도 되어 있습니까?

이종호 : 한 기자의 글󰡒유화한 점 없는 미술관󰡓이란 헤드라인이 그런 인식을 퍼뜨리게 되었었죠. 하지만 유럽에서 피카소 미술관은 바르셀로나, 파리 등 세곳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이 나름대로 특징이 다 있습니다. 특색 있게 운영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은 기념관적 성격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도 명칭을 기념미술관으로 하자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수근 선생 정도의 작가라면 미술관이 몇 개 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석환 : 사실 과거의 성곽 등은 처음부터 장소를 의식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사람들이 함께한 생활과 세월에 의해 의미가 두터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또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문호의 집은 그 자체로 장소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경우 장소의 의미는 건축적 고려와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까? 만약 장소 구현에 기여하도록 시설을 다루다 보면 자칫 모뉴멘탈한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종호 :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면에서 볼 때 건축가의 일이 덧없는 일입니다. 잘난체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러나 내가 하는 작업의 의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좋은 장소로 바꿀 수 있는 동기부여 같은 것입니다. 기회를 높이거나 출발선을 부여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간을 길게 갖고 의미가 생성되는 조건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김석환 : 오늘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이 시간 이후에 또 볼일이 있으시다고 들어서 그만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종호 : 내가 너무 시간을 편히 갖게 해 드리지 못한 듯하여 미안합니다.

김석환 : 아닙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하십시오.

이종호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03. 3 LG아트센타 건축가 협회 총회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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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후기
이종호 선생을 만날 때 받는 인상은 늘 바쁜 느낌이다. 그만큼 계속해서 작품에 열중해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그런 선생과는 가끔 행사에서 스치듯 만났다. 그 때마다 선생께 요즘 건축에 대해 갖고 계신 생각을 한두마디 물어 보곤 했는데, 짧은 시간인데도 그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두마디 말하곤 했다.
이종호 선생은 그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그런 그가 건축대중에게 가장 부각된 것은 바른손센타를 발표한 후였다고 생각된다. 그 보다 내가 선생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홍천에 작은 교회를 지었을 때였다. 나는 그 작품에서 젊은 열정과, 젊은이의 마음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신선한 시각이 느껴졌었다.
선생은 나보다 나이가 보금 많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그런 대작을 발표하였다는 것이 부러움도 있었다. 그 후 선생이 방목 미술관 설계에 당선 되었을때는 유명해진 상태로 강연이나 세미나에 많이 참여하고 있었던 때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 몇몇 유망 건축가들이 한국 전통 건축을 답사하면서 공통적으로, 어떤 자신들의 건축적 개념들을 이끌어내고 있던 인상이었다. 내가 이종호 선생을 우연히 만났을 때, 물어본 것은 그 들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어, 말을 붙이기가 좀 더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속마음에는 그들 모두가 굳히 전통건축을 예로 든 발상이 얼마나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처음 그에게 물음을 던진 것은 약 5년전쯤이다. 이종호 선생이 방목박물관 현상설계에 당선 되었다는 소식을 건축 잡지에서 보았었는데,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던차에 선생과 우연히 만나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조금 사정이 있었는데 이제 곧 완성 될거라고 했다. 내가 그 때 선생에게 물어본 말은󰡒요새 건축적 정리가 많이 되셨습니까?󰡓였다. 그 때 선생의 말이,󰡒내가 너무 적은 나이에 많은 일을 해왔잖아요?󰡓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느꼈다. 작가들이 바쁜 작품활동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생각을 미처 다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고민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짧은 순간에 인사를 나누며 한 말로서는 꽤 진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후에도 선생의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이번 대담의 임무가 주어졌다. 우선 그 곳을 가 보아야 했다. 대담자로서 그 건물에 데해 예기를 나누기 위해 마땅히 가 보아야 할 일이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미술관을 찾는 것 자체가 설레였다. 그러나 나는 그 곳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차편을 정확히 아리 못했다. 어쩼든 시외버스를 타고 가려고 생각했다. 나는 향수가 느껴지는 시외버스 여행의 묘미를 기대하였다. 2월 19일 서울 상봉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홍천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양구행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중간에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날 오후, 양구에 가는 도중부터 눈발이 내렸다. 계속해서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양구에 늦게 당도했다. 마음이 급해져 바로 택시를 타고 미술관 입구에 내렸다. 그 때도 계속해 눈발이 날리고 어둑해져서 밝을 때 돌아보는 느낌과 다를 것 같았다.
이 터는 박수근 선생의 생가터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 곳을 올 때 논 밭을 가로 질러 오면서 성안을 들어오는 분위기이다. 어프로치와 건물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순환 루트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선생이 장소성의 연장으로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선생과 모양성 예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박수근 미술관 형태에서 성이 연상되었다.
미술관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전시 공간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시를 위해 지은 건물이 장소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은 공간의 쓰임을 위해 지어지지만, 형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의도하건 아니건 어떤 형태를 갖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보여지는 형태와 전시공간의 취급은 어떤 상태인가 하는 관심이 생겼다. 여기서는 박수근 미술을 다 음미 하도록 하기에는 전시공간이 너무 부족할 뿐 아니라, 전체 규모내의 기능 배분상으로도 전시실의 비중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실의 평면 형태가 굴곡이 많고 출입구등이 여러 곳이어서 전시실의 효율성이 다소 떨어져 보인다. 또 전시실의 높이는 작품 크기에 비해 너무 높아 보이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장소의 상징체를 만드는 것에 치우친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이 미술관에서 건축의 조형적 작품으로서의 의욕이 강해 보이는 것은 작가가 이 미술관의 상징적 기능을 크게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정도 규모에서 건물외에, 그러한 시설들을 도입하는 것은 낭비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소를 만드는데 치중하다 보니 건축은 없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징성이 미술관 본연의 건축적 성공으로 연결되는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거기에 대하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박수근 미술에서 소박함만을 찾으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품에서 작가의 체취와 일체된 느낌을 찾기는 어려 웠다. 박수근 작품이 작가의 생존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듯이, 이 시대가 부자가 된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소박한 정신을 담아내었으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된 박수근 선생께 이 건물이 맘에 드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래도 그의 생각과 어땔을까가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어쩼든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화가의 작품과 인상을 갖게 하는 질료, 동선의 흐름, 기억, 지형과 장소에 잇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시공간의 부족, 과도하다는 인상도 느꼈다.
이번 대담은, 평소 그를 만나던 것과 달리 공식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역시 바쁜 스케줄로 짜여 있었다. 그런 상대방에게 시간을 길게 내 달라고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축가 협회 행사 후로 시간 약속을 하였다.
나는 나의 질문,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개념이 작가의 건축적 성과를 모두 규정하고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로 하지 않은 수많은 뒤척이는 생각과, 작가만의 감성이 모두 쌓여 이룩되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건물을 사용하거나 찾아오며 대하는 모두로부터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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