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국전통건축의 미학적 특성과 그 유형에 관한 연구
삼육의명대학
건축설계학과 겸임교수
김석환
목 차
1. 머릿말
2. 한국전통건축미의 인식 요소
1) 건물과 구조
2) 배치와 나열
3) 입지
3. 한국전통건축미의 인식적 특성
1) 건축과 주변 사물의 관계성
2) 자연요소의 외적 확산과 건물의 균형
3) 자연요소의 내적 수렴과 건물로 둘러쌓인 마당의 감각
4. 한국전통건축미의 표출 유형
1) 숭고미
2) 애조미
3) 적조미
4) 후박미
5) 서정미
6) 재질과 물성
5. 결론
1. 머릿말
일반적으로 건축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건물 자체에 한정되는데 비해, 한국전통건축의 이미지는 주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또 건축 스스로도 자연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태를 취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자유스런 형태는 그것이 형태적 의도라기 보다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양건축이 대체적으로 형태적 윤곽을 강조되는데 반해 한국전통건축은 오히려 건축 자체가 띠는 구축적 감각을 순치시킨다. 그래서 한국전통건축은 양식성을 띠고는 있지만, 그것이 엄정한 비례체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단지 일정한 건축방식으로 표출되는 의미가 더 크다. 즉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ㄱ,ㄴ,ㄷ자등 다양한 평면형태를 취한다. 건축 서양건축에 비해 형상적 명료성이 적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만물은 변화하며 고정되지 않는다는 노자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며 또한 획일적인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민족의 민족적 정서와도 상통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 가락이나 다른 전통문화에서도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건축적으로도 주변을 관조하는 루와 정자건축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려는 의식이 발달한 것은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전통건축은 도면만으로 그 실제 모습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실제 현장에 가 보아야 자연현상이 어우러진 실존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모든 건축이 다 그러한 속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지만 특히 한국전통건축은 주변 요소가 느낌에 작용하는 영향이 강하다. 그리고 건축 자체가 갖는 질서와 함께 자연과의 관계에 의한 다양한 감각이 한국건축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전통건축의 인식적 형성요소
1) 건물과 구조
건축은 외부 기후로부터 기후를 조절할 수 있는 내부공간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려면 외력에 찌부러지지 않고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구조적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건축구조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게 되며 그 질서를 반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치와 같은 중력의 법칙에 따른 구조질서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변천된 건축 양식은 바로 구조 원리가 충실히 반영된 것이다.
서양건축사는 주로 구조 양식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약 2000년 동안 고전양식에서부터, 로마네스크, 비잔틴, 사라센, 고딕, 신고전주의, 바로크, 낭만과 절충주의까지 다양한 양식이 차례로 유행을 이루었다. 그에 비해 한국전통건축의 구조 양식은 같은 시간 동안 거의 일정한 수법으로 일관해 왔다.
구조적 방법에는 일체식구조, 가구식구조, 돔 구조, 트러스 구조 등으로 구분 할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은 그 중 목조 가구식 구조이다. 그 가구식 구조의 원리는 기둥과 보 등으로 경간을 이루는 힘살을 짜고 그에 지탱해 벽면과 지붕 등 피막을 입히는 원리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조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목재가 많이 나서 용이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통건축은 개별 건물 자체가 갖는 형태적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초가지붕, 기와지붕으로 쉽게 구분 짓는 것처럼 개별적 개성보다 일정한 유형으로 읽혀진다. 한국전통건축의 인식 바탕에는 가구식 구조의 구조적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다.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러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실제 생활하는 가옥에서 마루와 방으로 대별되는 가구식 구조의 특성에 의한 열림과 닫힘의 가변성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배치와 나열
① 배치에 의한 영역과 마당의 생성
한국 전통 건축은 외벽을 기후에 따라 자유롭게 개폐 조절하면서 건축과 자연과의 관계를 돈독히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통건축은 건물 내부에서의 기능적 가변성은 크지 않았다. 기능적으로 뚜렷한 내부공간의 기능 유형을 갖고 있지 않다. 건축적 쓰임은 내부의 형성 그 자체로 인식한 듯 보인다. 그래서 전통 건축의 기능적 충족은 채와 채의 나열과 군집에 의해 충족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전통건축의 창작 의도는 배치에서 발휘된다. 특정 건축의 기능적 충족은 대지 위에 영역을 나열하며 수평적으로 펼쳐졌다. 양반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마치 별개의 집처럼 중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건축이 대지를 넓게 사용하며 수평으로 기능을 전개한 것은 건축 구조상 대부분 단층으로 지어 공간의 수직적 확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물의 나열은 군집을 이루며 어떤 유형을 이룬다. 그래서 향교나 서원 등의 건축은 일정한 배치 규범을 이룬다.
그리고 건물을 나열하는 가운데 건물과 건물사이에 형성되는 외부공간인 마당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마당은 한국건축의 중요한 요소이다. 마당은 고유의 영역성을 띠게 되고 그로 인해 사적인 분위기를 발하게 된다. 마당은 영역성을 갖는다. 영역은 외부공간을 건축화 한 결과로서 각 영역에 들어서면 공간적 볼륨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각 영역은 마당을 둘러싸는 건물과 담으로 형성되며 독자의 세계를 갖고 바깥과의 대비된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또 비워짐으로 인식되는 영역은 정적이며 그 조용함이 방 내부로 전해진다. 그리고 영역의 개방과 폐쇄의 질서는 전통건축의 가구식 구조에서 구조적 질서와 벽에 의한 공간의 가변성이 생기는 것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마당은 건물 각자의 능률보다 각 영역의 개성과 자연과의 교감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② 배치에 작용한 배경사상과 나열의 유형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작용된 사상은 고대의 샤머니즘으로부터 유교, 불교, 도교, 성리학이라 불리는 신유학 등 다양하다. 현대에 비해 고대에는 사람들의 삶에 자연현상이 훨씬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자연현상에 대해서 종교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전통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에 제사지내던 성황당이나 당산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자연신앙은 땅에 삶의 뿌리를 둔 농경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면 재앙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도 생겨났다.
삼국시대의 이전이 문화적 특성은 고구려시대 분묘건축에서 볼 수 있다. 그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 등 그림에서 음양오행사상과 같은 그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 후 불교와 같은 좀 더 고등종교가 유입되어 영향을 끼쳤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건축에는 질서적 표출이 두드러진다. 인도 석굴사원은 석굴을 파는 어려움 속에서도 지상에 짓는 건물과 같은 도식성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진리의 완결된 이미지를 도식성으로 나타내려 하려 하였다. 도식적인 탑을 건립한 정신과 같다.
도식성은 권위, 위엄 등을 상징한다. 그러한 도식성은 현세 통치자의 권위 표출에도 적용되었다. 고대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도식적 질서를 한 가장 큰 의의는 위엄을 띠게 하려는 것이다. 건축의 도식적 질서성은 세계 도처의 모든 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중국의 궁궐건축은 매우 강력한 도식적 질서를 갖추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유교사상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전통건축에서는 궁궐이나 사찰건축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전통건축은 도식적 구성뿐 아니라 자유로운 배치를 보여주는 사례 또한 많다. 우선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배경사상으로서 도가사상을 들 수 있다. 도가에서는 모든 만물을 변화태로 보고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세력은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계층이 부각되었다. 조선에서 성리학을 바탕으로 꽃피운 문화에는 그들에 의한 인문학적 세련됨이 있다. 세계를 이와 기의 결합에 의해 생성 발전하는 것으로 해석한 성리학에서는 도식성보다 고대처럼 다시 자연의 감각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 고대와 같은 신화적 해석은 사라졌다. 고대에서 자연은 곧 신의 영역으로 간주 된 반면 성리학에서 자연은 이미 조건지워진 세계로서 규정된다. 그리고 그 자연의 의미를 건축과 대응시키려 하였다. 조선시대 건축에서는 그러한 사상적 영향으로 점차 자연사물과 감각적으로 균형을 추구하였다.
태극 도형에는 음(陰)과 양(陽), 이(理)와 기(氣) 같은 양면성이 하나로 함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도형이다. 그러한 태극 미학은 소박하고 작은 것, 거칠지만 두터운 맛, 대담한 생략과 빈 여백을 아름답게 여긴다. 고려의 청자는 화려함의 극치인데 비해, 조선의 백자는 소박 담백한 멋을 보여준다. 만대루에 쓰인 부재도 자연상태의 형상 그대로 담백한 맛을 풍긴다. 그리고 세월을 머금어 고풍스럽게 변한 목재의 무늬 결은 더 친근한 멋을 느끼게 한다.
3) 입지
좋은 터를 고른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 안에서 위치 선정을 통해 인간의 삶의 환경에 득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좋은 터는 바람이 멎고 따뜻하며 풍광과 전망이 좋고 적당히 건조하여 인간의 신체적 정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다. 풍수지리 사상은 좋은 터의 조건을 정형화한 것으로서 그 본질적 의미는 좋은 터에 위치하여 터의 이로움을 얻고자 함이다. 지표상에 나 있는 길의 궤적은 자연의 험한 지형을 피해 평탄하고 밝은 곳에 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이동에서 신체적 편리를 발견한 흔적이다. 한국전통건축은 자연환경 가운데 입지를 잘 선정함으로서 건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되게 하려 했다. 좋은 풍광을 찾아 그 풍광에 균형을 이루게 하는 노력이 깃들여져 아름답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터의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고 생각된다.
3. 한국전통건축미의 인식적 특성
1) 건축과 주변 사물의 관계성
자연속의 한 장소는 그 자체보다 사람이 머무르며 누리게 됨으로서 가치가 찾아진다. 금강산은 자연 풍광으로서도 으뜸이지만,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기에 그 곳이 인간에 의해 누려지는 장소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 장소는 주변 정취를 수렴하는 힘을 갖게 된다.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인식은 건물뿐 아니라 주변과 함께 어우러져 인식된다. 그리고 건축에 대한 감각은 배경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자연적인 이미지와 인공의 이미지의 상호 보완 및 호혜기능을 갖는다. 섬세함과 억샘,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음양의 조화, 큰 전체 안에서 상호 관계로 이루어진 섬세함, 크고 굳셈, 유연함, 아기자기함 같은 여러 가지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과의 관계에 의해 생명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2) 자연요소의 외적 확산과 건물의 균형
한국전통건축에서 멋이 획득되는 것은 건축 자체의 형태만이 아닌 주변 자연과의 균형 여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균형 여하에 따라 건축은 시정의 아름다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은일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시원스런 눈 멋을 접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인위로 다듬어진 건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에 대한 대비의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중 병산서원의 멋은 유별난데 그것은 건물과 배경이 투명한 관계 맺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산서원의 멋이 최대로 느껴지는 것은 입교당에서 넘겨 보이는 만대루와 병산과의 중첩된 이미지가 적정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다.
만대루의 지붕은 팔작지붕 형태이지만, 길이가 길어 그 형태가 아닌 단순한 맞배지붕처럼 보이는데, 지붕의 적당한 무게감은 트인 기둥 간 사이와 허와 실의 좋은 균형 감각을 느끼게 한다.
병산서원의 멋은 건물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병산을 끼고 휘돌아 친 강물의 물줄기와 수묵화의 여백처럼 여유롭게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단아한 자태의 고고한 노송 몇 그루가 원숙한 수묵화의 필치처럼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학덕을 닦는 서원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자연요소의 내적 수렴과 건물로 둘러쌓인 마당의 감각
영선암의 마당은 건물로 둘러쳐 외부세계와 분리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상태이다. 빈 아랫마당에 면해 놓인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맑고 정갈한 분위기의 힘이 느껴진다. 자연의 힘을 응축해서 고이게 하는 것 같은 미묘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곳의 느낌은 좀 더 치밀한 의도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위란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여기서는 인위의 바탕위에서도 손길을 가하지 않은 것처럼 유연하게 느껴진다. 영선암의 배치는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치고 앉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자연스런 흐름을 유도하듯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전면 루밑의 지면은 마당보다 몇 단 낮고 고랑처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아랫마당이 더 투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응진전과 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생동감 있는 동선의 흐름과 분위기를 이룬다.
영선암은 시작도 끝도 없는 비완결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닫힌 구성이지만 어딘가 항시 열려져 있어서 외부와 끊임없는 호흡이 일어나고 숨결이 유지되고 있다. 항상 조용함이 유지되는 마당은 적당한 짜여짐이 있어서 바깥에서 들어오면 정제된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이 있고, 다시 밖과의 관계로 생기는 힘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마당의 넓이에 비례하여 짜여짐의 힘이 지녀질 만큼의 적당한 높이로 되어 있다. 그 반면 각각의 건물의 구조는 특별히 눈에 띠어지지 않는다. 다포식인 응진전과 민도리 형식을 한 요사체의 디테일 변화는 통일 속의 다채로움으로만 작용되고 있다.
영선암은 음양의 원리처럼 안과 밖으로 서로 다르게 나뉜 두 세계의 상호 작용에 의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기의 현상이 만나는 태극 구조와 같다. 마당의 영역은 둘러친 건물에 의해 경계가 한정된다. 그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계너머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경계는 밖과의 대비를 이루고 외부와 구분된 안의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켜를 지나 밖의 세계와 하나의 숨결로 이어져 있다. 공간과 시선은 틀 안에 갇히지 않고 건물 틈에 놓여진 누마루를 타고 그 너머의 무한 공간과 호흡한다. 건물과 하늘, 그리고 건물 틈새를 언 듯 비켜 가는 시선, 햇살과 공기가 함께 어우러져 생기는 느낌이 느껴진다.
영선암은 건축의 질서틀 안에서 조용히 햇살이 닿아 생기는 갖가지 정감 있는 표정, 사물 본연의생명력과 숭고함, 맑고 순수한 느낌이 함께 한다. 경사지형을 알맞게 다듬어 이루어진 배치는 그 느낌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당은 지형을 따라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레벨상의 위계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입구에서 보면 아랫마당은 지형의 고저차를 이루는 반쯤에 걸쳐 있어서 항상 다음 단계로의 흐름이 예비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로 둘러싸인 부분의 반쯤이 화단으로 되어 있어 자연지형과 같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룬다. 머무를 곳의 정제된 분위기와 경사진 자연지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루밑 계단을 오를 때, 불전 계단을 오를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입구 통로의 짧은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어스름한 통로의 감각으로부터 좀더 다가갔을 때의 표정이 한 발짜욱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며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4. 한국전통 건축미의 표출 유형
1) 숭고미
전통건축의 유형 하나는 세계 각지의 고전 건축이 그렇듯이 위엄과 권위를 표방하는 힘이다. 중국은 주나라 때부터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 앞에 조정(朝廷). 뒤에 시장을 둔다는(좌조우사면조후시) 원칙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했을 때도 이를 따랐음인지 궁 동쪽에는 종묘를 두고 서쪽에는 사직단을 세웠다. 그리고 궁궐의 위엄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궁궐 정전에 닿으려면 3개의 문을 통과하게 하였다. 즉 경복궁의 광화문, 홍례문, 근정문을 거처야 근정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근정전 뒤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까지 남북 일직선 축에 놓이게 하였다. 그처럼 건축에 숭고성을 띠게 하기 위하여 엄밀한 좌우 대칭의 형성과 배치상 도식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예는 궁궐 뿐 아니라 성균관, 향교나 불사건축, 그리고 종묘나 사당 등 제사건축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2) 애조미
무량수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으로 불리어 왔다. 그것은 확실한 것으로 여겨져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예비지식에 따른 더 큰 감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건축에 적용된 구조의 결구나 법식은 완전히 균형 잡혀 있다. 균형의 아들인 건축이 이러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은 세상에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면 마음 한구석 비애의 감정을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그 건물의 선은 너무도 예민하고 섬세하여 보는 이에게 애조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 몸의 부피를 애련한 감상이 젓어들때까지 몸체를 도려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건물의 선은 너무도 예민하고 섬세하여 보는 이에게 비애의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량수전, 그 건물은 자체 몸집의 크기의 느낌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는 건축이다. 그 건축의 외부에서 느껴지는 일차적인 느낌은 가뿐함이다. 그 건축이 제일 크게 말하려는 것은 부피의 인식을 제거한 점일 것이다. 그 이유로 거기에는 오히려 건축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것은 무욕의 위대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의지가 여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건물은 선이 만들어 내는 감정의 극치이다. 우리는 그 건물을 보기 전에 벌써 그 애조띤 느낌에 도취되어진다.
3) 적조미
봉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우측 밖으로 나와 발길을 옮기다 스무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절이 아닌 제법 지체높은 양반집 같은 건물이 서 있다. 그 건물의 겉 표정은 거무스름하여 그리 밝은 표정으로 대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약간은 주저하는 마음으로 루 밑을 지나 대여섯 계단을 오르면 마당에 이르게 된다.
루 밑을 지나 마당에 오르면 그 마당의 조용함에 흠칫 흩어진 옷 매무세를 고치듯 스스로 마음을 여미게 된다. 여기서는 사찰인지 집인지 어떤 목적을 묻지 않게 된다. 그저 조용히 마루에 앉아 뜰을 바라보게 된다. 세속을 벗어난 듯이 한줄기 자아 의식만 마음안 깊은 곳으로 자신을 찾아간다. 계절에 따른 변화는 마당에 비춘 그림자를 더 길거나 짧게 한다.그림자가 소리 없이 건물의 창과 마루, 마당 위로 조용히 움직여 간다. 조용히 승방 쪽마루에 앉아 흙마당의 적조한 햇살을 느낄 때면 침묵에 빠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명상에 잠겨든다.
4) 후박미
종묘의 정전은 역대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것은 유교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한 왕권사회의 제례의식이 건축에 함축되어 장엄하게 나타난 조선조 유교문화 건축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정작 정전은 제사를 올리는 기능 그 자체에만 충실할뿐 아무런 기교도 부리려 하지 않았다. 19칸의 긴 건물 길이는 역대왕의 신위를 다 모시기 위해 점차 확장된 규모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통건축 가운데 가장 길고 단순한 건축물이 되었다.
종묘의 정전은 우리나라 전통건축중 숭고함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정전 정문을 지나 월대에 올라오는 순간 커다란 조형적 힘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진정으로 건축만이 자아낼 수 있는 감동이다. 그런데 이건물에선 특별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은 하월대. 상월대. 정전에 이르는 상승과정과 단순하고 장엄한 건축, 그리고 거친 화강석으로 깔린 상월대 바닥의 단순하고 굳건한 후박한 힘이 발산되기 때문이다.
5) 서정미
한국건축에서 가장 잘 발달한 것은 건축과 자연과의 관계이다. 그것은 풍수지리에 의해 터와 자연의 조화를 이루려는 정신과도 맥락이 같다.
병산서원 입교당 마루에 걸터앉아 만대루의 실루엤 사이로 병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이의 마음에 시정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낙동강의 비단 물줄기를 애정스레 껴않고 름름하게 서있는 병산, 그리고 희고 고운 백사장을 넉넉히 비워두고 은자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이 수려한 자연의 풍광이 만대루 마루위에서 함께 어울어 이야기한다. 그것은 건물 자체만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잘 다듬어진 건축과 그것이 놓여진 자리가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예민한 상태의 균형이 이루어져 나타난 것이다.
화려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진실함, 간결하고 힘찬 글씨와 같은 예지, 그리고 조용하고 신중한 몸가짐에서 느껴지는 인격을 대하는 것과 같다. 그 고고한 조영정신으로 하여 병산서원은 한국건축이 도달했던 최고의 시적 정서를 발한다.
6) 재질과 물성
성리학에서 중시하는 태극 도형에는 음(陰)과 양(陽), 이(理)와 기(氣) 같은 양면성이 하나로 함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도형이다. 그러한 태극 미학은 소박하고 작은 것, 거칠지만 두터운 맛, 대담한 생략과 빈 여백을 아름답게 여긴다. 고려의 청자는 화려함의 극치인데 비해, 조선의 백자는 소박 담백한 멋을 보여준다. 만대루에 쓰인 부재도 자연상태의 형상 그대로 담백한 맛을 풍긴다. 그리고 세월을 머금어 고풍스럽게 변한 목재의 무늬결은 더 친근한 멋을 느끼게 한다.
전통 건축에는 재질미가 나타난다. 전통 건축에 나타난 천연의 구조와 마감부재가 풍기는 담백한 재질미는 인간의 호감과 사물이 주는 감각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층 고귀하고 격 높은 대상으로 인식케 한다. 자연 그 자체의 일부로서 성질을 지닌 부재가 세월의 두께가 쌓여 자연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건축에서 세월의 깊이가 갖는 유물적 힘을 함께 의식하게 한다.
5. 결론
건축은 지반에 의존하는 관계로부터 성립된다. 유람선은 집처럼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땅과 관계없기 때문에 건축이 되지 못한다. 땅과 관계 맺음에 의해 건축다움이 생기고 우주질서와 운행을 같이하며 호흡하는 사물로서 독특한 성질을 갖게 된다. 또 건축에는 인위가 수반되고 인위는 자연의 평형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이 다시 자연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인간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동양사상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자연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근본 개념으로 하였다.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것을 죽음의 길로 보았고 자연을 훼손하면 화가 초래된다고 하여 터부시했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그 원리를 잘 이용하는 것을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에 임하는 그러한 생각은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되는 길을 쫓게 한다.
전통건축의 좋은 의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건축과 자연이 호흡을 같이 하게 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가치를 중시한 동양 사상은 그러한 의식를 낳게 하였다. 그로서 건축이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힘을 발휘케 된 것이 중요하다. 전통건축을 대하면 맑고 깨끗함, 투명함, 생명력, 자연과의 호흡이 충만한 일체감 등의 덕목이 느껴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전통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자연과의 균형, 그리고 생명력이다. 건축과 자연의 관계속에 숭고, 애조, 적조, 시적 정서 등 다양한 감각이 표출된다.
참고문헌
1. 미학/ N 하르트만/을백문화사
2. 한국건축사/윤장섭/기문당
3. 서양건축사/비난트 크램프(심우갑 조희철 옳김)/대우출판사
4. 한국전통건축의 좋은 느낌/건축사(2001년 3월~12월)연재/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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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초록
일반적으로 건축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건물 자체에 한정되는데 비해 한국전통건축의 이미지는 주변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또 전통건축 스스로도 자연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태를 취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통건축은 자연의 중요성을 알고 건축과 자연이 호흡을 같이 하게 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미학적 특성을 낳게하는 인식 요소로는 건물과 구조, 배치와 나열, 그리고 입지를 들 수 있다. 한국전통건축은 건축자체와 그 배치방법및 주변 자연의 관계속에 숭고, 애조, 적조, 후박함, 서정성및 물성 등 다양한 감각이 표출된다.
□ 요약
일반적으로 건축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건물 자체에 한정되는데 비해, 한국전통건축의 이미지는 주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또 건축 스스로도 자연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태를 취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자유스런 형태는 그것이 형태적 의도라기 보다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국전통건축의 인식적 형성요소로는 건물과 구조, 배치와 나열, 배치에 의한 영역과 마당의 생성
그리고 건물을 나열하는 가운데 건물과 건물사이에 형성되는 외부공간인 마당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마당은 한국건축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마당은 건물 각자의 능률보다 각 영역의 개성과 자연과의 교감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입지,
좋은 터를 고른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 안에서 위치 선정을 통해 인간의 삶의 환경에 득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좋은 터는 바람이 멎고 따뜻하며 풍광과 전망이 좋고 적당히 건조하여 인간의 신체적 정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다. 한국전통건축은 자연환경 가운데 입지를 잘 선정함으로서 건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되게 하려 했다. 좋은 풍광을 찾아 그 풍광에 균형을 이루게 하는 노력이 깃들여져 아름답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터의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고 생각된다.
건축과 주변 사물의 관계성, 자연요소의 외적 확산과 건물의 균형, 자연요소의 내적 수렴과 건물로 둘러쌓인 마당의 감각진다.
한국전통 건축미의 표출 유형으로는 숭고미, 애조미, 적조미, 후박미, 서정미, 재질과 물성
전통건축의 좋은 의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건축과 자연이 호흡을 같이 하게 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건축을 대하면 맑고 깨끗함, 투명함, 생명력, 자연과의 호흡이 충만한 일체감 등의 덕목이 느껴진다. 건축과 자연의 관계속에 숭고, 애조, 적조, 시적 정서 등 다양한 감각이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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