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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2.05 이타미준과의대담(건축가)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09.2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4360
내용

2002년 건축가 협회상 수상자와의 대담

금토동 주택
이타미준 + 최문규

1. 최문규 소장과의 대화
일시 : 200257
장소 : 사당동 최문규소장 사무실

김석환 : 협회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최문규 : 고맙습니다.

김석환 : 이타미준 선생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최문규 : 내가 일본에 머물때 알게 되었습니다. (최문규 소장은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이토도요 사무실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필자 주) 지금은 술친구라고하면 될 것입니다.

김석환 : 함께 작업하면서 이타미준 선생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최문규 : 재료에 대한 감각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조백자를 좋아하고 아마 드물게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감성을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김석환 : 이타미준 선생과의 업무 협력 범위는 어떻했습니까?

최문규 : 이타미준 선생께서 기본설계를 해서 넘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실시설계를 했습니다. 실시과정에서도 이타미준 선생이 일본에서 오셔서 재료와 마감에 대한 상의를 자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준 선생님은 디테일을 꼼꼼하게 구상합니다. 시공자도 공사하기 까다롭고 어렵다고 했습니다.

김석환 : 설계 때 가장 중시된 개념은 무었입니까?

최문규 : 처음에는 한채로 지으려 하다가 규모를 키우면서 두채로 되었습니다. 개발제한구역 이어서 주택을 지으려면 원거주자여야 하고, 규모도 30평이상 지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대신 창고를 20평까지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 거실, 식당을 갖춘 30평 규모의 주말주택 + 창고 20평으로 했습니다.
평면 디자인때 두 건물을 같게 하느냐, 다르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국 OLD& NEW라는 이름처럼 두 개의 매스를 다르게 해서 콘트라스트를 이루게 했습니다.

김석환 : 외벽 재료는 무었을 사용했습니까.

최문규 : 뒷동은 벽들을 단면으로 파단해서 사용했고, 앞 건물은 화이트 라임스톤을 매끈하게 갈라서 사용했습니다.

김석환 : 공사비는 얼마나 들었습니까.

최문규 : 정확한 통계는 내지 않았지만 처음 예상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건물을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뒷동의 지붕을 곡선 처리하면서 그 부분만해도 공사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평당 750만원 이상 들었을 겁니다.

김석환 : 금토동 주택을 직접 보아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고 난 후 여쭈어 볼 것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타미준 선생님이 일본에서 오시면 만나 보겠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최문규 : 안녕히 가십시오


2. 이타미준과의 대담
일시 : 2002519일 오후 1245
장소 : 신라호텔 라운지

김석환 : 먼저 수상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타미준 : 반갑습니다.

김석환 : 요새는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요?

이타미준 : 일본 홋카이도 교회를 설계중입니다. 과거에 설계했던 석채교회 인근에 제2교회를 짓는 일입니다. 현재 기본설계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은사님 주택을 설계하고 있는데 보수는 없습니다. 그대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선생님께 승낙을 받았습니다. 주택은 건축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택 하나 설계하면 고층빌딩 안부럽게 생각합니다.

김석환 : 근래 국내 작업도 많아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타미준 : 순천고등학교 도서관을 짓고 있는 중인데 다음달에 완공됩니다. 역삼동 주상복합 빌딩도 설계중입니다. 그리고 테크노 코리아 사옥은 간삼건축에서 설계했는데 인테리어를 내가 맡아 설계중입니다. 금토동 주택은 바로 그 회사 회장댁입니다. 그 외에도 23평 규모의 제주도 별장 주택 설계를 맡았고 인사동 학고재 미술관도 계약했습니다.

김석환 : 국내에서도 활동이 활발해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작품에서는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순수예술적인 감성이 느껴집니다. 사당동 주택이 그러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 직접 듣고 싶습니다.

이타미준 : 추상적인 세계, 교양이나 지식을 넘어서는 레벨을 중시합니다. 나만의 느낌, 예술적인 냄새, 철학을 생각합니다. 저는 자연을 매우 중시합니다. 자연과 함께 하고, 한국이라면 한국다운 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가 자기 건축에 지역성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리지널리티입니다. 끝까지 동양적인 맛을 추구하고 나타내는 것, 그것이 국제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미국, 일본, 한국등 모든 곳에서 장소성 없이 이론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처럼 어디에 두어도 관계없는 스타일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역과 풍토에 의해 저만의 특색을 갖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나의 건축은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감정, 자기성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석환 : 선생님의 스케치에선 힘이 느껴지는 반면, 지어진 건물의 내부에서는 장식성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포도호텔의 둥글둥글한 형태는 낭만주의로 느껴집니다.

이타미준 : 포도호텔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제주도만의 냄새, 제주도 지역과 연결시키고 거기서 추상적인 것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가지붕을 그대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추상화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건축을 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재료나 기술에서 국제주의적인 요소도 있을 것입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 같습니다. 40대에는 이론적이었다면 50, 60대에 오면서 물, , , 나무 등 자연과 놓임을 생각합니다.

김석환 : 얼마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곽인식전을 보았고 선생님 화집도 보았는데 서로 닮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곽인식 선생님과 각별한 사이(아들과 같은)로 지내왔다고 들었는데, 화가로서의 감성이 건축가로서의 작업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습니까?

이타미준 : 나는 일본에서 이우환과 함께 곽인식 선생님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유리에 돌을 놓는 물화(物化)의 시도를 곽인식이 최초로 했습니다. 투명유리 조각을 붙이는 작업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은 곽인식을 무시했습니다. 돈 없으니까 그렇게 돌, 유리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철판에 돌을 놓는 것은 이우환이 했습니다. 이우환 작품에서 철판은 반자연이고 돌은 자연입니다. 돌을 돌이라 할 수 있는 사람 몇 명 안됩니다. 작가 자신의 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만드는 건축이 폐허가 되더라도 연구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 회귀되게 하고 싶습니다. 포도호텔 지붕에 사용한 재료를 나는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고의 재료입니다. 시간 지나면 조금 까맛게 변합니다.

김석환 : 곽인식 선생님과 특별한 추억이 있으십니까?

이타미준 : 일본에 같이 있으면서 부모처럼 대했습니다. 그는 가난했습니다. 전시회도 열지 못했습니다. 본인도 화가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0년간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내가 그러고 있으면 폐인 되니까 전람회 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인 사진작가 안자이 시게오 또한 권했습니다. 예술사진가인 그가 사진찍고, 내가 디자인하고 편집해서 화집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것이 곽인식 선생님의 최고 카타로그입니다. 오사카의 3대 갤러리로 꼽히는 오사카 포럼에서 전시했습니다. 그러나 판화 1장만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미술비평가의 원고료로 나갔습니다. 전시후 참담해진 곽인식 선생님이, 언제 내가 전시회 열자고 했냐고 했습니다. 나에게서 들어간 비용도 본인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6년간 말 안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오라고 해서 가니까 그림을 한점 주었습니다. 돈 없으니까 그림 가져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우환씨에게 돈 갚아 주었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림하니까 남의 그림 관심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다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김석환 : 그동안 국내 건축가와의 만남은 어떠했습니까?

이타미준 : 83년 김석철씨가 설계 한 동숭동 두손빌딩 건물주 김양수씨가 나에게 지하 1층 레스트랑 2개를 뷰티크 하고 싶다고 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 일로 김석철씨가 항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고쳤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을 터인데, 그 후 시모노세키에서 마이니찌와 동아일보에서 문화교류 심포지움 개최할 때, 한국과 일본측 인사로 나란히 참석해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건축가 4.3그룹이 일본에 왔을 때 만났습니다. 그 때 일본 국제 문화회장에서 반시게루, 시토, 그리고 내가 강의했습니다.

김석환 : 선생님에 관해 궁금한 것은 많지만 시간 관계상 금토동 주택에 대해서 물어보겠습니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갖었던 중요한 개념은 무었입니까.

이타미준 : 두 개 메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오울드 앤드 뉴 = 전통 + 현대, 복합과 대립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곳은 그린벨트였습니다. 그린벨트라 5m이내에 창고를 하나 두어야 했습니다. 그 때, 복합과 대립을 생각했습니다.

김석환 : 오울드 앤드 뉴 라는 말이 건축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타미준 : 실험단계입니다. 결과는 진행중입니다. 10년쯤 지났을 때 어떻게 변할지 모름니다.

김석환 : 두채를 관통해서 시선이 마당으로 열리게 한 구상이 눈에 띰니다. 그것은 한국 전통건축의 내외부공간이 상호 관입되는 개념과도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낮게 대지에 밀착되어 있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런데 앞뒷채의 기능이 중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앞채 거실이 너무 크고 주방이 노출되어 차분한 느낌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타미준 : 그것은 요구에 맞춘 것입니다. 그 앞채의 거실에 면하는 주방은 연기가 나지 않는 간편한 요리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뒷채에서는 주방이 거실에 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연기 나는 요리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김석환 : 뒷채의 외벽 질감, 들려진 곡선지붕과 벽체 상부의 창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의 느낌이 좋습니다. 뒷채가 아담하면서 우아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그런데 두채 사이의 사잇공간이 좀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현관이 돌출되어 시선도 막혀 있습니다.

이타미준 : 나는 그 부분과 같은 좁고 긴 사잇공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현관 부분은 장차 앞뒷채를 연결하는 통로로 만들 것입니다.

김석환 : 두채의 외부 재료가 같다면 그 부분의 공간감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타미준 : 공감합니다.

김석환 : 두채 사이에서 오르는 계단과 피로티로 뜬 부분이 다른 부분의 안정감과 어긋나는 느낌입니다.

이타미준 : 그 부분은 주차공간으로 마련했습니다.

김석환 : 정원이 텃밭으로 되어 있는데 그리 잘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타미준 : 규정상 텃밭을 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칠 생각입니다. 얼마전 건축주에게 차실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건물주가 받아들였습니다. 곧 착수할 것입니다.

김석환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요?

이타미준 : 내년 69월사이, 파리Guimet 미술관에서 전통과 미술이라는 주제로 나를 포함한 일본과 프랑스 4명의 작가 작품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한달 후에 일본에서 강연할 것입니다.

김석환 : 오랜시간동안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타미준 : 쉬는 날인데 일부러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 예기하고 싶습니다.
(0205 건축가지 김석환)

대담자 소감
처음 만나 본 그의 인상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금토동 주택은 뒷 건물이 좋았다. 절단한 벽돌레서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식적으로 보였던 원형창도 이해했다.
유이화씨가 3시에 채용할 사람 만나는 약속이 되어 있어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타미준 선생이 다음에 한번 만나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이타미준의 실제 인상은 작품집에서 본 그대로다. 남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있다. 그의 딸 유이화씨가 서울에 있으면서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있다. 그 딸이 있어서 앞으로 훨씬 국내일을 하기에 유리하게 된 것 같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안정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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