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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2001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9 영선암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09.2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682
내용


영선암 靈禪庵

봉정사 영선암

봉정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있는 곳으로서 더 유명하다. 1972년 이 곳 극락전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상량문에는 1363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목조 건물은 건립 후 대략 150년만에 중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로 미루어 이 건물이 13세기초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 연대적 의미는 건축적 우수성 여부를 떠나 오래 전 이 땅에서 이루어진 건축솜씨를 확인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곳 경내에 있는 대웅전을 조선전기의 다포식이고 화엄강당은 공포가 익공식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이듯 형식적 면모로만 쓰여지기 쉬운 것과 달리 여기서는 외목도리를 받치는 구조적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봉정사는 전통건축의 대표적 공포형식인 주심포식, 다포식, 익공식을 한자리에서 확인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리고 봉정사는 의상이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려 앉은 명당에 절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 올만큼 자리 앉음새가 좋다. 또 입구로부터 절을 향해 오를 때의 굽이진 산길도 매우 운치 있다. 그 길을 오르다 경내가 올려 보이는 기슭에 기품과 맵시 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휘어 오르는 산사 길과 잘 어우러지면서 곧 닿을 경내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한다. 그러나 그처럼 사료적 의미가 있고 지형과 어우러진 느낌도 좋은 봉정사지만 건축적 힘을 특별히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 경내를 벗어난 곳에 아늑한 암자가 하나 있어 이곳에 발길을 내디딜 때마다 감동을 갖게 된다.

조용한 암자
봉정사 경내를 돌아보고 요사체쪽으로 나와서 계곡을 가로질러 좁은 계단길을 오르면 왼편으로 가옥처럼 보이는 건물이 서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그 건물의 첫 인상은 풍상으로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 밑으로 난 입구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맑게 정제된 분위기에 의해 저절로 숨소리를 죽이게 된다. 영선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영화는 잘 기억하지만 영선암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 영화의 힘은 영선암의 분위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다.

사찰은 속세를 벗어나 공부하는 수행 도량이지만 여럿이 모여 살다 보면 속세와 같은 번잡함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수도자(修道者)들은 다시금 홀로 수행할 곳을 바라곤 하는데, 그러한 요구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 암자(庵子)이다. 암자는 대개 모찰(母刹) 주변의 작지만 아늑한 터를 잡고 지어진 곳이 많은데, 대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그리고 전국의 주요 사찰마다 부근에 많은 암자가 딸려 있었는데 정읍의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만 해도 한때 7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로 미루어 볼 때 전국에 많은 암자가 있었을 것임을 짐작케 된다.
출중한 고승들은 홀로 암자에서 수행정진하여 대오한 경우가 많았다.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의 선사들 뿐 아니라 근대의 고승이라 할 수 있는 경허, 만공, 효봉 스님 등이 그러하였고, 현대의 인물인 성철 스님은 백련암에서 수행에 정진하며 나오지 않은 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겼다. 우리나라 불교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루어 왔지만 어떤 경우이건 불교의 본래 의미는 깨우치기 위한 구도의 길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 쉬운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것은 불교의 본질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암자에서의 수행은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목표를 실천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선암에서는 인간의 몸안에 있는 원초적 습관과 순수한 자아와 일체되는 영적 맑음을 느낄 수 있다.

건축과 자연의 균형
건축은 지반에 의존하는 관계로부터 성립된다. 유람선은 집처럼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땅과 관계없기 때문에 건축이 되지 못한다. 땅과 관계 맺음에 의해 건축다움이 생기고 우주질서와 운행을 같이하며 호흡하는 사물로서 독특한 성질을 갖게 된다. 또 건축에는 인위가 수반되고 인위는 자연의 평형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이 다시 자연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인간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동양사상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자연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근본 개념으로 하였다.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것을 죽음의 길로 보았고 자연을 훼손하면 화가 초래된다고 하여 터부시했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그 원리를 잘 이용하는 것을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에 임하는 그러한 생각은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되는 길을 쫓게 한다. 문명은 자연상태에 인간만의 편리함이 추구되는 현상이지만 문명은 자연계의 환원 안에서만 존재 가능하다. 한 방울의 잉크가 컵에 떨어졌을 때 그 오염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것이 제거되고 다시 마실 수 있는 물이 되는 것은 자연의 순환 안에서만 가능하다. 도시로 가득 채워진 지구 위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도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딘가 벗어날 수 있는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 조건은 여전히 자연에 있다. 인간의 호흡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의 정화를 위해 생리적 수요의 공기가 필요하다. 현대 도시의 밀집주택도 주택 사이의 외부공기의 켜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 가능한 것이다.

태초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자연은 도시문명에서 느낄 수 없는 힘이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옛 건축에서 현대의 도시 건축과 대비되는 청량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자연의 힘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관습상의 불편함을 감수한 채 자연의 감정에 순응해야 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데서 찾아진다.

건축이 둘러싼 환경에 동화되어 형태보다 정서로서 더 크게 느껴진다. 건축이 땅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입지의 효과를 누림으로써 기분 좋은 정서를 얻을 수 있다. 깊은 자연에서 발산되는 정서의 깊이는 측량할길 없다. 그리고 영선암은 자연과 관계 맺고 있는 심연한 정서를 향유할 수 있다.

적조한 햇살이 비추는 마당과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
영선암의 마당은 건물로 둘러쳐 외부세계와 분리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상태이다. 빈 아랫마당에 면해 놓인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맑고 정갈한 분위기의 힘이 느껴진다. 자연의 힘을 응축해서 고이게 하는 것 같은 미묘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곳의 느낌은 좀 더 치밀한 의도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위란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여기서는 인위의 바탕 위에서도 손길을 가하지 않은 것처럼 유연하게 느껴진다. 영선암의 배치는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치고 앉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자연스런 흐름을 유도하듯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전면 누 밑의 지면은 마당보다 몇 단 낮고 고랑처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아랫마당이 더 투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응진전과 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생동감 있는 동선의 흐름과 분위기를 이룬다.

영선암은 시작도 끝도 없는 비완결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닫힌 구성이지만 어딘가 항시 열려져 있어서 외부와 끊임없는 호흡이 일어나고 숨결이 유지되고 있다. 항상 조용함이 유지되는 아랫 마당은 적당한 짜여짐이 있어서 바깥에서 들어오면 정제된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이 있고, 다시 밖과의 관계로 생기는 힘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마당의 넓이에 비례하여 짜여짐의 힘이 지녀질 만큼의 적당한 높이로 되어 있다. 그 반면 각각의 건물의 구조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다포식인 응진전과 민도리 형식을 한 요사체의 디테일 변화는 통일 속의 다채로움으로만 작용되고 있다.

영선암은 음양의 원리처럼 안과 밖으로 서로 다르게 나뉜 두 세계의 상호 작용에 의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기의 현상이 만나는 태극 구조와 같다. 마당의 영역은 둘러친 건물에 의해 경계가 한정된다. 그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계너머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경계는 밖과의 대비를 이루고 외부와 구분된 안의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켜를 지나 밖의 세계와 하나의 숨결로 이어져 있다. 공간과 시선은 틀 안에 갇히지 않고 건물 틈에 놓여진 누마루를 타고 그 너머의 무한 공간과 호흡한다. 건물과 하늘, 그리고 건물 틈새를 언 듯 비켜 가는 시선, 햇살과 공기가 함께 어우러져 생기는 느낌이 느껴진다.

영선암은 건축의 질서틀 안에서 조용히 햇살이 닿아 생기는 갖가지 정감 있는 표정, 사물 본연의 생명력과 숭고함, 맑고 순수한 느낌이 함께 한다. 경사지형을 알맞게 다듬어 이루어진 배치는 그 느낌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당은 지형을 따라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레벨상의 위계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입구에서 보면 아랫마당은 지형의 고저차를 이루는 반쯤에 걸쳐 있어서 항상 다음 단계로의 흐름이 예비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로 둘러싸인 부분의 반쯤이 화단으로 되어 있어 자연지형과 같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룬다. 머무를 곳의 정제된 분위기와 경사진 자연지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누 밑 계단을 오를 때, 불전 계단을 오를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입구 통로의 짧은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어스름한 통로의 감각으로부터 좀더 다가갔을 때의 표정이 한 발자욱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며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조용히 승방 쪽마루에 앉아 흙마당의 적조한 햇살을 느낄 때면 침묵에 사로잡히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명상에 잠겨든다. 세속을 벗어난듯이 한줄기 자의식만 마음안 깊은 곳으로 자신을 찾아간다. 계절에 따른 변화는 마당에 비춘 그림자를 더 길거나 짧게 한다.그림자가 소리 없이 건물의 창과 마루, 마당 위로 조용히 움직여 간다. 마당 한 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건물의 처마자락을 살짝 걷어올리듯이 서 있는데 그 한 그루 나무는 주변에 있는 많은 나무들보다 더 큰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생명력과 사물과의 교감
선인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태도로서 생명력을 얻었다. 현대사회는 계측적인 계획 수요를 확보하며 급속히 신도시를 건설하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생명력을 잃는 것은 회복할 길 없다. 인위 시설로 가득해진 도시는 오염된 물마저 한방울도 새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릇과 같다. 그 결과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의 명상적인 느낌은 둘러싸인 자연의 힘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합리성을 따져서 말해지지 않는 가치들을 모두 무시되기 쉽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아도 존재의 힘은 변함없다. 계측적 측면만을 중시하다 보면 계측되지 않는 의미들을 점차 망각하게 된다. 그로서 몸의 질병과 같은 지구의 문제가 생겨난다.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좇는 사이 인간의 직관력이라든지 상상력이 알게 모르게 많이 쇠약해져 버린다. 앎은 사물과 교감함으로써 생겨나는 감각이다. 사람들은 언어가 없던 시절에도 서로의 느낌을 표정과 동작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끼지 않은 것을 추상적인 언어로 나타내면서 사물과 멀어지고 감각이 둔해졌다.

현대인들은 옛 사람들이 직접 식량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리며 느꼈던 의미와 자연과의 교감속에서 직접 사물의 현상을 의식함으로써 가졌던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 현상이 전통 건축을 보수하는 솜씨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전통건축의 질박한 물성의 느낌은 그렇게 오래 견딜 수 있는 바탕 위에 시간에 따른 변화가 담겨져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150년만에 중수했던 전통건축을 이 시대에는 불과 몇 십년만에 다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옛날의 장인들은 우선 자연현상과 더불어 튼튼히 지탱될 수 있는 슬기를 체득하고, 보지 않는 가운데 꼼꼼히 솜씨를 발휘했다. 사람들이 그러한 자연의 존재 원리와 유리되기 시작한 시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농경인구보다 산업인구가 더 많아지고, 전통의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바뀐 것은 불과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앉아 있는 시간보다 서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영선암은 이슬방울이 모여 옹달샘이 되듯 맑은 기운이 고여드는 곳이다. 산을 오르다 맑은 웅덩이 옆에 앉아 무심히 바라보면 계곡 물이 모래톱을 빠져나와 스며 고이고 조용히 흘러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웅덩이 물살 위에 찾아온 영롱한 빛의 떨림이 음률처럼 반짝인다. 영선암은 그 옹달샘처럼 맑고 정갈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현대인의 계측적인 사고로는 영선암의 느낌을 만들 수 없다. 옛 사람들은 자연의 힘을 측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로 힘입어 생기는 느낌을 의식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건축에 임하는 사고가 덜 복잡하며 맹목적인 의식에서 생긴 것일지라도 균형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그로서 건축에서 본질적 덕목이 지켜질 수 있었고 좀더 근원적임 힘이 발휘될 수 있었다.




영 선 암

생에 애착이 느껴질 무렵
두려움도 찾아왔다.

세상 사람들 모두 즐거운 표정 짓건만
까닭 없는 슬픔이 휘감아옴을 느낄 때
홀로 떠나왔다...

숲 내음 고여드는 암자
마루턱에 앉아 머물 때
문득 세상 인연 그리움이 밀려오면
황급히 떠밀쳐 내고


수많은 날 기다려 왔건만
아직 찾아 오지 않은 느낌
기다리는 이의 눈길에 닿는
마당을 조용히 비추어가는 햇살

산천은 산짐승처럼 늘 깨어 있고
다시 찾아온 봄날
신록이 번져가는 기운이 반가워도
아직 다 덜어내지 못한 번뇌에
충만한 아름다움이 부끄러운 수도승



글을 마무리하며

건축은 인간의 존재 양상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일차적인 성능은 자연 기후로부터 조절된 기후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를 위해 중력으로부터 찌부러지지 않는 구조적 세기를 갖춰야 했다. 그래서 최초의 건축은 내부공간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 해결의 산물이었고 단지 구조로서 기능하였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주변에서 획득이 용이한 재료를 활용해 건물을 지어왔다. 그것은 기후 조건 및 지역별 획득 가능한 재료에 의해 각각의 특징을 띠어 왔으며, 각각의 재료와 구조적 원리에 따른 고유 양식이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한국 전통건축은 원시단계로부터 목재를 사용한 건축이 발달되어 왔다. 그것이 형식적 보편성을 띠며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목조 가구식 구조로 정착되었다.

한국 전통건축의 감각적 원천은 그 구조형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기둥과 보에 의해 반복적으로 구성되는 프레임은 중력에 대응한 건축적 질서의 감각을 표출하고, 대청마루를 올려다 볼 때 보이는, 많은 부재로 복잡하게 형성된 지붕 구조는 프레임의 비워짐과 대조적으로 조밀한 구축적 물성을 발한다. 그리고 골조와 피막을 분리되게 취급할 수 있는 가구식 구조체 특성상 벽면의 개방과 폐쇄를 자유롭게 하여 건물이 앉은 주변 자연과의 관계에 따른 감각이 표출된다. 그리하여 내외부 공간의 소통에 의해 건축적 감각을 자연과의 관계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러한 전통건축의 가구식 구조원리의 활용은 독립골조에 의한 자율성 확보라는 근대 건축의 핵심적 개념과 유사하다. 그런데 전통건축은 그것을 논리화하기보다 더 깊은 현상적 의미로 구사함으로써 건물이 앉고 있는 장소및 자연과 일체감에 따른 멋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건축 자체로써 완결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지어질 환경에 알맞는 균형을 감지하고 다듬어 맞추는 노력이 수반되어 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풍수지리설 같은 학문도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형성된 건축적 성격이 한국전통건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한 생각들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따르려는 전통적 동양 사상에 바탕되어 있다.

전통건축을 설명한 표지물에는 대체로 그 건물의 연혁과 함께 정면 몇칸, 측면 몇칸이라는 규모의 표현 그리고 공포형식 등 건축의 구조형식적인 면만을 적어 놓고 있다. 전통건축의 용도별 차이는 현대건축의 기능에 입각한 건축유형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전통건축의 서원이나, 사찰다운, 유형별 특성을 이루어 내는 것은 각각의 용도에 대응해 만들어진 건축 내용적 차이가 아니라, 동일한 건축 형식에 적응해서 이루어진 삶의 영위로부터 나타나는 감각이다. 건축형식의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병산서원에서 서원다운 힘을 지니게 하는 것은 건축형식적 차이가 아닌 삶의 내용이다. 같은 건축형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규범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차이에 대한 고려에는 단지 건물의 스케일과 배치가 고려되어 한 가지 구조형식으로 된 단순성으로만 보면 전통 건축의 느낌은 밋밋하기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과 달리 한국 전통건축은 다양한 감각을 표출하고 있는바, 그 이유는 가구식 구조형식의 특성을 바탕으로 주변과의 관계에 의해 다양한 감각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단순한 구조 형태를 띠지만 풍광과 현상이 담겨지는 틀이 되어 자연의 감각이 함께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가까이 혹은 멀리에 있는 온갖 사물, 구름의 흐름과 같은 자연 현상, 햇살과 그림자의 변화 등 온갖 자연 현상이 건물 이미지에 반영되어 갖가지 표정을 갖게 한다. 그런데 전통 건축을 지은 사람들은 그 결과를 우연히 얻어진 현상으로 여기지 않고 터를 고를 때부터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도록 주변의 영향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한국 전통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다고 해서 관념에 따른 규범적 질서의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건축도 여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숭배나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자의 권위 표출로 생기는 요소들로 인해 표출되는 감각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구조형식적 질서와 자연의 조화로 인해 발하는 느낌은 여러 채에 의해 무리를 이루는 상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통건축의 서원이나 사찰 등은 관념적 질서가 부여되어 있지만 그 전체적인 감각은 여전히 자연과 조화속에서 이루어진다.

건축의 본질적 힘은 어떤 행위에 알맞게 되기보다 인간다움의 환경과 건축 본연의 감각을 지님으로써 의미가 구현된다고 생각한다. 내재하는 건축의 힘을 발생케 하는 것은 문명 현상이 아닌 여전히 자연 현상이다. 건축은 중력에 대응할 때부터 우주의 성질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건축의 지어짐은 우주 질서와 관계 맺는 것이며 지음에 대한 경탄스러움은 그로부터 생기는 감각이다. 그리고 전통건축은 지음에서 비롯되는 힘과 자연과의 교감에 의한 힘을 함께 지니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중시한 동양 사상은 삶의 실천적 원리로 작용되어 그러한 감각을 지속적으로 낳게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건축은 문화에 질식당하고 있다. 수요자들에게 건축의 의미는 흐릿해지고 건축공간은 그 자체로서 사람들의 감정에 작용하기보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수 많은 도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건축의 이미지는 의상처럼 유행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요구조건을 무조건 떠받들고 있으며 시대조류로 합리화 되고 있다.

인류는 문명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엄청난 개발로 자연을 파괴해 왔다. 그 열기에 의해 급속히 팽창해가는 현대도시는 기능적 편리를 논하기 앞서 인간의 생존환경으로서 심각한 지경이다. 합리주의 사상은 우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 중심의 발상이다. 그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인간만을 위한 개발은 자연을 파괴하고 우주 질서를 깨뜨려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시대성은 건축의 성격을 갖게 하지만, 건축의 본질을 형성하는 요인이 아니다. 급속히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가는 시대에 어떤 일시적 인간 행태에 맞춰가는 것이 최선의 건축적 추구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놀랍도록 많은 수의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한 건축적 가치가 추구되지 않은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인류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의 가치를 소중히 의식하고 모두 다 지향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축이 건강한 성과로 나타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정신이 좋은 건축을 이루게도 하고 반대로 나타나게도 한다. 결국 좋은 건축을 낳게 하는 것은 삶의 태도이다. 우리가 전통건축에서 발견하려는 것은 우열이 아니라 시대환경에 의해 이룩된 건축의 건강성에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전통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자연과의 균형, 그리고 생명력이다. 그리고 여기에 선택한 아홉 군데는 전통 건축 가운데 가장 귀히 여겨진 곳이었다. 그러나 단지 전체 중 일부분의 의미가 아니라 이 글을 쓰는 동안 한국전통이 지니고 있는 전체 가치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뛰어난 경지의 전통건축이 갖는 건축적 성격과 그렇게 이루어진 배경, 그리고 그 실체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전통건축을 대하면 맑고 깨끗함, 생명력, 자연과의 호흡이 충만한 일체감 등의 덕목이 느껴진다. 전통건축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자연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건축과 자연이 호흡을 같이 하게 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위로 가득해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김석환


본문에 소개된 전통건축의 위치
1. 병산서원 :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동
2. 소쇄원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 선암사 : 전남 승주군 승주읍 죽학리
4. 화암사 :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
5. 종 묘 : 서울 종로구 훈정동
6. 창덕궁 : 서울 종로구 와룡동
7.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8. 독락당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9. 영선암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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