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인도의 르 꼬르뷔제 작품을 찾아서
1994. 6
김석환 / 터⋅울 건축
by kim, suk hwan
■ 르 꼬르뷔제의 아메다바드 작품
1. L.C의 아메다바드 건축
1)인도의 풍토와 건축
인도는 기원전 3천년경에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중의 하나인 전통을 갖고 있다. 이 문명은 드라비다 족에 의해 인더스 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서 창시되어 농경과 목축을 하며 촌락을 이루고 생활 하였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천년경 중앙 아시아로 부터 침입한 아리아인들 에게 정복되었다. 그후 아리아 인은 기원전 천년경에는 동쪽의 갠지즈 강 유역에 이동하여 원주민과 혼혈하면서 농경 생활을 시작 하였다.
인도는 기원전 4세기말 챤드라 굽타가 마우리아 왕조를 세우고 최초의 통일 왕국을 수립한 이후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대왕 시기에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후 다시 내부 분열과 여러차례의 외세 침략을 받았다. 그러한 과정에 이질문화가 섞이고 융합하여 인도 특유의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들의 문화는 다양성에 의한 문화이다. 문화끼리의 충돌과 배척보다 그들은 이질 문화를 융합하여 또다른 문화를 생산한다. 그들의 수 많은 종교 또한 그렇게 탄생했다. 어떻게 그 많은 문화가 혼재 할 수 있을 까. 그것은 인도인의 관용의 정신에 있다. 이단에 대해 관용을 베풀므로 해서 다양성이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려되기 까지 하였다. 그리고 인도의 계급사회에서 주인에 대한 복종의식은 다른 한편으로 굴종의식을 길러왔다. 경찰의 회초리에 쫒기는 겁먹은 듯한 그들의 표정을 보면 의아해진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다. 아리아 인은 기원전 천년경 「리그베다」의 종교를 성립시켰다. 리그베다의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신교이다. 대부분의 신들은 때양, 번개, 물, 불,등 자연계의 구성 요소와 자연의 여러현상 및 그들의 배후에 있다고 상정된 지배력이 신격화 되어 나타났다. 신들은 하늘, 대기, 땅의 3계에 산다고 믿어왔다. 이 모든 신들의 수는 3,333신 이라고도 한다.
바라나시에 가면 거리에 수천개의 소 사원이 있다. 그리고 그 사원 각각이 다른 종교인 경우가 많다. 인도인은 신의 의지없이 없이 살 수 없는 민족처럼 보인다. 힌두사상에 의한 운명론은 인도인의 현실을 경시하는 사상을 낳았다. 모든것은 이미 운명지어진 것이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쪌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것이 인도의 빈곤을 낳는다.
인도 아대륙은 북위 5도에서 32도에 걸쳐 있는데 그 대부분이 아열대 지대로서 몬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진다. 여르의 더위는 극심하여 수도 델리에서는 5,6월에 기온이 섭씨 45°까지 오를때도 있다. 우기에는 높은 기온에다 많은비가 내리므로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인도는 무었보다도 태양의 나라이다. 적도가 가까이 통과하는 그곳의 여름의 더위는 살인 적이다. 평원의 땅에 내려쪼이는 강렬한 열사는 데칸고원의 사막의 확장을 불러오고 있다. 산록이 없는 넓은 평원의 땅은 곧 그들의 운명이다. 태양만이 그 곳을 지배한다.
르 꼬르뷔제의 인도에 서의 건축은 태양의 의식으로부터 출발 한다. 혹서의 상태에서 건축이 가장 기여할일은 통풍이 되는 서늘한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돌산을 파들어가 아잔타 석굴과 에료라 삭굴을 만들게 된것과 같다. 건축은 세계 어디서나 관습에 의해 오랬동안 창조의 정신을 망각해 왔었다. 인도의 건축 양식은 그들의 문화만큼이나 다양하다. 힌두, 비잔틴, 이슬람, 고딕양식 등이 인도의 역사적 배경애 따라 도입되고 뒤섰여 왔다.
국가에 의해 이용되는 건축양식은 종종 그들의 풍토에 적합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여질 때가 많았다.
아직도 인도의 땅에 지어지는 많은 인간의 집들은 흙벽돌에 의한 토굴구조이다.
인도가 르 꼬르뷔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풍토와 다른 건축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창조력에 의해 인도의 풍토에 맞는 건축을 창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2)아메다바드와 L.C건축
아메다바드는 인도의 중서부 구자라트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도가 독립된 이후 이곳은 인도의 전통깊은 섬유직물 산업이 토착 기업가에 의해 활성화되어 도시가 경제적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인도에 있어서 드물게 근대화된 이 곳의 분위기에 걸맞게 이곳의 부호들과 기업가들은 챤디가르 프로젝트를 통해 인도와 인연을 갖게 된 거장의 건축가에게 자신들의 건축을 의뢰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르 꼬르뷔제에게 있어서 이곳 아메다바드는 챤디가르보다 더욱 인도인의 삶과 풍토에 밀착된 건축을 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인도에 당도하여 인도식의 근원적인 기쁨을 맞았다.「우주와 생물의 우호관계, 별, 자연, 성스러운 동물, 소조 원숭이와 소, 그리고 마을에서의 어린이들, 어른들, 노인들의 활발한 모습, 연못과 망고나무, 모두가 존재하고 미소짓고 있다. 빈약하지만 균형잡혀 있다. 그리고 나는 위안을받고 위안을 가지고 올것, 정직한 당나귀가 작업을 하고 그 책임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지평선이 열려 있어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50년대 보통〈인간〉과 그 처와 어린이들에 대한 것을 연구하여 왔다. 아무래도 마음이 꺼려져서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게 된것, 그것은 가정에 신성한 느낌을 가져오는것. 가정을 신전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L.C의 인도건축 그 것은 근대 건축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건축의 의미를 되물은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아메다바드에서 르 꼬르뷔제는 인도의 풍토와 삶의 조건에 대응한 그의 건축사상을 펼쳐보였다. 한편 르 꼬르뷔제는 그 자신에게 건축의 더많은 텍스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르 꼬르뷔제의 초기 작품인 사보아저에서 옥상정원의 녹지는 인간에 대한 녹지를 시중의 인스턴트 식품을 섭취하듯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형태의 기계적 정밀성과 함께 자연을 기계적으로 계량하는 행위이다. 르 꼬르뷔제는 기계미학에 의한 합리적인 질서를 갖춘 세계창조에 열열한 희망을 가진 한사람이었다. 기계적 질서의 추구는 곧 미학이며 합리적인 목적의 충족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시점에서 기계시대의 결과로 나타난 비 인간적인 현실은 이제 거꾸로 인도처럼 비 근대화 된 사회가 인간의 구제의 희망처럼 생각되게 하였다. 르 꼬르뷔제는 이곳의 건축에서 정확하게 계량화된 기계로부터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건축을 창조하려 했다. 사라바이 저는 녹음으로 뒤덮힌 자연의 서늘한 동굴이다. 그것은 원시 오두막을 이용하던 정신이다. 원시 오두막에서 오히려 인간은 건축의 힘을 의식한다.
르 꼬르뷔제의 의뢰자에 대한 불신감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도로부터 처음 청탁이 있었을 때도 반신 반의 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인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의뢰자를 만난 셈이다. 그는 지난날 자신이 이상을 실현할 기회를 건축가는 갖기위해 권력에 손을 내밀곤 했으나 번번이 실망으로 끝났다. 챤디가르 프로젝트는 네루의 절대적인 신뢰의 힘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이곳 아메다바드의 프로젝트는 민간인들이 존경의 마음을 갖고 건축가를 초대했다. 우리는 이곳의 르 꼬르뷔제 작품에서 건축가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창작의 의욕에 불타 작업한 성과를 볼 수 있다.
2. 작품
1) 사라바이 저
이 건물은 모놀타입의 연장이다. 그것은 1920년에 대량생산형 주택으로 연구 되어진 것이다. 주거단위가 베이의 단위로 연속될수 있고 그 내부의 구성은 필요에 따라 다양성을 지닐수 있다.
르 꼬르뷔제는 건물의 1층을 피로티에 의해 띄워 외부가 연속되게 할것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물은 지반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완전히 녹음에 덮여 있다.
사라바이 저택은 1920년대 선보인 모놀 타입의 연장이다. 이런타입의 주택은 1949년 캡 마틴의 로크와 로브의 계획에도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사라바이저택을 짓기 2년전에는 파리 근교에 동일한 타입의 쟈울 주택을 지었다. 쟈울 주택이 외부에서 구조가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볼트단부의 마감처리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다. 쟈울주택은 가로에 면한 구획 된 필지여서 법규의 제약등의 어려움을 격었지만 이곳에선 드넓은 부지가 주어졌다. 쟈울 주택은 전후 유럽의 젊은 세대에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으나 이 집은 외부세계에 덜 알려졌다.
이집은 정문을 통해 대지내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 건물의 후면에서 진입한다. 후면 마당에는 현관에 이르는 길과 하인들이 거쳐하는 집과 차고가 있다. 집의 전면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없어 사생활의 휴식과 정적이 보장된다. 전면의 중앙에 깨끗한 물에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어지는 원형 풀장이 있다.
건물의 평면은 평행볼트에 의해 반복되어 확장된다. 볼트의 측면은 피보트 힌지에 의해 회전하는 얊은 판낼이나 갈대로 역은 발에 의해 구획된다. 구조적으로 완결된 단위 베이는 그의 건축의 기본사상처럼 자유로운 간막이의 배치를 허용한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기계적인 구조안에서 놀랍도록 자유로운 평면이 얻어진다. 그 공간은 벽의 틈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가 흐르는 듯 연속된다.
볼트천정의 테라코트 타일과 노출콘크리트의 보 그리고 붉은 벽돌벽과 바닥에 깔린 검은 마도로스 석의 거친 재료의 질감이 간막이 벽에 칠해진 흰 프라스타와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 된 원목의 가구들의 배치에 의해 품격높은 예술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에서 실내의 긴장감은 여기에서 처럼 공간과 도구류의 훌륭한 배합으로 얻어질때가 많다.
이집은 아메다바드의 대 부호의 지위에 의해 호화롭고 낙원같은 집이 되었으며 르 꼬르뷔제 에게는 이상향을 건설하는 건축의 즐거움을 갖게 하였을 것 같다.
2) 쇼단 저
아메다바드의 르 꼬르뷔제의 건축적 특징은 그 건축의 깊은 테라스의 그늘구조와 공간의 개방성에 있다. 이 곳 쇼단저는 1928년의 카르타고의집의 개념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이런류의 실현된 예를 찾는다면 사보이저 일 것이다. 동일한 개념에 의해 출발한 건축이 이곳에서는 인도적 풍토에 대응하여 전혀 색다른 이미지로 나타났다. 이 건물은 거대한 입방체가 부분적으로 도려네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허와 실의 매스의 정확한 균형과 입체의 볼륨감에 의해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불러온다. 이 개방과 폐쇄의 대위법은 르 꼬르뷔제 건축의 하나의 큰 특징이다. 이 건축에서 인도적 풍토의 훌륭한 해결을 발견하게 되는것은 공허부의 스크린의 기능이다. 혹열을 피하기위한 서늘한 그늘을 만드는 장치이다. 이곳의 기후상태에서 이러한 서늘한 그늘공간은 인간에게 더 말 할나위 없는 쾌적한 기분을 자아낸다. 수직으로 배열된 인공의정원 사이사이에 주거가 끼워진 개념이다. 그리고 각각의 레벨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정원들이 어서 이용자는 지루하지 얺게 이용할 수 가 있다. 외부의 개방된 스크린의 격자뒤에는 다시 전체가 오픈된 중정과 같은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불규칙한 격자의 그늘에 의해 자연의 기후처럼 다양한 빛의 변화를 느낄수 있게 된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구획은 간단한 스크린에 의해서다. 내부의 바닥에는 마도로스석이 깔려 있고 깊은 브리즈소레이유에 의해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다.
단지 그늘의 장치인 콘크리트 판의 구획으로 구성된 거친 콘크리트의 매스가 여기에서는 모듈러의 균제에 의해 기묘하게도 조형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3) 섬유협회 회관
여기서도 내외부의 구획이 없는 콘크리트의 판이 여러 층으로 골조에 지지되어있다. 그리고 각층은 골조위에 끼워된 인공의 지반위에 자유로운 평면이 구축되어 있다. 그 각각의 판은 외부에 피막이 둘러쳐 있지 않은 개방된 자연의 지반이다. 그곳은 전망의 언덕이며 숲이 있는 그늘이며 건축을 감상하며 거니는 오솔길이다. 르 꼬르뷔제의 인공지반의 개념이 이곳에서 처럼 낭만적이고 자유롭게 사용된 적은 없다. 마르세이유 아파트에서 볼수 있는 옥상의 구성요소가 이곳에서는 모든층이 옥상처럼 개방되어 각층의 구성요소가 외부로 드러나며 건물외곽의 매스와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다. 3층에서 옥상을 오르는 계단은 각가지 건축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압권은 외부 공간을 빨려 들이듯이 정면에 설치된 경사로이다. 여기에서는 경사로에 의해 내외부 공간의 교류가 주위 까지 확장되고 있다. 3층 까지의 각층의 이동은 역시 전면에 설치된 계단이 주가 되지만 이 경사로는 이 건물을 대지 전체와 함께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게 한다.
르 꼬르뷔제는 인도의 기후와 아메다바드가 준 기회를 통해서 진정 자유로운 건축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이 건물에서는 더이상 외관의 처리에 얽메여 주저한 기색은 없다. 후면은 콘크리트판의 그리드만이 단조롭게 보인다. 그러나 모든 부분은 건축가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4) 아메다바드 미술관
아메다바드에서 르 꼬르븨제에게 최초로 위탁된 작업은 미술관의 건설이었다. 아메다바드의 미술관은 도시의 중심적인 코어가 되는 것이다. 무한 발전의 미술관은 1930년에 발명지식의 박물관으로 응용되어 진전 1939년에 전개되었다.
이 건물은 여러차례 제안된 그의 미술관 건축에 있어서 개념의 원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계열의 건물중에서 이 건물은 마치 고대의 건축을 보았을 때와 같은 원시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챤디가르의 미술관이 파르테논이라면 이것은 파르테논으로 진화하기 위한 패스튬인셈이다. 이 건물 또한 폐쇄와 개방된 공간의 대비에 의해 건축적 힘을 발산케 하고 있다. 동계의 다른 2개의 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빈 중정이 있도 그 곳에 물을 담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내부의 채광 방식은 다른곳과 달리 천창이 아닌 고측광창으로 되어있다. 지붕은 고열을 차단하기 위해 흙을 덮도록 하였다.
이 건물은그의 성장하는 미술관에 대한 진화이전의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이 건물의 투박한 물성이 인도의 풍토에 있어서는 더 적합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3. 맺는글
르 꼬르뷔제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힘은 건축에 대한 고귀한 신념에 있었다. 「나에게 있어 건축이라는 말은 합리적이거나 기능적이기보다 그 어떤 마법같은 것이며, 압도적인 것이며,또한 우월한 것이며, 존경스러운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르 꼬르뷔제는 고전이래로 건축에 있어서 근원적인 힘의 의식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와서 그것은 합리적 정신에 의해 자발적으로 도달가능성을 믿었다. 인간의 이성의 작용이 미적 추구와 동시에 실현될 수 있는 시대가 최초로 도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작업은 인간을 이롭게 하며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것이된다. 예술가야 말로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는 참다운 실천가이다. 그중에서도 모든 예술을 통합하는 건축가는 그 운동의 주도적 위치에 있다. 기계적 명석성은 파르테논의 완벽한 형식미와 동의어이다. 그러나 르 꼬르뷔제는 파르테논의 엄격한 형식뒤에 생명을 불어넣는 피디아스의 눈을 중시한다. 숭고한 것을 포착하는 정신에 건축의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근대의 기술이 예술가의 손에 의하여 더 좋은 세계를 창조하는데 공헌하게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르 꼬르뷔제를 말하면서 기능주의를 말하고 기계미학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변에서서 건축을 제대로 실천하는 예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와 동시대의 파이오니어들 또한 건축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자들로 보였다. 그는 페어런스의 사무실에서 「이곳에서도 건축은 하지않는 답니다. 그들은 고작해야 외형의 모양내기에 급급 하답니다」 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그렇게 의식될수록 진정한 건축을 창조하는 자신의 사명에 불타 있었다. 그는 불의에 마감되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칠줄 모르는 창작의 열정으로 인류 역사상에 귀중하고 풍부한 유산을 남기고 간 것이다.
건축에 담겨지는 그 수많은 관련성으로 인해 건축은 천박한 사람들이 끼어들게 되고 누구나 건축을 말 할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 중에서도 흔히 건축의 이슈를 논의하면서 인텔리젼트 빌딩에 대해 힘주어 말하거나 하이테크의 기술이나 C.M의 능률을 말한다. 그러나 그안에 르꼬르뷔제가 말하려던 건축의 참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는 한편에 기술이 있고 다른 한편에 건축이 있다고 했다. 우리시대의 산업의 발전 속에서 어쪄면 건축은 점점 망각되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점이 건축의 근원을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 르 꼬르뷔제 의 말에 다시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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