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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95.10 전시를 열면서 (95.10개인전도록)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09.2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050
내용

전시를 열면서

근래 야외 사생을 다니면서 자연과 더욱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자연은 다가갈수록 그 신비한 아름다움을 크게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풀 한포기 나무 하나 흘러가는 구름한점에도 오묘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순간 좀더 잘 그려보겠다는 욕심이라도 품게되면 즐거운 마음은 사라지고 미숙한 솜씨에 대한 뒤척임만 남는다.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정서는 환경의 악화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흔히 현대를 자아 상실의 시대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위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자아에 대한 무력감은 내면세게의 불안을 초래한다. 자연생태게의 파괴와 인간의 인위적 환경개선의 악순환은 인간을 점점 더 인위적 환경의 틀안에서 정서를 메마르게 하고 있다.

자연과의 접촉은 그러한 세파에 찌든 정신을 새롭고 신선하게 하여 준다. 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서면 붓질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두뇌활동은 정서의 자극으로부터 촉발되어진다. 그런의미에서 자연과의 교감은 인간의 정신에 신비를 유지하며 생명의 근원으로서 창조적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해줄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건축가다. 나는 건축이 다른 모든 예술과 똑같은 예술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대중들로 부터 예술가의 지위에 대해서 불안한 위치가 되어가고 있다. 근대이후 사회환경의 변화속에서 건축도 많이 변모해왔다. 그리하여 현대의 건축가는 인간의 잡다한 일에 신경을 써야하는 전문인이 되어가고 있다. 건축의 의뢰자들은 자신이 추진하는 건축사업에 대하여 자신의 관심에 따라 건축가를 기술자, 건축관련법률가, 디자이너, 도시설계자, 투자상담가, 그리고 위생공학가로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의 건축전문가들이 기꺼이 그 모든것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충직하여 그로 인한 이익을 구하려 한다. 그러나 기실 건축가 자신으로서는 자신이 꿈꾸고 추구하는 창조의 일로부터 벗어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환경은 인간을 형성하듯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불만을 갖고 있는 사이에 그 자신들이 정말로 형편없는 모습으로 되어 버린것을 깨닫는 것은 슬픈 일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는 건축가가 하나 둘 죽어가고 급기야 건축가는 예술과 무관한 전문가로 이 사회에서 인식 되는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시각 예술 가운데 회화는 가장 보편적인 미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의 이 시대의 상황에서 과거의 거장들이 그랬던것처럼 보편적인 미의 인식을 갖춘채 건축활동에 충실하여 우수한 건축창작에 노력함으로서, 건축가가 여느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과 같이 미술인으로서 자신의 예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예술가로 자라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때 말없는 아이로 자랐다. 사람들은 나를 얌전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 나의 삶은 자의식에 이끌린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인간이 살아가기 전에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것에 실망하였다. 인간들의 삶에서 보여지는 천박함은 나를 슬프게 하였다. 나는 좀더 인간의 고귀한 정신에 맞는 사회를 위하여 인간 모두가 철학가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문제가 타의와 강제가 아닌 인간 스스로를 자각한 이성의 힘으로 해결되기를 바랐다. 자의건 타의건 나의 마음은 사람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같다. 나는 언제나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생각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과 같았다. 때로는 인간의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는 말없이 통일된 행동을 하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나는 나의 생각이 방해받지 않는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을 간섭받지 않고 나의 경이로움과 호기심에 이끌려 노력할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고스란히 세월에 앗기지 않아도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안에는 우환이 계속되었다. 경제적 곤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고등학교 졸업때까지를 보냈다. 곤궁한 것은 해보고 싶은 일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괴로운 것이다. 내마음 안에 각인된 쓸쓸한 기억은 나의 인생을 늘 나의 삶이 끊겨진 자리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질 다른 인생의 의미들과 멀어져 왔다. 나는 인간에게 10가지의 행복이 주어진다면 그중 한가지만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16년전 한 위대한 건축가의 생애와 작품에 접하고 나는 건축가의 길을 갈것을 결심하였다. 나는 르 꼬르뷔제 의 생애와 작품을 접하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근대건축의 최대의 거장인 그의 삶은 항상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과 싸워야 하는 격렬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무언가 자신의 신념을 쫒아 자신의 삶에 투철한 사람에게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갖었다. 나는 그의 작품에서 근대에서의 참다운 건축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건축가, 조각가, 도시계획가, 저술가, 그리고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건축안에서 그 모든예술의 통합을 이루려 하였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건축가로서의 나밖에 모른다. 화가로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서이다]. 나는 그의 말의 의미가 무었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다방면의 노력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예술 창작은 주제와 싸우며 보일듯 말듯한 미로의 세계를 헤메다 탈진에 가깝도록 자신을 소모해야만 비로소 겨우 하나의 작품이 태어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준엄한 사실은 예술가가 현실의 지위나 명예의 영달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오직 자신의 내면세계의 발견만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고독한 존재인 점이다. 그런점에서 예술가의 괴로움은 업과도 같은 것이다. 대중들은 예술가가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결코 관심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중의 갈채마져 예술가의 참다운 성공은 되지 못한다. 예술가는 오랜기간동안 자신의 작품세계에 침잠하여 자신이 먼져 수긍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은 나의 친구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홀로된 길을 걸어와야 했다. 그것은 외롭고 힘든일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러니 나의 친구들이여! 나에게 편안하고 부유해지라고 말하려거든 너의 꿈을 이루어가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1995. 10. 24
김 석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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