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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94.07 르 꼬르뷔제를 찾아서 (프러스)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08.17
첨부파일0
추천수
2
조회수
2459
내용

1994. 6. 18


르 꼬르뷔제를 찾아서
(내가 LC를 찾아나서는 이유)












1994. 6. 18



김석환 / 울 건축
by kim, suk hwan


목 차


1. 내가 LC여행을 떠난 이유
2. Lc의 삶의 발자취 를 따라
1) 라쇼드 퐁
2) 건축창조의 생애
3) 그의 건축유산
4) 구축된 신화
3. 다시 건축을 향하여










1. 내가 LC여행을 떠난 이유
나도 다른 많은 건축가들처럼, LC의 건축과 삶에 매료되어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15년전 한 위대한 건축가의 생애와 작품에 접하고 건축가로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하였다... 중략... 나는 나의 건축의 길에서 항상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의식해 왔다 그것은 마치 호오돈의 소설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리던 어네스트의 정신이 고양되어 간것처럼, 나는 르꼬르뷔제의 생애와 건축을 생각하고 찿아나서므로써 나의 정신이 고양되어 감을 느꼈다.이말은 지난번 나의 사무실을 개설할때 발간한 브로셔에 쓴글의 일부이다. 여기서 술회한대로 나는 LC를 모델로한 건축속에서 나의 건축적 사고와 꿈을 키워왔다.
내가 설계를 처음 시작한 사무실에는 시리즈로 된 근대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집 이 있었다. 그것은 근대건축의 주요한 1, 2세대 작가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진정한 감동을 느낀것은 르 꼬르뷔제 한사람 작품뿐이었다. 라이트의 작품중에서는 로비저택과 낙수장이, 그리고 필립존슨의 작품에서는 유리의 집만이 좋아 보였다.
르꼬르뷔제의 작품에서는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타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볼수없는 건축의 참다운 예술성이 느껴졌다. 르 꼬르뷔제에게 있어서 역사는 미켈란젤로와 피디아스 뿐이라고 감지할수 있었던것만이 진실었듯이, 나에게는 오직 LC만이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이후의 나의 모든노력은 그를 모델로하여 설정되어졌다. 나는 그가 어떤과정을 통해 건축을 터득해 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먼저 과거의 위대한 건축의 체험의 감동으로 부터 비롯되어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때 그가 여행했던 여행의 길을 꼭 가고 싶었다. 찬란했던 인류의 유적과 LC가 남긴 실재의 건축을 답사하고 싶은 열망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때 여행의 제약이 없었더라면 그때 어떤 무리를 감수 하고서라도 여행을 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럴수 없었다. 우리는 불과 얼마전에야 해외 여행의 자유화가 되었다. 그리고 군복무와도 관계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현실여건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느끼고 알아야할시간이 제약에 묶여 그냥 흘러간다는 것은 좌절감마져 갖게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을 나는 13년 후에야 갈수 있었다. 나는 2년전 단독으로 LC의 동방여행의 정점이었던 파르테논과 그이후 그의 실제작품 들을 보기위한, 프랑스와 인도에 배낭여행을 하였었다. 그러나 그여행이후 그의 뿌리부터 다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삶의 환경과 계기속에서 발전해 갔는지를 이해하고, 그의 눈과 그당시의 상황으로 근대건축의 탄생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의 플러스사의 기획안에 그의 생애를 이해하고 나의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사무실을 접어두고 무작정 합류하였던 것이다. 내가 과거에 가고 싶었던 길을 13년후에나 가게된 상실감과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엇다.
나는 이번여행에서 그가 태어난곳과, 실패한곳, 죽음을 맞앗던곳 그의 무덤까지를 답사 하였다.그의 성공하고 유명한 작품보다는 그의 실패와 난관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술에의 열정의 강도나 신념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행동에서 더 잘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 LC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1) 라쇼드 퐁
라쇼드 퐁은 그가 태어나고 30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내가 그곳을 꼭 방문하고 싶었던것은, 그가 어떤환경속에서 그의 정신적 바탕이 형성되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곳에서의 어린시절의 추억은 그의 매력있는 작은 저서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열성적인 등반가인 그의 부친을 따라 다소 지겨을 정도로 자주 등산을 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의 위대함을 알았다고 했다. 안개 바다가 진짜 바다처럼 느껴졌다그는 수평의 평원을 더 사랑 했노라고 했다. 그곳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의 경계를 이루는 세계의 지붕인 알프스 산맥의 한 커다란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 -쇼드퐁은 그곳 쥬라정상에 위치해있다. 국도변을 따라 울창한 전나무가 높이 서있고 그도로에서 보면 넓다란 계곡 너머로 또다른 고원이 보인다. -쇼드퐁은 그곳 쥬라산맥의 그정상위에 별천지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그곳은 지형적으로 외부와 고립되어진채 외길 국도로만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LC의 외부세계의 동경, 특히 지중해에 대한 동경은 그러한 심정에서 나타난것일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이러한 환경이 그에게, 열열한 외부세계의 동경을 갖게하고, 그 강한 열망이 그의 여행에서 보고 느낀것들에 대해서 더욱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하였으리라는 것을 짐작되었었다. 그곳은 그의 전기에 묘사되어 있던, 그가 살았던 당시의, 나의 상상속의 모습과는 달리 제법큰 도시로 변모되어 있었다. 그러한 여건에서 그의 삶의 당시의 정서를 제대로 느끼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초기의 주택에서 그의 체취를 어렴풋 하게나마 느길수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17세의 어린나이에 그의 스승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설계했다는 페레주택과 그의 양친주택등 그지방의 풍토적 건축과 같은류의 건물이 너댓채 남아있다. 그것은 그지역 어디서나 흔히 볼수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이후 그가 파리에서 오귀스트 페레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익힌 경험의 산물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설계된 시워브 주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나중에 펼쳐보이는 건축과 같은것이 아니다. 그의 건축에대한 생각이 새로운 이미지를 갖고 태어난것은 좀더 세월이 흐른뒤였다. 그것은 건축에대한 근원적인 사고의 정리와 새로운 표현방식을 획득한 후였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건축이 태어나는 것은, 그가 그곳을 떠나서 파리로 이주해서이다. 그의 새로운 건축에 대한 생각은 그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 쇼드퐁에서는 아직 그의 건축이 보이지 않았다.
2)건축 창조의 생애
파리라든가 미국의 쌀롱에 드나드는 우아한 다골패들은 오늘날,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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