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새로운 시작에 서서…
1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목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때는 어떤 경우에든 설레임과 불안이 동시에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이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동안 건축을 터득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진로 설정에 따라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길 중에서 건축가가 되기처럼 갖추어야 할 조건이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건축가가 작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기도 어렵지만, 현행법상 규정된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무실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도 예술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며, 그러한 상태의 유지를 위해서는 사업가가 되어야 할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건축가는 사업가가 아니다.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창작에 몰두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무소 운영에 필요한 수주만을 위해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은 자신을 망살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나의 새로운 시작은 준엄한 현실적 시련과의 싸움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건축창조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축복이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 가운데 가장 보람찬 일이다. 건축은 인간이 삶을 의식하는데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고마운 도구이다. 건축은 인간을 안정하게 존재케 하며 인간 존재의 품위를 지니게 하며 인간이 애정을 갖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며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갖게 한다.
또한 건축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인간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 담겨진다.
2
건축은 위치와 양을 결정하는 단계로부터 모든 부분이 형상의 표정으로 인간의 감성과 대화하는 단계에로 다다른다. 인간이 건축과 만나는 것은 정량적 계산에 대한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눈에 의해 감지되어지는 형상의 사물자체에 대한 느낌이다. 그리고 인간의 미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사물로서의 전체적 통찰에 의한 미적 질서의 부여와 균정이 필요하다. 건축가는 그들에게 의뢰하는 건물을 직접 짓지 않는다. 진열장에 있는 작품을 내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오직 정신뿐이다. 우리가 건축을 한다는 것은 건축이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만 만족하는 정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상을 어떤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를 통찰할 상상력이 없는 건축가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물에 대한 구상 또한 실제적인 마감상태의 의식없이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어질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건축작품이 스터디 모델사진에서는 좋아보이고 실제 지어진 상태에서는 건축가 자신이 보기에도 볼품이 없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체적 인식 위에서 계획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가는 장인이 아닌 프로그래머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국가 정책가의 실무자들처럼 물량요구의 해결과 법률저촉여부의 점검만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만든 작품의 얼굴표정을 모른채 「계획에 의해」 많은 건물을 양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건축가의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막스 베버가 일찌기 “문화 발전의 최종단계는 <정신없는 전문인> <심정없는 향락인>들과 같은 텅빈 인간들이 인류가 지금껏 도달하지 못한 문명단계에 올랐다고 자부하리라”고 간파했던 위험에 처해지는 것이다. 건축은 예술가의 눈을 필요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업적 사고에 맡겨져 있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비극적인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건축가들조차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우기 대중들의 눈에는 건축이 온갖 산업활동의 산물로서만 인식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건축이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상실한 채 산업화의 도구도 전락되어가고 있는 점이다. 오늘날 도회지 건축에서는 어떠한 장소적 컨텍스트에 의한 창조적 영감도 떠올릴 수 없는 기계적 질서에 따라 표정없는 거대한 상자들이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상황때문에 현대건축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도시안에서도 우연히 마주치는 균형이 잘 잡힌 건물에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멈춰서 있게 되거나 어떤 공간 안에서의 분위기에 아름답고 기쁜 마음이 유발되는 것은 진정으로 건축의 예술적 속성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짓는 모든 건물이 모두다 그렇게 느껴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3
나는 15년전 한 위대한 건축가의 생애와 작품에 접하고 건축가로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하였다. 나는 르꼬르뷔제 작품집의 서문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는 「70세나 되어서도 꾸지람을 듣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로부터 온갖 오해와 비난을 감내하며 오직 자신의 신념의 확신에 따라 순수한 창조에의 열정을 기울여 건축사상 가장 빛나는 창조의 업적을 남기고간 것이다.
나는 나의 건축의 길에서 항상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의식해 왔다. 그것은 마치 호오돈의 소설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리던 어네스트의 정신이 성장해간 것처럼 나는 르꼬르뷔제의 생애와 건축을 생각하고 찾아나섬으로써 나의 정신이 고양되어감을 느꼈다.
나는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 건축의 실제모습을 알지 못한채 도면을 그렸다. 내가 다가설 건축의 실체에는 가까워지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나는 나의 작품을 설계할 기회를 갖고 싶었다. 20세때 고향인 전주에 우리집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나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계획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나는 건축의 원점을 맴돌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꼭 훌륭한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어느 사무실에서나 건축가로 키우기 위해 직원을 채용하지는 않는 법이지만 확고한 철학을 지니고 작품하는 사무실이 아니면 아무리 경력이 오래되어도 건축의 실체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군에서 설계와 공사행정실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다행이었다. 여러 지역의 많은 건물의 시공을 감독하면서 실제 건축이 이루어지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다. 특히 자연지형과 주변환경을 변형시키는 부지조성공사를 보면서 건축과 환경에 대해서 지각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제대후에는 직접 상은전산센터의 전과정을 시공하며 건축의 실체를 이해하였다. 그 이후 다시 건축설계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확실히 사물을 인식하며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건축을 사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이후에 나는 건축의 올바른 사고와 창의력을 넓히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질이 아닌 허상과 과장된 디자인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축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갖추어야 하고 미의식의 함양과 감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축을 발견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우직하고 미련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후회와 미련도 없다. 내가 그토록 건축에 다다르지 못할까봐 불안해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오늘 이 순간에 이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마음의 상태로 새로운 인생의 행로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오직 이렇게 기도한다.
진정 건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치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1994. 1월 29일 창립 발간 브로셔. 3월호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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