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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시 등단 수상소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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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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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5
내용

시 등단 수상소감

 

품격 높은 시전문잡지 포에트리슬램에서 부족한 제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신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전달받으며 어릴적 시절이 회상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생활에서 새해가 되어 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 교과서를 받고 그 안에 실린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글을 대할 때마다 살아가는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그 이야기 속의 세상을 감동스레 느끼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우주자연의 경이로움에 이끌리면서 시적 상념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평생 목표로 삼은 건축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내 자신이 문학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내면 안에 간직돼온 문학에 대한 애정을 늘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문인들과 늘 교유를 해 왔습니다. 오래전에는 이청준 선생님과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 분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기운을 회복하시길 바라며 청계산에서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할 때 그린 일출 스케치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가까이서 뵈었던 이문구 선생님 장례식때는 장례의 전 과정에 참가하여 장지로 가는 길이라는 글을 써서 수필지에 싣기도 했었습니다.

 

그처럼 문학을 소중히 의식한 것은 순수한 정신세계를 지녀가는 분야를 마음 속 깊이 동경하고 존중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때때로 떠오른 시상을 적어온지가 어언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작은 시집을 펴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이 제 삶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의 하나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번 수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진중하게 시를 써 보고자 합니다. 삶과 우주만물의 갖가지 현상들을 대하며 전해오는 감동들을 제 안에 지녀온 감성으로 더 정성껏 빚어보겠습니다.

 

2022422

一梅軒에서 김석환

 

 

 

 

 

 

1. 한 낮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다만 구름이 흐르고 수박이 자라고

고추가 붉어지며 고구마 넝쿨이

이랑을 넘나드는 오후를

나는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꽃잎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순간과

파란 하늘이 가장 드넓게 보이는 때와

녹음이 짙어 가는 찰나의 표정을 보았다.

 

산 그림자 길게 늘어져

서늘한 기운이 몸에 걸쳐올때까지

내가 머문 흔적은 없었다.

 

 

 

 

2. 영선암

 

 

생에 애착이 느껴질 무렵

두려움도 찾아왔다.

 

세상 사람들 모두

즐거운 표정 짓건만

까닭 없는 슬픔이

휘감아옴을 느낄 때

홀로 떠나왔다...

 

숲 내음 고여 드는 암자

마루턱에 앉아 머물 때

문득 세상 인연 그리움이 밀려오면

황급히 떠 밀쳐 내고

 

수많은 날 기다려 왔건만

아직 찾아오지 않은 느낌

기다리는 이의 눈길에 닿는

마당을 조용이 비추어가는 햇살

 

산천은 산짐승처럼 늘 깨어 있고

다시 찾아온 봄날

신록이 번져가는 기운이 반가워도

아직 다 덜어내지 못한 번뇌에

충만한 아름다움이 부끄러운 수도승

 

 

 

 

3. 아우라지

 

 

돌아갈 길은 멀고

빽빽이 산굽이 둘러쳐

모든 이야기는 다만

물길로 오간다.

 

멀어서 그리움이 일고

멀어서 슬픔이 일고

조양강 강물도

더 푸른 빛깔이 되었네.

 

돌아갈 길 아득해

머물러온 땅

그리움 접고 돌아보면

흰 구름 한가히 산등성이 위로 떠가고

 

동박꽃 피는 소식

강바람 타고 올 때

구절리 처녀 볼엔 살포시

수즙은 미소 인다.

 

 

 

 

4. 구인사 가는 길

 

 

수북이 쌓인 너른 눈밭 가운데

미라처럼 열 지어 서 있는

고추나무 그루터기 사이로

싸하이 스쳐가는 바람

 

멀리 탐미로운 자태를 뽐내는 능선위에서

차가운 빛깔을 띠고

수묵화의 필선처럼 서 있는 나무들

 

멀고 가파른 산사길

미끌리는 걸음에 늘여지는 시간 동안

내 몸에 배어오는 투명한 겨울 정취

 

길 끝에서

고향집처럼 살갑게 만난 절집

 

그 곳을 비추는

유독 따스한 햇살은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을 감싸고

드문드문 맺히는 물방울이

구슬처럼 반짝인다.

 

그 순간

나의 감각은

다 사물로 달려가고

내 안은 가벼워진다...

 

산사를 나오는 길

오늘 중으로 분주히 왔다가는

도시인들의 삶의 얇음

 

한낮 햇살을 받으며 녹은

양지녘 눈길의 질척거림

그 흔적과 더불어 따라갔을

오늘 내 생의 순간...

 

눈이 쌓여 더욱 깊어진

산사 어귀의 마을

 

비스듬한 언덕위에 선 초가 울타리에

겨울 햇살을 받은 대숲에서

연푸른 빛깔 푸르름이 빛나고

 

우리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 눈에 서린

다른 그리움.

 

 

 

 

5. 국화

 

 

어떤 기다림인가

 

들녘은 온통 다 비어가고

이제 태양빛도 더 강렬한 정염을 보이지 않고

초목은 잎을 떨구며

이별의 사념에 잠기려 할 적에

꽃망울을 맺으려 하는 까닭은

 

찬이슬이 밤새 내려앉은 날

피어난 국화 꽃송이의

수려한 자태

 

하지만 그 표정엔

봄 꽃 같은 들뜸도 없이

맑디맑은 옹달샘의 고요함과

긴 세월을 기다린 의연함 뿐

 

이제 모두가 이별의 말만을

꺼내려는 시기에

봄날을 잠시 되돌아보게 하다

차가움 견디는 결연함으로

허전해진 세월을 위로하려고

은근히 피어난 꽃이여

 

 

 

 

6. 직소폭포

 

 

묵묵한 걸음 쌓아 가면

신선봉과 연화봉

양미간을 가로선 절벽에

하얀 비단 실타래

한 줄로 늘여 놓은 듯

직소폭포가 걸려 있다.

 

업장 털으라고 시킨 일이듯

늘 같은 꼴로 저렇게

실타래만 감던 세월

깊이를 잴 수 없는 소가 자리를 잡고

그 깊이만큼

푸른 물빛을 띨 때

용의 구담(口談)도 깃들어

함께 살았다.

 

세상 끝, 천상의 끝인가 시작인가 모를

그 막다른 절벽에

처음이나 지금이나

하늘과 속세를 잇고 있는

하얀 비단 실타래 타고

 

간혹 마음이 밝아 올

천상 이야기 한 자락씩 흘려 나와서

 

오늘 내가 처음 찾아들 때도

후련하도록

가슴 한 번 크게 쓸어 주었다.

 

 

 

7. 밤바다

 

 

밤바다는 연인들 가슴앓이이듯

언제나

그리움으로 일렁인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젖은 자갈밭 밟으며

숨결 들리는 곁으로 다가가면

바다는 느릿하게

한번 뒤척이고는

이내 무겁게 침잠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저 바다 언저리에 빛나는

아스라이 먼 뱃전 불빛은

처량히 멀어만 뵈고

별을 헤던 밤바다의

외로움도 깊어만 간다.

 

오랜 세월 적막을 참아 오다

목이 메여 버린 바다는

새벽까지는 그렇게 항상

밤새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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