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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서울의 산하'전을 마치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09
내용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서울의 산하'전을 마치고...

 

 

일주일간의 서울의 산하전을 마치고 그림을 떼어왔다. 흰 벽면 상태에서 그림이 한 점 한 점 채워져 나갈 때면 창백했던 벽면과 그림이 함께 생명력을 얻고 이야기를 하는 것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그림을 철수할 때는 창백한 벽면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철수를 할 때는 그 벽면만큼이나 작가인 내 마음도 허전해진다.

 

 

 

그림 전시

                                               김석환

 

싸늘한 백짓장 같은

흰 벽면에

내 그림이 연달아 걸려간다.

 

처음 나들이를 나와

그 벽면이 낮선 듯

자꾸 뒤척이며 기침을 한다.

 

하나하나 눈길로 다독이다.

그만 쉬라 할 때에도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자꾸만 말을 건넨다.

 

손님과 예기하러

눈길을 돌리자

벽면 끝에 걸린 그림이

다른 이에게

두런두런 말을 걸었다.

 

눈길 닿지 않은 그림들은

저들끼리

말을 건넸다.

 

낮선 벽면에 자리를 잡은

그림들이

그렇게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수런거린다.

 

온기 없던

창백한 벽면도 깨어나

함께 수런거린다.

(20200214)

 

 

전시를 할 때마다 매번 전시가 어렵게 느껴진다. 전시할 그림을 준비하고 책과 리프렛 등을 제작하고 개막 하루 전날 전시장으로 그림을 옮겨서 전시주제에 알맞게 설치를 하고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다시 걸었던 그림들을 철수하는 과정 속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수반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더 벅차고 어렵게 느껴졌다. ‘서울의 산하라는 이번 전시 주제가 말해주듯이 작품을 그리며 오가는 지역이 방대하고 그릴 대상도 많아서 목표한 장면들을 다 그리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책과 논문을 쓰는 것까지 겹쳐서 전시 개막 때까지 긴장 속에 준비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일상 활동에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번시 기간에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찾아주셨다. 여러 지인을 비롯하여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발길이 닿은 사람들도 많았다. 전시를 한 인사아트센타가 인사동에서 가장 손꼽히는 전시관 중 하나이고 공간도 크고 좋은 편이어서 인사동 쪽 나들이를 할 때 이곳을 먼저 찾는 사람도 많다.

 

이 전시장은 현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나 같은 전북지역 출신 작가들을 지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 년 전에 후년에 전시할 작가를 공모해서 선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동안 나는 여기서 북한산 그림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북한산전, 그리고 올해 서울의 산하전 등 여러 차례 전시를 해 왔다.

 

이번 전시를 본 분들은 한결같이 지역적 방대함에 놀라워했다. 서울의 내사산과 외사산을 아우르고 한강의 시작점인 두물머리부터 하구까지 여러 곳들을 그려 전시했다. 한강 그림은 특히 과거에 겸재가 남긴 경교명승첩에 그려진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그 그림에 담긴 풍광과 현재 나의 시각으로 본 그림들을 견주어 생각하며 그린 그림들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서울의 입지를 형성하는 산과 강 등을 20여년 가까이 꾸준히 그려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대상을 전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기회가 되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이번 전시가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그 오랜 여정의 세월과 그 그림들을 그리러 오간 순간에 대한 감회가 크게 일었다.

 

전에 세계문화유산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교수님이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물어서 이제 좀 세부적으로 서울의 입지를 돌아보며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장면에 대해서도 좀 더 나은 그림이 될 수 있게 다시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전시가 끝나기 하루 전날 아주 특별한 손님들을 만났다. 전에 남산에서 그림을 그릴 때 우연히 만났던 이찬영·신예지 커플이 멀리서 이번 전시를 보러 왔다. 두 분은 대덕연구단지와 서울지역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선생님 스치는 인연에서 작품의 세계로 초대를 받아 영광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서울을 이토록 멋지고 장엄하게 담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라고 썼다.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또 다른 두 분도 특별한 분들이었다. 한 분은 북촌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전시 소식을 알려드렸었는데 전날 전시장에서 만날 시간을 미리 정했었다. 그런데 전시장에 보드판으로 부착한 작가의 글로부터 예전에 했던 도록의 글까지 꼼꼼히 다 읽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그렇게 큰 관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그 분은 작가님의 전시회를 보면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여행할 때처럼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했고, 많은 감정이 오가면서 정리가 되고 힐링을 얻었어요. 작가님께서 어떤 마음, 감정을 갖으시면서 이 전시회를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제가 여기에 와서 힐링을 받음만큼 작가님도 이전시회를 통해 힐링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이렇게 멋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행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썼다.

 

다른 한 분은 우연히 들른 것 같았는데 첫 그림부터 아주 자세히 보면서 느낀 소감을 작은 수첩에 메모하기도 했다. 내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하니, 그림에서 에너지, 슬픔과 기쁨, 생명력 등이 느껴진다고 했다. 슬픔과 기쁨의 느낌은 지금까지 아무도 말한 적이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방명록에 작가님께 산들이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죽음조차 살아 있게 만드는 굵은 선과 에너지, 삶을 관통하는 그 자체인 형상들, 산을 넘어서 사는 것, 살아 있는 것의 진리를, 생생하게 느끼고 가요. 너무 감사합니다. 산의 신비로움과 강인함, 가장 슬프게, 가장 고독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등등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가요~ 얼른 지갑 두둑이 만들어 선생님 작품 구입하러 올게요(^)” 라고 쓰고 갔다. 글을 대하며 그 진솔함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전시는 그동안 혼자서 생각하고 표현해 온 것들을 관중과 교감하는 장이다. 그리고 전시를 열게 하게 되면 내가 그린 그림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전시에 오셔서 앞의 손님들처럼 스스로의 생각을 예기해주거나 글로 남기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반가운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손님들은 내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작품들을 가장 깊히 이해해주신 점에서 가장 반갑고 고마운 손님이었다.

 

마지막 날 그림을 철수하는 부담을 갖고 약속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찍 전시장으로 나갔다. 평소처럼 지나다 들른 분들도 계셨다. 모두 그림을 뗄 때가 가까워져서 바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철수를 시작했다. 맨 처음 철수를 시작한 가로 7.32m의 지축동에서 본 북한산 전경은 알바를 부탁한 제자와 맨 나중에 들른 관람객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레 벽에서 떼어 바닥에 펴 놓고 갈무리를 했다.

 

전시를 마친 오후에 낙산에 올라 북한산 능선으로부터 뻗어 나와 지맥의 갈래가 나뉘며 서울을 감싸 안는 산세의 그림을 그렸다. 쓰고 있는 글에도 필요한 장면이다. 그렇게 다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전시를 마친 후의 허전함을 달래는 가장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202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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