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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북한산 원효봉 산행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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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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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98
내용

북한산 원효봉 산행기

 

 

오전에 일을 하다 산행 채비를 했다. 시간이 없지만 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시간이 없어 산을 자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49일 고대산을 다녀 온후 처음 오르는 산행길이다.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 효자마을회관 버스 정류소에 내렸다. 길가에 선노랑 애기똥풀 꽃이 눈길을 끌었다. 대로변 가게 옆길로 들어가 늘 오르던 산길로 접어들었다. 원효봉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다 그려지지만 몇 달만에 다시 이 길을 오르다 보니 전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다보니 오르는데 부담이 없었다.

 

 

 

 

애기똥풀

 

김석환

 

 

이름도 얄굿은 꽃이름

애기똥풀

선명한 노랑 꽃술이

질펀하고 탐미롭다.

 

진초록 잎사귀 사이로

솟아오른 꽃대 위에

팔레트에 짜놓은

수채화 물감처럼 선명히

갈기 세워 나풀대는

진노랑 꽃송이

 

그 예쁜 꽃 이름을

누가 그리 불렀나.

 

젖내 배인 아기의

선노랑 변을 보고

엄마가 환한 얼굴로 다가가

내 세끼 똥쌓어하면서

얼레이던 사랑의 미소가

그 꽃술에 하늘거린다.

 

 

서암문을 지나 성곽의 여장 그루터기가 연속해 남아 있는 북한산성 북측 일곽을 지났다. 그 오름길 중간에 있는 전망 장소를 지나 다시 계단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위쪽 조망 장소에서 우측으로 원효암으로 다가가 다시 좌측으로 에둘러 성곽을 따라 올랐다. 지난 고대산 산행때는 진달래가 참새 주둥이처럼 뾰족뾰족 솟아나고 있었는데 어느세 진달래 꽃술이 말라 시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파릇한 잎이 돋아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신록이 깊어져 있었다. 먼 산은 푸른 옷을 두르고 울창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흐트러진 마음을 치유하고픈 갈급한 심정으로 산을 찾았다. 마치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아가듯한 마음으로 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늘 산을 치유의 장소로 의식해 왔다. 언제나 원초적 체취를 간직하는 산이야말로 모든 사물을 그에 비춰 본래의 모습으로 바르게 자리잡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내 마음에 착찹한 심정이 생긴 것은 어제 있었던 시인 등단 행사 때문이었다. 내가 재작년에 시집을 낸 후 알았던 어느 시인이 나에게 시인 등단을 권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를 10편 정도 추려 전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빠서 진행을 못하고 있었다. 올해 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연배 높은 다른 시인을 만나던 차에 그 예기를 했다. 그랬더니 시 10편을 추려서 메일로 보내달라는 문자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어제 시인 등단패를 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서 시상이 떠오를때마다 끄적이듯 시를 써 왔다. 그리고 재작년 환갑을 지나며 그를 핑계삼아 시집을 펴냈다. 부족하지만 어쩌다 스스로 그 시집을 펼쳐보면서 지난세월 살아오면서 느꼈던 나의 감성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나는 그 사이 등단을 하려고 문단 주변을 기웃거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등단 시인이 된다면 참으로 기쁠 것 같았다. 그러다 아는 분들로부터 시인 등단을 권유 받으며 설레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등단식을 기다려왔었다. 그런데 몇일전 보내준 책을 보고 그 환상이 다 깨지고 말았다. 책에 실린 나의 글이 잘못 쓰여진 데가 있었다. 순간 망연자실한 심정이 되었다. 문학인으로서 등단하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일 수 없다.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내 글이 잘못 쓰여져서 영광스럽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책을 보내 지인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지만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어제 등단식에 참가를 망설이다 참석해 인사를 하고 급히 돌아왔다. 모두 저녘을 먹으러 가면서 함게 가자고 하는 것을 뿌리치고 나왔다. 시간이 없기도 했다. 내 글이 잘못 실린 일이 나의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괜한 일을 자초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등단이라는 것이 나에게 애초에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이 얽매여드는 것 같기도 하고 자유롭게 끄적이던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나을수도 있다.

 

어제 등단식 행사가 포엠 카페 앞 야외에서 열렸다. 조금 늦게 도착하니 마당에 안쪽을 향해 의자가 배열되어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보는 지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큰 화환도 많이 놓여 있었다. 나는 일을 하다 바삐 행사에 참석만 하고 올 생각으로 혼자 갔지만 다른 수상자들은 가족들이 축하도 해 주었다. 이번에 나 말고 한분의 신인상 수상자가 더 있었다. 그리고 황진이 문학상과 번역상 수상자도 있었다. 그 시인들을 아는 많은 문인들도 와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런 격식과 행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졸업때도 가족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농사 짓는 집안 일이 바쁜데다 다 아는 일을 두고 행사에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행사마다 혼자일 때가 많았다.

 

북한산

 

김석환

 

무작정 산으로 간다.

 

메마른 논처럼

황폐한 마음을 삭이러

 

허기진 마음에 새 기운을 얻고

척박한 마음을 적시러

산으로 간다.

 

세상살이에 부대끼다

심난해진 마음을 추스르러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험한 암릉길로 이어진

산 꼭대기까지

나를 보듬고

삭여주었던

그 품의 기억을 더듬어간다.

 

마음이 산만할때면

회귀 본능처럼

무작정 그 품을 헤집고 들어선다.

 

태고적 그대로 지켜온 장엄한 기세

맑고 깊은 숲 내음

자취없이 흩어지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온갖 존재들의 뒤척임

 

저 산이 태어나던

태초의 침묵을 대하러

그 품을 찾아간다.

 

그 안에서

생명의 기운을

다시 일깨우러 간다.

 

반길지 말지도 모른채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태어난 원점으로

척박한 땅에서 나뒹굴던

허기진 몸뚱이를 이끌고

다가간다.

 

일말의 허영과

헛된 꿈을

단호히 밀쳐내고

 

시원의 품 안에서

나를 씻겨내고

나를 찾아야 한다.

 

정상 저 너머로

시원의 세계가 펼쳐보인다.

 

산능성이 위로

펼쳐지는 그 너른

산세의 품에 도취되면서

내가 다시 일깨워진다.

 

다시 깨어나고

새 생명이 차 오른다.

 

 

원효봉 정상 앞에 놓인 바위 봉우리를 넘어 정상에 올랐다. 마치 고향집을 찾아들 듯 주변 풍광이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늘 그렸던 장소에 의자를 놓고 화구를 펼친 다음 풍광을 바라보면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구도를 잡았다. 그리고 먹물로 앞에 펼쳐보이는 장엄한 정상부 산세를 그려나갔다.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기세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신중히 바라보면서 한지 위에 그려나갔다. 그렇게 집중을 하다 보니 속상하던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 뒤쪽에는 역광에 비친 의상능선이 산세를 크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 젊은이가 다가와 그 안에 보이는 절이름을 물었다. 다른 분은 다가와 이어지는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더러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내가 북한산을 휜히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재로 북한산을 몹시 좋아하고 오래 다니며 그려와서 평소에도 머릿속에 다 그려지기도 한다.

 

산을 올라온 사람들의 표정이 다 행복해 보였다. 연인과 함게 처음 올라온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오자는 말이 들렸다. 이번에 올라와서 북한산의 진면목을 느끼게 되었을 것 같다. 앞쪽 바위에서 아가씨들이 번갈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생기 발랄해 보였다. 풍광에 감동되어 더 기분이 즐거워졌을 것 같았다.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스스로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듯 싶었다.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남자분이 다가가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자신도 찍어달라고 했다. 사람들의 명랑한 기분이 서로를 더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올라오던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그림 그리는 것을 보아도 되느냐고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러라고 했다. 지난번 전시때 만든 리프렛도 보여주었다. 그림을 막 그리기 시작할 때는 보여줄게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 보여주려고 챙겨두었다.

 

몰두해 그림을 그리는 사이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음이 텅 비워지는 것 같았다. 공기가 깨끗했다. 산을 그리는 순간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졌다.

 

햇살이 누구러져 갈 때 북문쪽에서 아는 분이 올라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북한산에서 자주 만났던 분인데 올해 인사아트센타에서 열었던 내 전시에도 다녀갔었다. 나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고 내려섰다.

 

옆에 가족과 함께 올라와 쉬고 있던 분이 어느 길로 내려가는 것이 좀 더 수월한지 물었다. 내가 효자리 쪽이 좋다고 했다. 여전히 바쁜 일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서둘러 스케치를 마치고 산을 내려섰다.

 

구파발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가다 산행길에서 자주 지났던 연서시장에 들렀다. 진솔한 삶내음을 대하고 싶었다. 어제 일을 겪으며 시장에서 수더분하게 펼쳐지는 삶내음이 더 그리워진 것 같았다.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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