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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살아있어야 할 수 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92
내용


살아있어야 할 수 있다.

 

 

요새 트로트 가요가 유행이다. 미스트롯이니 미스터트롯이니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회자되면서 열풍이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세시봉, 7080가수 등 이제는 중년 이상이 된 가수들이 새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정호님 나이나 그 보다 나이가 많은 가수들이 다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김정호 님도 살아계셨으면 저렇게 방송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살아 있다면 익히 아는 노래 이외에 어떤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김정호님은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셨는데도 한국 가요 역사에 우뚝 서 있다. 그 분의 수많은 곡들이 후배 또는 다른 가수들에 의해 지금도 다시 불리워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분을 아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음악 흐름에 빠져들면서 그 분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할 수도 있지만 특히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나 젊은 가수들은 그 분의 노래를 다시 돌아보며 무대에 나와 부르기도 한다. 얼마전 유투브에서 가수 장민호씨가 상복 같은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와 김정호님의 을 절절히 부르는 모습을 보았었다. 면 년전 가수 진성씨는 ! 김정호라는 추모 음악회에 나와 역시을 헌정곡으로 불었었다.

 

요절한 천재로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빈센트 반 고호일 것이다. 가난과 고통 속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불꽃같은 생을 살다가 37세의 짧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삶이다. 그는 전업화가이면서 생전에 그림을 단 한점 밖에 팔지 못하고 동생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생계를 지탱해갔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바싸고 귀중한 예술로 대접받고 있지만 그는 물감을 구할 돈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의 생애중 약 10년의 기간에 작업한 것들이다. 만약 그 분이 오래 살았던라면 지금까지 아는 그의 그림보다 훨씬 뛰어난 걸작들을 남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으면서도 그 것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들을 책이나 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이 저며드는 느낌을 느낀다.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요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안타까움은 늘 우리를 슬픔에 젖어들게 한다. 그 단어에서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한정이다. 병이나 뜻하지 않은 일로 사람들의 일반적인 수명에 비해 훨씬 짧게 삶을 마감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요절의 단어 앞에서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삶은 곧 시간이고 그 것은 무엇인가는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나는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꿈틀거리고 움직이며 뭔가 하는 동안 금세 하루가 지나간다. 때로는 괴로움을 겪고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앞서간 천재들을 아프게 느낄 때마다 아직 시간이 주어져 있음을 감사히 여기게 된다.

 

몇 일전 북한산 그림 전시가 끝났다. 전시장에 다녀간 이태은 교수는 카톡방에 일매헌 선생 전시중에는 역대 최고... 그러나 안심하세요, Best is not yet come^^” 라고 적었다. 이번 전시는 나 스스로도 그동안 해온 북한산 작업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매듭 하나를 맺는 느낌을 가졌다. 또한 앞으로 점 더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느꼈다.

 

전시가 끝나고 바로 맞게 된 설 연휴기간 동안 다시 북한산 그림을 그렸다. 작업 도중 바빠서 전시장에 오지 못한 한신대 총장의 전화를 받았다. 못 본 것을 아쉬워하며 헉교내 전시 시설에 전시할 것을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더 나은 북한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러 북한산에 오르다보면 내가 언제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전에 내가 오르던 곳을 몇 번이나 다시 오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내가 다녔던 길을 전부 다시 돌아볼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20세 때 20세기 최고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그가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소양이 그의 건축에 녹아들었다는 생각에 그의 첫 생애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십여회의 회화 개인전 경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경력과 미협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화가로 불리고도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직업 건축가이다. 그리고 본연의 일에 좀 더 의미 있는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

 

문득 요절한 천재를 떠올리다 보니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순간이 더 소중히 다가왔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 같다.

(20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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