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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이제는 전시장을 떠나야 할 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81
내용


이제는 전시장을 떠나야 할 때...

 

 

아침에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가 이틀 남았다. 전시장으로 가면서 이제는 전시장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철수를 해야 해서 사실상 온전히 전시를 볼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전시가 시작된 후로 매일매일 나가서 전시를 보러온 손님들을 만났다. 내 작품을 보고 전하는 예기나 방명록에 적은 소감 등을 보면서 내가 그려온 그림들에 대해서 느낌을 나누고 나 스스로 정리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었다. 일주일 중에서 그렇게 5일이 훌쩍 지나갔다.

 

1052분 종각역에 내려 지상으로 나가는 사이 제일은행 지하 썬큰에 설치된 청동조각을 보다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 공간에 그 작품이 있음으로서 그 공간에서 조형미를 느끼며 지나게 된다는 생각에 예술 작품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전시하는 공간에서 빈 벽 일 때와 작품이 걸렸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른 것과 같다. 그리고 같은 전시 공간도 매번 작가와 작품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리 보면 일상에서의 조형예술물의 존재성을 실감케 되고 인간이 해온 예술 활동의 의의와 가치를 느끼게 된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인사동 거리가 한산했다. 인사아트센타 입구에 당도하니 길 건너편 사보당 주인이 붙여준 내 포스터가 보였다. 한 분이 지나가다 다가서서 그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인사아트센타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출입자 명부에 전화번호를 기재하고 8층으로 올라가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한 분이 내 그림을 둘러보고 있었다.

 

1150분 미리 점심 약속을 한 허소장이 전시장에 들어섰다. 건축계에 함께 몸담아오면서 잘 아는 사이인데 개막일에 와 주었는데 많은 손님들과 예기를 하다 제대로 예기할 시간이 없어 날을 잡아 점심을 한번 하기로 했었다. 전시 기간 중 손님들을 자주 모시고 갔던 산골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찻집으로 가서 생강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느긋하게 예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 후 전시장으로 올라와 있다 보니 김종영 구청장이 비서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 전에 오셨던 민소장님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비서실에 책을 전해 주었었는데 오늘 아침에 구청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었다. 시간을 내기가 정말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 밖에 내 전시장을 찾아주어서 전시 작품들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종로구 안에 적당한 전시 공간이 있으면 작품을 갖다 걸 수 있다고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떴다.

 

잠시 후에 다른 두 분이 들어왔다. 한 분이 책을 한권 달라고 하면서 내가 그린 국녕사를 보고 반가웠다며 거기에 만불상에 불상 하나를 조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갑다고 했다. 함께 들어온 분은 호텔 객실에 걸그림을 찾아주는 콜렉터라고 했다.

 

2시경 내 시집에 표사를 써 주신 전기철 시인이 왔다. 요새는 서로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금세 못 알아볼 때도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함께 작품들을 돌아보니 전보다 더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데 볼일이 있어 바로 가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차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금세 떠나게 되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2시가 지나 이희철 건축사가 예고 없이 들러 잠시 예기를 나누다 갔다. 그리고 이어서 어떤 부부가 들어왔다. 그림 도구를 어께에 걸치고 있어 그림 그리시는 분이냐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 분이 남편이 나와 같이 건축을 했다고 해서 존함을 물으니 건축계의 대 선배인 임충신 교수였다. 전에 인천의 연수원에서 전문가 보수교육을 받을 때 그 분의 강의를 듣기도 했었다. 건강관리를 얼마나 잘 하시는지 고령에도 얼굴에 윤기가 나고 음성이 우렁차게 들렸다.

 

330분 미리 약속을 했던 성재용 사장님 부부가 들어왔다. 오늘 병원에서 검진 결과를 보고 왔다고 했다. 내가 두 번이나 그 분의 집을 설계했었는데 처음 작업을 한 이후 자주 만나왔다. 부인이 회화 전공을 했는데 켈리그라피 강사를 한 적도 있다. 전시를 둘러보고 아까 점심때 갔던 찻집으로 가서 한가롭게 예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마주 앉아 안색을 보니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어 보였다. 워낙 건장하신 분인데 작년에 집을 지을 때 무리하게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지금은 양평 집에 있을 때가 더 많은데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하면서 갔다.

 

430분 기다리던 박종관 교수가 한 여자 분과 함께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예기했다. 여자 분은 화가라고 했다. 그 분은 지라학과 교수인데 몇 일전 고양신문에 연락처를 부탁해서 초청을 했었다.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힘을 쏟고 있고 얼마 전 북한산의 지리에 고나해 강의를 할 때 내가 그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했었다. 그 분들과 함께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많은 예기를 나누었다. 박교수는 내 그림이 개인이 보관할 게 아니고 어느 국가 기관이 보관해야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내를 북한산의 수호신(守護神)”이라고 쓰고 갔다.

 

 

잠시 후 작년에 내 전시를 보러 왔던 분이 다시 와서 옷을 통로에 벗어 놓고 내 그림을 오랫동안 찍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었다. 큰 카메라도 그림 하나하나를 해부하듯 오랫동안 촬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관람에 지장을 주어 그만 하라고 하니 멈추고 돌아나갔다.

 

잠시 후 그림을 그린다는 세 분이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이 내 그림 중에 서명한 글자에 획이 하나 빠진 것 같다고 해서 다시 보니 그러했다. 표구를 하지 않은 그림이니 고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6시가 넘어가니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전시장이 한적해졌다. 그 곳 직원들과 철수할 것을 상의 하니 내일 오후에 다음 전시 작품이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가급적 일찍 해달라고 했다.

 

날짜로는 내일까지지만 이제는 전시장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작품들을 떼어 운반하고 다시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운반 차량과 아르바이트 할 제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철수할 방법을 생각하면서 허전한 기분이 밀려왔다. 전시 연락 받은 사람들 중에 늦게 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마쳐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정든 공간과 작별을 해야 한다. 몇 일간 내가 임대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내 작품들을 펼쳐놓고 자세히 점검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예기를 나누는 것이 힘이 들고 체력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평소와 다른 특별한 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20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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