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ENU

Essay

제목

전시장에서 듣는 삶과 인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00
내용

전시장에서 듣는 삶과 인생

 

 

전시를 하다 보니 평소 알지 못했던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어 인사동에 나왔다가 들르신 분들도 있고 지인이 전시 소식을 전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한 분과 연결되어 초청해 오신 분들도 있다.

 

한국 사진역사의 맥을 이루는 전민조 선생님도 그 중 한분이다. 그 분은 동아일보 사진부장 등을 역임하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유명한 분이다. 그 분 사진에 한국 역사의 단면들이 포착되어 있다. 그저께 부안의 김오성 조각가와 통화를 하다 말씀을 하여 소식을 전했는데 이틀 연거푸 내 전시장을 방문하셨다. 어제는 사진을 하는 분을 대동하고 와서 자신의 사진집을 전해주셨다.

 

미리 점심 역속을 한 홍재승 소장은 약 10년쯤 되는 건축계 후배이다. 직접 학교의 선후배 사이가 아니면서도 1993년경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선배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가 199년대 후반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한동안 연락이 안되었는데 10여 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서 활동을 하다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처음 전시실에 들어올 때 얼마나 반가운지 오랜만에 포옹인사를 했다. 선배님이라고 살갑게 부르는 호칭이나 모습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쓴 시집을 주면서도 후배님이라는 호칭으로 사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식당에 가서 그동안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며 막걸리를 곁들여 식사와 건배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니 북한산 원효봉에서 만난 김종현씨 부부가 두고 간 선물이 보였다. 설록차를 담은 쇼핑백에 부부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7년 원효봉에서 그림을 그릴 때 만난 분들인데 지난번 전시 때도 와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었다. 내가 전화를 하니 근처에 있다고 하면서 올라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했다. 서로 좋아하는 북한산에서 만난 인연을 이렇게 이어가게 된 것이 매우 흐뭇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3시에 미리 약속한 최재현 교수가 가족과 함께 올라왔다. 그 분은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추진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어서 이 전시를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연락처를 모르다 고양신문 시민강좌 담당자에게 연락처를 수소문하니 얼마 전 다녀간 고양신문 이대표가 알려주었다며 문자를 보내왔었다. 그 분은 내 그림을 보면서 지리학자답게 그림에 나타난 바위 결이 너무 생생히 잘 나타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북한산의 모습이 생생히 느껴진다고 했다. 후덕한 인상에 함께 온 사모님과 따님의 인상도 아주 선해 보였다. 딸이 미국에서 막 박사학위를 받고 들어왔다면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가셨다.

 

잠시 후 오기로 한 건축을 하는 백경국 소장 부부가 들어왔다. 그 분은 한국의 전설적인 작곡가 백영우 선생님의 아들이다. 들어오면서 그 분의 작품을 악보와 함께 수록한 작품집과 CD 두 장을 건네주었다. 얼마 전 가요무대에서 그 분을 기리는 특집 방송을 할 때 나에게 소식을 알려주어 시청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백소장 자신도 고등학교 때 작곡을 하여 국내 유명 가수가 불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전자전 코너에 황해 선생님과 전영록씨, 그리고 백영우 선생님과 백경국 소장이 나란히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분들이 간 후 역시 건축을 하는 오세왕 소장이 부인과 딸을 대동하고 왔다. 오소장은 2000년대 초 광주대에 함께 출강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여전히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놀랍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건축가 미술동호외에서 함께 출품했던 김낙중 소장님이 부인과 함께 다녀가면서 한 길을 쭉 파고 있네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천문동호회 회원으로 만났던 남인호 교수는 손님들을 만나는 사이 한참을 있다가 갔다.

 

오늘 특별한 인생담을 들은 분은 막바지에 들어온 77세의 이명선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수도사범을 나왔는데 스승이 한국 미술사를 거목들인 장욱진, 임하동, 박고석, 장리석, 최덕휴, 김창남 화백 등이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 고등학교 미술교사, KBS 미술실 근무 등을 했다. 그 분은 결혼 생활 중 음악을 하던 남편이 46세에 외국 유학을 간다고 해서 혼자 자녀 둘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4~5년 후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자리를 찾았으나 젊은 사람들에게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음악 활동을 하다 59세에 작고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월 16만원으로 김칫국에 밥 말아먹으며 자녀를 키우고 살았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절대 남편 유학 보내지 마라, 미친 짓이다며 말린다고 했다. 그 분의 인생이 마치 소설처럼 느껴졌다. 요새는 한국화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고 했다. 엊그제 처음 온 날은 나는 그림에 목숨 걸었어라고 했다. 그 분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전시를 하면서 이런 저런 삶과 인생을 느끼게 되었다.

(20210207)

0
0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