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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금구원을 다녀오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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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235
내용


금구원을 다녀오며...

 

 

부안 격포의 금구원을 가려고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금구원은 조각가 김오성 선생님이 너른 야외에 자신이 조각한 많은 조각 작품들을 펼쳐놓은 조각공원이다. 한 달 전쯤 김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새로 조각 3점을 완성했다며 재작년처럼 전시회를 갖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음성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통화를 하면서 한번 보러 가겠다고 했더니 등나무 꽃이 필 때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몇 해 전에도 등나무 꽃이 활짝 피었을 때 그 아래 너럭바위 위에 앉아 예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첫차를 타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비 소식이 있어 우산을 챙겼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창구로 가서 표를 사려 하니 첫차가 막 떠났다고 했다. 다음 차는 840분인데 1시간 40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집을 나설 때 마스크를 빠뜨려 다시 되돌아가서 챙겨오느라 지체가 되었다. 그 일만 아니면 첫차를 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상중인 설계 스케치를 하다 보니 금세 승차 시간이 가까워졌다. 기사분께 걸리는 시간을 물으니 막히지 않으면 2시간 5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정시에 출발해 수도권을 벗어나 가는 동안 차창 밖에 전원 풍경이 보였다. 이모작으로 심은 보리 이삭이 막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너른 밭에 그득히 자란 보리가 바람에 넘어진 곳도 있었다.

 

오전 1125분 부안에 도착해 격포행 버스도 갈아타려고 시내버스정류장으로 가니 가장 빠른 게 1225분 차여서 거기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 보니 다행히 1140분차가 있었다.

      

128분 격포에 도착했다. 작은 항구가 있어서 여름철이면 이 해안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다. 잠시 후 김오성 선생님 내외가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으러 격포항횟집으로 갔다. 전에도 함께 와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났다. 주인이 안내한 2층 방으로 가 앉으니 푸짐하게 상차림을 했다. 조개껍데기에 여러 가지 해물 음식을 가지런히 차려 놓고 잠시 후 우럭회를 올리면서 자연산이라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지나온 예기를 나누었다. 고양시에서 꽃 박람회 때 초대한 북한산 전시를 예기하다 핸드폰으로 1991년경 그림을 처음 그릴 무렵의 내 사진과 수채화, 유화를 보여주니 사모님이 색감이 참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앳된 티가 남아 있다고 했다.

 

 

김오성 선생님과 알고 지낸지가 퍽 오래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서울 천문대 활동을 하면서 별을 무척 좋아한다는 그 분 이름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 북해도에서 있었던 스타파티에 함께 다녀오면서 알고 지내게 되었다. 작년 인사동에서 열렸던 북한산전개막 때도 인사말씀을 하면서 그 말씀을 하셨다. 그 후 가끔 금구원엘 들렀고 함께 낚시질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집을 짓거나 전체 배치에 대해 상의를 해오기도 하고 내가 금구원 안에 작은 편의시설을 설계해 짓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금구원으로 갔다. 차 안에서 김선생님이 젊은 시절 살아온 예기를 했다. 일찍이 상경해 김경승 선생님 집에 기거하며 조각을 배웠는데 1974년에 특선을 했고 그 후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대와 홍대 등에서 가르친 백문기 선생님이 추천을 했는데 스승인 김경승 선생님이 화를 냈다고 했다. 평소 그 분 작업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는데 아마도 떠날 것을 염려한 것 같다고 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선물로 갖고 간 그림 포장을 뜯고 그림을 보여주었다. 재작년 이 곳에서 김선생님이 큰 작품을 완성하고 전시회를 할 때 현장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모님이 박수를 쳤다. 내외가 그림에 담긴 장면들을 요모조모 보면서 예기를 했다.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거실 벽에 오래전 김선생님이 그린 그림과 전에 내가 드린 매화 그림 그리고 미술평론가 신항섭 선생님이 러시아에서 구해 선물한 그림 두 점이 걸려 있었다. 요즘도 낚시하러 자주 가시느냐고 했더니 가끔 가는데 요즘은 잘 안된다고 했다.

 

김선생님이 사진가 전민조 선생님이 올 초에 북한산 사진전을 열었던 예기를 하다가 그 분의 한국인의 초상이라는 사진책을 꺼내와 함께 보면서 예기를 나눴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비롯해 농사를 짓는 농부까지 다양한 인물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김선생님이 작업하는 사진도 실려 있었다. 예기 도중에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배를 운행한 선장님 내외가 와서 인사를 나눴다. 그 분의 사진도 실려 있었다.

 

선장님 내외가 떠나고 올라갈 차 시간을 확인했다. 사모님이 예약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김선생님 막내딸이 예매를 도와주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았는데 벌써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했다. 연휴기간동안 내려와서 돕고 있었다.

 

김선생님과 조각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전에 설계를 했던 카페를 지을 자리 주변에 있던 나무들을 베어내어 더 넓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매표소 자리에 지으려다 예산 관계로 미뤄두었다.

 

기다보니 아랫마당 가운떼 농인 등나무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저께 전주에서 원로 시인들이 왔을 때는 피지 않았었다고 한다. 산책길 주변에 놓인 조각들 중에는 초창기 작품들도 보였다. 그 안쪽으로 새로 완성한 작품 두 점이 놓여 있었다. 그 앞으로 가니 김선생님이 깊이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했다.

 

등나무 뒤쪽으로 가서 조각을 보다 구경 온 손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 분들에게 조각가 선생님이라고 하니 그들도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들과 함께 걸어 나오며 시비 앞에서 내 시도 보여 주었다. 커다란 오석의 사면을 다듬어 그 지역과 관련된 시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내 시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새기셨다고 한다.

 

 

 

 

김오성

 

                                                     2002. 6. 27         김석환

 

 

비단 옷자락에

겨자씨 묻혀 내듯이

 

금강석 같은 바윗돌에

수없이 부딪쳐 튀는 정뿌리

대어 쪼고 또 쪼고...

 

삭풍이 봄바람으로 변하여

겨우내 쌓인 눈을 녹이듯

예인(藝人)은 인고의 세월로

제 육신을 쪼았다.

 

그리고 마침내

정성된 기도에 감동하여

현현하는 관음보살처럼

 

핏줄이 흐르듯이

체온 머금고 나타난

육감(肉感)과 표정을

대하노라면

 

예인(藝人)은 감정을 주체할 길 없어

자리를 떨치고 나서듯

 

허허로운 어께위로

긴 낙시대를 걸치고

위도 밖 왕등도

섬기슭으로

낙시질을 가곤 했다.

 

 

다시 길을 돌아 나와 위쪽으로 가면서 보니 여기 저기 수선화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흰 수선화는 꽃이 피어 있는데 노랑색은 졌다고 한다.

 

완만하게 경사진 뒤쪽에는 원형 돔으로 된 실내전시장과 너른 호랑가시 군락이 있다. 호랑가시 군락은 어디서 찾아보기 힘들만큼 넓게 되어 있는데 재작년 부안군의 도움으로 직접 화강석 블럭을 깔아 길을 내었다. 금구원이 부안군내 관광지로 자리 매김 되면서 매년 군에서 조금씩 지원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나무와 꽃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 같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사이에 늘어난 조각들로 더 꽉 채워져 보였다.

 

길을 따라 걸으며 군데군데 놓인 선생님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서 전에 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하면서 에기를 나누는 사이 금세 버스 타러 갈 시간이 되었다. 수선화 두어 포기를 일매헌에 심고 싶다고 했더니 사모님이 호미로 캐서 싸 주었다.

 

오후 4시 격포에서 부안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나와 550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한가로운 어촌과 농촌 풍경이 보였다. 얼마 전에 내가 있는 지역 건축사 회장을 지낸 젊은 건축사가 산에 오르다 갑작스레 별세를 했다. 살다보면 뜻 밖에 부음을 듣고 안타까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평소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 사이에 가끔이나마 마음을 나누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오기 전에는 바쁜 일상 속에 마음에 여유가 없이 빠듯했었다. 그런데 농촌 들녘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여백이 생기는 것 같았다. 오후 940분 서울에 도착해 집으로 향했다.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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