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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검단산 산행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31
내용


검단산 산행기
 
 
검단산을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요새 만들고 있는 시집에 대한 상념을 하다 시상을 적으며 갔다. 어제 설날에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곳을 찾아갔었다. 지난해 가을 거기서 펼쳐 보이는 풍광을 그렸던 그림을 더 크게 그려 이번 전시에 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공기가 뿌해 시선이 아차산을 넘지 못해서 북한산까지 한 눈에 펼쳐 보이는 장관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파란 하늘이 해맑게 보였다. 이런 날씨라면 북한산이 보일 것 같았다.
    
      
시집
20200126
      
각혈질하듯 목에 걸린
언어를
낙엽처럼 긁어 적은
나의 편린들...
그 파편들을 기워 꿰맨 세월이
짧지만은 않았다.
 
울컥대 나뒹굴 때도 있었고
생명의 환희를 대하다
허무하게 비춰진 텅 빈 삶을
나그네처럼 먼발치서 바라보기도 했었다.
 
글을 엮다
슬픔이 실타래처럼 엉킨
꽁꽁 동여 묻어둔 기억들이
한꺼번에 다 이끌려 나와버렸다.
    
때론 해맑고
때론 처연하기도 했던
지울 수 없는 인생의 먼 뒤안길이
또 다시 앞길과 닿고 있었다.
 
어느 작은 서랍에도
채워 있지 않고
진저리치다 기진해버렸던
피붙이 같은 시간들이 함께
흔적 없이 허공에 흩날리다
가만히 머물고 있었다.
 
남들이 아는 내 이력서엔
한 줄도 쓰여 있지 않은 삶이
글 집 안에 주절주절
얼어붙어 있었다.
 

 
11시 26분 검단산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입구에 세워진 산행 안내도를 보다 한양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다시 글을 메모했다. 거기서 정상까지는 4km 정도나 되는 짧지 않은 거리이다. 농장 앞을 지나다 보니 닭이 알을 낳고 크게 외쳐대는 소리가 들렸다. 화판을 둘러매고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가는 길이라 마음이 급했다. 안으로 들어가다 어떤 남자분이 우측이 좁은 길로 올라서서 그 길이 빠르냐고 물으니 비슷하다고 했다. 그냥 아는 길을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검단산도 몇 번 오가다 보니 정상까지 길이 훤히 그려졌다. 유길준 묘소를 지나면 언덕 같은 능성이가 나오고 거기서 우측으로 완만한 길을 도금 가다 깔딱 고개를 한참 지나면 봉우리 꼭대기에 전망데크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그 안쪽으로 다시 보이는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오르는 길에서 만난 분들이 내가 들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그림을 그리러 간다고 하니 금방 궁금증이 풀린 듯 ‘아하’하며 지나갔다.     



깔딱 고개 쪽으로 다가서다 글이 떠올라 메모를 하다 보니 옆에서 쉬던 다른 일행분이 뭐 하느냐고 했다. 그분에게 시상을 메모한 것이라고 하니 그러냐고 했다. 깔딱 고개를 넘어 조망데크에 올라서서 양수리 쪽을 바라보다 정상 쪽으로 다가갔다.  
 
12시 50분 검단산 정상에 당도했다. 예상과 달리 뿌연 가스가 끼어 오늘도 북한산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가 맑아 시간이 지나면 뚜렷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양
20200126
 
맑은 햇살이 비추는 겨울 끝자락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해맑은 공기가
들판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검단산을 나서 북한산까지
두어 나절 걸려 닿았다.
 
멀리 솟아 보이는 산봉우리에
영기가 맺혀 있고
온 들녘을 적실만큼
유장히 흐르는 강물은
기침도 않고 흐른다.
 
산들과 강이 조응하며
길지를 어우러내는 
그 넉넉한 터전에
서기가 서려 보인다.
 
그것을 느낀
먼 옛날 한 왕조가
기웃거리다 다가와
강 남쪽에 슬며시 도읍을 두다 떠났다.
 
한 참 후 다른 왕조가
나라를 세우고
강 북쪽에 다른 도읍을 세웠다.
 
다시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들어서
들판마다 아파트를 지었다.
 
그렇게 지어도 지어도
멀리서 보면 늘
옛 산천 그대로이다.

오늘도
아득하고 맑은 기운이
들녘에 가득 고여간다.


설날 다음날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올라 있었다. 내가 그림을 펼치려고 생각했던 벤치에 젊은 부부가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곤줄박이가 다가와 남편 손바닥에 올려진 과자부스러기를 먹었다.  그 벤치 한 편에 앉아서 그리던 그림을 이어 붙인다음 망원경이 놓인 조망데크 난간에 기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곤줄박이가 날개를 퍼득이며 내 그림 위에도 앉았다 갔다. 옆에 막걸리를 파는 천막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기온이 4월 날씨 같다고 했다. 한 곳에 머물러 그림을 그리다 보면 추위를 타기 쉬운데 오늘은 걱정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라 올 때 이마를 스치던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아서 작업이 순조로울 것 같았다.
 
큰 두 장의 종이를 종이테이프로 이어 붙여 난간에 걸쳐대고 정신을 집중해 풍광을 바라보며 종이에 옮겼다. 가로가 1.8m가 넘다보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신가한 듯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그 사람들에게 배낭에 있는 전시 초대장을 주었다.
 
조금 지나자 멀리 북한산의 실루엣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라도 반가운 마음에 비워두었던 원경을 채워갔다.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을 파악하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고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집중하느라 배낭 안에 준비한 떡과 귤을 먹을 여가가 없었다. 시간을 놓치면 오늘 마무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림을 벤치로 옮겨 놓고 잠시 바라보다보니 아까보다 햇살이 어눌해져 있었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다 보니 점차 추위가 느껴졌다. 아직 원경을 채워 넣으려면 바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한 손에 떡을 쥐고 먹으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옆에 선 사람이 “한 가지만 하라”며 웃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광이 뚜렷해졌다. 아까 올라올 때부터 이랫으면 훨씬 작업이 수월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기가 식어갈수록 정상에 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점차 말을 거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해가 기울어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건물과 가로등에 등이 켜지고 있었다.


 
막바지 손길을 하고 급히 화구를 챙겼다. 내려갈 길이 먼데 너무 어두워지면 곤란할 것 같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입구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가는 거리도 멀고 화구를 메고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닥쳐온 전시 자료를 조금 더 충실히 갖출 수 있을 것 같은 보람이 느껴졌다.
 
(202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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