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책 선물을 받으며...
올 해 마지막 날 연거푸 책 선물을 받았다. 오후 3시경에는 인사동에서 어제 만나기로 한 이교수님이 책을 주어 받았고 저녁때는 우편으로 배달된 신달자 선생님의 시집을 받았다.
어제 몇 년 전 퇴임하신 이 교수님으로부터 오늘 3시쯤 만날 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았다. 평소 학문적 깊이와 반듯한 인품, 그리고 덕망을 갖추셔서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분이다. 올 6월에는 용인에 새로 마련한 서재로 몇몇 후배들을 초대해 찾아뵙기도 했었다.
갑작스럽게 하신 말씀이지만 다른 일정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가능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일상 가운데 훌륭한 분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장소 등을 상의하는 문자를 주고받은 후 오늘 약속 장소인 인사동 사거리에서 만나 지인이 알려준 찻집을 찾아들어갔다. 찻집은 식객 식당 근처의 한옥인데 집 가운데 있는 작은 마당 쪽의 창들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개방감이 느껴졌다.
자리를 잡고 석류차와 모과차 그리고 가래떡을 주문하니 잠시 후 갖다 주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갖다 준 차를 무심코 마신다는 게 각기 주문한 차를 바꿔 마시게 되었다. 한 모금 차를 마시다 바뀐 것을 알고 당황스러워 이 교수님 차를 다시 주문해 드리려 하는데 그냥 마시자고 했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네 권의 책을 꺼내 주셨다. 큰 책 3권은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만든 것인데 서원의 현판과 기문들을 설명한 책과 서원의 고문서, 서원의 제향의례 등의 내용이고 작은 책은 전통건축의 수리와 보존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책들 중에서도 서원의 현판과 기문들을 모아 설명한 책은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그리고 서원의 고문서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학문과 사상이 담겨 있고 제향의례에는 그 시대 삶의 면면히 느껴진다.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내년 2월초에 하게 되는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에 대해서도 예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시에 대한 글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받아주셨다.
잠시 후 찻집을 나와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다른 볼일을 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한 권의 책이 배달되어 있었다. 겉봉투를 보니 보낸 분은 신달자 선생님이었다. 내가 청년기 때부터 그 명성을 알았던 시인이다. 얼마 전 한 원로 건축가 분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서 근처에 계신 신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며 내가 갖고 있던 기억을 말씀드렸다. 여류 문학가로서 매우 직설적이면서 담백한 성품으로 이른 나이부터 필명을 날린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명함을 드렸었는데 그 명함에 적힌 주소로 보낸 것이었다.
지난 10월에는 김선생님이 주신 책도 받았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라는 그 책은 “과학과 시를 넘나드는 자연문학의 새로운 장르”라는 찬사를 받은 책이다. 그 분이 책을 건내면서 글이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받은 책을 펼치면서 그 분의 인품이 함께 느껴졌다. 그리고 세상에 그처럼 지혜가 담긴 많은 책들을 대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선물은 특별히 느껴진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읽을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정신적 영양분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책을 선물하는 마음이 더 감사하게 다가온다.
다시 한해가 가고 있다. 해가 바뀌는 시간, 그리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과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좀 더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갖게 된다. 금새 한 해가 흘러가버린 당혹감을 감추고 분주히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다 두 분이 주신 책을 통해 잠시 생각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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