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어제 그 자리
진행 중인 일을 하다 다시 북한산을 찾아 나섰다. 어제 비가 와서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리던 그림을 계속 미뤄두면 감각이 달라져 완성하기가 더 어렵게 된다. 12시 5분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북한산성까지 가는 버스가 바로 들어왔다. 버스 안에 북한산을 찾아가는 등산복차림의 승객이 많았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려 안쪽으로 향하다 보니 올라갈 의상봉이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아보였다. 대서문을을 지나는 주도로를 따라가다 12시 22분 의상봉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중간쯤 올라 12시 44분 암릉구간을 통과하는데 어제보다 다리에 힘이 붙어 발걸음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12시 57분 정상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시간이 조금 덜 걸렸다. 맑은 날씨에 어제 내린 비로 먼지가 모두 씻겨나간듯 대기가 매우 깨끗해서 풍광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북한산 특유의 기세와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잠시 풍광을 돌아보다 자리를 잡고 화판을 펼쳤다. 어제 좁은 화판에 그림을 이어 붙이기가 어려웠던 터라 오늘은 더 넓은 화판을 갖고 올라왔다. 그것을 갖고 급경사진 암릉을 올라오느라 힘은 들었지만 작업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림을 그리다보니 산을 오르면서 보이던 등산객들이 차례로 올라와 정상부의 풍광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나를 보며 “뭘 들고 가나 했더니, 그림을 그리러 올라온 거군요”하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아까 계단을 오를 때 주저 않아 있던 아가씨도 언니와 함께 올라와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했다. 어제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많은 일행이 올라오더니 앞서 온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전에 다른 봉우리에서 나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식사를 미루고 집중하다보니 그림이 거의 완성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사찰들도 그려 넣었다. 조선 영조 21년(1745) 승려 성능(聖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 등 12개 사찰과 북한산성 중간 중간에 낸 12개의 성문 및 중성문이 있고 군사들이 머물던 병영 및 훈련시설, 99개소의 우물, 26개소의 저수지 등이 많은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잠시 그늘로 이동해 소나무에 화판을 기대 놓고 그림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했다. 그늘의 서눌함속에서 숲 너머로 바라보이는 산세를 음미하는 맛이 좋았다. 아직 그리지 않은 좌측 원효봉 부분이 남았지만 전체 구도가 잡혀서 완성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을 완성한 후 진행 중이던 다른 방향의 그림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앉았던 바위에 앉아 마무리를 해 나갔다. 봉우리에 막 올라선 두 여자 분이 나가서며 ‘와 그림 그린다’고 했다. 그들은 그 봉우리에 계속 머물며 예기를 했다.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해와서 이것저것 먹으며 오랜 시간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주변에 있던 한 남자분이 그 쪽으로 다가서며 자주 이곳에 오르지만 오늘 같은 좋은 날씨를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다시 몰입해 그리다 보니 한 남자분이 그리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좋다고 하니 사진 작가라고 본인 소개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신중하게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진행하던 그림을 마무리하고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 용출봉쪽으로 펼쳐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것도 전에 진행하다 마무리를 못하고 있던 그림이다. 해기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시각 용출봉쪽에서 넘어오던 분이 멈춰서 인사를 했다. 다른 한분이 산성입구쪽에서 올라와 일몰을 보러 왔다고 했다. 곧 어두워질 텐데 산을 잘 나니시는가보다고 했더니 집은 조금 떨어져 있지만 자기처럼 이 시각에 올라오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오늘은 시야가 깨끗해 산세의 느낌을 더 생생히 느끼며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구름 사이로 뉘엿뉘엿 져가는 해를 바라보며 산을 내려섰다.
(20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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