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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환갑을 맞으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6
첨부파일0
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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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2
내용


환갑을 맞으며...

 

 

내일 모래면 환갑날이 된다. 매년 51일이 되면 생일 축하 메시지가 도착하곤 한다. 하지만 음력인줄을 모르고 보낸 것이어서 매번 공인사만 받아온 꼴이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어른들이 환갑을 맞아 환갑잔치를 벌이는 것을 가끔 보았었다그 시절 나의 눈에 환갑'을 맞은 어른들은 정말로 나이 많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환갑잔치를 하는 의미가 결국 환갑을 맞을 만큼 오래 산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여서 사람들에게 환갑잔치의 의미가 나이대접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대게는 주인공이 사는 집 마당에 큰 천막을 치고 많은 손님들이 모여 한바탕 흥겹게 축하연을 벌였다. 주인공이 앉은 자리 앞에는 큰 상 위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마당 가득 상차림을 하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주인공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환갑잔치날을 위해 자녀들이 특별히 맞춰드린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단상의자에 앉아 인사를 받았고 그 날의 잔치를 위해 초청한 재담가가 갖가지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며 사이사이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면 하객들이 주인공이 앉아 있는 무대 앞쪽으로 나가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한 환갑잔치날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서 결국에 동네잔치가 되었다. 그리고 잔칫날 분위기에 휩싸여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모두 잊게 되었다. 아이들은 그 잔치마당에 참석하기 어려웠지만 주위에서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다 보면 어른들이 떡 등을 집어 주어 덩달아 잔치덕을 보았다. 그래서 한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여 흥겨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 환갑잔치였다.

 

그러나 그 사이 그러한 세태가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점차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환갑의 나이를 많은 나이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환갑이 된 사람들은 그러한 행사를 하면서 나이 먹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의식하기도 하고 환갑잔치자체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나도 옛날 같으면 다가오는 환갑날잔칫상 앞에 한복을 차려 입고 하객을 맞으며 폼 나게’ ‘환갑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날을 앞두고 행사에 대한 부담이나 설레임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평소의 나의 마인드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환갑을 맞으면서 나 스스로 '나이먹음'에 대한 의식은 별로 없다. 스스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거나 이제 서서히 인생 마무리를 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단지 평상시대로 이것저것 치닥거리며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불만스럽게 의식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은 생각뿐이다. 다만 회상을 하며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잠시 그에 대한 감회에 사로잡히는 기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환갑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의미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크게는 시간을 좀 더 알뜰히 쓰지 못한데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매 순간들을 더 적극적이고 충실히 임하지 못한데 대한 후회가 된다. 매순간 자신을 바로 알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에게 지난 세월은 많은 기다림의 세월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의식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 보낸 순간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현실과 무관한 허황된 꿈이 아니고 당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결핍과 현실적 부재 의식에 따른 인내였다그런데 앞으로는 그러한 기다림의 여유가 점차 없어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지혜롭게 시간을 쓰고 스스로 건강을 갖추어가야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오다 보니 그 곤경스런 처지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씩씩하게 기를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대하는 모습을 갖지 못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어릴 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 성격이 쉽게 변화되지가 않았다. 그 후 어른이 되면서 그러한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그런 자의식 자체가 또 다른 얽매임으로 작용하기도 한 것 같았다. 이제 환갑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그러한 자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흔히 아홉수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나도 20대부터 앞쪽 숫자가 바뀌기 전 해에는 비슷한 의식을 가져왔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나이가 확 들어가는 것 같은 당혹감과 허전함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후면 대게 나이에 순응하고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나이답게 행동하고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환갑을 맞기까지 그런 기분을 반복적으로 느껴오면서 인생이 흘러왔다.

 

김형석 선생님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가 60~75세라고 했다. 그것은 어느 직분에 얽매여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지나오면서 인생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그 시기가 되어서야 안정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제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기라는 의미로 들렸다. 다른 표현으로는 이전에는 철없이 살아오다 비로소 철이 들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못해서 과연 그런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청춘도 아니고 그렇게 늦은 시기가 과연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한편으로 수긍이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평소에 늘 활발히 활동을 하는 상황이니 그때까지야 건재할 수 있겠지 했었다. 그런데 근래 병치레를 하며 한동안 위기의식을 갖다보니 그런 나이까지 건강히 지낼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며칠 전 2년 후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전에는 바로 받지 않고 지급년도를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제 때 수령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환갑을 맞으며 지난 세월을 떠올려 보면서 나에게 만족스러웠던 일, 가장 기뻤던 순간, 절망의 순간,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도 환갑나이를 먹는 동안 사이 크고 작은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늘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이고 즐거운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나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의 위기를 느낄 때도 있었다. 산행중 한밤중에 홀로 길을 잃고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젊은 시절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할 뻔 하기도 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자신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지는 것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운동도 잘 못하고 그림이나 음악 등, 예능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도 않았었다.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못하는 게 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그러나 한 가지 어릴 적부터 스스로 직관력이 있다는 느낌을 느꼈다. 그냥 세상이 보이는 느낌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전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내가 안다는 것은 생각을 통해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술시간에 그림이나 조각을 할 때면 매우 균형 감 있게 그렸다.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며 그 변화에 환희로움을 느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뭘 갖고 싶다거나 어른들에게 떼를 써 본 일이 없다. 그저 환경을 이해하고 나의 처지에 순응하면서 조용히 학창시절을 지내왔었다.

 

언젠가 길 위의 인문학초빙 강사로 갔을 때는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면서 건축가’ ‘교수’ ‘화가사진작가‘ ’시인‘ ’저술가‘ ’산악인이리고 소개를 해서 손사래를 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20년 동안 대학 강의를 해 왔으며, 사진작품 초대전을 갖기도 했고,10여 차례 그림전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평소에 시와 수필 등을 써 오기도 했으며, 백두대간 및 낙동정맥 단독 종주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된 데는 어릴 적부터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한 가지 직능인으로서 존재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일어나는 갖가지 내면적 감성에 충실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 의식이 내면에 잠재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 안에 일어나는 갖가지 의식과 흐름에 따라 나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또한 미지의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내 삶의 인상을 그려보면 건축가로서 일과 함께 살아온 것 같다. 건축은 좋은 직업이지만 그 과정이 복잡하고 여러 관계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을 좋아하고 내가 하고 있는 직업에 만족하며 열심히 한 편이었다. 30대 초반부터 건축 작품과 글도 많이 발표해서 지면을 통해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젊은 시절 한국건축문화의 해에 초대 작가로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었고 몇 군데서 강의요청을 받아 강의를 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IMF를 겪으며 일이 없어 생활고를 견뎌야 했고 직업적인 생활의 안정도 불안하게 느껴졌었다. 건강은 늘 자신했는데 근래 뜻하지 않은 병을 치료하면서 긴장된 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건강관리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존재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동물의 세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초식동물은 초식동물대로 맹수면 맹수대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특히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더 간단치가 않은 것 같고 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다른 존재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다른 동물들은 옷이란게 없고 잠자리도 단순한 편인데 인간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만 해도 먹고 입고 잘 곳을 마련하고 각종 물품 구입과 교통비나 치료비 등으로 여러 가지 지출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또한 복잡한 사회생활에 얽힌 갈등을 겪어야 할 때도 많다.

 

나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환갑에 당혹감도 느껴지지만 여러 차례 아홉수의 시절을 지나온 것처럼 곧 수긍하고 스스로가 나이에 맞는 인간으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십 년 후 또 다른 나이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고 내가 노쇠해져서 더 이상 건강하게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움을 인식하다보면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때가 도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일의 일은 알 수 없지만, ‘환갑을 앞에두고 다만 한 가지 의식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각오이다.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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