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다시 피어난 일매헌(一梅軒)의 매화
겨울을 나며 고사하고 남은 작은 가지에서 매화가 활짝 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바람에 메말라 까칠한 모습이었는데 스스로 봄볕에 감응해 붉은 생명력을 발하는 모습이 반갑고 다행스럽다. 지난주부터 꽃눈이 조금씩 부풀어 올라서 이번 주에 꽃망울을 터트리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이 온 오늘 가장 탐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올 겨울은 평년보다 큰 추위가 없었다. 그런데 다시 가지가 죽어 당황스러웠다. 재작년 혹한의 겨울을 보내며 큰 가지 하나가 죽어서 흙을 북돋아준다는 것이 뿌리를 건드려 몸살을 앓게 된 것 같았다. 옥상에 홍매화를 심은지 16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사이 제법 둥치가 굵어져서 나름의 연륜이 배어났다. 묘묙때부터 형태에 균형감을 갖게 할 요량으로 가지 세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치도록 해 두었었는데 작년과 올해에 걸쳐 그 큰 가지 세 개를 다 베어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남은 가지에서 부풀어 오르는 꽃망울들에 탱글탱글 윤기가 나서 건강한 모습이다.
지금 살아남은 작은 가지는 둥치 밑에서 늦게 자라난 곁가지였다. 그 가지 하나만 남기고 죽은 가지를 잘라낼때는 홍매의 생명이 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아예 어린 묘목을 다시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정리를 한 후 다시 바라보니 그 작은 가지 하나가 더욱 소중해 보였다. 그리고 신비로운 생명력을 발하며 피어나는 매화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더 귀하게 느껴졌다.
가지를 잘라낸 상태라 외소하기만 할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막상 피어난 매화를 바라보고 있자니 꼭 많은 가지에서 풍성히 피어나는 매화여야 감상의 흥이 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 봉우리가 맺히기 전 마른 가지일 때와 달리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힌 가지에서 이르거나 느리게 자라난 꽃망울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의 깊이감과 다양함을 갖추어 자연스러움을 띠게 되었다.
홍매
2019. 03. 08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고
생의 환희를 깨우며
틔워나오는
붉은 꽃맘울
앞서 피어난 꽃송이가
파란 하늘을 보며
한껏 대기를 들이마실 때
움츠리던 다른 꽃망울이
햇살에 살며시 다가서며
몽실거린다.
멀고 가까이
이쪽 저쪽에서 공간을 수 놓으며
피어나는
붉은 꽃송이
다섯 꽃잎이
저절로 완전한 도형을 이루고
그 안에 꽃술이
금실 수를 놓을때까지
새 우주가 한창 성글어진다.
먼저 피어난 꽃의 형태를 바라보자니 자연의 신비로움이 가득 느껴졌다. 하나의 꽃마다 다섯장의 꽃잎이 균형과 질서를 이루고 있고 꽃샘에서 자라나온 꽃술들도 각각의 꽃 잎과 도형적인 질서를 이루며 나와 있었다. 홍매의 황홀함을 대하며 화엄사상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 말에 비유하면 꽃 송이 하나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가지가 아무렇게나 뻗어나 보이고 가지에서 쌀톨처럼 맺힌 꽃눈들도 마찬기지였다. 그런데 생명력을 발하며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니 아무렇게나 맺혀 보이던 꽃눈들이 마치 우주의 섭리처럼 신비로운 질서를 갖추어 보인다. 가지의 방향, 꽃송이의 배열, 제각각 크고 작게 이르게 늦게 피어나는 꽃송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흙에서 자라나오는 초록색 풀잎, 짙푸른 하늘, 싱싱한 내음이 전해오는 공기, 진갈색 나무 줄기의 색상이 함께 어우러지며 봄 기운을 퍼뜨린다.
매화가 햇살에 시시각각 변환다. 더디 시간이 흘러가도 좋으련만 햇살은 곱고 꽃잎은 다투듯 활짝 피어나고 있다. 탐미로운 매화 꽃송이들은 곧 지고 마음에 허전함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아쉬워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대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과정의 모습, 그 따름일 것이다.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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