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2018 바다의 날 마라톤 달림기
마라톤 행사장으로 가는 전철칸 안에 런닝화를 신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나처럼 오늘 있는 마라톤에 참가하러 가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서도 우르르 함께 이동을 했고 여의나루역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의도 너른 들판 행사장으로 나가는 길을 잘 몰랐는데 그들만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역에 막 도착하니 동호회 회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근래는 평소 마라톤은 생각지도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2주전 북한산 산행 때 일행 중 한분이, 마라톤 신청을 했는데 다른 일정이 생겨 참가할 수 없다면서 대신해 뛰기를 권했다. 오랫동안 뛰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평소 산을 오르는 모습이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예기를 들으며 준비 없이 나가서 나 자신의 건강 상태를 한번 가늠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내 이름으로 직접 신청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창이 닫겨 할 수 없이 권유대로 하게 되었다.
길을 따라 행사장을 향해 걸어갔다. 제법 거리가 멀었다. 도착하니 일행이 눈이 띠지 않아 탈의실에 들러 옷부터 갈아입었다. 상의는 오래전 서울건축사마라톤동호회에서 단체로 참가할 때 받았던 옷인데 얇고 어께가 다 파여서 가볍게 느껴졌다. 오래 달리다 보면 실오라기 하다도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일행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준비 운동을 했다. 여러 회원들이 나에게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널리 퍼져 있어서 행사 통솔에 구심성이 없이 막연히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잠시 후 본부석에서 풀코스 참가자들에게 출발선으로 이동해 모이라고 했다. FULL이리고 쓰인 플래카드를 높다란 장대에 매어 좌우에서 두 사람이 붙들고 걸었다. 그 들이 우르르 출발선 앞으로 이동한 후 곧 사회자가 갑작스럽게 “출발”하고 외쳤다. 다른 때는 그런 때 뜸을 들이며 사기를 돋우거나 우스갯소리로 긴장을 누그러뜨리기도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출발” 음성에 맞춰 총포가 터지고 빨강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연기가 하늘로 치솟은 다음 불꽃 놀이할 때처럼 퍼지며 다시 터졌다. 잠시 후 하프 참가자들도 출발했다. 이번에는 청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종별로 10분 간격으로 출발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내가 속한 10km참가자들에게 모이라고 해서 앞쪽에 섰다. 사람이 많아 앞뒤쪽 사람들의 거리 차이가 많았다. 그렇지만 뒤에 서 있어도 출발선에서 개별 센서가 작동하기 때문에 기록에 차질은 생기지 않는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사회자가 조금 뜸을 들렸다. 임원중 한분에게 덕담을 부탁하자 오늘 기록 갱신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열을 세고 출발신호에 맞춰 출발했다. 노랑색 신호 연기가 폭음과 함께 피어오르고 참가자들이 우르르 뛰어 나갔다.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면서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잠시 후 길게 행렬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요사이 마라톤은 단지 추억으로 생각해 왔다. 2009년 한 해에 10km, 하프, 풀코스를 연습 없이 완주했다. 10km 46분, 하프 1시간 44분, 춘마 풀코스 4시간 34분이 기록이다. 그리고 그 후로는 더 참가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마라톤이라는게 오랜 시간동안 힘든 것을 견뎌야 하는 일이라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그러다 2014년 3월 치질 수술을 하고 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한차례 더 참가한 이후로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처럼 오랜만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터라,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걱정이 들었다. 달리다 자신이 없으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그러질 못한다. 갑자기 임한 상황이라 10km를 무리 없이 달릴수 있을지 조심스러웠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어느덧 환갑을 한 해 앞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다보니 한 일 없이 세월만 축댄 것 같아 먹먹해짐을 느낀다.
달리다보니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져 조금 안심이 되었다. 컨디션에 맞게 보폭이나 팔의 움직임 등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나름 점검을 했다. 풀코스, 하프코스 등에 비하면 짧은 거리지만 단순히 10km 만을 생각하면 먼 거리이다. 4km가 십리이니 이십오리나 된다.
주로를 따라 나아가다 보니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마라톤을 처음 참가한 것은 2009년 한강 마라톤 대회였다. 서울건축사마라톤동호회를 만들고 부탁해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나서 걱정이 앞섰다. 군대에서 훈련으로 10km 완전군장 구보를 한 것이 전부였고 그 후 몇 km든지 뛰어볼 생각을 가져보지도 않았던 터라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동료들은 백두대간 종 주 등을 한 것을 두고 나를 강한 체력의 소유자로 여기며 5km 신청을 10km로 바꾸라고까지 해서 그 말대로 했었다.
그 첫 대회당일 출발을 하면서 비교적 보폭을 넓게 가지고 발바닥으로 지면을 밀치듯 하면서 힘차게 뛰었다. 기왕에 참가하였으니 최선을 다하려 했다. 46분, 기록이 예상외로 좋았다. 그 자신감으로 그 해 하프와 풀코스를 연습 없이 완주했다.
지난 생각에 잠겨 달리다 보니 여의나루역 앞 부근 1km 표지가 보였다. 십분의 일을 마친 상태라 전체 거리가 떠올려졌다. 컨디션이 좋아서 완주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힘이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63빌딩을 지나 돌아나가는 쪽에 2km 표지를 지났다. 초반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보폭이 안정되어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전체 구간을 제대로 감당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한강철교와 한강대고 사이에 놓인 3km 표지를 지났다. 아직 완주까지는 먼거리로 느껴졌다. 달리다 보면 저 앞에 있던 사물이 지나가고 계속해서 가로 풍경이 달라진다. 그리고 다시 이정표가 나오게 된다. 그 때마다 점차 거리가 줄어듬을 느끼지만 100m씩 나눠 생각해도 짧지 않아 보인다.
몸이 풀렸다는 말처럼 제 페이스에 돌입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주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지나갔다. 기록에는 별 신경은 쓰지 않고 단지 스스로 컨디션에 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이따금 먼 곳을 본 다음 시선을 가까이 두었다. 앞쪽을 멀리 보면 거리에 대한 부담이 더 생길 것 같았다.
달려 나가는 쪽에서 햇살이 비추고 있어 눈부심을 느꼈다. 맑은 날 햇살의 열기가 점차 오르고 있었다. 땀방울이 선크림과 범벅된 채 눈에 들어와 따가웠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자전가를 타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달리면서 자연스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에 잠기다 보면 훌쩍 거리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임한 터라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 사기를 북돋우고 자신감을 유지하고자 했다.
동작대교를 바라보며 가는 사이 4km 이정표를 지났다. 이제 1km만 가면 반환점이다. 벌써 맞은편에서 선두 그룹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맨 앞 쪽에 오는 사람은 아까 행사장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이었다. 그는 마라톤으로 유명한 나라에서 온 사람 같았다. 키가 크고 체형도 아주 적합해 보여 정말 마라톤 선수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10km를 뛰는 것이 의외스러웠다. 진행 요원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주자들과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우측으로 붙으라고 했다.
잠시 후 동작대교 분기점 부근의 반환점을 통과했다. 마라톤에서는 반환점이 중요한 것 같다. 반환점 통과가 마이크로 칩에서 확인 되어야 기록이 나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도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반을 지나고 나면 지나온 구간을 다 알기 때문에 어디를 지날지 생각하게 되고, 남은 거리가 줄어든 만큼 부담이 적어진다. 그리고 어떻게든 견뎌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환점을 돌아서는 지점에 선 행사 요원이 격려를 고맙게 느끼며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을 빠져나오다 보니 우측에 음수대가 놓여 있었다. 물 컵 하나를 집어 멈추지 않은 채 마시려다 물을 흘렀다. 물을 마시면 약간 몸이 무거워지게 되지만 그래도 갈증을 방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풀코스를 뛸 때는 주자들을 위해 마련한 음수대와 물에 적신 스펀지 등이 더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맞은편에서 반환점을 행해 오는 참가자들이 길게 늘어서 보였다. 내가 반환점을 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마주 오는 사람들이 부러워보일 것 같았다.
앞을 멀리 바라보니 출발부터 지나온 곳들이 보였다. 앞서 두 개의 한강다리가 보이고 좌측 멀리 63빌딩이 보였다. 날씨는 맑았지만 대기가 깨끗하지 않아서 더 멀어 보였다.
한강대교를 앞두고 6km 이정표를 지났다. 반환점에서는 아직 반이지만 6km지점이 되면 달린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확연히 적어지게 되니 심리적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좌측 반대편에서는 아직도 마주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료 일행과 예기를 하며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대회에 참가한건데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을 것 같았다.
한강철교를 앞두고 7km 이정표를 지났다. 심리적 부담이 더 줄어들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일정한 속력으로 달려왔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았지만 숨은 점차 가빠졌다. 이제 골인 지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 1Km만 더 지나고 나면 나머지 2km구간은 무리가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이 좌로 굽어드는 곳에 다시 음수대가 있어 한 컵을 마시고 달렸다.
63빌딩을 앞두고 8km 이정표를 지났다. 우측에 붉은 개양귀비 꽃이 선명하게 보였다. 갈대의 초록색과 대비를 이루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 꽃을 볼 때마다 모네의 그림이 떠오른다. 너른 양귀비꽃 들판사이로 우아한 차림에 양산을 쓴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정말 골인점이 멀지 않았다. 아직 견딜 만 해서 막판에는 스퍼트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의나루역에 다가가며 9km 이정표를 지났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아직 안정된 보폭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골인지점이 보였다. 그래도 저만치 거리가 느껴졌다. 좀 더 힘을 내었다. 오늘 기록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청이 하프코스여서 칩으로 정확한 기록을 알 수는 없었다. 단시 8시 20분 출발에 현재 시간을 물어보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막바지 속력을 내어 골인선을 통과했다. 우측 10km시간 게시판의 숫자가 50을 향하고 있었다. 출발선에서 지체된 시간을 감안하면 49분 40초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흘러 있었다. 달리기를 멈추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좌측 테이블에서 물을 받았다. 물을 나눠주는 여자 분이 웃으며 힘들었느냐고 했다.
우측 텐트로 가니 먼저 마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모두가 이제 힘든 시간은 끝나고 온전히 휴식의 순간이 되었다. 맡겨둔 옷을 찾아 텐트가 있는 쪽으로 갔다. 먼저 온 사람이 텐트를 잡아두기로 했었다. 빨강색 텐트들을 지나면서 빈 곳이 있는지 보았으나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 서 있으니 옆 텐트에서 쉬고 있는 젊은 부부가 자신들은 5km를 달렸다고 하면서 나에게 기록을 묻더니 대단하다고 했다. 우측 텐트 안 사람들은 주최측에서 나눠준 순두부를 먹고 있었다. 나도 순두부를 한 그릇 받아다 먹었다. 젊은 부부가 기념품을 받아 오라고 했다. 아차, 생각이 나서 행사부스로 가서 기념품을 받았다. 그 안에 완주 메달도 들어있었다. 마치 결과가 좋은 건강진단서를 받은 것 같았다.
돌아오니 천막이 하나 비워져 있어 자리를 잡고 일행들을 기다렸다. 종목별로 한사람씩 마치고 들어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텐트 하나로 일행이 모여 있을 수 없어 너른 잔디마당쪽으로 가서 천막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거기서 식당에 가서 식사하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음식 배달을 주문했다.
잠시 후 음식이 도착해 즐겁게 식사를 했다. 주변에서도 단체 참가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힘들게 달리기를 마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휴식의 달콤함일 것 같았다.
(201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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