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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매향천리(梅香千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6
첨부파일0
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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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9
내용


매향천리(梅香千里)

 

옥상에서 자라는 매화의 꽃망울이 다시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오래전 엄동설한에 심은 나무가 해를 거듭하는 동안 제법 둥치가 굵게 자랐다. 필자는 사무실 옥상에 심은 그 매화를 일상에서 지켜보면서 사군자를 사랑했던 옛 선비들처럼, 때로 그 매화의 기품에 감응한 여운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때면 이따금 붓을 들어 그 느낌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도봉구청 로비 갤러리에서 매향천리(梅香千里)라는 제목으로 매화 그림 전을 갖게 되었다. 매화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는 그 말은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나무에서 피어난 꽃향기가 은은히 멀리 퍼지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미덕이 담겨 있다.

 

 

내가 옥상에 매화를 심은 것은 2004년 초다. 2003년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긴 다음 옥상에 매화 한 그루를 심고 2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서재를 지어 일매헌(一梅軒)이라 이름 지었다. 그 때부터 매화와의 교감이 나의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화는 이따금 부는 살랑바람이 살갗을 움츠려들게 하는, 겨울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때에 앙상히 메마른 가지에서 피어난다. 낮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미약하게 퍼져가는 햇살의 기운을 받아 조금씩 꽃눈이 부풀어 오르다 한순간 꽃잎이 열리며 꽃술을 드러낸다. 생명은 햇살의 온기로부터 피어오른다. 한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에도 꽃눈은 햇살에 감응한다.

 

매화는 여느 꽃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유의 고고한 기품이 느껴진다. 우선 그것은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는 생명력에서 풍겨난다. 기온이 오른 시기에 자라는 무성한 느낌과 달리 겨울나무 특유의 메마른 가지에서 터트려진 매화는 인내와 끈기, 은근함, 그리고 절제와 결기의 풍모를 띈다. 선비들이 그 꽃을 사랑하게 된 까닭도 지조를 중시했던 선비정신과의 일맥상통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고고한 기품 때문이다. 나는 IMF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매화 같은 끈기로 이겨내려는 심정이었다.

 

햇살이 더 늘어진 때 피는 꽃들의 가지는 살찌고 윤택한 느낌을 띠는데 비해 매화는 앙상하게 메마른 가지에서 차가움에 움츠린 채 꽃망울을 티운다. 사람들의 피부가 한겨울의 추위에 움츠려들며 견뎌내는 모습 그대로이다. 만물이 침잠한 엄동설한의 시기, 햇살이 서서히 늘어지면 미라 같던 꽃눈이 어느새 밥톨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봄기운이 몸에 와 닿을 무렵 둥글게 부풀어 오르던 어느 꽃망울이 툭 열리고 첫 꽃술을 드러내며 생명의 경외감과 인내의 덕목을 느껴지게 한다.

 

 

늦겨울 언 땅에 심은 홍매는 다행히 정착이 되어 매년 꽃을 피웠다. 그 한 그루만으로도 매년 봄기운이 퍼질 무렵 꽃이 피어나는 설렘을 맛보았다. 그것을 대하며 꽃 봉우리가 막 터지는 순간의 경탄스러움을 대할 때 어린 시절 피어나던 감성을 다 흘려보내기만 해온 아쉬움을 문득 떠올려보기도 하고 일상에서 생기는 시름과 속상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매화의 귀한 느낌도 꽃이 피어나는 한 때이고, 그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

 

열린 매화의 꽃봉오리는 곧 완벽한 형상을 갖추고 한껏 성숙한 자태를 갖춘다. 만개한 얇은 꽃잎이 햇살에 투명해 보일 때 길게 자란 꽃술들은 대롱 끝에 노란 꽃가루를 듬직이 얹고 벌을 불러들인다. 한 떨기 매화가 피어나고부터 봉오리가 맺힌 것, 막 피어나려는 것, 활짝 피어난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나날이 화사한 표정이 더해진다. 이윽고 꽃이 무성하게 개화할 때쯤이면 사군자의 묵묵한 덕과 체면도 벗어 던진 듯이 흐드러지고 꽃 특유의 화들짝 들뜨고 상기된 표정도 갖게 된다. 그 때쯤이면 마른 가지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들은 번식을 위한 몸짓만으로 다가오고 만개했던 꽃잎이 시들어 낙엽처럼 바닥에 흩어져 나부끼는 모습을 대할 때면 세상의 그 어떤 귀한 생명체의 모습도 다 찰나의 순간 존재할 뿐이라는 생각과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梅花

                                                            2007.3.3

                                                                    

 

먼 하늘을 보며

터뜨려진 매화 한 송이

 

그 고고한 자태에

꽃술 가지런히

속살 드러내면

차마

바로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 향연도

꽃 필 때 만이고

 

벌 날아들어

가녀린 속살 후벼든

얼마쯤 후면

 

푸른 매실을 등에 업고

졸린 눈을 한다.

 

 

紅梅

2009. 3. 15

 

더는 막을 길 없다.

 

이른 봄 나절

첫 월경처럼 붉게

생명의 포만감을 누르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꽃망울들을...

 

더 미련 가질 수 없다.

 

꽃샘 다투어 열어젖힌 후

곧 져야 할 그 황홀한

생의 절명을...

 

그 귀한 모습 오래 지키려 해도

나른한 햇살은 조급히 피어나는 심장을 벌떡여

종말을 부추기고

 

한 순간 일다간 호흡인 것을

쓸쓸히 깨닫게 한다.

 

 

매화 특유의 기품을 조형적으로 느껴오면서 간혹 그러한 매화의 멋스러움을 붓을 들어 종이에 옮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매화 그림에서 특유의 감각이 풍기게 되는 바탕은 가지의 형상이다. 추위를 견디고 이겨내는 의연한 표정이 가지에 담기고 생장의 생명력이 함께 느껴진다. 해가 바뀌며 자라난 가지마다 마치 글씨의 획마다 기운이 뭉치고 풀어지듯 한 매듭이나 현을 당긴 활대나 강물에 조약돌이 튕겨나갈때처럼 완만한 곡선으로 탄력을 띤다. 매화가 생장하여 고목이 될수록 늘어뜨려진 가지가 많아지고 고목에서 자라난 노매는 생장이 멈춰가는 노쇠함과 새로 뻗어나 자라나는 약동감의 대비에서 생명의 경외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교감해온 매화의 감각을 먹빛과 필선의 힘으로 나타낸 그림들을 감상해주시길 기대한다.

 

一梅軒에서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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