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요?
한국 풍경화가회 카페 가입 신청을 한 후 일주일 쯤 지나 가입이 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하지만 아직은 준회원이어서 가입인사와 등업신청을 했다. 거기에 “안녕하세요? 예전에는 사생에 열심히 참가한 적도 있는데, 어느 때부턴가 시간이 안 되어 틈틈이 혼자서 스케치 위주로 작업해 왔습니다. 지난 4월 제 전시 준비차 액자 주문을 하러 삼각지 갔다가 우연히 김소정 선생님을 만나 카페 가입 후 소식을 올려달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깜빡 잊었습니다. 존함을 아는 분들이 많아 반갑습니다.” 하며 인사말을 남겼다.
잠시 후 보니 거기에 카페 가입 예기를 했던 김소정 카페지기님과 원로화가이신 박인근선생님 두 분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박선생님 글에는 “내가 알고 있는 김석환 선생님 맞는지!?환영 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댓글을 대하며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건축가 김석환입니다. 가끔 경복궁에서 김정현 선생님이랑 그림 그리실 때 우연히 뵙곤 했었지요... 변함없이 황성한 작품활동 하시는 모습이 참 뵙기 좋으십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다.
마치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오가던 말처럼 느껴지는 그 말씀에서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우선 박선생님을 비롯해 그 때 뵈었던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미 고인이 되신 김서봉 회장님, 조덕환 고문님, 영원한 장군으로 불리신 이원엽 장군님 등을 비롯해서 김호걸, 박인근, 정금남, 김정현, 전창운, 김영희, 허만갑, 이규택, 이선자, 노명자 현회장님, 이찬호, 임동일, 이경성, 김소정, 문상환, 임성호님 등, 함께 사생에 나갔던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분들과 사생지에서 그림을 그리다 잠깐 돌아보며 예기를 나누거나, 매년 거행하던 회원전 전시장과 뒤풀이 장소 등에서 시간을 함께 했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또, 그와 함께 회원들과 함께 갔던 사생지 풍경이 떠올랐다. 사생지는 주로 수석리 등 서울 근교의 마을이거나 조금 멀게는 장호원, 천안-익산 고속도로의 시작점인 풍세마을, 가평 등이었다. 사생지에 도착하면 곧 각자의 취향과 좋아하는 소재에 따라 자연스럽게 흩어지곤 했다. 그리고 제주도로 여름 연휴사생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사생지는 대부분 소박하게 주변 산세와 어우러지도록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햇살이 비추는 세월에 바랜 흙담, 무료한 듯 가끔 울음소리를 내는 쇠외양간, 맑은 개울물, 고목, 건초장들이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곳에서 농촌 풍경을 대할 때마다 고향의 채취를 떠올리곤 했다. 시골 마을이라 일행이 함께 식사할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차를 타고 조금 멀리 이동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가는 시간을 아낄 생각으로 점차 김밥을 가지고 가서 그림을 그리며 먹을 때가 많았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학창시절, 군대시절, 첫 작장의 동료, 각종 학회나 사회 활동에서 만났던 사람들 등, 일생동안 만나는 사람들 중에 계속해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동창생 가운데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처럼 회화와 음악등 취향이 같은 일을 함께 한 사람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카페를 방문해보니 박선생님이 나의 댓글을 보고 본인을 확인하신 듯, “김석환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그동안 어데 계셨어요? 국내에 계셨다면 인사동등 전시장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떻든 그동안 매우 바쁘셨군요!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라고 쓰신 글이 있었다.
그 말씀에 긴 여운이 느껴졌다. 줄곧 국내에 살았으면서 마치 외국에 나가서 연락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인사 한번 못 드린 것이 송구스럽게 여겨졌다. 그리고 사생에 참가하지 않은 후로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다. 또 새삼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나를 기억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풍경화가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매년 열었던 정기회원전에 거의 빠짐없이 작품도 냈었다. 1995년과 2005년에는 두 차례 개인전도 가졌었다. 그런데 2005년 이후로 야외 사생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지가 벌써 햇수로 12년이 지났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부터이다. 20세 때 르 꼬르뷔제의 작품집을 처음 대하며 건축가의 길을 확신하였다. 현대건축의 최대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의 빼어난 작품들과 현대 건축을 개척한 그의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동감되며 내 안에 이입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건축가로서의 뜨거운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수많은 회화작품을 남기기도 한 화가이기도 한 것이 마음에 결렸다.
나는 학창시절 이후 내 스스로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해본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미술적 소양을 갖추지 못해서 건축가로서 안목에 문제가 될까봐 염려했었다. 나는 그 후 20살 때 꿈꾸었던대로 1990년부터 1996년 사이 그의 생애와 건축을 기행했다. 그리고 그의 첫 건축여행을 다녀온 후 그림 그리기를 실천할 결심을 하고 주말에 혼자 그림을 그리다 1992년부터 한국풍경화가회에 참가하여 야외 사생을 다녔다.
2005년은 나에게 바쁜 해였다. IMF여파로 의기소침하던 시기에 오랜만에 조금 규모가 있는 건물을 설계하게 되면서 건축 설계의 갈증을 날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완공될 때까지 그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난 후로도 새로운 일이 많지 않아서 전국의 전통건축을 답사하며 쓴 글들을 모아 2006년에 책을 펴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글쓰기와 강의도 계속했다. 다행히 그 후로 규모가 크지 않은 공공건물 및 주택등의 설계가 이어져 건축 작품 활동을 계속해왔다. 2008년에는 영풍문고 초대로 종이에 먹으로 그린 ‘전통건축스케치전’을 했는데 필력을 살린 담백한 필선의 맛이 좋다며 칭찬하는 분들이 많았다. 2005년 개인전 이후로는 채색화를 거의 그리지 않고 스케치 위주의 그림을 그렸다.
박사과정 수료 후에는 틀에 억압된 느낌을 벗어나 나 자신 본래의 내면의 사유를 회복하고 자연을 대하며 정서를 함양하고 싶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종주 등을 했다. 또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하루에 걷는 ‘불수사도북 종주와, 서울 경계 한 바퀴를 혼자 걷기도 했다. 한국 전통건축의 가장 중요한 점이 입지와의 조화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데 지리적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사이 이전에 유화를 그리러 갈 때처럼 화구를 온전히 챙겨 매고 그림 그리기만을 목적으로 나서는 시간은 갖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산행을 하거나 답사를 할 때마다 어디서나 스케치를 했다. 산행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짬을 내어 하는 빠른 스케치였다. 겨울 산행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대하면 그 자리에 멈춰 장갑을 벗고 스케치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은 내게 열정이 대단하다고 한다.
낙동정맥 종주 후에는 주로 북한산만을 다녔다. 그런데 산행중 만나는 장면들을 습관적으로 그리다 스케치가 쌓이면서 북한산의 전모를 다 그리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경 위주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풍수지리 사상과 관련된 산세의 토대위에 세워진 한양도성도 함께 그렸는데, 그 그림들을 갖고 2014년 서울도서관 초대로 기획전시실에서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을 개최했다. 또 그 후로 2016년 출강하는 삼육대 박물관 초청의 ‘북한산전’을 열었고 올해에도 도봉구청과 함석헌 기념관에서 각각 ‘북한산 국립공원전’과 ‘도봉산전’을 개최했다.
북한산 스케치 등은 험준한 산행을 수반해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늘 혼자서 해 왔다. 진행 중인 큰 크기의 북한산 전경 두 점이 마무리 되면 목표했던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 번 카페에 가입 인사를 나누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사이 시대의 조류에 따라 부대끼며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에도 그럭저럭 적응해 왔고 이런 카페도 생기게 되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내 자신의 삶에서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덧 건설회사와 은행에 재직하던 친구들이 정년퇴직하는 세대가 되어 있다. 박 선생님은 항상 그대로이실 것 같지만 그 분이 나를 만나면 나이 먹은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별로 한 일 없이 금새 세월이 지났다는 당혹감도 다가온다.
시절 어려움을 감내해 오면서, 희망을 늘 미래에 두었으므로 세월이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괘념치 않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세월의 풍상이 어느샌가 내 얼굴에 나타나 있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외면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그것이 인생의 진면목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내가 열망한 인생의 길에서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더 성실한 삶을 살아야만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사이버 공간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던 분과 인사를 나누며 반가운 마음과 세월의 감회가 함께 느껴진다. 그리고 그 세월의 간격만큼 숙연한 마음으로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옛날처럼 야외 사생에 참가할 형편은 못되지만 옛 화우님들을 다시 뵐 상상이 설레임을 일게 한다.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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