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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일매헌(一梅軒)의 옥상정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6
첨부파일0
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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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8
내용

 

일매헌(一梅軒)의 옥상정원

 

 

장마에 몇 일 째 비가 내리고 있다. 때로는 폭우가 되어 무서운 기세를 보일 때도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 적게 외도 걱정이다. 내 사무실 옥상에 심은 초목들도 장마를 겪고 있다. 비가 계속오면 화단에 물창이 들어 나무들이 해를 입을 수가 있어 신경이 쓰인다.

 

내가 옥상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초 부터다. 2003년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긴 다음 옥상에 매화 한 그루를 심고 2평이 채 안되는 작은 서재를 지어 일매헌(一梅軒)이라 이름 지었다. 매화를 직접 심은 것은 처음이지만 어려서부터 특별하게 생각했었다. 초등학교때 교과서에서 매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一梅軒

                                                      04. 2. 16

                                                                

 

매화 꽃향기를 그리워 한 이의

치기 어린 손길로

엄동설한에

서울 집 옥상에

옮겨 심은 설중매 한 그루

 

그 날 후로

매화는

매일매일 그의

눈길을 받았다

 

매화는

누군가의 기다림에 답하려

차가운 겨울 햇살이지만

꽃눈에 따사로움을 더 머금으려고

얼굴을 내밀다

 

어느 날

시베리아에서 불어 온

찬바람을 맞고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뒷마당 얼음도 녹아 난

햇살이 좋은 나절

조금씩 부풀어 올랐던 꽃망울을

남 몰래 티웠다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갖가지 약을 다 써 보아도 낫지가 않아 시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에게 얘야, 매화가 보고 싶구나. 매화를 보면 병이 다 나을 것 같구나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온 산에 눈이 덮인 때라 매화가 피어 있을 것 같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낳게 해 드리려는 일념으로 매화를 구하러 온 산을 헤매며 찾아다녔다. 그리고 결국 매화 한 가지를 구해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얘기다. 나는 그 글을 읽은 후로 매화를 세상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으로 생각해왔다. 나이가 들면서 사군자에 꼽히며 옛 선비들이 사랑한 꽃이라는 것을 알고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매화는 이따금 부는 살랑바람이 살갗을 움츠려들게 하는, 겨울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때에 앙상히 메마른 가지에서 피어난다. 낮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미약하게 퍼져가는 햇살의 기운을 받아 조금씩 꽃눈이 부풀어 오르다 한순간 꽃잎이 열리며 꽃술을 드러낸다.

 

매화는 여느 꽃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유의 고고한 기품이 느껴진다. 우선 그것은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는 생명력에서 풍겨난다. 기온이 오른 시기에 자라는 무성한 느낌과 달리 겨울나무 특유의 메마른 가지에서 터트려진 매화는 인내와 끈기, 은근함, 그리고 절제와 결기의 풍모를 띈다. 선비들이 그 꽃을 사랑하게 된 까닭도 지조를 중시했던 선비정신과의 일맥상통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고고한 기품 때문이다. 나는 IMF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매화 같은 끈기로 이겨내려는 심정이었다.

 

늦겨울 언 땅에 심은 홍매는 다행히 정착이 되어 매년 꽃을 피웠다. 그 한 그루만으로도 매년 봄기운이 퍼질 무렵 꽃이 피어나는 설렘을 맛보았다. 그리고 매화 한그루가 있는 서재라는 일매헌의 명칭대로 그 한그루 나무로 만족하고자 했었다. 그런데 그 매화의 귀한 느낌도 꽃이 피어나는 한 때이고, 그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 한여름 건물의 옥상에 내리쬐는 땡볕은 너무 뜨거워 머물기 어렵다. 그래서 열기를 식힐 요량으로 다른 화단을 만들어 소나무 등의 나무를 늘려 심고 탁자와 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무가 자라서 장차 작은 숲을 이루게 하고 싶었다.

  

 

 

 

 

梅花

                                                            2007.3.3

                                                                    

 

먼 하늘을 보며

터뜨려진 매화 한 송이

 

그 고고한 자태에

꽃술 가지런히

속살 드러내면

차마

바로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 향연도

꽃 필 때 만이고

 

벌 날아들어

가녀린 속살 후벼든

얼마쯤 후면

 

푸른 매실을 등에 업고

졸린 눈을 한다.

 

 

 

 

 

紅梅

2009. 3. 15

 

더는 막을 길 없다.

 

이른 봄 나절

첫 월경처럼 붉게

생명의 포만감을 누르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꽃망울들을...

 

더 미련 가질 수 없다.

 

꽃샘 다투어 열어젖힌 후

곧 져야 할 그 황홀한

생의 절명을...

 

그 귀한 모습 오래 지키려 해도

나른한 햇살은 조급히 피어나는 심장을 벌떡여

종말을 부추기고

 

한 순간 일다간 호흡인 것을

쓸쓸히 깨닫게 한다.

 

 

그 사이 옆 대지에 높은 건물이 지어졌다. 삭막해졌지만 옥상에 그늘이 생겨 열기가 조금 누그러졌고 나무가 자라기에도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어느 해에는 소홀히 방치되다시피 하는 때도 있었다. 후에 심은 백매와 목백일홍, 포도 등이 겨울에 얼어 죽기도 해서 안타깝게 여기던 때도 있었고 나무 화단이 썩어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재작년 썩은 화분을 모두 치우고 새로 만들었다. 목재소에서 원목을 사다 건조시킨 후 직접 제작하고 인근 공사장에서 흙을 얻어 옮겨 채웠다. 그렇게 화단을 정비하면서 나무를 좀 더 심었고 근래는 제법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작년에는 맘먹고 있던 대나무도 심었다. 식목 행사 때 남은 묘목을 얻어 심기도 하고 공사 현장에서 버려진 나무 등을 주어다 심기도 했다. 옥상 외곽으로 빙 둘러 나무를 배치해서 장차 키가 크면 작은 숲을 이루도록 하고 화분과 작은 의자 등이 공간을 이루어 내도록 했다. 직업이 건축가다 보니 평소 공간에 민감한 편이라 파고라도 만들어 놓아서 능소화 가지가 그늘을 만들어가고 있다. 두 그루 중 한 그루를 등나무로 교체했다가 다시 능소화를 심었고 수조도 만들어 부레옥잠과 물배추, 워터코인 등의 수초를 키우고 있다.

 

일매헌에서 자라는 나무로는 홍매, 백매, 소나무, 대나무, 불두화, 포도, 담쟁이, 능소화, 남천, 가죽나무, 단풍나무, 산죽, 철쭉 등이 자라고 있다. 올해는 버드나무와 마가목을 심었다. 그리고 1년생 식물로는 국화(소국), 돈나물, 나리, 난초, 상사화, 노루오즘, 댕강나무, 개양귀비, 코스모스 등이 있다. 선물로 받은 화분들도 잘 자라서 조금씩 느낌이 풍부해져갔다. 또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서 나팔 꽃 등의 덩굴 식물과 참외, 수박 줄기가 바닥을 덮어가고 있어 더 무성한 느낌을 띠고 있다. 그리고 식물과 교감할 수 있는 일상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菊花

2009. 10. 11

 

어떤 기다림인가

 

들녘은 온통 다 비어가고

이제 태양빛도 더 강렬한 정염을 보이지 않고

초목은 잎을 떨구며

이별의 사념에 잠기려 할 적에

꽃망울을 맺으려 하는 까닭은

 

찬이슬이 밤새 내려앉은 날

피어난 국화 꽃송이의

수려한 자태

 

하지만 그 표정엔

봄 꽃 같은 들뜸도 없이

맑디맑은 옹달샘의 고요함과

긴 세월을 기다린 의연함 뿐

 

이제 모두가 이별의 말만을

꺼내려는 시기에

봄날을 잠시 되돌아보게 하다

차가움 견디는 결연함으로

허전해진 세월을 위로하려고

은근히 피어난 꽃이여

 

 

 

식물마다 다른 계절의 감각이 있다. 코스모스는 초가을 향내가 나는 꽃이다. 그리고 가을엔 작고 노란 국화가 삭막한 동토에 스며든 봄기운이 매화를 피우듯이 가을 향취를 풍긴다. 그리고 정말 늦가을 내음이 느껴질 때면 만물은 추적거림을 하게 되고 떠나가는 것들이 갖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옥상에 자라는 초목 가운데는 내가 직접 심지 않았지만 저절로 자라난 것들도 많다. 새들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옮겨 나는 것들도 있고,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껍질 등을 화단에 거름으로 묻은 것이 다음해 피어나 결실을 맺기도 한다. 그처럼 우연히 자라난 것들을 보면 더 신기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꽃 봉우리가 막 터지는 순간의 경탄스러움을 대할 때 가난 속에 어린 시절 피어나던 감성을 다 흘려보내기만 해온 아쉬움을 문득 떠올려보기도 하고 일상에서 생기는 시름과 속상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나의 서재 이름으로 지은 일매헌(一梅軒)은 이제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호가 되었다.  메마른 스라브에 작은 자연 생태계를 갖게 된 옥상정원, 물과 거름을 주며 가꾸는 수고보다 내 안에 전해오는 정서와 생명의 풍요로움이 훨씬 귀하게 다가온다.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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