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서울가로의 트리장식 두 곳
도시의 가로는 도시의 얼굴이 된다. 그리고 연말 가로의 트리 장식은 특정 시기에 관성화 된 문화적 표상이다. 그것은 사랑의 나눔과 배품의 의미로 시작되었지만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시기의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을 추스르려는 위안의 몸짓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가로 장식의 풍경을 기다리게 되고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건축은 공간을 다루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이들의 이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아파트 모델하우스 등 ‘상품’으로서 공간을 접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점차 이해가 높아져 왔다. 그리고 바야흐로 공간에 주목하는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친교공간, 정치공간, 경제공간, 휴식공간 등 공간이 갖는 의미가 일상생활 가운데 부각되면서 도시 가로의 공공 공간 조성이 활성화되고 더 살갑게 하려는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연말 가로의 트리 조성에 대한 공력도 점차 커지고 새로워지는 양상이다.
올해 연말 트지 장식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두 곳이 있다. 강남역 가로와 청계천에 설치된 트리 장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두 곳의 인상은 사뭇 대조적이다.
강남가로의 밤, 사인들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평소에도 도시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올해 그곳에 특별한 트리 조형물이 등장하였다. 강남역사거리에서 교보타워사거리에 이르는 강남대로에 높이 6m 너비2.9m 두께 30cm의 코카콜라 병과 산타클로스 형상의 초대형 조형물 44개가 열 지어 서 있다. 기존에 있던 미디어 폴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트리 장식임을 강조하기 위해 산타클로스 조형물을 콜라병 이미지 사이사이에 배치해 놓았다.
강남역 주변은 하루에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오가는 서울의 대표적 상업 가로이다. 그런 장소에 특정 상품을 형상화해 놓은 것은 광고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대중 상표인 코카콜라병을 거대한 크기로 확장하여 열 지어 새워 놓은 강남대로의 트리장식은 ‘팝 아트’의 개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팝 아트는 대중적 이미지의 복제와 변조를 통해 광고와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하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한 미술사조이지만 동시에 경박스러움을 띠게 되기도 한다.
새로 등장한 시설물로 인해 강남 가로는 갑자기 색다른 풍경을 띠게 되었다. 그 행위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 공공가로에 특정 상품의 이미지가 가로 성격을 지배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재치, 발랄, 활기의 인상이 떠오르지만 소란스럽고 거추장스런 느낌도 든다. 진중함이나 격조 높음 보다 자극적이고 현란스러움이 먼저 다가온다. 거기서는 조형물의 거대한 크기가 가로의 성격을 지배하고 있다. 마치 타이탄처럼 서서 그 아래로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을 외소해 보이게 한다. 또한 빨강색 색상은 더 큰 시각적 자극을 낳는다.
그 시설물을 대하는 시민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코카콜라가 강남구에 협찬을 많이 했나? 란 생각 도 들었지만, 보는 재미가 있다“는 사람도 있고 ”보기도 흉하고 왜 공공시설물을 특정 기업에 내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청계천에도 트리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트리는 가로가 아닌 청계천위 허공에 매달려 있다. 어두운 겨울밤에 차갑게 흐르는 개울물은 더 침잠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움츠려들지만 안쪽에서 발하는 빛과 형상에 문득 눈길이 간다. 우산, 프레임 박스, 음표 등 갖가지 형상을 띤 네온사인 불빛을 발하며 고요히 매달린 장식물은 따스한 온기처럼 마음을 녹이고 은은하게 즐거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두둥실 떠 있는 시설물은 별을 바라볼 때처럼 고요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설은 가로의 장소를 차지하거나 시각을 자극하지 않는다. 차가운 개울물을 생기발랄하게 깨우려는 듯 보일 뿐이다. 그리고 현란한 형상대신 장소와 이야기, 그리고 그에 동화된 사람들의 마음이 일체가 된다. 청계광장 벽천과 폭포의 뽀얀 물살도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해 뵌다. 그것은 인근의 개인 기업에서 설치한 것이지만 광고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는다. 저만치 고요히 빛나는 트리 꼭대기에서 그 기업 로고를 찾을 수 있지만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불빛의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광장 쪽에서 바라보면 “2011 내 인생이 술술 풀린다”는 트리 형상의 메시지가 보인다. 그 글씨는 사람들 마음에 풍선처럼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 글귀에서 그 곳의 조형물이 어떤 이야기를 형상화 해 놓은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유심히 보면 각기 다른 여러 가지 형상의 시설물들이 하나의 이야기에 따라 펼쳐 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희망의 메시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밤이 깊어져 더 차분해진 시각 드물게 지나는 사람들이 신기루처럼 색다른 도시 풍경과 더 깊게 교감한다. 개울의 물살은 더 차가워지고 가로등도 외롭게 빛나지만 역사와 전통이 베인 장소성, 시설물이 풍기는 세련됨, 메시지의 진솔함과 차분한 인상이 향기로운 감흥을 부른다.
강남가로와 청계천 두 곳의 트리 장식은 지역적 특색과 도시공간으로서의 성격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강남은 상업가로로서의 광고, 발랄, 젋음과 욕망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비해 역사적 지형 위에 있는 청계천은 여백과 사색의 느낌이 감돈다. 이곳저곳, 세모의 트리 장식 불빛과 함께 한해가 저물고 희망의 새해가 밝아온다.
(201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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