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일본 북알프스 주능선 종주기
일 시 : 2010년 7월 29일 ~ 8월 1일
산행구간 : 일본 북알프스 주능선 가미코지(1,523m) - 야리사와 롯지(1,850m) - 야리가다케(3,180m) - 오오바미다케 (3,101m) - 나까다께(3,084m) - 미나미다케(3,032.7m) - 기타호다카다케(3,106m) - 가리사와다케(3,110m) - 오쿠호다카다케(3,190m)- 마에호다카다께 (3,090m) - 다케사와 산장(2,180m) - 가미코지(1,523m) 약 30km 원점회귀산행
동 행 :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13명
출발일이 되니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짐을 챙기다가도 빠진 것이 없는지 신경이 쓰인다. 그런 와중에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을 아는 여행사 직원이 여권만 빠뜨리지 말고 챙겨오라고 했었다.
평소 국내의 당일 산행을 다녀 올 때와 달리 산에서 며칠을 머무를 동안 갈아입을 옷가지나 만년설이 쌓여 있는 높은 산행에 필요한 장비 등 준비할 것이 퍽 많았다. 그리고 그런 짐들을 챙겨가기 위해 큰 배낭을 준비하라고 해서 42리터짜리 배낭도 새로 사고 눈 덮인 고산지대인 것을 의식해 두툼한 양말 등도 새로 구입하면서 예상치 않은 지출도 많아지게 되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틀을 더 체류할 예정이어서 신경 쓸 것이 더 많았다.
이번 산행에 나서면서 마음 한편으로 불편함이 많았다. 이 같은 해외 원정 산행은 내 분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평소 생각에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하다 보니 동참하게 되었다. 이번 산행의 성격은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8월 정기 산행으로 계획된 것이다.
올 봄 여수 영취산 산행을 갈 때 박기현 전 회장이 올 여름 휴가철을 활용하여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알프스 산행을 제안해 회에서 그리 하기로 한 것이다. 그 때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신청 마감일이 다 될 즈음 여러 회원들이 신청한 것을 보고 정기산행에 참가하는 기분으로 신청했었다. 회에서 경비 지원을 해 준다고 한 것도 참가 부담을 적게 느끼게 한 요인이었다.
그 때 북 알프스라고 해서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를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중부 지역에 있었다.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열도의 나라에 그렇게 높은 산이 있고 위도가 높지 않은 곳에 만년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본엔 북알프스 뿐 아니라 남알프스도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은 높이가 해발 3,776m나 된다. 그처럼 큰 산이 있는 것을 두고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와 비교하며 행여 우월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구한말 침략을 해 올 때 그들만의 잣대로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우월함을 내세우곤 했었다.
일본의 북알프스는 유럽의 알프스에 비유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알프스(Alps)는 남서쪽 지중해의 제노바 만에서 북동쪽의 빈까지 1,200km의 활 모양으로 뻗어 있는데 유럽산맥이라 불리기도 하며 차지하는 총면적은 약 20만 7천 km2이고 가장 높은 곳은 4,807m의 몽블랑이다. 빙하의 침식이 인접한 계곡과의 높이차를 매우 크게 만들었다. 대서양 지중해 흑해의 분수령을 이루는 알프스는 유럽의 주요 강들인 론 라인 도나우포 강의 지류 등이 발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스위스 남부의 생고타르 고개에 새로 개통된 생고타르 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16.3km의 간선도로 터널이다.
일본의 북알프스는 나가노 도야마, 기후 3개현에 걸쳐 있고 표고 3,000m 이상의 고봉이 12봉이나 있으며, 일본 제 3위의 표고를 자랑하는 호다케다카, 일본의 마터호른이라 불리우는 야리가다케, 북 알프스에서 제일 자연 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인, 가마고지 등 일본근대 등산의 발상지답게 만년설, 빙하의 침식으로 생성된 계곡, 고산식물등 다양한 매력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다테시마, 사로우마다케 등도 북알프스 산계에 속한다.
일본의 3,000m 봉은 북알프스에 9좌 남알프스에 9좌, 그리고 후지산, 북알프스의 변두리에 있는 노리쿠라다케, 3악산을 포함해 합계 21좌가 있다. 일반코스 중 주의를 요하는 장소는 호다카 산장에서 오쿠호다카로 오르는 일부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알프스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영남 알프스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 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과 평행을 이루며 형성되어 있다.
일본 알프스는 세계 제일의 강풍 다설이 만들어 낸 경관이다. 일본은 제트 기류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일본 상공에서는 겨울에, 편서풍대 상공을 흐르는 한 대전선 제트기류와 히말라야 남쪽을 우회해서 온 아열대 제트 기류가 합류한다. 이 때문에 기류가 수렴해서, 세계적으로 보아도 가장 제트기류가 강한 지역이 되어 있다.
서울에서 공항철도의 긴 다리를 지나는 동안 우측의 너른 갯벌에 나문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 섬이 너른 들판 너머에 보이는 낮은 산처럼 보였다. 운서역 주변은 번화한 도시로 변모되어 있었다. 1996년 이후에는 외국에 나간 일이 많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엘 한차례씩 다녀 온 것이 고작이다. 전에 중국에 갈 때는 여권을 빠뜨리고 가서 다시 돌아와 챙겨 간일도 있는데 그 여권 유효 기간이 만료되어 이번에 다시 새 여권을 발급 받았다.
12시 15분 공항에 도착했다. 3층으로 가서 먼저 온 회원들과 만났다. 그런데 이종호 회장이 조금 늦을 거라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짐을 부치고 환전 등을 하는 사이 이회장이 도착했다. 이번에 함께 가는 회원은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의 이회장을 비롯해서 윤원석, 박기현, 이희철, 최진, 이득우, 이승훈, 정철수, 박기호 건축사와 김해건축사회의 이철식 건축사, 그리고 박기현 전회장의 대학 후배인 전미령씨, 이번 진행을 맡은 여행사 「일본이야기」의 이영주 이사와 나를 포함해 13명이 동행했다.
2시 45분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검색을 하면서 등산화까지 다 벗겼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면서 옆에 앉은 가이드 이영주 이사와 일정에 대해 이것저것 예기를 했다. 이번의 산행 거리는 7월 29일 첫날 14km (9시간) 7월 30일 8km (9시간) 7월 31일 8km (6시간)이라고 했다. 총 산행거리 30km에 24시간을 걷는 일정이라고 했다.
첫날은 완만하게 시작되어 오후에 1,200m 정도를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이 힘들고 둘째 날은 북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주능선을 걷는 중에 다이기렛토에서 호다카다케 산장까지 700m 정도를 급히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지출 경비에 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북 알프스는 일본 산악국립공원이다. 가을 단풍과 흰 눈이 덮인 겨울 풍경 등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띤다. 그런데 11월 중순에 산장을 폐쇄하고 다 철수하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4월 중순 재 오픈하기 전까지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4월 개막식에는 산장 주인들이 모두 참석하고 산악인들이 상징적으로 산을 오른다고 한다. 우리가 첫 날 가는 계곡에는 전나무 삼나무 등의 아름드리 나무가 많고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후지산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출발시각인 3시를 조금 넘겨 비행기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좌석은 비상 탈출구 앞이라서 승무원이 발 앞에 짐을 두지 말라고 했다. 그 좌석에 앉은 사람은 비상시 승무원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숙지할 내용이 적힌 안내서를 보여 주었다. 그것을 받아 읽어보니 "승무원의 구조 신호에 따라 비상구를 오픈하고 먼저 내린 다음 후에 내리는 손님을 도와주어야 한다. 15세 미만인 사람과 시각, 청각, 언어 장애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비상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무거운 동체가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이륙은 늘 신기하게 여겨진다. 시속 230km 정도에서 뜨게 되고 최고 속도는 900km 정도 된다. 한번 날아올라 가속도가 붙으면 탄성이 생겨 빠르게 날아가게 된다. 일본처럼 항행 시간이 짧은 곳은 이착륙에 걸리는 시간과 날아가는 시간이 비슷해진다. 화면에 지나가는 항로 지도가 나타나 있었다. 내가 걸었던 백두대간을 넘어 가게 되어 있었다.
그 때 걸으면서 비행기 소리를 더러 들었었다. 구름이 날개 아래 깔려 있었다. 하늘이 푸르고 맑았다. 날개 저 뒤로 뭉게구름이 파란 창공에 아름답게 일었다. 구름 아래로는 흐린 날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대간 길을 걸을 때 비를 맞으며 걸은 적도 많은데 그 때에도 하늘 위로는 맑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만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날씨에 선명한 풍광을 보고 싶었다.
4시 29분 비행기의 고도가 낮아지고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벌써 다른 나라에 도착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공해나 영해가 모두 일본 영역일 것 같았다. 남은 거리가 겨우 157km가 남아 있었다. 4시 36분 일본 내륙 상공을 날고 있었다. 나고야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밖에 구름이 많아 보였다. 날씨기 예고대로 흐려 있었다.
5시 나고야 공항에 도착해 5시 40분 버스를 탔다. 우리가 내린 나고야는 오사카, 동경과 함께 일본 제3의 도시이다. 가이드가 운전사 나니구찌상을 소개하고 오늘 밤 묵을 숙소가 있는 다카야마로 출발했다. 그곳까지 1시간이 소요되는데 저녁은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먹을거라고 했다.
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일본 국토의 80%가 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동안 간혹 들렀던 일본의 도시들은 해안가 내륙에 있어서인지 산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었다. 그 말을 들으며 일본 저지대의 평지성과 북알프스가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7시 20분 다카야마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인도식 카레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해 가는 도중 많은 터널을 지났다. 가이드가 30개가 넘는다고 했다.
9시 32분 다카야마에 있는 워싱턴 프라자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각 1인실을 쓰게 되었는데 나는 619호를 배정 받았다. 각자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복도에 나와 물 등을 배분하고 쉬었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나 시내 구경을 했다. 시내 거리를 이곳저곳 걷다보니 사찰이 보여 경내로 들어섰다. 나이가 많은 남자분이 산책을 하듯 조용히 들어서며 입구 쪽에 있는 관음보살상 등에 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불전 앞에 잠시 머물다 갔다. 건물이나 석등 그리고 보살상 등의 양식이 우리 것과 달라 보였다. 스케치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차에 타려고 내려오고 있었다. 7시 출발인 것을 모르고 있다 당황스러워 급히 짐을 챙긴 후 식당에서 급히 몇 술 뜨고 차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큰 산을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7시 20분 숙소를 출발해 시내를 빠져나가다 이종호 회장이 아차 하며 스틱을 두고 왔다고 해서 호텔로 돌아와 챙긴 후 다시 떠났다. 호텔에서 가미코지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가는 도중 교외지역 풍경이 보였다. 논에 벼가 무성해지며 이삭이 나올 차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가 점차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가미코지에 가까이 이르러 터널을 3개 지났다. 마지막 터널은 오르막 경사에 좌우로 굽어 입체적으로 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 터널을 건설하기 어려웠겠다고 했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좌측에 호수가 나타났다. 가이드가 8년전 그 옆 봉우리 화산이 폭발해서 분출된 토사가 계곡을 막아 생긴 것이라고 했다.
8시 34분 가미코지(1,523m)에 도착했다. 그 곳은 외부로부터 차를 타고 들어오는 베이스캠프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 우비를 입고 내리니 너른 주차장 옆에 여러채의 큰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위로는 흐린 날씨에 북알프스 산세의 일부가 보였다. 흐린 날에도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산에서 쓰지 않을 물건들을 모아 짐을 맡기고 출발해 숲길로 들어서 걸었다. 조금 가다 보니 길 좌측으로 너른 개울이 보였다. 그 개울에 흐르는 물이 맑았다. 우리 동호회 카페에서 보았던 그림에 강처럼 표시되어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금 가다보니 길가에 다시 건물이 보였다. 그 앞쪽에 특별천연기념물, 특별명승 가미코지(上高地)라고 쓰인 판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보니 건너편에도 여러동의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개울 이쪽에서 그 쪽으로 아치 형태의 카파바시 다리가 걸려 있었다. 가이드가 나올 때 그 다리를 건너오게 된다고 했다. 그 다리가 걸린 곳은 개울 폭이 더 넓고 그 뒤로 구름 속에 상부가 가려진 산세가 보였다. 계속 길을 가는 동안 길옆으로 시원스레 흘러가는 계곡이 보였다. 그리고 길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야수보호구역이라는 표지도 보였다.
9시 35분 가미코지에서 3km 떨어진 묘진이케(1,550m)산장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계속 비를 맞으며 걸어온 탓에 비를 피하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건물에는 우리의 휴게소처럼 각종 식사와 음료수 그리고 기념품 등을 필고 있었다.
9시 45분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전히 길 좌측으로 너른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측 산에서 모여드는 작은 개울도 보였다. 그 좁은 개울물은 더 맑아 보였다. 가다보니 수원 보안림이라고 쓰인 표지도 보였다. 낮은 언덕을 넘는 곳에서 폭이 너 넓어진 계울이 보였다. 폭이 매우 넓어 개울이라기보다는 강이라고 불러야 맞을 듯 싶었다. 비가 오는 상황이어서인지 개울물이 더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너른 개울 폭에는 물이 흐르는 곳과 강가의 백사장차럼 그냥 자갈만 보이는 곳도 있었다. 가다가 높은 산봉오리가 올려 보였다. 안개가 휘감고 정상부만 보였다 냇물과 어우러진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었다. 연거푸 개울 사진을 찍었다.
10시 25분 가미코지로부터 6.4km 떨어진 도쿠사와 (1,562m,) 산장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좌측에 있는 화장실은 여자 화장실을 수리중이어서 남녀 공용으로 쓰고 있었다. 산장 영내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평평한 잔디밭에 많은 텐트가 보였다. 그리고 안쪽 산장으로 들어서니 아까 지난 묘진이케처럼 내부 시설을 갖춘 건물이 있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곳에는 전에 지난 산장과 달리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급수 시설이 별동으로 갖춰져 있었다. 오늘 출발하면서 배낭에 서울서부터 가져온 시판용 작은 물병 두 개를 넣어 두었는데 비가 오는 탓인지 물은 내키지 않았다.
10시 44분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계속해서 개울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산장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아까 오면서 본 것보다 개울 폭이 매우 좁았다. 그런데 그 계곡물은 너무도 맑고 주변 숲도 수려 했다. 신무라바시(新村橋) 표지가 새워진 곳에서 길이 두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거기서 우측으로 난 길은 더 긴 종주코스로 오르는 길이라고 했다. 가다 우측에 벼랑이 선 부분을 지나자 다시 폭이 넓은 개울이 나타났다. 폭이 아까보다 휠씬 더 넓은 곳인데 그 안에서 포크레인이 자갈을 퍼서 트럭에 싣고 있었다. 특별명승으로 지정된 곳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11시 29분 요코오 (1,620m) 산장에 도착했다. 그것은 거리상으로 오늘 오를 야리가다케 정상과 반반인 지점이었다. 하지만 걸어들어온 곳은 평지나 다름 없는 터라 이후의 진행을 걸어온 거리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 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 거렸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오늘 산행을 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 점심 시간이 되어 산장안에 몰려 있어서 자리를 얻기 어려웠다. 일행은 당초 거기서 식사를 하려했으나 그 상황에서는 식사가 마땅치 않아서 더 가서 먹기로 하고 출발했다.
그 위로는 개울 폭이 점점 적어지고 있었다. 가다보니 비가 조금 잦아졌다. 풍광 좋은 개울가에서 잠시 멈춰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식사를 할까 상의하다 산장에서 하기로 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 위로 오르는 곳에는 개울폭이 더욱 좊아져서 우리나라 여러 산에서 흐르는 게곡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경사가 완만히 높아지고 있었다.
12시 48분 야리사와 롯지(1,850m)에 도착해서 점심 식사를 했다. 방수가 잘 된다는 신발인데 계속 비를 맞고 걸은 탓에 양말이 축축히 물기가 베이고 있었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가 안쪽으로 가니 건조실이 있어 젓은 양말과 깔창을 걸어 놓고 식사를 했다.
식사 후 1시 20분 다시 산행을 시작해 오름길을 걸었다. 아까 올 때와 달리 경사가 점차 심해지는 길에서 산 정상부를 향해 오르는 구간이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지만 높은 산을 오르고 가이드가 급경사라고 해서 힘이 많이 들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긴장이 되었다. 산장을 출발해 조금 오른 곳에 이르니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곳이 나타났다. 거기서 길 표지가 아리송해서 두리번 거리며 오르다 보니 숲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해서 그 길로 들어섰다.
5km 이정표를 지났다. 그 곳은 다른 산길과 갈림길이었다. 조금 가다보니 좌측 계곡 위로 만년설이 보였다. 진주서 온 일행이 앞서가다 멈춰서 가이드가 일행에게 여기서 보이지 않지만 저 위에 산장이 있다고 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 보았으나 정상부에 구름이 끼어 가늠되지 않았다.
가이드가 급경사 길을 오르게 된다고 했었는데 아직은 길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힘든 줄 모르고 계속 올라갔다. 아래서 보았던 경사보다 걷는 길이 더 완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길이 오르는 산의 경사면보다 원만하도록 우리나라의 아흔 아홉고개에 나 있는 길처럼 요리조리 에둘러 놓아서 경사가 완만해지도록 해 놓았다. 가다 눈길에 도착했다. 만년설이라는 말이 신비감을 갖게 하던 차에 실감하려고 눈을 한웅큼 잡아보니 역시 차가웠다.
길 좌측 계곡에 길게 만년설이 보였다. 다져진 그 눈이 여름을 지나며 서서히 녹아 두께가 조금씩 얇아지고 있었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계곡물이 그 눈 밑으로 큰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렸다. 그러나 걷고 있는 길은 간혹 눈길을 지나게 될 뿐 큰 자갈이 깔린 너덜길이었다.
여름출에 눈을 본다는 것이나 만년설이 덮힌 산을 오르는 것 모두 특별한 일이어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단단히 동여맨 배낭 안에 있어 꺼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에 젖어 고장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망설이며 걸었다. 하지만 사진기란 필요할 때 찍기 위해서 지니고 있는 것이고 이런 특별한 경관을 이 때 찍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길을 오르며 바라보이는 눈은 이 곳이 북사면이기 때문에 남아 있을 것이고 반대편 남사면은 녹고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상부의 능선에서도 이렇게 너르게 덮혀 있는 눈 구경이 어려울 것 같았다.
가다 멈춰서 배낭을 열고 사진기를 꺼냈다. 우비를 배낭 밖으로 감싸게 입고 있어서 우비까지 벗는 동안 세찬 비바람이 몸을 휘감아서 금새 속옷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가다보니 개울을 건너게 되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던 일본 사람이 내가 지나기를 기다리며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개울 건너고 나서는 눈 위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그 눈을 강처럼 건너 다시 견치돌 크기의 바위들이 덮힌 너덜길을 걸어 위로 올라갔다. 조금 가다보니 남녀 두명이 멈춰서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다가가면 인사를 하니 한국분들이었다. 여자분이 작은 빵 두 개를 주어 먹고 계속해 올라갔다. 좀 쉬고 가라고 하는 것을 쉬지 않고 정상까지 계속 오르려는 생각으로 걸어갔다.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비가 게속 오는 상황에서 그런 기후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빨리 걷는게 최선이었다. 너덜 길을 계속 올랐다. 오름 길에서 다른 코스를 안내 해 놓은 표지도 보였다. 길을 덮고 있는 돌들은 응회암 계통의 편석으로 옆으로 잘 쪼개지는 성질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발을 디딜 때 자갈이 밀리는 부분도 있었다.
다시 눈으로 덮혀 있는 오름길을 지났다. 가면서 가끔 위아래를 바라 보았다. 위의 정상부는 안개 구름에 잠겨 가늠할 수 없었다. 대신 지나온 아래쪽은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지점이 1850m 이니 걷고 있는 고도가 2,500m가까이 되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고지대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3,000m 고지는 체험해 본일이 없었다. 오래전에 다녀왔던 한라산 정상인 1,950m가 최고였다. 경험해보지 않은 고도로 올라가는 길이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개울 건너 눈길을 가로 질러갔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있었다.
1.25km 지점을 지났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해 놓은 것 같았다. 정상이 가깝게 남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위쪽을 바라보니 아직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올려보이는 산세가 험해 보였다. 얼마나 험난함을 견뎌야 정상에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시 1.km 남은 표지를 지났다. 속으로 다와 간다는 생각과 1km 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드높은 산이어서 그 정상부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조심스러웠다. 더 급경사거나 고소증이 생기거나 빙벽처럼 험한 곳을 만나게 된다면 휘험하고 힘겨운 길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험난한 길을 만나면 시간도 기약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아까 사진을 찍다 몸이 흠뻑 젖은 상태여서 만약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몸에 무리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세찬 비를 맞으며 걷는 상황이어서 몸에 한기가 들었다.
정상부는 계속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거리상으로는 다가가는듯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 바위에 700m 라고 쓰인 글씨가 보였다. 기분상으로는 천상의 세계처럼 심원한 느낌이지만 디디며 걷는 길은 위로 오를수록 그리 경사가 급하지 않은편이라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500m 글씨를 지났다. 언제나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바람이 불었다. 400m 남았다. 300m 남았다. 200m 남은 지점을 지날즈음 위를 바라보았다.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정상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정표에 산장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 위로 오르다 방향이 좌로 꺽어지는 지점이 이르자 바로 산장이 보였다. 감격스런 느낌이 들었다. 고산3000m 도착하여 난생 처음 경함하는 감회의 느낌이 들었다. 험난한 빗속 길에 묵묵히 오른 높은 곳이다.
4시 20분 산장에 도착했다. 건물 앞으로 다가서면서 어떤 문으로 들어갈지 생각하는데 안에서 문이 열리면서 한 젊은 사람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걱정 하면서 기다린 눈치였다. 몸이 흡뻑 젓어서 오한이 들었다. 걸어 올때도 추웠으나 어떻든 산장에서 추스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아까 사진 찍으면서 너무 비를 많이 맞은 것이 부담을 주었다.
문을 열면서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그곳에서 도우미로 근무하는 심재철씨였다. 그는 서울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듬직한 체구에 진실하고 맑은 성품이 느껴졌다. 현관에 들어서면서 난로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몸이 풀리는 듯 했다. 따스함의 온기가 간절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선 못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심재철씨가 먼서 우비를 벗고 비닐 봉지에 넣으라고 했다. 그 다음 난로가에서 불을 쬐면서 방 배정을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옷부터 갈아입고 싶디고 했더니 여행사 전화 번호를 예기해보라고 해서 말하니 임시로 2층방을 배정해 주었다. 그 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들오들 떨렸으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니 뽀송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방의 온도가 낮아 한기가 들어 재채기가 나왔다. 건조실로 가니 열풍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좋았다. 그리고 금새 재채기가 멎었다.
건조실과 열풍기실에 젓은 옥가지 등을 널어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난로 옆에서 작업을 썼다. 난로 주변분들이 금새 반가운 지기처럼 맞아 주었다. 높은 산을 오른 자축하는 기분에 자판기에서 캔 맥주를 하나 사 마셨다.
난로 옆에 앉으니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빗속을 뚫고 올라오면서 어서 산장에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그런 바람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그저 편하게 쉬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5시 30분경 최진 부회장과 박기호 재무 등이 도착했다. 그리고 6시 26분 윤고문 이종호 회장 등이 도착했다. 그러나 박기현 전회장과 그의 후배 그리고 정철수 건축사가 도착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7시 30분경이 되어 모두 도착했다. 늦게 도착한 일행이 있어 산장에서 알려준 식사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식사를 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 손님이었다.
야리가다께 산장의 구조는 입구 정면에 카운터가 놓여 있고 그 좌측에 홀이 있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우측과 좌측으로 동선이 나뉘고 우측 통로로 가서 복도 양편으로 방이 놓여 있었다. 통로 끝에 건조실이 있었다. 그리고 통로 좌측에 홀이 하나 더 있고 그 홀에서 출입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기계실이나 부족동 등 여러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장에는 우리 일행 말고도 제주 18명, 서울 10명 진주 17명, 댁 5명 등 각기 다른 여행사를 통해 이곳은 찾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 분들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내일 오전에 비가 온다고 했다. 기대가 사라졌다. 오늘처럼 물에 젖어 걸을 일이 걱정이었다. 뽀송뽀송하게 사물을 보고 싶었다. 밖에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8시 30분 소등이 되었다. 할 일이 없었다. 전원도 연결되지 않았다. 춥기도 하고 부시럭 거리는 소리나 두런 두런 들리는 이야기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산행을 다시 떠올리며 뒤척거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 시간을 보니 12시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분들도 깨어 있었다.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밖에서 세찬 바람 소리가 들렸다. 누워 있자니 더 불편해 일어났다. 일찍 출발할 채비를 해 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건조실에서 옷가지를 챙겼으나 다 마르지 않았다. 밤에는 온풍기를 꺼 두고 있었다. 마르지 않아 오늘 산행이 걱정이 되었다.
아침 4시 20분, 남들이 잠을 깰새라 조용히 나와 북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야리카데께 정상을 향해 혼자 출발했다. 어제 올라오던 길에서 갈림길 이정표가 보였었는데 거기서 오르는 길이 걸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해 표지를 보니 야리카다케라고 쓰인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어두움 속에서 길도 모른채 험한 산을 오른다는 것은 위함한 일이었다. 정확히 길을 알고 가려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 길을 물었으나 확실히 알 수 었었다. 할 수 없이 스스로 방향을 가늠하고 길을 찾아 나섰다. 산장을 나서며 왼편으로 난 길이 정상부로 오르는 길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봉우리로 다가가는 길은 그쪽뿐이었다.
오름 길은 바위가 울퉁불퉁 솟아 있는 급경사길이었다. 점차 오를 수록 어려운 길이었다. 뒤돌아보니 잠을 자고 나온 산장의 빨강색 지붕이 보였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금새 다시 구름에 감쌓이고 말았다. 큰 자갈이 널부러진 경사가 급한 오름길을 오르다 보니 사다리가 높다랗게 결려 있었다. 사다라를 조심스레 올라가다보니 저 위에서 헤드 랜턴 불빛이 보였다.
4시45분 야리가다케(3,180m) 정상에 닿았다. 날이 맑으면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안개가 짙어 주변 시야는 트이지 않았다. 정상에는 작은 신사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산을 두려운 곳으로 생각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여긴다. 지진 등 자연 재해가 많고 때로 화산 폭발도 있어서 우리의 친근한 이미지와 달리 두렵게 여기는 듯 했다. 그리고 일본은 산신 신앙이 강하여 큰 산 정상에 신사가 있는 곳이 많다.
정상에는 나 말고 4명의 일본인 일행이 올라와 있었다. 아까 올라오면서 정상부에서 비추던 불빛이 이들이 휴대한 해드랜턴 불빛이었다. 그들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조심조심 내려왔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모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하층의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식당에서 준비한, 산행 중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챙겼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낯선 방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다들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신발 등이 마르지 않아 축축한 상태로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6시 40분 산장을 출발해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좌측에는 만년설이 보이고 우측은 눈이 없었다. 짙게 안개가 끼고 좌에서 우로 바람이 불었다. 이번 산행중에는 특히 날씨에 신경이 쓰였다. 어제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는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는 갤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고지대 산의 날씨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지대를 지나는 동안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은 구름안개 때문에 조망 할 수 없었다.
7시 산장으로부터 700m 지난 지점를 지나며 잠시 휴식을 했다. 어제 후미가 뒤쳐진 상황을 감안해 함께 걷기로 했다. 그러나 전미령씨 걸음이 너무 늦어서 박기현 전회장이 보살피며 뒤따라 올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완만한 능선을 지났다. 오늘은 북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주 능선을 걷는 날이다. 이번 산행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대한 것은 그 주능선의 펼쳐보이는 풍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개구름 때문에 맑은 날에 펼쳐 보일 시선은 느낄 수 없었다. 큰 맘 먹고 특별한 산행을 와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크게 아쉬웠다.
호쾌하게 펼쳐지는 경치가 아니더라도 지나는 주변 모습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냈으나 성애가 끼어 잘 작동되지 않았다. 안개 구름이 뿌옇게 끼어 시야가 흐린 가운데 지나는 주변의 돌에 이끼가 끼어 있고 마타하리, 꿀단지 등 들꽃이 많이 보였다.
능선 오름길에 새가 지나갔다. 꿩 같은 모습이었다. 뒤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어 7시 10분 오오바미다케 (3,101m) 정상에 도착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하고 완만한 내림길을 지나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완만한 능선 길 좌측에 두터운 만년설이 쌓여 있고 바닥에는 흰꽃과 연노랑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완만한 능선에 야생화가 무리지어 핀 것이 백두대간을 걸을 때 금대봉 은대봉에서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7시 31분 나가다케 (中岳3,084m)에 도착했다. 날씨는 계속해서 짙은 구름이 낀 상태였다. 이제 날씨기 맑아질 기대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단념하듯 걷게 되었다. 그런데 능선을 가로로 넘어서는 순간 시야가 멀리 터지며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길게 지나가는 개울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큰 산세의 높다란 능선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순간 금새 다시 구름에 가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신기루를 본 듯 다시 열리지 않았다.
사진기가 잘 작동되지 않아 걱정거리였다. 계속되는 안개 속에 성애가 끼었다. 그리고 사진기의 밧데리 커버가 떨어져 나가서 사진을 찍으려면 손가락으로 받치며 찍어야 했다. 그나마 전원이 들어오다말다 해서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다시 짙은 구름이 낀 상태에서 간간히 좌측에 만년설을 보며 지났다. 능선에 야생화와 진초록색 누운 잣나무가 어우러졌다. 제비꽃 같은 자주빛을 띤 꽃, 흰 마타하리 같은 꽃, 분홍 꽃이 안개속에 희멀겋게 보이고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자갈이 깔린 길을 걷게 되었다. 채석장에서 돌을 잘게 깨트려 놓고 채가림을 하지 않은 상태 같았다. 석분도 있었다. 그리고 밟으면 돌이 놀아서 걷기가 조심스러웠다. 만약 경사가 급한 벼랑길이라면 밀려서 매우 위험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7시 54분 안부를 지나며 잠시 쉬었다. 완만한 길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지만 시야가 없어 잘 의식할 수 없었다. 쇄석이 널부러진 너덜지대여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널부러진 자갈길 뿐이었다. 그것을 디디고 지나는 사이 덜그락 거리기도 했다. 좌에서 우로 세찬 바람이 불고 안개구름이 흘러갔다.
중악과 남악의 중간지점이라고 쓰인 표지가 있는 2986m 봉우리를 지났다. 중악 40분, 남악 30분 거리로 나타나 있었다. 거리가 같은데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것은 경사도가 다른 때문일 것 같았다. 거기서 멈춰 뒤돌아보니 한동안 일행이 따라 오지 않아서 쉬며 기다렸다. 안개가 짙어 잠시 후 가까이 다가오는 이철식 건축사가 갑자기 나타난 희미한 물체처럼 다가왔다.
8시 31분 남악 20분 표지를 지났다. 계속해서 완만한 눙선을 지나는 동안 비행기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앞에 솟아 있는 봉우리가 보였으나 우로 우회해 완만히 지났다. 길과 지나는 주위에는 견치돌부터 석분까지 여러 가지 크기의 돌들이 보였다. 구름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8시 46분 미나미다케(南岳3.032.7m)에 도착했다. 정상부에 나무로 세운 표지가 새로 만든 듯 나무결과 색상이 선명해 보였다. 남악을 지나 내림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여전히 높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8시 58분 미나미다께야리 산장에 들렀다. 현관홀을 둘어서니 좌축 벽에『정해진 길 말고 고산식물 군락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 드립니다. 야생화를 채취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은 음식물이나 담배 꽁초 등은 가져가시오, 모닥불 피우지 말아 주십시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등 여러 가지 산행중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위에 쓰여진 이용료를 보니 당일은 도시락 포함 6.000엔 1박2일은 9,000엔이었다. 거기서 일행은 후미를 기다리며 카피 등 음료를 마시며 쉬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뒤에 오는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다.
맨 뒤에 오는 박기현 전 회장이 함께 온 전미령씨를 돌보며 오느라 시간이 계속 늦어지는 것 같은데 아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고 이야기 한 상태여서 기다리다 9시 32분 출발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잩은 안개 구름이 감싸고 있어 한기가 느껴졌다. 좌측에 보이는 바위 봉오리를 지나는 동안 세찬 안개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돌을 조심스레 디디면서 내려갔다.
9시 34분 급경사진 긴 벼랑길을 지났다. 그리고 다시 봉우리를 올라가다 9시 49분 계속되는 급경사 내림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림길을 내려갔다. 경사가 수직에 가까운데다 짙은 안개구름으로 물기가 베어 손발이 미끄러운 상태에서 어렵게 지나게 되었다. 내려와 구름 안개가 짙게 낀 주변 산세를 올려보니 매우 험난해 보였다. 9시 57분 날씨가 더 흐려지고 있는 가운데 급내림길을 내려가 안부를 지나 날선 능선을 지나가다 뒤의 일행을 기다려 잠시 쉬었다.
10시 8분 다시 출발하여 좌우가 낭떨어지로 형성된 구간을 지났다. 그리고 10시 12분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가이드가 한참동안 긴 급경사 내리막 구간을 지나면 계속되는 오름길이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 구간이 북알프스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라고 했다. 앞쪽에서 새 한 마리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뒤쪽에서 많은 새소리가 들렸다. 경사면에 난 길의 우측으로 펼쳐진 경사지가 천길 낭떨러지로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안개가 짙어 봉오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10시 20분 좌측에 깊은 계곡이 보였으나 어제 계곡을 지나오면서 들리던 것 같은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한가로이 새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능선 안부를 지나다 휴식 후 출발했다. 잠시 완만한 구간을 지나다 좌측에 솟아 있는 높은 산 우측으로 돌아가다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올라갈 봉오리가 희미하고 높다랗게 올려 보였다.
10시 48분 조금 완만한 오름길을 걷다 다시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아까 하염없이 추락하듯 내려왔으니 내려온 만큼 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오르고 있는 봉우리의 마지막 구간처럼 느껴지는 봉우리가 위로 올려다 보였다. 다리가 뻐근한 상황에서 조금만 더 견디며 걷자는 생각을 하며 올라갔다. 생각한대로 그 봉우리를 오르니 완만한 능선길이 펼쳐졌다. 하지만 지나는 길은 날선 바위 지대여서 조심스러웠다.
이번 북알프스 산행을 신청하면서는 하늘높이 솟은 웅대한 능선을 걸으며 그 것이 한문에 펼쳐 보이는 장쾌한 경관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 기대감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관이 펼쳐질 위치의 능선을 지나가면서도 시야가 짙은 안개구름에 가려서 전혀 풍광을 볼 수 없었다. 지나는 곳이 얼마나 높은 곳에 와 있는지도 실감 나지 않았다. 차라리 고소증 증세라도 나타난다면 실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산장이 있는 3,080m 고지까지 힘겹게 올랐던 기억만이 내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게 했다.
10시 53분 정상부를 지나 칼날능선을 지났다. 바위에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 있었다. 10시 58분 다시 칼날 같은 능선을 지났다. 그리고 잠시 후 최고로 험한 너덜지대의 급경사 오름길을 지났다. 곳곳에 굵은 쇠사슬 로프와 철근 앵커 등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그것을 지나 내려온 안부에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11시 6분 좌측 벼랑길을 지났다. 노랑꽃이 길게 무리지어 보였다. 11시 8분 능선을 걷다 봉우리를 지났다. 내리막길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11시 10분 철근으로 된 디딤 장치를 디디며 지났다. 우측은 벼랑진 낭떨어지로 되어 있고 좌측은 만년설이 보였다. 다시 안부를 지나 사다리가 설치된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위쪽에서 급경사진 바위 틈새로 일본 사람 넷이 내려오고 있었다. 벼랑길에서 조심스레 비켜주며 올라갔다. 다시 까마득하게 급경사진 길과 봉우리가 올려다 보였다. 힘든 구간이었다.
아래서 희미하게 보이던 곳에 오르니 그 위로 다시 높다할게 오름 구간이 올려 보였다. 여기까지만 오르면 급경사진 절벽을 다 올라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상황이 되니 기가 막혀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어치피 지나야 할 길이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더 조심스레 올랐다.
11시 32분 정상부를 지났으나 다시 앞쪽에 지나갈 봉우리가 보였다.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었다. 11시 37분 완만한 능선길을 지났다. 어려운 구간을 지난 것 같았으나 다시 큰 봉우리 오름길을 올라야 했다.
급경사 봉오리를 오르는 도중 바위에 매어진 쇠사슬 두 가닥이 늘여진 것을 잡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 위로 오르고 보니 로프를 맨 바위 주위에 균형이 있어 무너질 듯 불안해 보였다. 거기서 우측에 보이는 큰 봉우리 좌측으로 지났다.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불었다. 그 위로 다시 오름 봉오리를 지났다.
11시 47분 우비를 벗어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시며 홀로 휴식을 취했다. 뒤에 오는 일행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11시 57분 전망대라고 바위에 끌씨가 쓰인 곳에 닿았다.
험한 바위 사이로 난 긴 급경사 오름길을 지나가는 힘든 구간이라는 것이 실감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한계가 있고 끝이 있을 것이었다. 멈추지 말고 한발 한발 걷다 보면 마치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다시 날선 능선 위험 구간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지났다. 그리고 다시 급경사 오름 구간을 지나는 동안 마주오는 일본인 가족 3명을 만났다. 그 중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보여주는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 했다. 정상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12시 16분 오르던 봉우리를 넘었으나 아직 까마득한 느낌이었다. 다시 경사가 급한 봉우리를 지났다. 경사가 심한 곳은 지나기가 매우 위함 한 상황이었다. 만약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직벽 아래로 추락할 지경이었다. 그런 곳을 지날때는 한호흡한호흡 가다듬으며 더욱 조심하며 지나야 했다. 급경사지를 오르다 짧은 사다리 위 고리를 잡고 지났다. 좌측 경사지에 다시 만년설이 보였다.
12시 20분 기타호다카다케(3,106m) 도착했다. 주변을 돌아보다 그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는 산장으로 내려왔다. 일행이 점심을 먹기로 한 곳이다. 험난한 구간을 지나며 쌓인 긴장과 갈증을 덜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한켄 마셨다. 1시 15분 일행이 도착해 함께 식사를 했다. 모두 지나온 구간의 험난함에 한마디씩 했다. 1시 40분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박 전회장과 전미령씨가 도착하지 않아 걱정이었다. 박기호 건축사가 마중을 갔다가 박기현 전회장이 오는 것을 확인 하고 돌아오면서 10~15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1시 50분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대구팀이 출발했다. 산행중 한국에서 온 팀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속 조우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산장 처마 밑에 있는 의자에 앉아 후미를 기다렸다. 잠시 앉아 있다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처마 밑에 지은 집으로 날아든 제비 새끼들 같았다. 잠시후 박기현 전 회장과 후배가 도착하자 기다리던 일행이 빈갑게 맞이했다. 그 험한 구간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가이드가 이제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났다고 해서 일행 모두 안심을 했다. 앞으로 남은 오늘 걸은 구간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2시 32분 출발해 내림길을 걸었다. 만년설을 지나 오름길을 지났다. 앞장서 걷는 나에게 가이드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지나야 된다고 했다. 오늘 마칠 곳은 호다카다케 산장인데 그 곳까지 2.3km 남은 표지를 지났다.
2시 47분 봉오리를 지나 3시 7분 급경사지를 내려왔다. 바위 틈에 화려한 무늬의 무당벌레가 보였다. 3시 12분 좌측의 큰 봉우리를 보며 우측으로 지났다. 위험한 능선 우에서 좌로 바람이 불었다. 새가 한 마리 지나갔다. 3시 20분 급경사 내림길을 지났다.
잠시후 내림길 옆의 만년설이 있는 곳을 지났다. 지나는 길에 만년설을 보면 산이 더 아득해 보였다. 다시 오름길에 작게 솟은 봉오리를 지났다. 그리고 완만한 구간을 지나 급경사 내림길을 걸었다. 다시 안부를 지나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그리고 10분 후 다시 내림길을 걷다 우측 높은 벼랑 옆으로 지났다. 안개 구름이 좌우에 보였다.
3시 37분 급경사 내림길을 철근에 매달리며 지났다. 길 좌측에 두터운 만년설이 보였다. 여름철에 눈을 보기 어렵지만 어제부터 자주 대하다 보니 한 겨울을 지날때처첨 신기한 느낌이 시들해졌다. 3시 41분 앞에 큰 직벽 봉우리 급경사길을 올랐다. 그리고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오름길을 지났다.
3시 53분 오름길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 앞에 높다랗게 봉우리가 보여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길이 그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지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점심 식사후 출발할 때 가이드가 이제 남은 구간은 별로 힘이 들지 않을 것처럼 말하여 부담 없이 나섰다. 그런데 막상 걷고 보니 그 곳에 도착할 때까지 지났던 구간 못지않게 험한 길이었다. 안개가 짙어 시야가 명료하지 않고 이슬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매우 조심스러웠다. 산행에 나선 이상 안전하게 마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스스로 조심하고 견뎌 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일로 한다면 천금을 주어도 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경사 오름길을 걸어 4시 8분 봉오리를 지났다. 그리고 4시 16분 다시 봉오리를 지났다. 직벽 오름길이 짙은 구름에 쌓여 위험스러웠다. 급경사길을 지나 큰 봉우리가 가까워진 곳에 조금 완만해진 비탈길을 지나게 되었다. 봉우리 우측면이 트여 있어서 오르는 길의 방향이 조금 애매하여 지그재그로 돌을 디디고 올라갔다. 그 곳이 큰 정상부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오늘 지나는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다다랗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올라섰다. 산행을 하다보면 정상에 올라선 듯 하면서도 다시 더 높은 봉우리가 앞에 놓인 경험이 많았었다. 그런데 오르고 보니 그곳이 바로 정상이었다.
4시 22분 가라사와다케 (3,110m)에 도착했다. 정상 바람이 불었다. 그곳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하지만 안개구름으로 시야가 흐려 정상부의 돌무더기로만 보일뿐 높다란 산봉우리의 위용은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오래 머물기 어려워 바로 내림길을 찾았으나 잘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았다. 능선을 가로질러 갈 것 같아 그 너머를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표시가 보이지 않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했다. 바위에 흰 페인트로 칠한 표시가 내림 방향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짐작대로 그 길이 맞았다. 북알프스의 산행길은 지나는 주변의 바위 면에 흰 페인트로 군데 군데 ㅇ표를 해 놓았다. 그리고 혹시 길을 잘 못 들겠다 싶은 곳은 x표를 해 놓았다. 그것은 길을 확인하기에 편리했다. 그런데 길 주변이 거의 다 바위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보통 지나는 흙길이거나 숲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4시 28분 경사가 급한 내림길을 걸었다. 지도에 나타난 구간 표시로 보아 이제 곧 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탓에 산장의 아늑함이 기다려졌다. 시각이 일러 더 느긋하고 한가로운 산장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날씨가 흐려 트인 경관을 보지 못하고 지나온 아쉬움도 함께 달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계속되는 내림길을 걷다보니 앞쪽에 갑자기 텐트가 보였다. 시야가 짧아 바로 앞에 이르기까지 보지 못하고 다가서게 되었다. 누군가 안개와 바람을 피해 그 안에서 나름대로 아늑함을 느끼고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둥근 원반 같은 형상의 지반이 내려다 보였다. 짐작에 헬기장 같았다. 그것을 보고서도 산장에 다 왓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더 내려오니 산장 지붕이 보였다. 순간 험하고 먼 길을 지나온 고달픔을 멈출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4시 38분 호다카다케 (2,936m) 산장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 너른 마당이 있었다. 그러나 뿌연 안개 구름 때문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산장 카운터에서 예약된 방을 찾았지만 아직 배정되지 않았다며 가이드가 와야 배정 할 수 있다고 했다. 어제처럼 임시로 쉴 방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했다. 먼저 온 대구 일행이 나를 알아보고 난로 주변 의자를 권했다. 그 마음이 먼저 피로를 달래주는 듯 했다.
그들이 권하는 의자에 않자 배낭을 말리며 쉬었다. 문득 노트북 충전이 생각나 카운터에 부탁하니 200엔을 내라고 했다. 충전을 부탁하고 신발을 벗어 난로가에 말리며 쉬었다. 오늘 지난 곳들을 생각해 보니 정말 험난한 길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했다. 들어오면서 모두 한마디씩 험한 산행에서의 고달팠음을 예기했다. 말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가이드가 방을 배정 받아 방으로 베낭을 옮겼다. 복도 맨 끝 방이었다. 방에 배낭을 두고 건조실과 화장실 등을 오가며 옷을 말리고 세면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카운터에 가서 노트북 충전이 다 되었는지 확인하니 아직 안되었다고 했다. 일행이 라면을 끓여 난로가에서 조촐한 주연을 벌였다. 그러나 박기현 전회장과 그의 후배가 도착하고 있지 않아서 모두 걱정을 하면서 기다렸다.
충전이 다 된 노트북을 받아 방으로 돌아오는 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 일행이 조난을 당할 것 같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가이드와 몇 사람이 산으로 올라갔다. 나도 우비와 랜턴을 챙기고 뒤따라갔다.
조금 오르니 마중 간 가이드와 박기호 재무 등이 내려오고 있었다. 만나려면 한참 가야 될 것 같은데 돌아오고 있어 의아해 물어보니 거의 다 내려왔다고 했다. 내가 만나려고 조금 더 올라가니 내려오고 있었다. 전미령씨는 걸음조차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상태였다. 박 전회장이 배낭을 두 개 짊어지고 있었다. 배낭을 받아 짊어지려고 하니 괜찮다며 그냥 가자고 했다. 여전히 안개가 짙어 바로 앞에 있는 산장을 찾아드는데도 여러차레 길을 알려주어야 했다. 계단길을 디디면서 휘청거리는 것 같아 부축하려하니 뒤에 오던 박 전회장이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가야 한다며 말렸다.
산장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장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안에서 기다리던 일행이나 아까 위급하다고 알려준 사람 등 소식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서고 자리를 정하고 나자 모든 것이 다 평온하게 된 느낌이었다.
가이드가 방으로 들어오며 식사를 하라고 알려 주었다. 산장에서는 팀별로 시간 차이를 두어 식사하게 하고 있었다. 식당으로 가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더운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일행이 집에서 갖고 온 김이나 깻잎등도 별미를 돋구웠다.
산장은 그만의 공동체 생활의 성격과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일상에서 모르는 낮선 사람들인지만 함께 머물게 되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공동체적인 목표와 서로의 무언의 규율을 의식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면서 배려나 규율을 의식하기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어제와 달리 어젯밤 묵은 산장은 어쩐지 더 편리하고 시설이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일행들도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다. 이불도 따뜻하고 푹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조실 성능이 잘 되어 좋아들 했다. 그처럼 이용하는 시설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것에서 다른 느낌을 느끼고 그 이용상 편리를 감동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이 산장의 특징이기도 했다.
처음 방을 배정 받을 때는 다른 방들이 여유가 있어 우리 일행만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기 전 제주 팀이 들어왔다. 서로의 영역에 대한 무언의 경쟁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기득권 같은 의식도 생기게 되었다. 그들도 자리를 정하고 서로 인사도 없이 잤다. 아침에 그들이 먼저 나가서 서로 인사 없이 동숙한 게 되었다. 오히려 함께 잠을 잔 방보다 식당에서 만날 때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한 밤중에 잠이 깨어 일어나 노트북 충전을 하려고 콘센트가 있는 곳을 이리 저리 찾아 보았다. 어제 충전한 전원이 다 외어 복도에서 콘센트를 발견하고 잭을 연결했으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8시 30분에 소등인데 그 때 콘센트 전원도 모두 끄는 것 같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으나 한번 깬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그래도 복도를 서정이다 추위를 느끼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따스한 느낌이 좋았다.
4시 25분 등이 켜졌다.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났다. 박기호 건축사가 이직 어께가 아프다고 했다. 윤고문이 새벽에 잠이 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2층 복도에 젝을 꼽았다. 사람들이 오가며 부산스러우러웠다. 배낭을 꾸리기도 하고 세면을 하러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점차 더 부산스러워졌다.
이 산장은 평면 구조가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현관에서 좌측에는 홀과 안내 카운터 식당이 있고 우측으로 홀을 지나 좌측에 건조실 화상실 세면실로 가는 통로가 있고 그 다음에 방이 좌우로 놓여 있었다. 홀과 식당 부분은 2층까지 천정이 오픈되어 개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2층은 주로 방으로 되어 있었다. 방은 길이 방향으로 8칸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번호가 46번까지 붙어 있어 1인당 1.5칸씩 사용해야 맞게 되어 있었다.
산행 셋째날인 오늘은 좀 느긋하게 일정을 시작했다. 일정이라야 계속해서 산길을 걷는 일이었다. 한가지 바람은 시야가 트이는 것이었다. 오늘만은 기대를 했다. 이틀간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인 정상에서 시야만 트이면 훤출하고 호쾌한 산세를 조망할 수 있을 것 가탔다. 한번 만이라도 그 광경을 본다면 산행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출발하기 위해 배낭을 꾸리고 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자욱했다. 어제 이곳으로 도착하며 느낀 안개 속 분위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 새 날을 맞았다는 느낌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낮은 돌담 밖으로 만년설이 두텁게 단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숙박을 하며 지나고 있는 곳이 높고 특별한 산지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앞에 놓인, 북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오쿠호다카다케(3,190m)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산장을 출발하자마자 바로 앞에 놓인 급경사 길을 오르게 되었다. 시작을 하면서 박기현 전회장이 전날 낙오 될 뻔한 후배분이 앞장서 걷게 하자고 했으나 본인이 뒤에 걷겠다고 했다.
산에 들어서고부터 날씨가 계속 흐려서 제대로 풍광을 대해보지 못했다. 전날 능선을 걷다 잠시 저 아래까지 훤히 조망된 순간을 지났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것이 산행중 만난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 때 사진기 셔터를 눌렀으나 작동되지 않아서 포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
어제는 그런 순간이 다시 오겠지 하면서 혹여 구름이 걷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짙은 안개 구름속을 걸어 시야가 트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런 아쉬움속에 마지막 산행을 하는 오늘 하루는 맑은 날씨의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산되어 침울했다. 산행중 간간히 사람들이 전하는 일기 상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오늘은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맑아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각이라는 것이 기계가 작동되듯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외로 빨리 맑아 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점차 맑아져서 정상에 이를때 흰희 트인 경치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걸었다. 그렇게만 되면 최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경사도가 중간쯤 되는 길을 한동안 걸어 북 알프스 최고 봉오리 오쿠오다카다케 (3,190m,) 정상에 닿았다. 구름안개가 더 짙어져 있어서 허탈감에 무의식중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아쉬움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앞서 일본인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그곳 봉우리에도 야리카다케 정상처럼 신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곳을 배경으로 돌틈에 발을 디디고 자세를 갖추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 정상이라 사진 찍는 일이 중요하게 생각되어 차례를 지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기분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기대한 조망을 전혀 보지 못한 이번 여행은 한마디로 망친 기분이 들었다. 아예 거기서 맑아질때 까지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곳까지 어렵게 온 것에 대한 허무감이 느껴졌다. 이전 산행을 특별한 용건 없이 참가 한 꼴이다. 꼭 올 필요가 없었는데 어떤 분위기에 장단을 맞춘 것 같은 후회가 되었다. 평소 거액의 경비를 들여서 해외의 산을 다닐 형편이나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우리의 산하를 걸으며 산과 호흡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있다.
훤출한 경관을 보았다면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소문대로 굉장한 풍광에 사로잡혔을지 모른다. 어제 머문 식당에서 보았던 사진들은 나름대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야가 없는 길은 볼 품 없었다. 너덜지대의 연속이고 모나게 깨진 날선 바위를 밟고 지나가는 길이다. 길은 대체로 경사가 심한 편이었다. 실망 속에 내려가는 발길이 더욱 터벅거렸다.
한동안 길을 걸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누구러졌다. 안개 속에 지나는 길 우측이 트여 있었다. 가이드가 날씨가 좋으면 좋은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나도 직감으로 그런 지형을 느끼며 지나고 있었다. 오면서 일행을 기다리며 수첩에 스케치를 하기도 했었다. 배낭에 쳥겨온 큰 스케치북은 안개구름에 젖을 것 같아 꺼내지 못했다.
이번에 걷는 북알프스의 산행길은 처음 시작한 가미코지로 원점 회귀 산행이었다. 시작한 지점으로부터 정상부를 지나 안쪽으로 돌아감아 가는 형국이다. 그리고 가이드가 경관이 좋다고 한 곳은 능선 바깥인 샘이다. 그 길 주변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질 곳 같았다. 그 쪽은 눈이 없어서 식생이 다른 것 같았다. 급경사지에 가득찬 야생화들로 초원이 이루어진 곳도 있었다.
마에호다카다케(3,090m) 갈림길에 도착했다. 가이드에게 들러가느냐고 묻자 그냥 간다고 해서 혼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배낭을 두고 갈 생각도 했으나 여권등이 들어 있는데 혹시 잃어버리면 낭패일 것 같아 메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어제 지나온 곳들처럼 경사가 급하고 거리도 멀었다.
큰 돌무더기를 디디고 직선으로 한동안 오른 다음 나사 틀듯 좌측으로 잠시 감아 올라갔다. 내가 오르는 도중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 비켜 지나기도 있었다. 한동안 오르다 보니 정상이 저 위쪽에 높다랗게 보였다. 하지만 오르다 보면 보이지 않던 봉우리가 그 위로 나타나는 때가 종종 있어 더 높은 곳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마에호다카다케(3,090m) 정상에 올랐다. 이번 산행에서 기대한 것은 능선이 펼쳐진 경관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행을 시작하고부터 계속 흐려서 원출한 시선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그 시선을 느낄 때 비로소 북알프스라는 산세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심난했다. 그리고 이 봉우리를 오르면서 마지막 기대를 가졌으나 허사였다.
주변을 허전하게 바라보다 일행이 기다릴 것 같아 내려왔다. 종종 희말라야 등정을 하고 사진으로 전하기 위해 동반하는 뉴스를 접하곤 했는데 정상에 혼자 있다 보니 기념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 내려오다 보니 올라오는 사람이 보였다. 산장에서 연 이틀 보았던 분들이었다. 그분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려고 다시 올라갔다.
잠시 후 뒤따라 올라온 두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려오려니 둘이서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다시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섰다. 경사가 급하고 길이 물기가 젖어 조심스러웠다. 한참 조심스레 내려와 삼거리에 도착했다. 길이 햇갈릴 수 있다고 했는데 정상부를 가리키는 쪽을 제와하면 외길이라 햇살릴 염려는 없었다.
그 곳부터의 내림길도 매우 험했다. 표지를 지날 때 바로 수직에 가까운 쇠사슬 로프가 걸려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 왔다. 다시 앞에 봉우리가 보였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거기서부터는 조금 완만했다. 시야가 트여 사진을 찍었다. 시선만 트여도 반가웠다. 큰 나무가 없는 식생이 높은 산의 특색을 띠고 있었다. 들꽃도 많았다. 높은 산을 오른 사람들이 힘겹게 산길을 지나 듯 이런 높은 산에 사는 식물들이 더 큰 생명력이 느껴졌다. 한참동안 내려가다 보니 일행의 소리가 들렸다. 잠시 아래가 트여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다 금새 안개가 가려서 찍지 못했다.
어제 산장에서 출발해 능선을 걸었을 때 시원한 조망을 잠시 보다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그냥 놓치게 된 것이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앞장서 내려갔다. 다시 시야가 열려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찍었으나 성애가 끼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산행을 시작 한 후부터 비에 젖을까봐 스케치북을 줄곳 배낭에 넣어 두었으나 이제 젓지 않을 것 같아 꺼내들고 스케치를 했다. 다시 가파른 굽경사 길을 내려갔다. 이 구간은 물기가 많았다. 그리고 진흙이 반죽처럼 되어 신발에 흙이 묻고 미끄러지는 곳이 많아서 걷기가 더 조심스러웠다.
내려가다 다시 시야가 트여 서서 스케치 했다. 산세와 개울 그리고 건물이 함께 보였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냇가와 건물은 높다랗게 오른 산길에서 마치 그 높음을 확인시켜 주는 표식 같기도 했다. 그러한 높다란 노습은 또한 신비로움을 지니게 하였다 그래서 시작해 올라온 곳이 호기심을 낳게 했다.
지도에는 내려가 쉴 산장이 조금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예 계곡으로 내려간 지점에 있었다. 그 곳에 당도하면 이제 산을 다 내려가는 샘이 되었다 휴식의 달콤함도 그립지만 아쉬움이 느껴졌다. 특히 제대로 경관을 대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을 갖게 했다.
고개를 넘어 갔다. 높은 산길에서 매력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앞에 높다랗게 솟은 산 경사면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계곡에는 만년설이 보였다. 하늘 위쪽도 구름에 걷혀 그 높이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주변 산세가 계곡 주편을 감싸며 지나고 있고 그로써 계곡의 너른 수량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더 내려가다 보니 스위스의 산 풍경에서 만나는 것 같은 초원 풍경이 펼쳐졌다. 좀 더 아래로 내려와 숲길로 접어들었다. 산장까지 거리가 멀어 도착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이번 산장은 조금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은 의식을 갖고 있어서 산장까지 더 멀게 느껴졌다. 3090봉부터 험한 길을 줄 곳 내려오다 보니 시장끼가 느껴졌다. 어서 산장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싶었다.
다케사와 산장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먼저 내려온 최진 부회장과 이철식 건축사가 보였다. 바위로 된 식탁과 의자가 매력적이었다. 가이드가 시간이 늦어 예정한 가미코지에서의 온천욕은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올려보이는 산을 스케치 했다. 정상부를 걷는 동안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해서 그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다시 출발해 가미코지를 향해 완만한 내림 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간간히 주변 산을 올려다보며 지났다. 한참 내려와보니 앞에 걷던 일행이 길에 멈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풍혈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면서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 서니 과연 시원했다. 아래로 내려오니 앞서간 최진 부회장과 이철식 건축사가 탁족을 하고 있어 함께 했다.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역시 물이 맑았다. 다리에 서서 스케치 하는데 일행이 지나갔다. 가이드가 올라갈 때 보았던 다리로 3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다 되어 서둘러 나왔다. 입구로 몇몇 일행이 나오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박기호 재무가 나에게도 한켄 권해서 시원하게 마셨다. 후미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 될 것 같아서 다시 개울로 가서 스케치 하다 보니 후미가 지나쳐 가다 만나서 함께 내려왔다.
일행이 다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가미고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날이 개어 시야가 터졌다. 맑은 날씨와 산행 날짜가 엇갈렸다. 이제 산생을 시작한다면 맑은 날씨에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온 마당에 날씨가 맑아지니 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루 늦게 했다면 잘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다시 한참을 올려 보았다. 높은 것을 걸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길만 보일 때도 있었다. 부숴진 돌 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올려다본 모습은 수려했다. 멀리서 보면 숭고한 인상을 띠지만 다가서면 돌무더기뿐이라는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 같아 보였다. 여행은 사물을 새롭게 대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도 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나 높은 산세 등을 새롭게 대할 수 있었다.
이번 3,000m급 산행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람들에게 높이감은 특별한데가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밀도가 희박해져서 사람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고소증을 겪게 된다. 수평 거리로는 하루에 수백키로를 다닐 때가 있지만 수직으로는 오르기 어렵다. 북 알프스 높이인 3,000m도 수평 거리로는 3km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높이감은 처음 경험한 것이다. 그것이 이번 산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주차장에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해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호수 터널 등이 들어갈 때와 역순으로 차례로 보였다. 날씨가 맑아 주변이 선명하게 보였다. 맑아진 날씨에 지나는 주변의 산세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가면 식사와 휴식 할 일 밖에 없었다.
7시 40분 나고야 시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짐만 두고 식당에 갔다. 산장에서와 달리 풍족한 느낌이었다. 분위기가 특이했다. 선술집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가이드가 복장 등을 갖추고 가는게 좋겠다고 해서 조용한 집을 생각했는데 딴판이었다. 번번이 그가 한 말이 싱겁게 느껴졌다. 한 아이가 큰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냥 갖고 놀고 있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인 1일 나고야성 등을 관람하고 오후 5시 45분 나고야 공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시내 구경을 하고 8시 35분 호텔을 풀발해 8시 50분 나고야 성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려 성 입구로 다가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가 표를 사는 사이 출입구완 안내판을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9시가 되어 입장을 시작했다. 줄을 서 기다리다 성 안으로 입장했다.
나고야 성은 막부시대의 상징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숲 길이 나 있었다. 가족들이 나들이 나온 듯 명랑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천수각이 해자 너머로 절벽위에 보였다. 좌측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박물관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꾸가와 이에아쓰 등 막부 시대를 연 주역들과 그의 무사들의 행렬을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임진왜란 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 가등청정이나 소서행장의 모습도 보였다.
박물관을 나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입구는 정문에서 좌우로 돌아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연결된 건물이 보였다. 좌측 낮은 건물로 들어서 연결건물을 지나 천수각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연결되어 보이는 건물은 지붕이 없었다.
나고야 성을 상징하는 천수각은 5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각층마다 주제별 전시가 되어 있었다. 성의 축조과정이나 설명을 해 놓은 곳도 있고 그 시대 거리를 세트화 해 놓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맨 윗층은 전망대와 매점이 있었다. 가장 시선이 높은 그 곳에서 나고야 시내가 넓게 조망 되었다. 나고야 시내의 건물들은 고층 건물이 많지 않아서 시선이 넓게 펼쳐졌다.
천수각을 나와 나고야 성 경내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돌아보았다. 군데군데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은 큰 돌을 다듬어 작은 돌을 괴며 싸여 있었다. 천수각 영역을 나가며 좌측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오래된 성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성벽은 유난히 가대한 바위가 끼어 있었다. 다시 우측으로 돌아 나오는 도중에도 중문이 하나 있었다. 그 밖으로 나와 해자 옆으로 돌아 나오다 모서리에서 천수각이 훤출하게 보여 스케치 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당초 나고야 상만 보고 헤어지려다 3대 신궁이라는 말에 관심이 있어 신궁을 마저 보기로 하고 함께 버스에 올랐다. 신궁은 가로 질러 30분 정도 더 가야 된다고 했다.
10시 40분 신궁에 조착했다. 이 신궁이 유명한 것은 일본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부터 현재의 천황까지 만세일계의 전통을 이어왔다고 자랑하고 있다. 일본 역사의 시조가 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방울과 거울, 그리고 신검을 가져 왔는데 이곳은 그 세가지 중 검을 모신 신궁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사람들이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곳에 있는 문에서 안으로 들어가다 좌측으로 꺽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꺽여지는 지점 직진 방향에 건물이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건물 같았다. 꺽여 들어간 좌측 지점에는 손을 씻을 수 있는 수조가 놓여 있고 물을 뜰 수 있는 대나무 용기가 여러개 놓여 있었다. 일행이 목이 마른지 마실 수 있느냐고 하자 입만 행구라고 했다
안쪽으로 가려다 되돌아 나와 박물관으로 갔다. 그 안에 이 신사의 상징적인 검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러 일본 사람들이 그것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길을 따라 만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안쪽으로 가다보니 수령이 오래 묵은 나무가 보였다. 우리나라 마을에 있는 당산 나무 같았다. 일행들이 그 주위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계속 축을 이루며 나 있는 길을 따라가니 마지막에 격식 있게 지어진 건물이 놓여 있었다. 그 건물이 신당 같았는데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서 일주문, 천왕문, 불위문을 차례로 지나 극락전에 이르는 것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우측에는 의례를 진행하는 건물이 있었다. 우측 건물 로비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전통 건축은 그만의 양식성을 띠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그 차이 역시 가구법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도리와 지붕 등이 우리와 다른 인상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무사의 복장이나 투구에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 나라의 정서에 맞게 문화가 형성되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서 일행과 헤어져 이틀 더 머물며 개인 볼일을 보기로 했다. 인사를 하려고 신궁 입구로 나오니 몇 사람이 오지 않았다. 번거롭지 않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배낭을 매고 차 밖에서 기다렸다. 날씨가 무덥고 배낭이 커서 땀이 많이 흘렸다. 이회장과 박전회장 후배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들과 인사하다 다시 차에 올라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일행과 해어졌다.
(20100801)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