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루이스 바라간전을 보고
지난 11월 13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루이스 바라간, 그를 만나다」의 제목으로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 11월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에 이은 건축가를 조명하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얼마전 공평 갤러리 앞을 지나다 우연히 그 전시를 예고하는 글을 보았을 때 회화만을 전문적으로 전시해온 상업화랑에서 그런 특별한 행사를 갖는 것이 무척 반갑게 여겨졌다. 나는 전에 그의 건축을 돌아본 일이 있어 더 반가운 느낌으로 기다려졌다. 그리고 평소 바라간은 위대하지만 덜 알려진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존재가 일반에게 제대로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세계를 제대로 보여줄지 긴가민가한 생각도 들었었다.
전시가 열리면 놓치지 말고 봐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개막후 바로 찾아가지 못했는데 공간 사옥에서 있은 회의에 참석하려고 그 앞을 지나가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예상했던 것보다 전시 구성이 짜임새 있게 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화랑 관계자에게 들으니 맥시코 대사관에서 전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했다.
루이스 바라간은 건축사에서 특이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의 건축은 멕시코의 풍토를 바탕으로 자신의 독특한 건축세계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대체로 지역주의 건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학교에서 건축 교육을 받은 일 없이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건축의 길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쳐냈다.
실제로 그의 건축을 대하면 맥시코의 문화적 전통이 느껴진다. 나아가 침묵 속에 자연과 교감하면서 평온함이 느껴진다. 또한 그의 건축은 정원과 건축이 밀접한 관련성을 갖도록 구성된 특징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매스의 구성 등은 그가 젊은 시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접한 근대 건축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의 건축적 출발은 1940년대에 지은 프레에토이다. 거기서 바라간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황무지 같던 땅을 사들여 집을 지었다. 그는 그 저택의 건축을 시작하면서 정원을 먼저 만들었다. 벽으로 둘러친 정원은 고요와 침묵을 지켜주는 사적 영역이었다. 바라간은 거기서 자신의 건축적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그 작업에서 구사된 건축적 어휘들은 그의 작풍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 저택은 자연과 거주처가 다른 것이 아닌 하나로서 일체되어 있는데 그를 통해 바라간의 특별한 감각과 세계가 느껴진다. 거기서 그에게 건축이란 현무암이 띠는 원초적 자연의 대지에 정착하는 삶터의 평온함을 이루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바라간이 그린 설계도만 보면 실제 건물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엄밀한 비례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단순한 직사각형 형태의 그림을 보면 특별히 형태적 아름다움을 고려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실제 건물을 접하면 도면에 그려진 벽과 높이와 실의 깊이 그리고 창으로 유입된 빛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그린 건축 도면은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역, 크기, 볼륨, 관계, 시선 등에 관한 존재성의 기록이다. 즉 건축을 이루는 요소의 정확한 정의이자 존재적 가치를 띠게 하는 것이다. 그의 건축을 대하면 건축이 바로 존재성을 다루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은 건물은 어느 한정된 삶의 영역에서 자연과 교감하면서 고요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이번 바라간 전에는 건축 모습을 담은 영상물, 도면, 모형, 기록사진 등이 전시되었는데 전시 공간을 바라간 건축의 이미지에 알맞게 새롭게 꾸며서 더 잘 느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주요 작품은 전시 벽면에 영상으로 비추어 보여주고 있었는데 바라간의 건축 세계를 영상미로 대하는 새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채화, 묵화 등 그의 그림과 사진작품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숲을 그린 그의 그림에서 숲의 깊이감과 울림이 전해 왔는데 그것은 공간과 사물이 일체화된 그의 건축 작품에서 느꼈던 느낌과 맥락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서는 다큐멘타리 영상물을 반복해서 보여 주고 있었다.
영국 BBC에서 제작한 영상을 EBS에서 자막과 나래이션을 넣어 새로 제작한 것인데 카사 프리에토, 카사 갈바스, 바라간 주택이 연속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옥상 정원이 유명한 바라간 하우스는 그가 1988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집인데 나도 직접 답사한 일이 있다.
전시물을 통해 그가 독창적으로 이룩한 뛰어난 작품을 대하며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이건 스스로 하고 싶어하는 열망과 확신이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전시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 아쉬움이 생겼지만 방명록에 전시를 보고 간 많은 학생들의 서명이 있어 한편으로 반가웠다.
이번 전시는 20세기의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을 새롭게 대하는 기회였다. 특히 그가 맥시코의 지역적 전통과 근대 건축적 어휘를 잘 살려 뛰어난 작품을 빗어낸 것에서 평소 한국 전통 건축이 지닌 가치를 현대의 작품에 살려보고자 하는 나의 생각을 비춰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보면서 이 시대 각종 건축적 슬로건이 난무하는 가운데 침묵으로 말하는 바라간의 건축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0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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